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6년, 모스크바의 뜻을 어기고 서방세계와 손을 잡으려 시도했던 헝가리의 나지 임레 총리의 운명은 푸틴의 의도를 짐작하게 한다.
사람들은 젤렌스키의 자질을 의심했지만 그는 자신의 역할을 충실하게 수행하고 있다.
힘의 정치, 현실 정치(realpolitik), 그리고 국가의 이익을 거부하는 태도에는 도덕적 우월감이 배어있다.
독일의 밀레니얼 세대는 군대를 이해하기 힘들어하는데 특히 군대가 지정학적 파워의 한 요소라는 사실을 이해하지 못한다.
푸틴은 1999년에 체첸을 상대로 사용했던 방법을 2022년에 우크라이나에게 사용하고 있다. 자국민에 대한 공격이다.
소비자의 행동을 변화시키는 건 단순히 물건을 사게 만드는 것보다 어렵다.
러시아의 위협이 커질수록 우크라이나인들의 정체성은 더 빠르게 형성된다. 시간은 푸틴의 편이 아니다.
나는 내 아이폰이 폭력을 피해 숨은 아내를 찾고 있는 남편을 돕는 데 사용돼도 좋다고 허락한 적이 없다.
"우크라이나의 영광은 아직 죽지 않았고, 우크라이나의 자유도 아직 살아있다. 운명은 우리에게 다시 한번 미소를 지으리."
유용한 것을 만들어낸 후에 만들 때는 미처 몰랐던 대가를 치르는 과정이 인류 성장사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마케터들이 틱톡에 열광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사용자들이 구매자로 전환되는 속도 때문이다.
적국의 위협과 함께 살아가는 나라들과 달리, 미국은 안보에 대해 일종의 결벽증을 갖고 있다.
러시아는 나토의 강국 독일에 어떻게 족쇄를 채웠을까?
노스탤지어가 따뜻한 이유는 과거가 반드시 아름다와서가 아니다. 빠르게 변하는 세상에서 우리는 변하지 않고 남아있는 기억을 갈구하기 때문이다.
세상이 변하고 삶이 힘들어지면 사람들은 현실을 고발하는 사실주의에 관심을 두기 보다 낭만주의에 끌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