<?xml version="1.0" encoding="UTF-8"?><rss xmlns:dc="http://purl.org/dc/elements/1.1/" xmlns:content="http://purl.org/rss/1.0/modules/content/" xmlns:atom="http://www.w3.org/2005/Atom" version="2.0" xmlns:media="http://search.yahoo.com/mrss/"><channel><title><![CDATA[OTTER LETTER]]></title><description><![CDATA[오터레터 Otter Letter]]></description><link>https://otterletter.com/</link><image><url>https://otterletter.com/favicon.png</url><title>OTTER LETTER</title><link>https://otterletter.com/</link></image><generator>Bluedot 4.5</generator><lastBuildDate>Mon, 22 Jun 2026 12:52:17 GMT</lastBuildDate><atom:link href="https://otterletter.com/rss/" rel="self" type="application/rss+xml"/><ttl>60</ttl><item><title><![CDATA[그 감방에서 일어난 일 ①]]></title><description><![CDATA[세상에서 일어나는 잘못된 일들의 상당수가 실제로는 '누군가의 악의'가 아닌 '누군가의 무능'에서 비롯된다.]]></description><link>https://otterletter.com/death-of-epstein/</link><guid isPermaLink="false">6a352ee516b54100013db335</guid><category><![CDATA[제프리 엡스틴]]></category><category><![CDATA[음모론]]></category><dc:creator><![CDATA[발행인 | 박상현]]></dc:creator><pubDate>Mon, 22 Jun 2026 00:58:00 GMT</pubDate><media:content url="https://cdn.media.bluedot.so/bluedot.otterletter/2026/06/5fy9j6_202606191912.jpg" medium="image"/><content:encoded><![CDATA[<p>워싱턴 D.C.의 링컨 기념관 앞 리플렉팅 풀(Reflecting Pool)은 애초에 관리가 까다로운 시설이었다. 얕고 넓은 데다 여름이면 수온이 쉽게 올라가 녹조가 자주 발생했고, 물 순환 시설과 배관 문제도 오래전부터 지적되어 왔다. 그런데 트럼프 행정부는 미국 독립 250주년을 앞두고 이 연못을 자신이 말한 "미국 국기의 푸른색(American Flag Blue)" 색으로 바꾸겠다며 대대적인 개보수 공사를 추진했다.</p><p>문제는 과정이었다. 애초 100~200만 달러 수준으로 이야기되던 사업은 설명도 없이 1,400만 달러(약 210억 원) 이상으로 불어났고, 공사는 경쟁 입찰 없이 긴급 사업이라는 이유로 특정 업체에 맡겨졌다. 그 업체가 과거 트럼프 관련 사업을 하던 사람이라는 보도까지 나오면서 왜 그렇게 서둘렀는지, 공개 입찰 절차를 왜 생략했는지 등 다양한 의문이 제기됐다. 단순한 유지보수 문제를 정치적 과시 사업으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투명성이 희생되었고, 비리 가능성이 있다는 의혹이 제기되었다.</p><figure><figcaption>리플렉팅 풀에서 물을 빼고 푸른색 도료를 칠하는 장면<div><a href="https://www.reuters.com/pictures/photos-show-crew-painting-reflecting-pool-trump-renovation-continues-2026-05-14/">Reuters</a></div></figcaption></figure><div><hr /><a href="https://otterletter.com/death-of-epstein/">계속읽기</a></div>]]></content:encoded></item><item><title><![CDATA[탈라리코 블루 ⑤]]></title><description><![CDATA[탈라리코의 승리는 장담할 수 없다. 하지만 그가 승리한다면 트럼프가 재편한 미국의 정치판도는 또 한 번 요동치게 될 것이다.]]></description><link>https://otterletter.com/talarico-blue-5/</link><guid isPermaLink="false">6a3171ec2d12610001b80dae</guid><category><![CDATA[텍사스]]></category><category><![CDATA[미국 중간선거]]></category><dc:creator><![CDATA[발행인 | 박상현]]></dc:creator><pubDate>Wed, 17 Jun 2026 01:58:00 GMT</pubDate><media:content url="https://cdn.media.bluedot.so/bluedot.otterletter/2026/06/9709yw_202606161555.jpg" medium="image"/><content:encoded><![CDATA[<p>문제는 저스틴만이 아니었다. 6학년 학생들 중에 글을 제대로 읽지 못하는 아이들이 있었다. 그는 빈곤율이 높은 학군에서는 교사들에게 수업뿐 아니라, 사회복지사 역할까지 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한다. 당시 텍사스의 주의회는 공립학교 예산을 54억 달러(약 7조 원)나 삭감한 상태였다. 탈라리코는 빈곤 지역 학교의 고질적인 인력 부족과 예산 감축 문제를 체험하면서 심한 소모감을 느꼈고, 오래지 않아 교사 생활을 그만두었다. 정신적, 육체적으로 너무 지쳤기 때문이다. </p><p>교사를 그만둔 탈라리코는 하버드 대학원에 진학해서 1년간 교육 정책을 공부한 후, 지역의 비영리 교육단체에서 일했다. 그러던 2017년 어느 날, 그의 고향 지역구의 공화당 하원의원이 의원직을 내려놓자, 출마를 결심했다. 그는 공화당 텃밭이던 지역구에서 민주당 후보로 출마해 2018년 텍사스 주하원의 최연소 의원으로 당선되었다. </p><p>그 후 지금까지 네 번의 임기를 수행하면서 그가 꾸준히 강조한 정책은 교육과 관련한 것이었다. 그는 입법 활동을 하면서 옛 제자들의 얼굴을 떠올리며, '이 법이 그 아이들에게 어떤 영향을 줄 것인지'를 생각했다고 한다. 첫 임기 때 학교 내 정신 건강 서비스 확대, 초중고교 자살 예방 프로그램 강화, 금융 문해력·시민 의식·성교육 관련 교육과정 투자를 골자로 하는 종합 법안을 발의했다. </p><div><hr /><a href="https://otterletter.com/talarico-blue-5/">계속읽기</a></div>]]></content:encoded></item><item><title><![CDATA[탈라리코 블루 ④]]></title><description><![CDATA[탈라리코가 문을 열고 밖을 보니 체육 교사 두 명이 저스틴의 양팔을 붙잡고 학교 밖으로 들어내 가고 있었다.]]></description><link>https://otterletter.com/talarico-blue-4/</link><guid isPermaLink="false">6a2c6dbbacc5d500014727e0</guid><category><![CDATA[텍사스]]></category><category><![CDATA[미국 중간선거]]></category><dc:creator><![CDATA[발행인 | 박상현]]></dc:creator><pubDate>Mon, 15 Jun 2026 20:38:00 GMT</pubDate><media:content url="https://cdn.media.bluedot.so/bluedot.otterletter/2026/06/byj216_202606152100.jpg" medium="image"/><content:encoded><![CDATA[<p>앞의 글을 페이스북에 소개한 후, 기독교 신자로 잘 알려진 인남식 국립외교원 교수가 제임스 탈라리코가 했던 다른 말도 인상적이었다는 댓글을 달았다. "어린 학생들 교실에 구약시대 토라, 즉 십계명 걸 생각하지 말고, 월스트리트 은행이나 증권사 입구에 '부자가 천국에 가는 것은 낙타가 바늘귀를 통과하는 것보다 어렵다'는 예수의 말씀을 차라리 걸어놓으라." 미국의 정치인이 자본주의를 공격하는 게 과격하게 들리겠지만, 탈라리코가 실제로 했던 말은 인 교수의 인용보다 더 과격하다. </p><p>"기독교 성경에는 경제적 정의(economic justice)가 3,000번이나 언급되어 있습니다. 이것이야말로 우리 기독교 전통의 핵심적인 부분인데도, 기독교 민족주의나 종교 우파 세력에게서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볼 수 없습니다.</p><p>제가 궁금한 건 이겁니다. 모든 교실에 십계명을 붙여놓는 대신, 왜 모든 기업의 이사회실에는 '돈은 모든 악의 뿌리다'라는 말을 붙여놓지 않는 걸까요? 왜 모든 법정에는 '비판받지 아니하려거든 비판하지 말라(판단하지 말라)'를 붙여놓지 않을까요? 왜 펜타곤(미 국방부) 복도에는 '왼뺨을 치거든 오른뺨도 돌려대라(원수를 사랑하라)'를 붙여놓지 않는 걸까요? 아니면 뉴욕증권거래소 바닥에는 '부자가 하늘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낙타가 바늘귀로 지나가는 것이 더 쉽다'라는 말을 붙여놓지 않는 걸까요?" </p><div><hr /><a href="https://otterletter.com/talarico-blue-4/">계속읽기</a></div>]]></content:encoded></item><item><title><![CDATA[탈라리코 블루 ③]]></title><description><![CDATA[핵심은 그의 표정에 있었다. 그는 상대의 위선을 지적하면서도 목소리를 높이지도 않고, 얼굴에는 잔잔한 미소를 잃지도 않는다. ]]></description><link>https://otterletter.com/talarico-blue-3/</link><guid isPermaLink="false">6a2963baacc5d5000146f421</guid><category><![CDATA[텍사스]]></category><category><![CDATA[미국 중간선거]]></category><dc:creator><![CDATA[발행인 | 박상현]]></dc:creator><pubDate>Sun, 14 Jun 2026 18:19:00 GMT</pubDate><media:content url="https://cdn.media.bluedot.so/bluedot.otterletter/2026/06/2d1hwa_202606122051.jpg" medium="image"/><content:encoded><![CDATA[<p>공화당 의원들이 트럼프의 자기 사람(켄 팩스턴) 밀어 넣기에 분노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또 있다. 텍사스는 가만 놔두기만 해도 앞으로 공화당 대통령을 꾸준히 당선시킬 수 있는 기반이기 때문이다. </p><p>얼마 전 민주당의 상원 원내대표인 척 슈머(Chuck Schumer)는 민주당이 상원을 되찾아 올 전략을 내놓으면서 알래스카주와 메인주, 노스캐롤라이나주, 오하이오주를 지목했다. 텍사스는 그 목록에 포함되지 않았다. 그 이유는 단순히—뉴욕이나 캘리포니아가 민주당 우세인 것처럼—텍사스에서 공화당이 우세이기 때문만이 아니다. 슈머가 찾아오려는 네 개의 주는 현재는 공화당이 연방 상원의원직을 갖고 있지만, 훌륭한 민주당 후보가 존재하거나, 민주당의 조직력이 여전히 남아 있는 곳들이다. </p><p>텍사스는 그렇지 못하다. 텍사스 내 9,000개 투표구(precinct, 한국의 선거구와는 조금 다른 개념으로, 선거 관리를 위한 가장 작은 행정 단위) 중에서 민주당 책임자가 없는 곳이 60%가 넘는다. 다시 말해 민주당은 선거 운동을 할 사람조차 없는 지역이 절반을 훌쩍 넘는다. 그 정도로 민주당의 존재감이 없다. </p><div><hr /><a href="https://otterletter.com/talarico-blue-3/">계속읽기</a></div>]]></content:encoded></item><item><title><![CDATA[탈라리코 블루 ②]]></title><description><![CDATA[정치인들에게 가장 중요한 건 선거에서의 승리다. 의원에게 자신의 재선보다 더 중요한 어젠다는 존재하지 않는다. ]]></description><link>https://otterletter.com/talarico-blue-2/</link><guid isPermaLink="false">6a19b9f0c327470001bdd09c</guid><category><![CDATA[텍사스]]></category><category><![CDATA[미국 중간선거]]></category><dc:creator><![CDATA[발행인 | 박상현]]></dc:creator><pubDate>Wed, 10 Jun 2026 01:49:00 GMT</pubDate><media:content url="https://cdn.media.bluedot.so/bluedot.otterletter/2026/05/x6y2w3_202605291709.jpg" medium="image"/><content:encoded><![CDATA[<p>제임스 탈라리코를 돕는 가장 큰 원군은 바로 도널드 트럼프다. 아무리 탈라리코가 독실한 기독교 신자이고, 중도 유권자들 사이에서도 인기를 끈다고 해도 텍사스에서 현역 상원의원인 공화당의 존 코닌(John Cornyn)을 누르기는 쉽지 않았다. 코닌은 텍사스주 대법원 판사, 텍사스주 법무장관을 거쳐 2002년에 연방 상원의원이 되었고, 그 이후로 지금까지 20년 이상 텍사스를 대표해 온 상원의원이다. </p><p>임기만 긴 것도 아니었다. 공화당 상원 원내 총무(Whip)를 역임하면서 당내 서열 2위까지 올랐고, 현재 원내 대표인 미치 매코널(Mitch McConnell)을 이을 차기 상원 리더 후보로 거론되던 인물이다. 전통적인 보수주의 성향이지만, 당내 강경파(과거 티파티 세력이나 현재 친트럼프계 사람들)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제도권 중심의 온건한 보수이기 때문에 때로는 민주당과 손을 잡고 초당적인 협력을 하기도 했다. 바로 이런 이유로 탈라리코의 승리 가능성은 높지 않았다. <b>민주당 후보가 공화당 우세인 텍사스주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공화당 지지자들 중에서도 트럼프를 썩 내키지 않아 하는 중도층을 가져와야 하는데, 존 코닌이 바로 그들을 꽉 잡고 있었기 때문이다. </b></p><figure><figcaption>존 코닌 상원의원과 트럼프<div><a href="https://www.houstonchronicle.com/opinion/outlook/article/john-cornyn-donald-trump-first-100-days-20287545.php">Houston Chronicle</a></div></figcaption></figure><div><hr /><a href="https://otterletter.com/talarico-blue-2/">계속읽기</a></div>]]></content:encoded></item><item><title><![CDATA[나이스 샷!]]></title><description><![CDATA[동부 사람들은 kind하지만 nice하지 않고, 서부 사람들은 nice하지만 kind하지 않다.]]></description><link>https://otterletter.com/nice-shot/</link><guid isPermaLink="false">6a1b2e6ec327470001bde642</guid><category><![CDATA[미묘한 영어]]></category><dc:creator><![CDATA[발행인 | 박상현]]></dc:creator><pubDate>Sun, 07 Jun 2026 14:53:00 GMT</pubDate><media:content url="https://cdn.media.bluedot.so/bluedot.otterletter/2026/05/eaa0bt_202605301923.jpg" medium="image"/><content:encoded><![CDATA[<figure></figure><p>미국 골프장에서 한국에서 온 골퍼들을 구분하는 방법의 하나가 "나이스 샷!"이라는 말이라는 얘기를 들었다. 일행이 공을 잘 쳤을 때 일제히 "나이스 샷!"을 외치는 그룹이 있으면 한국 골퍼들이라는 거다. 혹시 'Nice shot'이라는 표현은 콩글리쉬일까? 영어권에서는 쓰지 않는 표현일까? 그렇지 않다. 문법적으로 틀린 것도 아니고, 영어권 사람들도 충분히 쓸 수 있는 표현이다. 그럼, 왜 이 표현은 한국인 구분법이 되었을까?</p><p>잘못된 표현이어서가 아니라, 한국인들이 유독 많이 사용하기 때문이다. 엄밀하게 말해, 한국 골퍼들 사이에서 "나이스 샷!"은 방금 친 공에 대한 기술적 평가라기보다는 의례적인 인사말에 가깝다. 샷이 좋든 나쁘든 상대방을 배려하고 분위기를 밝게 유지하려는 따뜻한 추임새에 가깝다. 살짝 다른 문화적 맥락에서 사용한다는 얘기다.</p><div><hr /><a href="https://otterletter.com/nice-shot/">계속읽기</a></div>]]></content:encoded></item><item><title><![CDATA[혁명을 준비하는 시간]]></title><description><![CDATA[각 챕터를 끝낸 후에 잠시 눈을 감고 생각을 정리하면 내가 그 운동의 일부가 되어 치열하게 고민한 것 같은 기분에 빠진다.]]></description><link>https://otterletter.com/the-quiet-before/</link><guid isPermaLink="false">6a1de021c327470001be083e</guid><category><![CDATA[서평]]></category><category><![CDATA[책 소개]]></category><dc:creator><![CDATA[발행인 | 박상현]]></dc:creator><pubDate>Sat, 06 Jun 2026 14:47:00 GMT</pubDate><media:content url="https://cdn.media.bluedot.so/bluedot.otterletter/2026/06/drykj8_202606051440.JPG" medium="image"/><content:encoded><![CDATA[<p>벌써 15년이나 지났다는 게 믿어지지 않지만, 우리는 대부분 '아랍의 봄'을 기억한다. 튀니지에서 노점상을 하던 청년이 분신자살을 한 것을 계기로 시작된 혁명이 북아프리카와 중동 지역의 국가들로 퍼져나갔다. 당시 인터넷은 아직 어렸고, 소셜미디어를 중심으로 온라인 세상이 재편되고 있었다. 2002년 한국에서 온라인 커뮤니티가 중심이 되어 노무현 대통령을 당선시켰던 것처럼, '아랍의 봄' 때는 소셜미디어가 중요한 역할을 했다. </p><p>그때까지만 해도 사람들은 구글이 'Don't be evil(악해지지 말자)'이라는 원칙을 갖고 있다고 믿고 있었고, 트위터와 페이스북은 세상을 하나로 묶어줄 거라고 생각했다. 특히 페이스북은 피드에 알고리듬을 도입한 지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에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수많은 폐해가 아직 드러나지 않았다. 모두가 소셜미디어의 순기능에만 주목하던 시절이다. 아랍의 봄은 그런 생각을 강화해 주었다. </p><p>흔히 아랍의 봄을 '트위터 혁명'이라고 부르지만, 이 혁명에서 트위터와 페이스북은 조금 다른 역할을 수행했다. 트위터는 한 국가에서 벌어지는 시위를 전 세계에 알리면서 주변국으로 '수출'하는 역할을 했다면, 한 국가 내에서 시위를 조직하는 역할은 페이스북, 그중에서도 페이스북 페이지가 했다. 당시 뉴스를 관심 있게 지켜봤던 사람이라면 와엘 고님(Wael Ghonim)이라는 인물을 기억할지 모른다. </p><p>구글에서 일하던 고님은 경찰의 폭행으로 사망한 이집트 청년의 이름으로 "We Are All Khaled Said(우리는 모두 칼레드 사이드다)"라는 페이스북 페이지를 만들어 이집트의 젊은이들을 결집시켰고, 그렇게 시작된 이집트의 혁명이 무바라크 정권을 무너뜨리자 "이집트 혁명의 얼굴" 혹은 "페이스북 혁명가"로 불리며 <a href="https://www.ted.com/speakers/wael_ghonim">테드(TED) 토크</a>에도 등장할 만큼 세계적으로 유명해졌다.</p><figure><figcaption>와엘 고님<div><a href="https://adamantcritique.wordpress.com/2016/02/04/wael-ghonims-belated-confession-and-the-future-of-egyptian-arab-spring-on-its-5th-anniversary/">Adamant Critique - WordPress.com</a></div></figcaption></figure><p>하지만 그는 지금 잊혀진 인물이다. 이집트 혁명이 민주화를 끌어냈다면 영원히 영웅으로 남았겠지만, 혁명은 실패했다. 이집트뿐만이 아니다. 아랍의 봄은 결과적으로 실패한 혁명이 되었다. 단기적으로 보면 튀니지, 이집트, 리비아, 예멘 같은 나라들에서 정권을 무너뜨렸지만, 장기적으로 민주주의를 정착시키는 데 실패했고, 이집트에는 무바라크보다 더 강력한 권위주의 체제가 들어섰다.</p><p>최근 한 책을 읽다가 와엘 고님은 그 후 개인적으로도 많은 비극을 겪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원래 정치인이 아니었다가 뜻하지 않게 민주주의 운동의 상징이 된 그는 이집트의 민주화 운동이 실패한 후 점점 활동에서 멀어졌고, 훗날 "소셜미디어는 사회를 해방시키기보다 분열시켰다"고 비판했다. 특히 2020년 무렵에는 유튜브 라이브 등을 통해 정신적으로 불안한 모습과 기이한 행동을 보이면서 충격을 주었다. 아랍의 봄 세대가 겪은 희망과 좌절을 가장 극적으로 보여준 인물이다. </p><p>그의 이야기를 들려준 책은 '<a href="https://product.kyobobook.co.kr/detail/S000219864525">혁명을 준비하는 시간(The Quiet Before)</a>'이다. 이 책을 쓴 갈 베커만(Gal Beckerman)은 애틀랜틱(The Atlantic)의 기자로, 2010년에는 'When They Come for Us, We'll Be Gone(그들이 오면, 우리는 없을 것이다)'이라는 책으로 큰 주목을 받았다. 지금까지 그가 낸 세 권의 책은 모두 모두 같은 질문을 던진다. "사람들은 어떻게 아이디어를 내고, 공유하고, 그 결과 사회를 바꾸게 되는가?"</p><figure></figure><p>'혁명을 준비하는 시간'은 사회 변혁의 성공 사례와 방법론을 설명하는 책이 아니다. 사람들이 사회를 바꿀 만한—그게 목적인 경우도 있고, 뜻하지 않은 부산물이기도 하다—아이디어를 어떻게 공유했고, 그 결과가 어땠는지를 자세하게 추적하는 얘기다. 책에서 열 개의 챕터에 걸쳐 등장하는 열 개의 사례 중에는 성공적인 것도 있고, 실패로 끝난 것들도 있다. </p><p>책의 후반부에는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사건을 추적하는 이야기들이 나오고, 전반부에는 전혀 몰랐거나 잘 모르는 이야기들이 등장한다. 하지만 팬데믹이나 이집트 혁명, 2020년 미니애폴리스의 BLM(흑인의 생명도 소중하다) 운동처럼 잘 알려진 사건이라고 해도 그 내부에서 어떤 논의가 어떻게 오갔는지는 거의 모르기 때문에 사실상 책 전체가 나 같은 독자에게는 흥미로운 내용으로 가득하다. </p><p>가령 17세기 유럽의 '편지 공화국'(Republic of Letters)과 그 중심에 있었던 페이레스크(Nicolas-Claude Fabri de Peiresc)의 이야기는 학회나 학술지라는 게 없었던 시절, 유럽에서 어떻게 과학혁명이 가능했는지에 대한 궁금증을 풀어주었고, 20세기 초 이탈리아에서 일어난 '미래파(Futurism)' 운동은 미술사를 공부하면서 꽤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이 운동이 실제로 어떻게 형성되었는지 뚜껑을 열고 들여다보게 해주었다. </p><figure><figcaption>세계사 수업 때 배웠던 '차티스트 운동(Chartist Movement)' 역시 실제로 어떻게 진행되었는지 생생하게 들려준다<div><a href="https://www.britannica.com/event/Chartism-British-history">Britannica</a></div></figcaption></figure><p>이 책은 단순히 작동 방식을 '설명'하지 않는다. 저자는 그들이 주고받은 메시지를 통해 (일이 끝나고 보면 너무나 분명해 보이는) 결론에 도달하기까지 전체를 구성하는 개별 톱니바퀴들이 때로는 분노하고, 때로는 안타까워하면서 밤을 새워 치열하게 고민한 내용을 소개한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부분에서는 너무 세세한 내용을 읽고 있다는 느낌이 들 때도 있지만, 각 챕터를 끝낸 후에 잠시 눈을 감고 생각을 정리하면 내가 그 운동의 일부가 되어 치열하게 고민한 것 같은 기분에 빠진다. </p><p>그렇다고 이 책이 '좋은' 아이디어의 전파만을 다루는 것은 아니다. 8장 '닫힌 횃불'에서는 트럼프 집권 직후인 2017년, 버지니아주 샬러츠빌에서 일어난 사건을 이야기한다. 백인 극우단체의 집회와 그 집회에 반대하는 시위가 충돌하고, 차량 돌진 살인이 발생한 끔찍한 사건으로 악명이 높지만, 그 집회가 일어나기 전까지 극우 백인 우월주의자들이 디지털 플랫폼인 디스코드(Discord)에서 어떤 논의를 했는지를 읽어보면 혐오의 메시지 역시 치열한 토론을 통해 전파되기 쉬운 바이러스로 만들어진다는 것을 이해하게 된다.</p><p>8장의 사례는 또 다른 의미에서 중요한 반례이기도 하다. 책의 전반부에서 편지와 손으로 쓰거나 일일이 복사해서 퍼뜨린 매체들을 다루기 때문에 아날로그 매체의 우수성을 이야기하려는 것으로 착각할 수 있지만, 디스코드라는 디지털 플랫폼은 백인 우월주의자들이 자유롭게 아이디어를 나누고, 토론하기에 좋은 환경을 제공했다. </p><p>결국 페이스북과 트위터 같은 매체를 통한 혁명이 어려운 이유는 그것이 디지털 매체이기 때문이 아니라, 그 플랫폼들이 쉬운 전파와 발견을 위해 선택한 방식, 즉 알고리듬 때문이다. 1980~90년대 한국 민주화 운동 때 전경에 맞선 대학생들이 종종 사용했던 화염병에 신나(paint thinner)와 휘발유를 섞는 이유에 대해 "신나는 화염이 크고 격렬하지만 빨리 사그라들고, 휘발유는 오래 타기 때문"이라고들 했다. 과학적으로 얼마나 맞는 말인지는 모르겠지만, 알고리듬을 통한 확산이 가진 장단점은 그 화염병 속 신나와 비슷하다. </p><figure><figcaption><div><a href="https://www.hani.co.kr/arti/opinion/column/1141327.html">한겨레</a></div></figcaption></figure><p>이 책의 제목, '혁명을 준비하는 시간'에서 말하는 '시간'은 우리의 기대보다 길다. "빨리 가려면 혼자 가고, 멀리 가려면 함께 가라"는 말이 암시하는 것처럼, 더 큰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는 우리는 어느 정도 속도를 희생해야 한다. 저자는 사회를 바꾸려는 구성원들이 대화에 사용하는 도구(매체)가 사고의 경계를 결정한다고 말한다. 소셜미디어처럼 순식간에 수백만 명에게 도달하는 빠른 매체는 오히려 운동의 조바심을 낳고 깊이를 없애지만, 실제 사회 변화를 이끈 매체들(편지, 청원서, 사미즈다트, 독립 잡지 등)은 시간이 더 걸리기 때문에 참여자들은 더 신중해지고 지식과 연결망을 점진적으로 더 단단하게 축적할 수 있다.</p><p>혁명을 준비하는 '시간'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플랫폼이다. 저자는 참여자들이 직접 플랫폼을 창조하고 통제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17세기 과학자들이 직접 자생적으로 편지 네트워크를 만들고, 20세기 소련의 반체제 인사들이 정권의 감시를 피해 박엽지와 타자기로 비밀 소식지를 만들었을 때 그 매체의 존재 이유는 '아이디어의 전파'와 '가상 공동체의 형성'이었다. </p><blockquote>소셜미디어의 존재 목적은? 어떤 사건의 진짜 이유를 알고 싶으면 "Follow the money(돈의 흐름을 추적하라)"라는 말처럼, 궁극적인 존재의 목적이 기업가와 주주 이익의 극대화인 소셜미디어는 아이디어의 전파, 공동체의 형성 자체에는 관심이 없다. </blockquote><figure></figure><p>'혁명을 준비하는 시간'에는 지난 15년 동안 인류가 많은 아픔 끝에 깨닫게 된 사회 변화의 진정한 작동 방식이 잘 담겨 있다. 사회를 바꾸고 싶은 사람이라면 놓치면 안 될 책이지만, 그저 사회를 이해하고 싶은 사람에게도 많은 생각거리를 준다. 🦦</p><hr /><p>이 책을 출간한 출판사 어크로스에서 오터레터 구독자 여러분께 책 10권을 선물해 주기로 했어요. 응모를 원하시는 분들은 댓글로 의사를 밝혀주시면 됩니다. 제가 6월 10일(수요일) 오전에 당첨자를 발표하겠습니다. 응모하시는 분들은 이메일을 꼭 확인하고 답장을 주셔야 합니다!</p>]]></content:encoded></item><item><title><![CDATA[탈라리코 블루 ①]]></title><description><![CDATA[텍사스는 지리적 남부이고, 정치적으로도 남부에 해당하지만, 문화적으로, 그리고 무엇보다 경제적으로 딥사우스와 분명히 구별되는 주다.]]></description><link>https://otterletter.com/talarico-blue/</link><guid isPermaLink="false">6a19b9acc327470001bdd08f</guid><category><![CDATA[텍사스]]></category><dc:creator><![CDATA[발행인 | 박상현]]></dc:creator><pubDate>Fri, 05 Jun 2026 00:52:00 GMT</pubDate><media:content url="https://cdn.media.bluedot.so/bluedot.otterletter/2026/06/rpgtw2_202606152100.jpg" medium="image"/><content:encoded><![CDATA[<h2>텍사스 이해하기 </h2><p>미국의 텍사스주는 흔히 말하는 '남부(the South)'에 속할까? 맞는 말이기도 하고, 그렇지 않기도 하다. 서울의 강남에 비유하면 이해하기 쉽다. 강남은 문자 그대로 보면 한강(江)의 남쪽(南)을 가리키는 말이다. 적어도 과거에는 그랬다. 하지만 한강 남쪽에 있는 동작구나 영등포구에 산다고 해서 "강남에 산다"라고 하지 않는다. 21세기 서울 사람들에게 '강남'은 강남구, 서초구, 송파구를 의미한다. 즉, 지리적인 개념이 아니라 문화적인 개념이다.</p><p>지리적으로 텍사스주는 남부에 해당한다. 하지만 정치·문화적 의미에서 '남부'는 따로 있다. 바로 딥사우스(Deep South, 남부 깊숙한 곳)라고 불리는 지역이다. 텍사스는 지리적 남부이고, 정치적으로도 남부 지역에 해당하지만, 문화적으로, 그리고 무엇보다 경제적으로 딥사우스와 분명히 구별되는 주다.</p><div><hr /><a href="https://otterletter.com/talarico-blue/">계속읽기</a></div>]]></content:encoded></item><item><title><![CDATA[앤드루 소킨의 '1929' ②]]></title><description><![CDATA[이 책은 단순히 1929년에 관한 책이 아니다. 1929년의 패턴이 2026년과 어떻게 공명하는지를 날카롭게 포착하고 있다.]]></description><link>https://otterletter.com/1929-2/</link><guid isPermaLink="false">6a177134a226d900012b2e18</guid><category><![CDATA[대공황]]></category><category><![CDATA[1929년]]></category><dc:creator><![CDATA[Angela Park]]></dc:creator><pubDate>Thu, 28 May 2026 23:36:00 GMT</pubDate><media:content url="https://cdn.media.bluedot.so/bluedot.otterletter/2026/05/kz9di0_202605290025.JPG" medium="image"/><content:encoded><![CDATA[<p>'1929'는 한 명의 주인공을 중심으로 전개되는 책은 아니지만, 비교적 주인공에 가까운 구도를 형성하고 있는 것이 내셔널 시티 은행의 찰스 미첼(Charles E. Mitchell) 은행장과 카터 글래스(Carter Glass) 연방 상원의원이다. 1928년 3월, 연준은 금리 인상을 통해 단계적으로 시장의 거품을 빼려고 했다. 그런데 시장이 급락하며 패닉에 빠지자, 미첼은 연준의 경고를 무시하고 일개 민간은행에 불과한 내셔널 시티 은행이 필요에 따라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대출을 제공해 패닉을 끝내겠다고 선언했다. 폭락하던 장은 상승세로 돌아섰고, 미첼은 단숨에 월스트리트의 영웅이 되었다. 하지만 장기적으로 시장은 끝내 붕괴했다. 최후의 광란처럼 1년 7개월 동안 더 상승한 만큼 붕괴의 폭은 1928년 3월보다 훨씬 컸다.</p><p>이에 대해서도 저자는 미첼의 행위가 옳다 그르다 단정해서 말하지는 않지만 (분노한 연준과 글래스의 목소리는 객관적으로 실었다) 다른 대목에서 간접적으로 자신의 의견을 슬쩍 드러낸다. 대중을 안심시키기 위해 경제 위기의 명칭을 '패닉(panic, 공황. 원래는 ‘단기적 공포’라는 뜻)'이 아니라 '디프레션(depression, 불황)'으로 바꾼 것이야말로 당시 대통령이었던 허버트 후버(Herbert Hoover)의 가장 큰 실책 중의 하나라는 것이다. 공황의 유일한 장점이라면 오래 지속되지 않는다는 점인데, 불황은 얼마나 오래 갈지 아무도 모른다는 것. 그렇다면 결국 광란과도 같은 시장 과열은 패닉을 감수하면서라도 조금씩 김을 빼는 편이 옳은 것일까?</p><figure><figcaption>내셔널 시티 은행의 찰스 미첼 은행장(왼쪽)과 카터 글래스 상원의원<div><a href="https://tontinecoffeehouse.com/2023/12/18/charles-e-mitchell/">The Tontine Coffee-House</a>, <a href="https://en.wikipedia.org/wiki/Carter_Glass">Wikipedia</a></div></figcaption></figure><p>미첼에 대한 적개심이 삶의 원동력인 것처럼 보이는 카터 글래스에 대한 가감 없는 묘사도 흥미롭다. 시대의 광기 속에서 유일하게 제정신을 유지한 의인으로 비치기 쉽지만, 실상 글래스는 지독한 인종차별주의자였으며 당대의 산업·금융계가 대표하는 북부와 농업으로 대표되는 남부 사이의 대립에서 후자의 이익을 위해 맹렬히 싸웠던 사람이었다. 또한 상업은행과 투자은행(증권사)의 분리를 맹렬하게 주장하면서도 자신과 친분이 있었던 JP모건의 해체는 원하지 않았다. 뱅크런을 방지하고 은행들을 안정시킨 대표적인 정책으로 알려진 연방예금보험공사(FDIC)의 설립 역시 맹렬하게 반대했다. </p><p>하지만 뜻하지 않게도 JP모건과 앙숙이었던 존 D. 로커펠러 주니어의 처남 윈스럽 올드리치가 직접 프랭클린 루즈벨트(Franklin D. Roosevelt) 대통령을 만나 글래스 법의 범위를 상장기업뿐 아니라 (JP모건과 같은 비상장기업을 포함한) 모든 금융기관으로 확대하자고 제안했고, 루즈벨트는 이를 기꺼이 받아들였다. 결국 앨라배마주 출신 연방 상원의원 헨리 스티걸(Henry B. Steagall)이 예금자 보호 조항을 밀어붙여, 글래스-스티걸법은 글래스가 애초에 의도했던 법안과는 상당히 다른 형태로 통과되었다.</p><p>뉴딜 정책으로 미국을 대공황에서 구해낸 또 다른 영웅으로 역사에 기록된 프랭클린 루즈벨트였지만, 그는 후버가 자신의 임기 마지막 며칠 동안 예금자 보호 등 금융시장을 안정시킬 수 있는 정책들을 일단 시작하자는 후버의 요청을 가차 없이 거부한다. 정치적 감각이 뛰어나고 이해관계를 계산하는 데 대단히 빨랐던 루즈벨트는 어떤 형태로든 후버 정부와 자신의 이미지가 얽히는 것을 철저하게 차단했다. </p><figure><figcaption>취임식에서 전임 대통령 허버트 후버(왼쪽)와 악수하는 프랭클린 루즈벨트<div><a href="https://www.newyorker.com/news/daily-comment/lessons-from-an-unseemly-presidential-transitionfrom-hoover-to-fdr">The New Yorker</a></div></figcaption></figure><p>이 책에서 아쉬운 점을 하나만 더 말하자면, 월스트리트에서 시작해서 월스트리트에서 끝난다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실제로 고통스러운 대공황의 실상은 전혀 담기지 않았다. 이 역사적인 재앙을 초래한 월스트리트의 거물들은 대공황 기간에도 여전히 사치스러운 생활을 계속했고, 심지어 찰스 미첼은 자신이 보유한 주식을 아내에게 헐값에 팔아넘겨 이로 인해 거액의 세금을 면제받은 뒤 훗날 주가가 반등하자, 다시 사들여서 상원 청문회에 소환당하기까지 했다. </p><p>이 때문에 미국의 일부 매체들은 이 책에 대해 상당히 비판적인 서평을 내놓았다. 커커스 리뷰는 1929년의 주식시장 붕괴와 그 여파로 실제로 삶이 파괴된 수많은 무명의 미국인들이 이 책에서는 거의 목소리를 내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소킨의 렌즈는 예리하지만, 그 렌즈가 비추는 곳은 여전히 특권층의 응접실과 파티룸이다. 진정한 피해자들—직장에서 해고당하고, 저축이 증발하고, '후버빌(Hoovervilles)'이라 불린 판자촌으로 내몰린 수백만 명의 보통 사람들—은 이 책에서 찾아볼 수 없다. </p><figure><figcaption>1937년 시애틀의 후버빌 모습. 1930년대 미국 대공황 시절, 경제적 위기와 주거 난으로 인해 전국 각지에 들어섰던 판자촌 중 하나다. 당시 실정의 책임을 묻는 의미에서 허버트 후버 대통령의 이름을 따 '후버빌'이라 불렸다. 시애틀의 후버빌은 1931년부터 1941년까지 10년간 유지되었으며, 약 1,200명의 주민이 자체적인 자치 정부와 비공식 시장을 두고 생활했던 미국 내 가장 크고 오래 지속된 빈민촌 중 하나였다.<div><a href="https://www.americanyawp.com/text/wp-content/uploads/1467AE20F9482CB146094D5A3DED58CF1.jpg">The American Yawp</a></div></figcaption></figure><p>뉴욕타임스 역시 소킨이 부유층과 유명인들의 삶을 서술하는 데 상당한 분량을 할애한 반면, 시장 붕괴의 원인인 도금 시대의 경제 양극화에 대해서는 스쳐 지나갔으며, 1929년의 금융가들을 "그 시대에는 누구나 했을 법한 일들을 했을 뿐인, 평범한 인간 군상"으로 묘사하는 바람에 역으로 그들에 대한 묵시적 변호로 작용했다고 비판한다. 아무래도 소킨 본인이 금융 기자이고, 수많은 결함에도 불구하고 현재의 금융 자본주의에 일정한 애정을 가진 사람이라는 한계가 드러난다는 것이다. 즉 단순한 문학적 비평을 넘어서 저자의 근본적인 세계관에 대한 문제 제기라 할 수 있다. (소킨이 거의 30년째 뉴욕타임스에 금융 관련 칼럼을 싣고 있다는 점과 뉴욕타임스가 현재 미국에서 가장 진보적인 레거시 언론사라는 점을 모두 고려하면 이러한 서평은 그 자체로도 상당히 의미가 있다.)</p><p>실제로 소킨은 책의 말미에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1929년의 이야기는 금리나 규제, 금융의 실패에 대한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훨씬 더 영속적인 것, 즉 인간의 본성에 관한 이야기라는 것이다. 아무리 많은 경고가 발령되고 아무리 많은 법이 제정되더라도 사람들은 또다시 미래가 장밋빛일 거라는 근거를 기어코 찾아내고야 만다. 그리하여 어떤 시스템도 완벽하지 않으며, 어떤 시장도 완전히 합리적이지 않고, 어떤 세대도 예외일 수 없음을 인정하는 겸손이 필요하다고 말한다.</p><figure><figcaption>소킨이 2008년 서브프라임 금융 위기를 다룬 전작 '대마불사(Too Big To Fail)'로 스타 작가가 되었다는 사실은 필연일 수밖에 없는지도 모른다.<div><a href="https://product.kyobobook.co.kr/detail/S000000683330">교보문고</a>, <a href="https://www.amazon.com/too-fail-Andrew-Ross-Sorkin/dp/0141043164">Amazon</a></div></figcaption></figure><p>그럼에도 불구하고 소킨이 뉴욕 연방준비은행 이사회 의사록, 관련자들의 일기와 편지, 내부자의 미공개 회고록 등 기존 연구자들이 접근하지 못했던 자료들을 발굴해 이야기 속에 엮어냈다는 점은 높이 평가할 만하다. 그는 이미 수십 년 전에 세상을 떠난 인물들을 지금 우리 곁에 살아 있는 사람들처럼 생생하게 재구성했고, 결국 한 편의 픽션 같은 논픽션으로 풀어냈다.</p><p>동시에 미국인이 아닌 우리들에게 미국식 자본주의에 대한 깊은 통찰을 아이러니하게도 역시 미국인이 아닌 윈스턴 처칠의 표현을 빌려 전달해 준다. 처칠은 1929년 시장 붕괴 당시 미국을 여행 중이었고, 자기 자신도 전 재산을 털어 미국 주식에 투자했다가 큰 손해를 입었고, 실제로 자신이 머물고 있던 플라자 호텔에서 절망한 투자자가 투신자살을 하는 모습을 목격하기까지 했지만, 시대의 비극에 흔들리지 않았다. 미국인은 영국인과 달리 투자 실패를 파멸로만 받아들이지 않는다며, 이는 "비록 파산하더라도 모든 것을 되찾고 그 이상을 벌 기회가 반드시 찾아온다고 믿기 때문"이라는 그의 관찰은 미국의 회복력과 “어떤 위기가 닥쳐와도 끝내 살아남는 것이 목적”인 시스템에 깊은 신뢰를 보낸다. (그런 맥락에서 1999년 글래스-스티걸법의 핵심 조항 상당수가 폐지되고, 2008년 금융 위기를 거치면서 또다시 도드-프랭크법으로 그 취지가 부활한 것, 그리고 2018년 트럼프 정권에서 도드-프랭크법 역시 사실상 폐지에 가까운 개정을 당한 것 역시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p><p>앤드루 소킨의 '1929'는 단순히 1929년에 관한 책이 아니다. 1929년의 패턴이 2026년과 어떻게 공명하는지를 날카롭게 포착하고 있다는 점에서, 뉴요커는 이 책이 역사를 현재에 대한 경고로 읽게 만든다고 평가했다. AI 버블에 대한 의구심과 빅테크의 공공연한 정치세력화, 경제 양극화에 대한 경고음이 끊임없이 울리는 가운데 매일 사상 최고치를 갈아치우고 있는 미국 증시를 보며 이 책을 읽는다면 우리 자신이 살고 있는 시대적 맥락이 눈에 들어온다.</p><figure></figure><p>언론 인터뷰에서 소킨은 이 책을 집필하며 배운 가장 큰 교훈이 '레버리지(leverage),' 즉 빚으로 모든 것을 쌓아 올리는 구조라고 언급한 바 있다. 전작에서 2008년을, 이번 작품에서 1929년을 취재하며 거듭 확인한 패턴이라는 것이다. 소킨은 AI 인프라 구축을 위해 엔비디아 칩과 데이터센터에 천문학적인 자금이 투입되고 있는 현재 상황을 언급하며, 이러한 투자를 정당화할 수 있는 매출과 이익이 따라오지 않는다면, 현재의 엄청난 레버리지는 다음번 위기의 씨앗이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p><p>어쩌면 독자들이 이 책에서 읽어야 하는 것은 저자가 쓴 이야기가 아닌, 쓰지 않은 이야기인지도 모른다. 대중을 위한 역사 서술이란 극적으로, 재미있게, 독자가 몰입할 수 있도록 쓰는 것과, 구조적 분석과 비판적 판단을 잃지 않는 것 사이의 균형이다. 소킨은 전자에서 그 누구보다 탁월함을 또 한 번 증명했다. 후자를 판단하는 것은 그가 쓰지 않은, 그러나 동시에 감추지도 않은 이야기를 읽어낼 독자들의 몫이다. 그리고 그 판단은, 이 책을 읽어야만 할 수 있다. </p><p>덧붙이자면, 나는 전자책 애독자지만, 이 책만큼은 종이책으로 읽기를 강력 추천한다. 시간 순서에 따라 수많은 인물들이 등장했다 사라지기를 반복하기 때문에 종이책으로 읽는 편이 더 편하다. 오랜만에 두꺼운 벽돌책을 읽는 재미를 만끽하게 해준 작품이다. 🦦</p><hr /><p>이 책을 출간한 웅진지식하우스에서 오터레터 독자 다섯 분께 책을 선물합니다. 응모를 원하시는 분들은 댓글로 의사를 밝혀주세요. 제가 일요일(5월 31일)에 당첨자를 발표하겠습니다. <b>응모하신 분들은 이메일을 꼭 확인해주셔야 합니다. </b> </p>]]></content:encoded></item><item><title><![CDATA[앤드루 소킨의 '1929' ①]]></title><description><![CDATA[가끔 내가 책을 고르는 것이 아니라 책이 나를 고른다는 느낌이 들 때가 있다. ]]></description><link>https://otterletter.com/1929/</link><guid isPermaLink="false">6a17710ca226d900012b2e10</guid><category><![CDATA[대공황]]></category><category><![CDATA[1929년]]></category><dc:creator><![CDATA[Angela Park]]></dc:creator><pubDate>Thu, 28 May 2026 23:08:00 GMT</pubDate><media:content url="https://cdn.media.bluedot.so/bluedot.otterletter/2026/05/zdwipo_202605290025.JPG" medium="image"/><content:encoded><![CDATA[<p>아래는 제가 미처 읽지 못하는 좋은 책을 잘 골라 주시는 안젤라 님의 책 소개 글입니다. 전체 공개 글이니 읽어 보시고 주위에 추천해주셔도 좋습니다. 책 선물 이벤트가 있으니 2편에 댓글을 남겨 주세요. </p><hr /><p>가끔 내가 책을 고르는 것이 아니라 책이 나를 고른다는 느낌이 들 때가 있다. 앤드루 로스 소킨의 '<a href="https://product.kyobobook.co.kr/detail/S000219742367">1929' (부제: 번영과 낙관은 어떻게 파국으로 치달았는가)</a>가 그랬다. 작년 10월경, 친한 편집자님에게 한국에 번역 출간을 해보자고 이 책을 추천했었다. 판권 확인 결과, 이미 다른 출판사가 계약을 완료하여 아쉽지만, 어려울 것 같다는 회신을 받았다. </p><p>그런데 이 편집자님이 연말에 이직을 하셨고, 이직 인사와 함께 이 책의 사진을 보내주셨다. 새 회사에서 편집을 담당하게 된 첫 번째 책이 '1929'라는 것이었다. 만날 책은 결국 만나게 마련인 모양이라며, 우리는 함께 웃었다. 그리고 나는 지금 이 책의 서평을 쓰고 있다. 또다시 책이 나를 골랐다고 중얼거리면서.  </p><figure><figcaption>'1929'는 본문만 5백 페이지가 넘는 두꺼운 책이다. 그럼에도 지루한 줄 모르고 책장을 넘겼다. 영어로 “페이지터너(page-turner)”라고 불리는 책의 전형이다.<div><a href="https://www.instagram.com/p/DXVZeppDwG4/?img_index=1">웅진지식하우스</a></div></figcaption></figure><p>이 책의 프롤로그는 1929년 10월 28일, 우리가 '블랙 먼데이'라는 이름으로 기억하는 그날 저녁, 내셔널 시티 은행(National City Bank, 현 씨티은행의 전신) 회장인 찰스 미첼의 퇴근길로 시작한다. 뉴욕 증시는 그 전주인 10월 24일('검은 목요일')부터 이미 폭락 중이었다. 한 달 전, 내셔널 시티 은행은 콘익스체인지 은행(Corn Exchange Bank)을 인수하는 데 합의했고, 콘익스체인지 주주들은 주식 매각 대가로 현금 360달러와 내셔널 시티 주식 0.8주 중에서 선택할 수 있었다. 따라서 내셔널 시티의 주가가 450달러 이상으로만 유지된다면 주주들은 자연스럽게 현금 대신 주식을 선택할 것이었다. 실제로 계약이 체결될 당시 내셔널 시티 주가는 496달러였다. 그래서 미첼은 주가가 떨어질 때마다 조금씩 자사주를 사 모으라는 지시를 내려놓은 상황이었다. </p><p>그런데 이 모든 것의 전제는 어디까지나 내셔널 시티의 주가가 계속 상승한다는 가정이었다.</p><p>10월 28일 장이 마감했을 때 내셔널 시티의 주가는 450달러의 절반도 되지 않는 200달러 언저리였다. 이것도 나중에야 밝혀진 숫자였다. 당시에는 컴퓨터 시스템이 없었기 때문에 가격이 실시간으로 반영되지 않았다. 특히 10월 24일부터 29일까지 나흘의 영업일 동안, 패닉 매도가 폭주하자 거래소의 인력이 처리할 수 있는 한도를 넘어 주가 표시는 수 시간씩 지연되곤 했다. (저자인 소킨은 이를 “3회 이후 업데이트되지 않은 전광판을 보며 8회 말에 야구 경기를 하는 것"에 비유한다.) </p><p>이제 미첼에게는 가치가 반 토막 난 자사주만이 남아 있었다. 내셔널 시티에는 콘익스체인지 주주들에게 주식 대금을 지불할 현금이 없었다. 이러한 상황이 외부로 새어 나간다면 뱅크런(bank run, 대규모 예금 인출 사태)은 시간문제였다. 불과 한 달 전까지만 해도 미국 최대의 은행을 넘어 세계 최대 은행으로 도약을 꿈꾸고 있었던 내셔널 시티는 하루아침에 붕괴 직전에 내몰린 것이다. 심지어 내셔널 시티는 1920년대 미국 기업 대출의 4분의 1을 차지하고 있었던 초대형 은행이었다. 내셔널 시티의 붕괴는 단순히 은행 하나가 무너지는 것에 그치지 않고 미국, 그리고 미국을 넘어 전 세계 금융 시장을 뒤흔드는 거대한 파장이 될 수 있었다. </p><figure><figcaption>뉴욕 주식시장의 폭락 직후 월스트리트에 몰려든 사람들<div><a href="https://en.wikipedia.org/wiki/Wall_Street_crash_of_1929">Wikipedia</a></div></figcaption></figure><p>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었을까? 우리는 대공황에 대해서 꽤 많은 것을 알고 있다. 20세기 전반 전 세계를 뒤흔든 초대형 이벤트였다 보니 여기저기서 자주 인용되기 때문이다. 블랙 먼데이에 주식을 매도하기 위해 뉴욕증권거래소에서 미친 듯이 고함을 지르며 가격을 부르는 트레이더들, 예금을 인출하기 위해 은행 지점 밖에 길게 줄을 늘어선 사람들, 일자리를 잃고 무료 급식소에서 수프를 받기 위해 역시 줄을 길게 선 사람들, 루즈벨트 대통령의 뉴딜 정책 등등이 그것이다. </p><p>하지만 우리는 대공황을 이러한 '이미지'로 기억할 뿐, 이 모든 일이 왜 일어났는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며, 그 누구도 정확한 원인이나 전후 관계를 설명하지 못한다. 사실 1929년 10월 24일부터 일어난 일들은 작게는 월스트리트로 한정되지만 넓게는 1차 대전 이후 베르사유 조약과 전후 독일의 배상금 문제, 제국주의 패권 국가들의 식민 경쟁 등등 영향을 미친 요인이 너무나 많아서 “이게 문제였다”라고 핀셋으로 하나만 골라내기는 어렵다. 저자는 이러한 다양한 측면들을 전부 한 권의 책에 담아내려는 욕심을 부리지 않는다. 대신 철저하게 뉴욕시, 월스트리트라는 공간과 그 안에 있었던 사람들의 거취만을 현미경처럼 들여다본다. </p><hr /><p>1920년대는 '광란의 20년대(Roaring Twenties)'라고 불린 시대였고, 1929년은 그 1920년대의 막을 내리는 해였다. 산업혁명에 이어 수많은 발명품이 쉬지 않고 등장하면서 오늘날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는 소비 중심 경제가 탄생했다. 신기술 덕분에 기계가 인간의 노동을 대체했고, 더 짧은 시간에 더 싼 비용으로 더 많이 제품을 생산할 수 있게 되었다. 그 많은 상품들을 누군가는 사주어야 했다. </p><figure><figcaption>포드 공장에서 생산되는 자동차들<div><a href="https://magazines.hachettelearning.com/magazine/hindsight/30/1/boom-and-bust-in-the-usa-in-the-1920s-and-1930s/">Hodder Education Magazines</a></div></figcaption></figure><p>하지만 평범한 사람들의 소득은 크게 오르지 않았다. <strong>돈이 없는 사람들로 하여금 물건을 살 수 있게 해준 것이 바로 신용이다.</strong> 1919년 제너럴 모터스가 자동차 할부 판매 프로그램을 시작한 이래 “빚을 내서 소비하는 것은 죄악”이라는 미국인들의 오랜 청교도적인 신념이 무너져 내렸다. 빚만 내면 자동차, 라디오, 세탁기 등등 무엇이나 살 수 있었다. 덕분에 기업가들과 금융인들은 천문학적인 부를 쌓아 올리고 유럽의 절대군주들이 부럽지 않을 만큼 사치스러운 생활을 했으며, 정·관계를 주물렀다. </p><p>신용으로 살 수 있는 “무엇이나”에는 주식도 포함되었다. 중산층 미국인들은 증거금 계좌를 개설해 10% 또는 20%의 증거금만 지불하고 나머지 금액은 빌려서 주식을 샀다. 주가가 끝없이 오르는 동안에는 아무 문제가 없었다. 주가가 오르면 빌린 돈과 이자를 갚고도 돈이 남을 것이었고, 빚은 사실상 무기한 연장할 수 있었다. 이렇게 호황이 장기간 지속되면 사람들은 집단적인 망상에 빠진다. 소킨은 낙관론이 “마약이나 종교, 또는 그 둘의 조합이 되었다”고 진단한다. 하지만, 아무 문제가 없었다. 적어도 주가가 오르는 동안에는.</p><figure><figcaption>1920년대 중반, 뉴욕증권거래소(NYSE)에 상장되지 않은 주식을 거래하던 '커브 마켓(Curb Market)'에서 수신호로 거래하는 월스트리트 브로커들<div><a href="https://www.nytimes.com/2021/04/16/business/roaring-twenties-stocks.html">The New York Times</a></div></figcaption></figure><p>이 책의 가장 아쉬운 점은 그래서 끝없이 오르던 주가가 왜 어느 날 오르기를 멈추고 곤두박질을 쳤느냐에 대한 답이 없다는 것이다. 우리는 다만 책을 읽으며 유추할 수 있을 뿐이다. 저자는 대신 이 모든 일이 벌어지기 약 8개월 전인 1929년 2월로 시계를 돌려, 약 8개월 후 일어날 일들의 주인공들의 행보를 밀착취재하듯 보여준다. </p><p>프롤로그에서 등장한 미첼은 물론 당시 월스트리트의 제왕으로 군림했던 JP모건의 후계자 잭 모건, JP모건의 파트너 토머스 러몬트, 제너럴모터스의 창업자 윌리엄 듀런트, 전설적인 투자자 제시 리버모어와 조셉 케네디(훗날 미국 대통령이 되는 존 F 케네디의 아버지이기도 하다), 듀퐁과 제너럴모터스의 임원으로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을 건설한 존 라스콥, 뉴욕증권거래소의 부이사장 리처드 휘트니 등 쟁쟁한 이름들이 서로 앞다퉈 책장에서 튀어나온다. 글래스-스티걸 법으로 유명한 카터 글래스는 물론 허버트 후버, 프랭클린 루즈벨트, 당시에는 파산 직전의 한량에 가까웠던 윈스턴 처칠 등 시대를 풍미한 정치인들도 등장한다. 심지어 별자리를 기반으로 주식 투자 조언을 해서 뉴욕의 명사가 된 점성술사 이밴절린 에덤스까지 등장한다. 이들의 행보를 하나하나 좇다 보면 어느 순간, '아 이래서...' 라는 깨달음이 찾아온다. 그 깨달음이 반드시 유일한 답일 필요는 없다. 애초에 이 책은 '왜'보다 '어떻게'에 더 큰 관심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p><p>이러한 저술 방식은 저자인 소킨이 언론인 출신이라는 점도 한몫을 한 것 같다. 제대로 훈련받은 미국 레거시 미디어의 정통파 언론인들이 흔히 그러듯, 소킨은 방대한 데이터와 팩트를 수집하고 연구하지만, 특별한 '사명'을 가지고 독자들에게 특정한 '방향'을 제시하지는 않는다. (소킨은 이 책을 쓰기 위해 무려 8년 동안 조사와 자료 수집을 했다고 한다.) 500페이지에 걸쳐 저자가 써 내려간 10개월의 기록을 읽다 보면 나도 모르게 100년 전 월스트리트가 눈앞에 떠오르고, 그 불안과 흥분, 광기가 뒤섞인 공기를 숨 쉬게 된다.</p><figure><figcaption>올해 초 다보스 포럼에서 패널 토론의 모더레이터를 맡은 저자 앤드루 소킨<div><a href="https://www.facebook.com/photo?fbid=1439201524229749&amp;set=pcb.1439201607563074">앤드루 소킨의 페이스북</a></div></figcaption></figure><p>개인적으로 지금까지 내가 대공황을 이해해 온 관점은 경제(사)학자 찰스 P. 킨들버거를 통해서였다. 1978년에 출간된 킨들버거의 대표작 '광기, 패닉, 붕괴 - 금융위기의 역사(<a href="https://www.amazon.com/Manias-Panics-Crashes-Financial-Investment/dp/0471389455">Manias, Panics, and Crashes: A History of Financial Crises</a>)'는 이제는 고전의 반열에 올랐으며, 킨들버거는 1996년에 이미 닷컴버블 붕괴발 금융 위기를 정확히 예측하며 “(살날이 얼마 남지 않아) 한 권 더 책을 쓸 수 없는 것”을 아쉬워했다고 한다. </p><p>킨들버거에 따르면 새로운 기술 혁신으로 인해 자산 가격이 상승하기 시작할 때는 투자자들도 나름 합리적이다. <strong>문제는 가격 상승이 지속되면서 시장이 ‘합리적 기대’에서 비이성적인 '투기적 광기'로 넘어가는 것이다.</strong> 이 단계가 되면 남들이 모두 큰돈을 벌고 있는 동안 나만 기회를 놓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군중 심리를 지배하게 된다. 그 결과 더 많은 돈이 몰리고, 거품은 점점 커진다. 킨들버거는 시장이 스스로 거품을 치유하지 못하고 붕괴하는 것을 막기 위해 중앙은행이 '최후의 대부자(Lender of Last Resort)'로서 적극 개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p><p>이 논리를 이어받아 발전시킨 사람 중 하나가 전 연준 의장인 벤 버냉키이다. 대공황 연구자로도 유명한 버냉키는 시장의 투기를 '비합리적인 광기'로 보지 않았다. 시장 참여자들은 자신에게 주어진 제한적인 정보 내에서 최대한 합리적으로 행동하려 노력한다. 하지만 시장 참여자 개개인의 판단은 합리적일지 몰라도, 그 개개인이 모여 거대한 집단이 되면 그들의 행위는 비합리적일 수 있다. 시장은 이를 자신의 힘으로 교정하지 못하기 때문에 중앙은행의 신속하고 강력한 개입이 필수적이라는 것이 버냉키의 주장이었다. (실제로 버냉키는 2008년 서브프라임 모기지 당시 “헬리콥터 벤”이라는 별명을 얻을 정도로 과감한 양적완화 정책을 펼쳐 공황급 재앙을 막았다는 평가를 받는다.) </p><figure><figcaption>벤 버냉키<div><a href="https://nymag.com/intelligencer/2011/12/ben-bernanke-is-an-ordinary-american-homeowner.html">New York Magazine</a></div></figcaption></figure><p>이후 주류 거시경제학계에서도 대공황을 촉발한 주식시장 붕괴의 가장 큰 트리거는 시장 과열을 우려한 연준의 긴축 정책 때문이라는 것이 정설로 여겨져 왔다. 뉴욕 연방준비은행의 초대 총재였던 벤저민 스트롱 주니어(Benjamin Strong Jr.)는 대공황이 발발하기 꼭 1년 전인 1928년 10월에 사망했는데, 1920년대 가장 위대한 경제 정책가였던 스트롱의 죽음으로 연준은 방향성을 잃고 리더십 공백 사태에 빠졌으며, 결국 어설픈 금리 인상으로 인해 시장 경색이 일어났고, 은행권이 대출 회수에 들어가며 실물 경제의 숨통까지 조여버렸다는 것이다. </p><p>그런데 이 책에서 가장 흥미로운 지점은 여기이다. 책 전체를 통틀어 단 한번도 “대공황의 원인은 이것”이라고 직접적으로 말한 적이 없는 저자가 단호하게 자기 목소리를 낸다. “한 사람이 죽지 않았더라면 재앙을 막았으리라 믿는 것은 쉽다”고. </p><hr /><p>'<a href="https://otterletter.com/1929-2/">앤드루 소킨의 1929 ②</a>'로 이어집니다.</p>]]></content:encoded></item><item><title><![CDATA[반공 기업가의 뿌리 ③]]></title><description><![CDATA[공산주의는 많은 사회에서 영향력을 잃었지만, '반공'은 사라지지 않았다.]]></description><link>https://otterletter.com/corporate-anti-communism-3/</link><guid isPermaLink="false">6a109910dedbb600013e9d2a</guid><category><![CDATA[공산주의]]></category><category><![CDATA[반공]]></category><dc:creator><![CDATA[발행인 | 박상현]]></dc:creator><pubDate>Sun, 24 May 2026 13:53:00 GMT</pubDate><media:content url="https://cdn.media.bluedot.so/bluedot.otterletter/2026/05/h9dsid_202605231911.JPG" medium="image"/><content:encoded><![CDATA[<p>"건물에 해충 방제업자를 불러온다면 사람들은 그 건물에 쥐가 있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정부 기관마다 충성심 심사위원회(loyalty board)를 만들면, 그 조직은 뭔가를 반드시 찾아내야 한다는 압박을 받게 됩니다. 그리고 사람 배경을 뒤져 보면, 사실 누구에게나 걸릴 만한 건 하나쯤 있습니다.</p><p>게다가 FBI는 떠도는 소문까지 조사했습니다. 익명의 제보도 많았죠. 그런데 조사를 받는 사람은 거의 반박할 방법이 없었습니다. 이건 법정이 아니었습니다. 익명의 고발자를 반대 심문할 수도 없었고요. 그래서 충성심 프로그램의 표적이 된 사람들은 자신의 결백을 입증할 방법이 거의 없었습니다." </p><p>그저 '공산주의자 모임에 아무개가 참석한 걸 봤다'는 증언만으로도 혐의를 받다 보니 신원조사의 대상은 빠르게 늘어났고, 무려 476만 건의 신원조사와 2만6000건의 FBI 현장 조사가 진행됐다. 그 결과 6,800명이 사직하거나 공무원 채용 지원을 포기했고, 560명이 해고되었지만, 간첩은 한 명도 찾아내지 못했다. </p><div><hr /><a href="https://otterletter.com/corporate-anti-communism-3/">계속읽기</a></div>]]></content:encoded></item><item><title><![CDATA[반공 기업가의 뿌리 ②]]></title><description><![CDATA[반공 열풍이 단순히 경제 문제가 아니었던 것은 그들이 반대했던 '뉴딜'이 단순한 정책의 묶음이 아니라, 하나의 문화였기 때문이다.]]></description><link>https://otterletter.com/corporate-anti-communism-2/</link><guid isPermaLink="false">6a0dcfc8a444100001dbf3b6</guid><category><![CDATA[공산주의]]></category><category><![CDATA[반공]]></category><dc:creator><![CDATA[발행인 | 박상현]]></dc:creator><pubDate>Fri, 22 May 2026 19:12:00 GMT</pubDate><media:content url="https://cdn.media.bluedot.so/bluedot.otterletter/2026/05/rj2d9i_202605201514.JPG" medium="image"/><content:encoded><![CDATA[<p>1929년 대공황 이후 등장한 프랭클린 루즈벨트(FDR) 정부의 뉴딜(New Deal) 정책은 기업인들에게는 재앙과도 같은 존재였다. 그 정책의 하나로 도입된 와그너법(Wagner Act, 1935년)이 노동자들의 단결권, 단체교섭권을 보장하는 바람에 미국의 노동조합 가입률과 파업의 파급력이 폭발적으로 증가한 것이다. 기업인들의 입장에서는 경영권과 이윤을 직접적으로 위협받는 상황이 만들어졌다.</p><p>미국이 세계에서 처음으로 노동조합을 인정한 것은 아니다. 유럽에 이미 선례가 있었다. 하지만 영국, 독일 같은 나라에서는 정부가 '자율적 중재자' 같은 존재였다면, 미국에서는 연방 정부가 강력한 정부 산하 독립기구(연방노동관계위원회, NLRB)를 두고 노조를 탄압하는 기업을 처벌할 수 있는 강력한 심판관으로 작동할 수 있었다. 사업주의 부당한 행위에 대한 법적 처벌 규정이 모호했던 유럽과 달리, 노조원 해고 등 부당노동행위를 법적으로 제재할 수 있게 만든 것이다.</p><p>그렇다고 미국 노동자들의 권익이 유럽보다 더 잘 보호받았다는 얘기는 아니다. 유럽은 노동조합의 발전 경로가 달라서, 일찍부터 노조가 정당과 결합해서 영국의 노동당, 독일의 사회민주당 같은 정당들이 탄생했다. 즉, 노동권의 보장이 정당정치, 즉 입법부 단계에서 이뤄진 것이다. 이에 반해, <strong>기업이 압도적인 힘을 발휘하던 미국에서는 연방 정부가 대공황을 해결하기 위한 뉴딜 정책을 사용해 갑자기 노동권을 보호하기 시작했다. </strong>이 차이가 미국 특유의 갈등 구조를 만들어 내게 된다.</p><div><hr /><a href="https://otterletter.com/corporate-anti-communism-2/">계속읽기</a></div>]]></content:encoded></item><item><title><![CDATA[반공 기업가의 뿌리 ①]]></title><description><![CDATA[이들은 공산주의가 체제에 아무런 위협이 되지 않는 21세기에 왜 반공을 외치는 걸까?]]></description><link>https://otterletter.com/corporate-anti-communism/</link><guid isPermaLink="false">6a0dc790a444100001dbf384</guid><dc:creator><![CDATA[발행인 | 박상현]]></dc:creator><pubDate>Thu, 21 May 2026 00:05:00 GMT</pubDate><media:content url="https://cdn.media.bluedot.so/bluedot.otterletter/2026/05/vvtlsc_202605201459.JPG" medium="image"/><content:encoded><![CDATA[<p>미국의 인기 리얼리티 쇼 '샤크 탱크(Shark Tank)'의 고정 출연자로 유명한 케빈 오리어리(Kevin O'Leary)는 "불평등은 부자가 되기 위한 동기부여가 되니 좋은 것," "성공하려면 가족을 잃어도 상관없다" 등의 극단적인 발언으로 많은 비판을 받는다. 교육 소프트웨어 회사를 설립해 매각한 후 투자자로 변신해 TV에 출연하고, 벤처 투자를 해온 오리어리는 최근 AI 붐 이후로는 전력과 데이터 센터 등 AI의 인프라에 적극적으로 투자하고 있다. </p><p>그가 유타주 북서부에 추진하고 있는 초대형 AI 데이터 센터 건립 프로젝트는 뉴욕 맨해튼 넓이의 2배가 넘는 규모로, 완성될 경우 최대 9기가와트(GW)의 전력을 소비하게 된다. 유타주가 현재 사용하는 전체 전력 수요의 거의 두 배에 달하는 양이다. 이미 심각한 물 부족을 겪고 있는 유타주 주민 중에는 이 프로젝트에 반대하는 사람이 많다. 전력은 자체 천연가스 발전소를 세워서 충당한다고 하지만, 이로 인한 대기오염 증가, 탄소 배출 증가, 소음 등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다. 유타주립대학교의 한 물리학자(Robert Davies)는 지금 건립되는 발전소가 방출할 폐열(waste heat)이 "원자폭탄 23개 수준"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p><p>강한 반대에 부딪힌 오리어리의 반응은 "시위대가 중국의 돈을 받고 있다"는 것이었다. “누가 미국의 전력망 확대와 AI 역량 구축을 막고 싶어 하겠나? 그런 적대국은 하나뿐이다. 중국이다.” 하지만 그는 시위대가 대부분 외부에서 왔으며, 중국 정부의 자금 지원을 받고 있다는 자신의 주장에 대한 근거를 대지 못했다. 아무런 증거 없이 대중의 '중국 공포'를 부추기는 발언이었다.</p><div><hr /><a href="https://otterletter.com/corporate-anti-communism/">계속읽기</a></div>]]></content:encoded></item><item><title><![CDATA[찰스 디킨스와 열차 사고]]></title><description><![CDATA[트라우마는 '외상이 아닌, '내상,' '마상'으로 번역하는 게 맞지 않을까? ]]></description><link>https://otterletter.com/english-sunday-10/</link><guid isPermaLink="false">6a09a180e04ee10001dbc550</guid><dc:creator><![CDATA[발행인 | 박상현]]></dc:creator><pubDate>Sun, 17 May 2026 14:29:00 GMT</pubDate><media:content url="https://cdn.media.bluedot.so/bluedot.otterletter/2026/05/h20lkn_202605171430.jpg" medium="image"/><content:encoded><![CDATA[<figure></figure><p>'트라우마'라는 단어는 이제 누구나 쉽게—어쩌면 너무 쉽게—사용하는 표현이 되었다. 엄밀하게 트라우마는 '예전에 겪었던 공포가 특정 상황을 계기로 재현되면서 강한 심리적 불안을 유발하는 상태'를 가리키는 정신의학적 용어다. 그런데 이 용어가 병원에서 사용되는 방식이나, 이를 번역한 한국어 표현을 보고 누구나 한 번쯤 갸우뚱한 경험이 있다. 우리가 사용하는 트라우마는 정신적인 상처인데 우리는 이를 '외상(外傷),' 즉 '외부의 상처'로 번역하기 때문이다. </p><p>의미로 따지면 트라우마는 '내상(內傷)'으로 번역하는 게 맞지 않을까? '내상'은 겉에서 보기에는 멀쩡하지만, 인체 속 장기가 다친 경우를 가리키는 데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이 경우에는 사용할 수 없다. 굳이 말하자면 '마상(마음의 상처)'이다. 하지만 이건 번역상의 문제가 아니다. 실제로 영어에서 trauma는 외부의 상처를 가리키는 말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p><div><hr /><a href="https://otterletter.com/english-sunday-10/">계속읽기</a></div>]]></content:encoded></item><item><title><![CDATA[틀 안에서 생각하기 ②]]></title><description><![CDATA[끝내지도 못할 일, 혹은 애초에 할 가치도 없는 일을 시작하는 비용이 지금처럼 낮았던 적은 없었다.]]></description><link>https://otterletter.com/constraints-2/</link><guid isPermaLink="false">6a05b798e04ee10001db9a12</guid><dc:creator><![CDATA[발행인 | 박상현]]></dc:creator><pubDate>Thu, 14 May 2026 21:50:00 GMT</pubDate><media:content url="https://cdn.media.bluedot.so/bluedot.otterletter/2026/05/dnmmkl_202605141249.JPG" medium="image"/><content:encoded><![CDATA[<p>데이비드 엡스타인은 그의 책에서 미국의 대표적인 동화 작가이자 삽화가 닥터 수스(Dr. Seuss)가 어린아이들을 위한 책을 처음 만들게 된 이야기를 들려 준다. </p><p>닥터 수스의 본명은 시어도어 수스 가이젤(Theodor Seuss Geisel)로 광고와 정치 만평으로 유명한 사람이었다. 젊은 시절 스무 곳이 넘는 출판사에서 거절당한 끝에 간신히 책(<a href="https://en.wikipedia.org/wiki/And_to_Think_That_I_Saw_It_on_Mulberry_Street">And to Think That I Saw It on Mulberry Street</a>)'을 출간했던 경험도 있었다. 랜덤하우스는 그런 그에게 쉽고 재미있는 어린이책을 써달라고 요청했다.</p><p>당시(1950년대)만 해도 미국의 아이들은 "Look, Jane. Look, look" "See Jane run. See Dick play"처럼 지루하고 반복적인 문구로 글을 배웠다. 사실 한국의 1970년대 교과서도 "철수야 놀자, 영희야 놀자" 같은 문장으로 글을 가르쳤다. 과거에는 '학습'과 '재미'가 서로 무관한 개념이었다. 랜덤하우스는 그런 틀을 깨서 "아이들이 실제로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초급 독서용 책을 만들기로 한 것이다.</p><div><hr /><a href="https://otterletter.com/constraints-2/">계속읽기</a></div>]]></content:encoded></item></channel></r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