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의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은 우크라이나 국민들과 함께 러시아를 상대로 끝까지 싸울 것을 선언하며 수도 키예프를 떠나지 않고 있다. 하지만 러시아군은 이미 키예프의 외곽에 진입해서 치열한 전투를 벌이고 있기 때문에 수도 함락은 시간문제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그런데 실제로 방어선이 함락되고 러시아군이 키예프의 대통령 관저와 정부 청사에 진입하게 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젤렌스키는 지난 목요일 밤 EU의 리더들과 화상 회의를 하면서 "여러분이 제가 살아있는 모습을 보는 건 이번이 마지막일지 모른다"는 말을 했다고 한다. 그는 우크라이나가 결국 러시아를 물리칠 것으로 믿지만 승리의 순간에 자신이 살아있을지는 장담하기 힘들다고 했다.

비관적 전망

그가 이렇게 비관적인 전망을 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우선 미국의 정보기관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정부를 전복하려고 계획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런데 여기에서 사용한 단어는 'decapitate'이다. 젤렌스키를 제거한다는 의미다. 이번 러시아의 침공과 관련해서 미국이 입수, 공개한 정보는 대부분 적중했음을 생각하면 이 정보를 의심하기는 힘들다.

무엇보다 푸틴이 엄청난 대가를 치르면서 이번 전쟁을 일으킨 이유를 생각해보면 젤렌스키의 제거는 당연한 목표라는 결론이 나온다. 러시아가 감당할 수 없고 가능하지도 않은 우크라이나 영구 점령을 피하면서 이 나라가 북대서양 조약기구에 절대로 가입하지 않도록 쐐기를 박는 방법은 괴뢰정권(puppet regime)을 세우는 것 밖에 없기 때문이다. 괴뢰정권을 세우기 위해서는 현 대통령을 제거해야 한다. 이건 단순한 가상 시나리오가 아니라 서구 정보기관이 입수한 내용이다.

그럼 러시아는 젤렌스키를 어떻게 제거할까? 가장 편리한 방법은 대통령이 머무는 곳을 폭격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하기가 쉽지는 않다. 아직 우크라이나가 키예프의 제공권을 완전히 빼앗기지는 않은 듯하고, 내각이 벙커 등을 통해 단순 폭격에는 대비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무엇보다 내놓고 정부를 폭격하는 건 정치적 부담이 큰 일이다.

그래서 러시아는 비밀요원을 잠입시켜 암살하는 방법을 선택한 듯하다. 젤렌스키에 따르면 러시아의 "sabotage forces" 즉, 방해공작요원들이 이미 키예프에 들어와 젤렌스키와 그의 가족들을 추적 중이라고 한다. (그는 자신이 러시아의 표적 1호, 자신의 가족이 표적 2호라고 했다.) 이 방법을 선호하는 이유는 푸틴이 젤렌스키를 직접 죽이지 않았다고 거짓말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공작요원들은 러시아의 군복을 입지 않기 때문에 정확하게 누가 죽였는지 알 수 없고, '전쟁의 혼란(fog of war) 중에 정적에게 암살당했다'는 허위정보를 뿌리면 그만이다.

1956년 헝가리

러시아로서 최악의 경우는 러시아 군이 침입해서 대통령을 생포하는 상황이다. 주권국가를 침공한 것으로 러시아의 대외 이미지는 이미 크게 떨어졌지만 (심지어 러시아를 지지하던 중국의 시진핑도 이 상황을 불편하게 생각하기 시작했다) 선거를 통해 선출된 국가의 원수를 제거하는 건 마지막 남은 (푸틴의 상상 속) 명분도 없애버리는 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러시아, 아니 소련은 이미 그런 일을 한 적이 있다. 1956년 헝가리에서 일어난 민중 혁명 때의 일이다. 소련에 반대하며 개혁을 요구하는 국민의 시위가 헝가리 전역으로 번지자 소련은 헝가리인들의 분노를 잠재우기 위해 과거 총리로 일하면서 개혁을 이끌었던 나지 임레(Nagy Imre)를 다시 총리로 세웠다. 하지만 나지 총리는 소련의 바람과 달리 공산당 일당제 폐지처럼 더 급진적인 개혁을 추진하면서 소련의 눈 밖에 나게 된다.

나지 총리는 거기에서 그치지 않고 헝가리에 들어와 시위대를 진압하던 소련군의 철군을 요구하고, 아예 바르샤바 조약기구(북대서양 조약기구에 대응해서 소련이 위성국가들과 세운 군사동맹)를 탈퇴하고 서구 국가들에게 도움을 청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1956년의 헝가리가 다시 언론에 등장하는 이유는 그때의 헝가리와 지금은 우크라이나의 상황이 너무나 비슷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나지 임레 총리는 어떻게 되었을까?

소련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대규모 병력을 동원해 시위대를 학살하고 (약 3,000여 명이 죽거나 실종) 부다페스트를 장악했다. 그 과정에서 너지 임레는 유고슬라비아 대사관으로 피신했지만 곧 소련군에 체포되어 루마니아로 압송되었다가 2년 후 비밀리에 처형당하고 시신은 암매장되었다. 헝가리에서 공산정권이 무너진 것은 그로부터 30여 년이 지난 1989년이었다. 소련이 붕괴되기 2년 앞서 일어난 일이다. 그해 나지 임레도 (사후) 복권되어 시신을 찾아 제대로 장례식을 치렀다.

나지 임레 총리

For God's Sake, Help Us

소년 시절에 이런 역사를 목격한 한 영국의 정치인은 지금 푸틴은 과거 KGB가 사용했던 방법을 고스란히 따르고 있다고 지적한다. 푸틴이 우크라이나에 병력을 보내면서 "평화유지(peacekeeping)"라는 핑계를 댔지만, 소련이 1956년에 헝가리 혁명을 진압하러 군대를 보냈을 때도 핑계는 평화유지였다는 것이다. KGB 요원으로 젊은 시절을 보낸 푸틴에게는 익숙한 전술인 셈이다.

젤렌스키 대통령의 신변이 위험하다는 경고가 나오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가 죽거나 체포될 경우 우크라이나군의 사기와 명령체계는 삽시간에 무너질 것이고, 그런 이유로 러시아는 더더욱 서둘러 그를 제거할 것이다.

앞서 말한 영국의 정치인(로저 게일 경)은 기고문에서 이렇게 말했다.

"지난 2월 24일 목요일 아침, 우크라이나 의회 의원인 용감하고 젊은 친구에게서 전화를 받았다. 그는 내게 "For God's sake, help us(제발 저희를 도와주세요)"라고 했다. 그의 말은 1956년에 일어난 사건을 떠올리게 한다. 자유로운 서방 세계가 손에 피를 묻힌 푸틴도 분명하게 알아들을 수 있는 방법으로 대응하지 않으면 (헝가리에서 일어난 일은) 우크라이나에서 일어날 것이고, 그다음에는 조지아, 몰도바, 그리고 발트 3국의 차례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