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미드나이트 인 파리(Midnight in Paris)'는 흥미로운 영화다. 이 영화의 도입부는 감독의 다른 영화 '맨해튼(Manhattan)'의 도입부와 마찬가지로 도시에 대한 사랑이 넘쳐난다.

여기서 잠깐, 이 작품을 이야기할 때는 우디 앨런 감독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작품은 감독의 입양아 성추행 문제가 크게 불거진 2008년 이후에 나온 작품이라 더욱더 그렇다. 반론의 여지가 전혀 없는 하비 와인버그의 문제와는 달리, 우디 앨런의 문제는–쏟아져 나온 증언과 기사들을 보면–그리 간단해보이지 않는다. 지난달에 소개한 영화 '패싱(Passing)'의 감독 레베카 홀은 우디 앨런의 2008년 영화에 출연하는 도중에 이 문제를 알게 되었고, 즉시 앨런을 비난했지만, 같이 출연했던 다른 배우들은 판단을 보류했다. 그 집안의 일은 알면 알수록 복잡하기 때문이다.

이 영화의 주인공 길(Gil, 오웬 윌슨 연기)은 헐리우드의 극작가로, 영화 대본이 아닌 책을 내겠다고 준비하는 사람이다. 길이 출간을 준비하는 책은 1920년대 파리에 대한 연애편지 같은 느낌이다. 그는 파리의 옛날 물건을 파는 가게(노스탤지어 숍, nostalgia shop)가 중요한 모티프라고 설명한다. 그런데 약혼녀와 함께 온 파리에서 약혼녀의 남사친 폴을 만난다. 폴은 꽤 잘 나가는 대학교수로 기회만 되면 자신의 지식을 자랑하는 설명충.

폴은 길이 쓰고 있는 책이 파리에 대한 노스탤지어라는 이야기를 듣고 아무도 묻지 않은 자신의 의견을 늘어놓는다.

그렇게 폴이 이야기하는 노스탤지어는 인문학에서 이야기하는 가장 표준적인 정의다. 물론 영화는 그런 정의를 거부하는 길의 낭만적인 시각(여기에 대해서는 곧 설명한다)으로 전개되지만, 폴이라는 인물이 좀 재수 없다고 해서 이 설명이 반드시 틀린 건 아니다.

"노스탤지어는 부정이죠. 고통스러운 현재를 부정하는 행위예요. 이런 오류를 '황금기 사고(Golden Age thinking)'라고 부릅니다. 내가 살고 있는 현재보다 과거가 더 좋았다고 생각하는 착각이죠. 현실을 극복하기 힘들어하는 사람들이 낭만적 상상에 빠지면서 하게 되는 실수입니다."

카우보이와 인디언

한 때 헐리우드의 대표적인 장르였던 서부영화(Western)는 지금도 만들어지고 있지만 그 전성기는 1930년대부터 1960년대 까지라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다. 그런데 영화 속에서 그려지는 시대는 1850년대부터 대략 19세기 말이다. "카우보이와 인디언(아메리카 원주민)"이 서부영화에서 빠질 수 없는 요소라면 서부영화가 인기를 끌기 시작한 건 카우보이와 인디언이 미국인들의 주요 관심사에서 사라진 직후였다. 아메리카 원주민들이 마지막으로 백인에 대항해서 싸웠던 게 1923년의 '포지전쟁(Posey War)'이었고, 소 떼를 모는 목동이었던 카우보이의 역할이 사실상 끝난 것도 1920년대다.

1950년대 헐리우드가 그린 '과거'는 백인들이 생각한 '낭만'이 가득하다.

즉, 미국인들은 카우보이와 인디언의 시대가 끝난 후부터 본격적으로 서부영화를 즐기기 시작했다는 얘기다. 물론 그런 과거를 즐길 수 있었던 건 결국 백인이 승리하고 인디언들을 보호구역으로 몰아넣는 데 성공했기 때문이다. 기나긴 전쟁의 승리자가 생각, 혹은 상상하는 '낭만'인 거다. (원주민의 입장에서 생각해본 서부영화는 서부영화의 황금기가 끝난 후부터 나타나기 시작했다.)

하지만 서부영화의 경우는 현실을 받아들이기 힘들어서 과거를 그리워하는 도피주의(escapism, 현실도피)라기보다는 선악을 분명하게 구분할 수 있다고 믿던 시대에 도덕적 교훈을 가르치던 도구였고, 백인은 서부를 개척해야 하고 타인종과 구분되는 특별한 존재라는 인종주의적인 메시지까지 담긴 오락거리에 가까웠다. 따라서 그런 장르가 미국이 베트남전쟁을 겪으면서 (미국의 참전기간은 1965~1975년) 인기를 잃은 것은 충분히 짐작할 수 있는 일이기도 하다.

유럽의 낭만주의

하지만 18세기 말부터 시작해서 19세기 초중반에 최고조에 달한 유럽의 낭만주의(Romanticism)는 현실 도피적 성격이 훨씬 더 뚜렷했을 뿐 아니라, 그 인과관계 역시 분명했다. 유럽은 18세기 내내 이성의 시대(Age of Reason)이라는 계몽주의(Enlightenment)를 지났고, 계몽주의는 필연적으로 과학의 발전과 산업혁명을 촉진했다. 우리는 흔히 산업혁명이 인류 문명을 크게 진보시켰다고 알고 있지만, 그 진보는 대가를 수반했고, 그 대가는 노동자 계급이 지불했다.

해가 뜨고 지는 하루와 4계절이라는 절기를 중심으로 돌아가는 농경사회에 익숙하던 사람들이 공장노동을 하게 되면서 동일한 표준시를 따라 일하게 되고, 소와 양이 돌아다니던 "목가적 풍경"은 공장 굴뚝에서 뿜어대는 시커먼 매연이 가득한 우울한 풍경으로 바뀌었다. 영국의 찰스 디킨스(1812~1870)가 소설에서 묘사한 시대가 바로 이런 대전환기였다.

산업혁명 당시 영국 맨체스터의 풍경

세상이 변하고 삶이 힘들어졌다면 이를 사실적으로 묘사하고 현실을 고발하는 사실주의가 먼저 등장할 거로 생각하기 쉽지만, 그렇지 않다. 변화한 세상에서 사는 사람들이 제일 먼저 찾은 건 사실주의가 아닌 낭만주의였다. (예술사조로서의 사실주의는 낭만주의가 매력을 서서히 잃기 시작하는 1840년대에 나타났다.) 사람들이 흔히 하는 "옛날이 좋았지"라는 말이 당시의 낭만주의가 가졌던 매력을 가장 잘 설명해주지 않을까?

노스탤지어를 주제로 책을 펴낸 그래프턴 태너(Grafton Tanner) 교수는 당시 낭만주의자들의 태도를 보여주는 예로 영국의 시인 윌리엄 워즈워스(William Wordworth, 1770~1850)를 드는데, 그에 따르면 잃어버린 과거에 대한 향수를 노래하는 낭만주의는 사람들에게 자신이 속한 국가에 역사와 전통을 부여하는 중요한 역할을 해주었다고 한다.

영국의 대표적인 낭만주의 화가 윌리엄 터너의 The Fighting Temeraire. 트라팔가 해전 승리의 전설적인 전함이 범선의 시대가 끝나가던 시절, 증기 예인선에 끌려가는 모습을 그렸다. 

영국 낭만주의의 중심에 시인 워즈워스가 있었다면 프랑스에는 소설가 빅토르 위고(Victor-Marie Hugo, 1802~1885)가 있었다. '레미제라블'로 유명한 소설가 위고는 건축물 보존가로도 유명했다고 한다. '파리의 노트르담'(원제는 Notre-Dame de Paris가 원작인데, 영어로 번역될 때 Hunchback of Notre-Dame이라고 번역되는 바람에 우리 말로도 '노트르담의 꼽추'로 번역되었지만, 이제는 '파리의 노트르담'으로 옮긴다)은 그런 그의 관심사를 대표하는 작품.

'파리의 노트르담'이 나온 1830년대는 프랑스 전역에서 고딕 건축물이 헐리고 있었고, 노트르담 성당 역시 흉한 몰골로 남아있었다고 한다. 이 소설의 인기는 (소설의 진짜 주인공인) 성당 건물을 보존하는 여론으로 이어졌고, 1844년에 복원작업이 시작될 수 있었다고 한다. 그 결과 지금은 파리를 넘어 프랑스의 상징 중 하나가 된 것이다.

낭만주의는 이렇듯 필연적으로 과거에 대한 향수와 연결되고, 이는 대개 국가와 민족에 대한 정체성을 형성하는데 동원된다. 보수 정치인들이 낭만주의를 좋아하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나의 살던 고향은 ③'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