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시작된 후 한국의 소셜미디어에서 잘 알려진 어떤 분이 이런 말을 했다. "러시아의 푸틴이 우크라이나 영토 안에서 군사작전을 선포했습니다. 전쟁을 시작한 러시아의 책임과는 별도로, 무식하고 무능한 코미디언을 대통령으로 뽑은 우크라이나 국민들의 처지가 안타깝습니다. 국민이 무식한 통치자를 선택하면, 무식한 통치자는 대개 ‘재앙’으로 보답합니다."

이분의 평소 정치적 발언을 찾아보니 코앞으로 다가온 한국 대선을 염두에 두고 한 발언으로 풀이되지만, 평화로운 나라가 일방적인 공격을 당하는 상황에서 적절한 표현으로 보이지 않았다. 우크라이나가 코미디언이었던 볼로디미르 젤렌스키를 대통령으로 뽑은 건 맞다. 하지만 그의 직업이 배우, 코미디언이었다고 해서 "무식하고 무능"하다고 단정하는 건 노무현을 "고졸 대통령"이라고 비난하던 시절을 떠올리게 한다. 그런 비판에 동의하기 전에 그가 무능하고 무식한지 한 번 생각해봐야 한다.

물론 그가 자신과 함께 코미디언으로 일하던 때의 동료를 보좌관이나 요직에 앉힌 것으로 비판을 받는 건 사실이지만, 한국을 포함해서 그런 문제에서 완전히 자유로운 나라는 없다. 게다가 독립한 지 30년밖에 되지 않은 우크라이나의 복잡한 국내 정치 상황을 우리는 잘 알지 못한다. 대한민국은 건국한 지 30년 후에 대통령도 국민의 손으로 뽑지 못하고 있었다.

오늘 뉴욕타임즈는 젤렌스키가 갑자기 대통령이 된 후에 21세기 국제정치의 한가운데서 '전시 대통령'이 된 상황을 설명하는 기사를 냈다. (원문은 여기에서 읽을 수 있다.) 젤렌스키는 모든 단점과 비판에도 불구하고 국민들은 그를 중심으로 뭉쳐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가 단순히 "무식하고 무능한 코미디언"이라는 단편적인 견해를 어느 정도 수정해줄 수 있는 글이라 전문을 번역해서 소개한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은 전쟁의 위협이 커지고 있던 지난 목요일 아침 우크라이나 TV에 등장했다. 그는 먼저 4천4백만의 우크라이나 국민들에게 이야기하고, 이어서 이웃나라 러시아의 1억 4천4백만 국민들에게 2차 세계대전 이후 유럽을 가장 암울한 시기로 끌고 가게 될 (러시아의) 공격을 막아달라고 호소했다. "이성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십시오." 젤렌스키가 목요일 자정 수도 키예프에서 했던 말이다. "우크라이나인들은 평화를 원합니다."

그의 연설은 나라를 구하기 위한 간절한 호소였다. 하지만 그 호소는 효과가 없었다. 그로부터 몇 시간 만에 러시아는 총공격으로 우크라이나를 침공했고, 전직 TV 배우이자 코미디언이었던 젤렌스키는 전시지도자(wartime leader)가 되었다. 러시아의 공격이 계속되던 그 순간, 우크라이나인들은 힘을 모아 그를 지지했다.

그가 극적인 연설을 한데 이어 지난 주말에 뮌헨 안보회의(Munich Security Conference)에 참석해서 유럽 국가들에게 러시아에 대한 유화정책(appeasement)의 위험함을 경고하면서 젤렌스키는 많은 나라로부터 처음으로 무게(gravitas, 진지함)를 인정받았다. 그는 이제 우크라이나의 현대사에서 가장 심각한 위기를 마주하게 되었고, 러시아의 블라디미르 푸틴과 대결해야 한다.

젤렌스키는 목요일, 두 번째 대국민 연설에서 "푸틴은 우크라이나를 상대로, 그리고 모든 민주주의 세계를 상대로 전쟁을 시작했습니다"라고 말했다. 러시아의 군대가 우크라이나의 수도 키예프를 포함한 16개 도시를 공격한 후에 한 말이다. "푸틴은 우리나라와 우리가 만들어온 모든 것을 무너뜨리려 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우크라이나 국민의 힘을 알고 있습니다."

그는 "여러분은 고난에 굽히지 않습니다"라며 이렇게 말했다. "여러분은 우크라이나인입니다."

러시아의 공격에 파괴된 마리우폴의 레이더 시설

물론 우크라이나인들이 비교할 수 없이 막강한 러시아의 군사력 앞에서 과연 얼마나 버틸 수 있을지는 알 수 없다. 그리고 젤렌스키가 리허설을 해본 적이 없는 역할을 계속 이어나갈 수 있을지 역시 알 수 없다. 여론은 언제든지 그에게 등을 돌릴 수 있다. 전쟁의 위협이 커지고 있던 지난 2월 중순에도 그랬다. 그리고 더 심각한 위험도 도사리고 있다. 그의 암살 가능성이다. 우크라이나 대통령실은 러시아 병력이 수도를 향하던 어제(목요일) 이 가능성을 제기했다.

민주이니셔티브재단(Democratic Initiative Foundation)의 우크라이나 정치분석가인 마리아 졸키나는 젤레스키 대통령이 "전쟁을 선택하지 않았고, 전시 대통령도 아니다"라고 했다. "하지만 러시아의 침공의 형태가 첩보를 통해 분명해진 어제 이후로 그는 전시 대통령이 해야 할 일을 정확하게 수행하고 있다."

전시 대통령이 된 코미디언

젤렌스키는 '부패와 싸우는 정치인(corruption fighter)'로 대통령의 자리에 올랐다. 선거운동 당시 그는 우크라이나 동부에 밀려나 있던, 러시아의 지원을 받는 분리주의자들과의 평화협상을 끌어낼 수 있다고 자신했다. 재선에 나선 페트로 포로셴코 대통령을 상대로 73%라는 압도적인 지지를 받아 대선에 승리했다. 포로셴코는 돈 많은 기업인 출신으로 러시아를 상대로 강경노선을 유지해왔던 인물.

젤렌스키는 TV 드라마에서 대통령 역을 연기한 것 외에는 아무런 정치 경험이 없는 인물이었다. 그는 부유한 올리가르히들(oligarchs)을 겨냥하는 포퓰리스트 어젠다를 기반으로 승리했고, 실용주의 대통령이 되겠다고 약속했다. 그는 "서구의 부패한 파트너"도 "러시아의 동생(little sister)"도 아닌 우크라이나를 만들겠다고 했다.

그는 우크라이나의 남부와 동부 지역에서 가장 큰 지지를 받았고, 거기에는 친러 반군이 장악한 지역이 위치한 도네츠크와 루간스크(루한스크)도 포함된다. 푸틴은 지날 월요일, 이들 반군의 점령지를 독립국가로 선포했다.

그 이후로 젤렌스키가 이 위험한 시기에 우크라이나를 제대로 이끌 준비가 되어있는지에 대한 의구심이 가시지 않았다. 그가 과거 함께 일했던 코미디 스튜디오 크바르탈 95의 동료들을 보좌관으로 삼은 것도 전문성을 의심하기에 충분했다. 국방부와 군부의 경우 능력을 인정받는 사람들이 이끌었지만 다른 부처에서는 능력 있는 인물을 선정하는 작업이 느렸다. 그의 주변 인물들은 정부에서 일한 경험이 거의 없었고, 외교나 전쟁수행과 관련해서는 말할 것도 없었다.  

러시아의 침공 이후로 전면에 나선 사람들이 그들이다. 그리고 젤렌스키는 전쟁을 피하기 위한 마지막 시도로 극적인 순간에 기회를 놓치지 않고 러시아에 포위된 국민들에게 필요했던, 그러나 사람들이 생각하지 못했던 방법으로 구심점을 제공했다.  

젤렌스키는 러시아 국민들에게 직접 호소하기 위해 연설 중에 언어를 러시아어로 바꿔 사용하며 러시아인들을 이웃, 가족이라 불렀다. 물론 두 나라의 차이를 인정했고, 크렘린의 미디어 통제 때문에 러시아 국민이 자신의 호소를 전혀 듣지 못할 가능성도 인정했다.

우크라이나 의회는 군사적 비상상황을 선포했고, 정부는 전투 경험이 있고 나라를 지킬 준비가 된 국민이라면 누구에게나 무기를 지급하겠다고 선언하면서 사람들에게 부상당한 병사들을 위해 헌혈을 부탁했다. 젤렌스키는 목요일 연설에서 "우크라이나의 미래가 국민 개개인에 달려있습니다. 적군은 큰 피해를 입었고, 앞으로 더 많은 피해를 입을 것"이라고 했다. "저들이 우리 땅에 들어왔습니다. 우크라이나는 북쪽과 동쪽, 남쪽에서 공격을 받고 있습니다. 하늘에서도 공격을 합니다. (우크라이나의) 방어태세는 작동하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의 군과 국가적 단결이야말로 우크라이나 주권의 중심입니다." 우크라이나 군대가 맞서야 할 러시아의 화력을 생각하면 그의 말은 희망사항이다.  

비행기 티켓 대신 탄약을 사는 사람들

젤렌스키의 인생 여정은 지난 8년 동안 러시아를 등에 업은 분리주의자들과 싸우고 있는 우크라이나의 상황을 반영한다. 지난 10년 동안 우크라이나의 국가적 자부심과 우크라이나어 사용은 극적으로 증가했고, 민주주의에 대한 신뢰, 서방세계에 대한 호감도 함께 커진 반면, 러시아와 푸틴의 독재정부에 대한 신뢰는 줄어들었다.

'우크라이나 월드' 매거진을 편집하는 철학자 볼로디미르 예르몰렌코는 "우크라이나 사회가 변신했기 때문에 젤렌스키가 변신했다고 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 그는 젤렌스키 대통령이 "우크라이나 동부 출신으로, 러시아어를 구사하고, 러시아어를 사용해 일하던 사람"이라고 했다. 젤렌스키가 일하던 크바르탈 95 채널을 말한 것이다. "러시아 사람들은 젤렌스키가 친 러시아 정책을 펼 것으로 기대했지만, 젤렌스키는 러시아가 모든 것을 자신들이 원하는 대로 하면서 우크라이나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고 끌고 다닐 것임을 알고 있다. 그가 전형적인 우크라이나의 애국자로 변신하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처음에는 젤렌스키도 상황의 심각성을 부각하지 않으려고 했지만 결국 우크라이나 국민은 그를 중심으로 뭉쳤다.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러시아의 총공격을 통한 침공을 심각하게 경고하면서 우크라이나에 충격을 주었고 그 바람에 침공에 대비할 중요한 시간을 잃었다. 우크라이나에서 영향력 있는 연구기관인 반부패센터의 센터장 다리아 칼레니우크는 "우크라이나인들은 단결하고 있습니다. 우리에게 대통령은 한 명뿐이죠"라고 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군 통수권자이고, 우크라이나군은 그의 지시를 따릅니다. 이제 우리는 젤렌스키를 지지하고, 그는 전시에 나라를 이끌고 있다. 이 문제를 더 잘 해결할 수도 있었다는 비판은 중요하지 않다. 지금 그의 역할은 막중합니다."

군사훈련을 참관하는 젤린스키 대통령 (왼쪽에서 두 번째)

정치적으로 분열되어 있던 우크라이나에서 이런 단결된 모습은 주목할 만하다. 젤렌스키에 패했던 포로셴코 전임 대통령–젤렌스키 정부는 그를 반역죄와 (비록 많은 사람들이 정치적인 동기라며 대수롭게 생각하지 않지만) 테러 협조 혐의로 체포하려 했다–도 그를 지지하고 나섰다. 포로셴코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정부가 책임감있게 행동하고 있다는 사실을 모든 국민이 알았으면 한다"고 썼다.

젤렌스키가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전쟁을 피하기 원하는 국민들도 있다. 점원으로 일하는 옥사나 지무노바는 스물 세 살의 여성으로, 키예프 중앙역에서 열차표를 사려고 애를 쓰고 있었다. "저는 대통령이 백기를 들었으면 합니다. 전쟁을 피할 수 있다면 다 포기하고 싶어요"라는 게 지무노바의 생각이다. "전쟁만은 피하고 싶어요. 물론 젤렌스키는 국민이 (그런 항복을) 받아들이지 않을 것을 두려워하겠지만, 그래도 백기를 들어야 합니다." 밝은 핑크색 트랙바지를 입은 지무노바는 고양이가 들어있는 두 개의 캐리어를 손에 들고 남은 티켓이 없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욕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대다수의 우크라이나 사람들은 흔들리지 않았다. "사람들은 목숨을 걸고 남아있을 겁니다. 단순히 영토가 나라는 아니거든요." 응급구조 훈련 강의 비즈니스를 운영하는 26세의 페디르 세르디우크의 말이다. 그는 이번 일이 사람들을 단결시켰다면서 긴장이 고조되면서 "사람들은 비행기 티켓을 사기보다 탄약을 샀습니다"라고 했다.

하지만 칼레니우크는 서구 국가들이 푸틴과 그의 조력자들에게 강력한 제재를 가하지 않았고, 젤렌스키를 저버렸다고 생각한다. 그는 나치 독일이 폴란드를 침공했던 일을 언급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지금 벌어지는 상황은 1939년의 상황과 비슷해요. 아무도 독일이 유럽 국가를 침공하리라 생각하지 않았죠. 푸틴은 우리 시대의 히틀러인데 아무도 그가 평화로운 나라를 침공할 거라 믿지 않았습니다. 벌써 민간인 사망자들이 나왔습니다. 앞으로 더 많은 사람들이 죽겠죠. 저희는 서구 국가들에게 러시아에 강경하게 대응해야 한다고 계속 말해왔습니다. 유화정책은 안됩니다. 그건 더 많은 폭력을 부르는 초청장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