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넷플릭스에 소개된 영화 '패싱(Passing)'을 소개하는 글이다. 하지만 그 영화에 대한 리뷰라기 보다는 '패싱'이라는 개념과 그 함의에 대한 글에 가깝다. 영화에 대한 스포일러는 없기 때문에 영화를 보기 전에 읽어도 좋다. 아니, 영화를 보기 전에 이 글을 먼저 읽기를 권한다. 이 영화가 많은 한국 관객들에게는 낯선 문화, 역사적 배경을 갖고 있기 때문에 이를 먼저 이해하고 보면 영화를 훨씬 더 깊이 있게 감상할 수 있다.


폭력의 역사

작년 여름에 유전(genetics)에 관한 한 연구가 발표되어 관심을 끌었다. 대서양을 중심으로 일어난 노예무역이 유전적으로 어떤 결과를 낳았는지 보여주는 이 연구에서 사람들이 주목한 건 현재 미국에 사는 흑인들(African Americans)의 유전자에서 모계, 즉 여성을 통해 받은 흑인 유전자의 비율이었다.  

아프리카에서 납치한 흑인들을 어떻게 배에 싣고 왔는지 보여주는, 1823년에 제작된 그림

이 연구를 보도한 기사에 따르면 약 1천 7십만 명의 흑인들이 아메리카 대륙에 끌려왔는데 (살아서 도착한 사람이 그렇고, 도중에 사망한 사람만 2백만 명에 달한다) 그들 중에서 남성의 비율은 60%에 달했다. 그런데 현재 미국에 사는 흑인들의 유전자에서 아프리카계 유전자는 대부분 모계로부터 왔다고 한다. 유전학적으로 대부분의 여성은 두 개의 X 성염색체를 갖고, 남성은 X와 Y 성염색체를 하나씩 갖고 태어난다. 그런데 현대 미국 흑인들의 아프리카계 유전자는 Y 염색체보다 X 염색체에 훨씬 더 많이 나타난다는 것이다. Y 염색체는 아버지에게서 받을 수 밖에 없는데, 현재 미국 흑인들의 Y 염색체를 보면 흑인 아닌 인종, 즉 백인에게서 받은 유전자가 훨씬 더 많다.

이 연구는 이미 미국에서는 널리 알려진 일, 즉 백인 농장주가 흑인 여성 노예를 성폭행한 결과로 태어난 아이들이 흑인 노예 부부 사이에서 낳은 자식보다 많았다는 사실을 유전학적으로 확인시켜준 것이다. 이런 사실은 통계에 잡히지 않기 때문에 역사책에 등장하기 힘들어도 미국에서는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서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었다. 그렇게 소문으로만 전해지던 얘기 중 하나가 "(미국의 3대 대통령) 토머스 제퍼슨에게 흑인 자녀가 있었다"는 것이다.

근거 없는 소문이 아니었다. 제퍼슨이 "재산"으로 소유한 노예들에 대한 기록이 남아있기 때문에 조금만 자료를 조사하면 충분히 추정 가능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토머스 제퍼슨을 연구한 학자들은 그렇게 제퍼슨의 자녀를 낳은 흑인 노예가 누구인지도 잘 알고 있었다. 바로 샐리 헤밍스(Sally Hemings)다. 하지만 제퍼슨은 미국 역대 대통령 중에서도 특히 존경받는 인물이었고, 무엇보다 미국 건국에 가장 중요한 문서인 독립선언서에 "모든 사람은 평등하게 태어난다(All men are created equal)"는 문구를 넣은 장본인이었기 때문에 그런 그가 흑인 노예와의 사이에 낳은 자식이 있다는 얘기는 미국에서 쉬쉬하며 전해지는 야사 취급을 받았다.

샐리 헤밍스(상상도)와 토머스 제퍼슨

샐리 헤밍스(1773-1835)가 어떤 사람인지 알면 더욱 기가 막힌다. 샐리는 제퍼슨의 장인이 흑인 여성 노예(베티 헤밍스)를 첩으로 삼아 살면서 낳은 딸이다. 다시 말하면 제퍼슨의 아내 마사와는 이복동생인 셈이지만, 제퍼슨이 마사와 결혼한 1772년에는 아직 태어나지도 않았다. 제퍼슨의 아내는 1782년에 병으로 세상을 떠나는데, 기록에 따르면 그로부터 5년 후부터 집안 노예였던 샐리와의 관계가 시작되었다고 한다. 제퍼슨이 44세, 샐리가 14세였던 해다.

인종의 경계선

야사처럼 전해지던 헤밍스와 제퍼슨의 이야기가 본격적으로 알려지게 된 건 하버드 대학교 법대교수인 아네트 고든리드(Arnett Gordon-Reed)가 1997년에 펴낸 책 'Thomas Jefferson and Sally Hemings: An American Controversy' 때문이다. 이 책이 나왔을 때 미국에서 얼마나 큰 논란이 되었을지는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하지만 과학적 증거가 논란을 금방 잠재웠다. 헤밍스 후손의 DNA와 토머스와 마사 제퍼슨 후손의 DNA를 검사해본 결과 양쪽에서 제퍼슨의 유전자를 확인했기 때문이다.

아네트 고든리드 교수는 2007년에는 후속작 'The Hemingses of Monticello'로 퓰리처 상을 받았다.

어머니와 마찬가지로 나이 든 백인 남성의 첩으로 살게된 샐리 헤밍스의 이야기는 앞서 언급한 현대 미국 흑인의 유전자 구성을 설명해준다. 제퍼슨과 헤밍스 사이에는 여섯 명의 자녀가 태어났다고 알려졌다. 당연히 그 아이들 중 누구도 아버지의 성인 제퍼슨을 갖지 못했고 모두 노예인 어머니의 성을 따라 헤밍스가 되었다. 물론 자녀의 신분도 노예였고, 제퍼슨은 그 아이들의 아버지가 아닌 주인이었다.

그런데 여기에서 주목할 부분이 있다. 전해지는 이야기에 따르면 샐리는 "백인에 가까운 외모"를 하고 있었다. 샐리는 노예인 어머니(베티)와 백인 주인의 사이에서 태어났고, 베티의 어머니(샐리의 외할머니)조차 아프리카에서 잡힌 흑인 여성과 백인 선장 사이에서 태어났다고 하기 때문이다. 즉, 샐리 헤밍스가 가진 유전자에서 "흑인 피"는 1/8에 불과했다. 그런 그가 또 다른 백인 남성인 토머스 제퍼슨과의 사이에서 아이를 낳았다면? 그 아이들이 가진 흑인 피는 1/16, 즉 6.25%에 불과하다.

그럼 그 아이들의 외모는 어땠을까? 물론 같은 부모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들이라고 해도 유전적 형질의 발현은 다를 수 있다. 따라서 샐리 헤밍스와 토머스 제퍼슨 사이에 태어난 아이들도 피부색은 서로 달랐을 가능성이 높다. 그래도 그들의 외모가 어땠을지 궁금하다면 대략 짐작해 볼 만한 일이 몇 해 전에 있었다. "나의 인종은 나의 종교"라는 말로 유명한 미국의 네오나치 백인우월주의자 크레이그 콥이 같은 백인우월주의자와 싸움이 붙어 방송에 나와 공개적으로 자신의 유전자를 검사하게 되었다. 그런데 검사 결과, 그의 피에는 아프리카 중에서도 "검은 아프리카"라 불리는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Sub-Saharan Africa) 지역에서 온 유전자가 14%였다고 밝혀졌다.

백인 우월주의자 크레이그 콥(Craig Cobb)은 아프리카계 유전자를 14% 갖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흑인의 피를 14% 가진 사람이 당당히 백인 우월주의자 행세를 할 수 있었다면, 6.25%만을 가진 헤밍스의 자녀 중에는 백인과 구분하기 힘든 사람들이 있었음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들은 선택을 할 수 있었다. 미국처럼 넓은 나라에서는 다른 지역으로 이주해서 이름을 바꾸고 백인으로 살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노예제도가 살아있고 차별이 극심한 나라에서 이들이 흑인으로 살 이유가 있었을까?

패싱(Passing)

밝혀진 바에 따르면 (이 자료는 제퍼슨의 생가이자 기념관인 몬티첼로의 웹사이트에 올라와 있다) 헤밍스가 제퍼슨과의 사이에서 낳은 자녀 5명 (혹은 7명) 중에서 세 명이 "백인의 세상"으로 옮겨왔다고 한다.

아들인 베벌리(Beverly)와 딸 해리엇(Harriet)이 20대의 나이에 제퍼슨의 집을 멀리 떠나 백인과 결혼해서 살았다고 전해지고, 샐리의 막내아들 에스튼(Eston)은 아버지의 유언에 따라 노예에서 해방되어 백인과 결혼했고, 그의 후손은 이 모든 사실이 밝혀지기 전까지 자신들이 토머스 제퍼슨과 연관이 있다는 얘기를 집안에서 전해지는 얘기를 통해 들었지만 정확하게 어떤 관계로 연결되었는지는 몰랐다고 한다. (아래 영상이 그 후손과의 인터뷰다.)

헤밍스의 후손이 들려주는 "집안에서 전해들은 이야기"

이들은 백인으로 살고 있고, 제퍼슨의 유전자를 갖고 있지만 이들과 제퍼슨을 연결하는 지점은 흑인 노예 샐리 헤밍스다. 그런데 여기에서 기억해야 할 게 있다. 이들이 백인으로 살게 된 것은 이들의 조상(즉 샐리의 자녀)이 그렇게 하기로 의식적인 결정을 내렸기 때문에 가능했다는 사실이다. 노예제도가 살아있고, 흑인에 대한 차별이 존재하는 세상에서 흑인과 결혼할 사람은 없다. 아니 법적으로 불가능한 일이었다. (미국에서 흑인과 백인 사이의 결혼이 법적으로 인정된 건 1967년이었다).

따라서 흑인의 후손이 백인의 세상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자신의 조상 중에 흑인이 있다는 사실을 적극적으로 속이거나, 최소한 언급하지 않고 백인인 척하고 넘어가야 한다. 이때 '백인인 척하고 넘어간다'는 의미의 영어 표현이 "passing (for white)"이다. 영화 '패싱'이 바로 그 얘기다.

이 영화를 만든 감독은 꽤 잘 알려진 배우 레베카 홀(Rebecca Hall)이다. '아이언 맨 3'에 등장하기도 한 이 배우는 이번에 발표된 '패싱'으로 감독에 데뷔했다. 본인이 그렇게 "백인으로 패싱한" 흑백 혼혈인의 후손이기도 하고, 어머니는 "이국적인(exotic) 외모"를 가졌다고 알려진 유명한 오페라 가수 마리아 유잉(Maria Ewing)이다. 홀은 자신이 20대 때 친구가 추천한 동명의 소설 'Passing'(1929)을 읽는 순간 영화로 만들어야겠다고 결심했다고 한다. 책을 읽자마자 시나리오 작업에 들어가 열흘 만에 완성했지만 영화로 만들 엄두를 내지 못하고 십여 년을 묵히고 있었다.

'아이언 맨 3'에서 조역을 했던 배우 레베카 홀이 '패싱'의 감독이다.

('Passing ② 감독의 가족사'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