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우크라이나 사태에 관한 기사들을 뒤지다가 "30년 동안 평화를 누리던 유럽인들이 우크라이나 위기에 당황하고 있다"는 기사를 접했다. 뉴욕타임즈의 국제문제 전문기자의 글이었는데, 사실은 이 글에서 언급한 다른 글을 더 흥미롭게 읽었다. 독일의 밀레니얼 세대에 속하는 울리케 프랑케(Ulrike Franke)라는 한 국방분석가의 글이었다.

'한 밀레니얼이 30년 동안의 평화 후에 마주한 독일의 새로운 문제를 생각하다(A Millennial Considers the New German Problem After 30 Year of Peace)'라는 제목의 이 글은 이번 우크라이나 사태에서 독일이 외교적 주도권을 전혀 발휘하지 못하고 힘의 정치(power politics)를 구사하는 러시아와 미국에 끌려다니는 모습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

하지만 프랑케의 글은 지금의 독일에 대한 걱정이 아니라, 이제 정치의 중심에 들어서고 있는 자기 또래에 대한 걱정이다. 그는 독일의 밀레니얼 세대가 코호트를 특징 지어주는 중요한 사건을 경험한 적이 없는, 그래서 프랜시스 후쿠야마가 말하는 '역사의 종말'을 체화한 세대라고 주장한다. 물론 후쿠야마의 글은 나온 직후에도 많은 비판을 받은, 문제가 많은 주장이었다. 그런데 프랑케는 독일인들, 특히 밀레니얼 세대야 말로 세상이 정말로 좋아졌다고 믿으면서 지정학적, 전략적 사고를 우습게 생각했다고 설명한다.

본인도 어느 정도 인정하듯 글에서 젊은 꼰대의 느낌이 나는 것도 사실이지만, 독일과 유럽이 누린 오랜 평화와 거기에서 비롯된 이상적인 태도가 러시아와 같은 지정학적 플레이어를 만났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되는 글이다. (무엇보다 글이 흥미롭고 술술 읽힌다.)

글을 1, 2편에 나누어 통째로 번역했다. 본문에서 약간 어색하게 긴 단락 두세 군데를 나눈 것 외에는 본문에 충실했다. 원문은 여기에서 읽을 수 있다.


나는 자라면서 프로인데스크라이스(Freundeskreis)의 음악을 들었다. 독일의 힙합 레게 밴드인데, 그들의 노래 가사 중에 이런 게 있다. "역사라는 건 오래전에 일어난 일이고, 항상 너와 상관없이 일어나지." 그때는 1990년대 후반이었고, 나는 서독의 교외 주택가에 있는 우리 집 내 방에서 그 가사에 완전히 동의했던 걸 분명하게 기억한다. 역사가 된 이데올로기를 두고 논쟁을 했지만 현실은 아니었다. 현실은 고요하고 아늑했다. 솔직히 말하면, 좀 지루하기도 했다.

역사적 사건들을 경험하지 못했다는 십 대 시절의 불만을 돌아보면 우습다고 생각하기 쉽다. 역사가 종말을 고하지 않은 건 분명하고, 나는 그 시절의 나에게 "흥미로운 시절을 산다"는 것이 생각처럼 흥미로운 일이 아니라고 말해주고 싶다. 하지만 내가 속한 세대가 이제 독일 외교정책을 수립해야 하는 자리에 들어서고 있기 때문에 나는 우리 세대가 자라온 환경이 우리의 사고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한 번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고 본다.

독일 외교관이자 현 연방대통령의 외교자문인 토마스 바거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역사의 종말이라는 건 미국이 만들어낸 아이디어였지만, 독일에는 현실이었다." (원문 편집자의 설명: 바거는 이 말을 처음 한 사람은 불가리아의 이반 크라스테프라고 주장하지만, 크라스테프에 따르면 바거가 처음 했던 말이다.) 나는 그 말 뒤에 "그리고 밀레니얼 세대에는 문제"라고 덧붙이고 싶다. 왜냐하면 바거의 말은 옳았기 때문이다.

"역사의 종말"은 최근까지 독일의 현실이었다. 이 개념을 만들어낸 미국의 정치학자인 프랜시스 후쿠야마가 의미했던 이데올로기적 의미에서 뿐 아니라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단순한 의미로도 그랬다. 이는 특히 이 시기에 성장한 독일의 밀레니얼 세대에 문제가 된다. 독일의 밀레니얼들은 지금 우리가 사는 세계에 적응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는 뜻이다. 우리는 이해관계에 관해서 생각하기 힘들어하고, 지정학적 권력이라는 개념을 이해하기 힘들어하고, 군사적 힘이 지정학적 권력의 한 요소라는 사실을 이해하기 힘들어한다. 이게 문제가 되는 이유는 세계라는 체계 속에서 하나의 행위자인 독일이 많은 책임을 지고 있기 때문이다.

독일이 마주한 문제

우리는 지정학적 경쟁과 불안정의 시기로 접어들고 있다. 이런 맥락에서 많은 나라들이 독일을 바라보고 있다. 독일 정부는 자유 세계의 질서 수호를 도와야 하며, 유럽연합이 깨지지 않도록 유지해야 하고, 떠오르는 중국과 쇠퇴하는 미국 사이에서 길을 찾아야 한다. 유럽에서 가장 크고 경제적으로 막강한 독일의 경제적, 사회적 안녕(wellbeing)은 국제무역과 안정에 달려있기 때문에 현재 큰 숙제를 안고 있다.  

지금은 힘든 시기이지만 한 국가가 변화하는 국제 정세를 헤쳐나가야만 했던 일은 지금이 처음이 아니다. 이런 어려움을 해결하는 방법도 이미 존재한다. 나라의 이해관계를 정의하고, 그것들의 우선순위를 정하고, 국가가 가진 역량을 측정하고, 가진 자원으로 충분히 목적을 달성할 수 있는 방법을 강구하라. 동맹관계와 자금배분의 우선순위 변경 등을 통해 역량을 개선하라. 이런 역량을 동원해 목적을 달성할 수 있는 전략을 수립하라. 이를 수행하는 동시에 똑같은 절차를 사용해 상대국가들(opponents, 적)을 측정하라. 그들의 이해관계는 무엇인가? 그들은 무엇을 원하는가?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가? 그들은 무엇을 달성할 것 같은가?

이건 수학이 아니다. 여기에는 불확실성도 있고, 정보도 완벽하지 않고, 인적 요인도 존재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독일의 서구편입(Westbindung, 1949년 이후 독일의 자발적 서구 귀속)부터 "글로벌 대테러 전쟁(Global War on Terror)"까지의 모든 정책이 이런 방법으로 통해 결정된 것도 아니다. 하지만 이 방법은 모든 외교정책 결정의 출발점이어야 한다. 이런 전략적 사고는 외교정책의 사고 과정을 도와준다.

불행하게도 독일의 젊은 외교정책 입안자들은 전략적 사고에 익숙하지 않다. 지난 30년 동안 우리는 힘의 정치가 판치는 험악한 세상에서 안전하게 분리되어 있었다. 우리(세대)가 자란 특수한 세상이 우리에게는 정상(normal)이었다. 우리는 1989년의 환경에서 발전한 아이디어를 확신하고 있었다. 하지만 지정학(geopolitics), 특히 지정학적 힘의 정치가 다시 돌아오자 우리는 길을 잃었다.

나는 이를 여러 번 경험했지만, 독일의 밀레니얼 세대(1980년대 초에 태어난 사람들이 가장 나이가 많은 축에 속한다)가 외교정책을 특이한 방식으로 생각한다는 사실을 깨닫기까지는 시간이 걸렸다. 독일 밖에서 사는 기간이 길어질수록, 특히 지정학적, 전략적 사고가 보편적인 나라에서 살면서 내 또래의 독일인들이 나누는 이야기를 이해하기 힘들게 되었다. 독일 밀레니얼 세대에 속한 한 친구가 했던 "지정학이라는 말은 '병력 이동'이라는 말처럼 들려!"라는 말이 이를 가장 정확하게 요약해준다. 그의 말은 내가 또래의 독일인들 사이에서 자주 들었던 그들의 믿음과 확신 몇 가지를 담고 있다. 즉, 지정학에 대한 회의적 태도, 힘(power, 권력, 무력)과 이익의 관점에서 생각하는 능력의 결여, 그리고 군사력을 정치의 도구라고 생각하는 것을 거부하는 태도가 그것이다.

이 글을 쓴 울리케 프랑케(Ulrike Franke)

독일 밀레니얼 세대는 국제정치를 이익보다는 가치와 감정의 관점에서 생각한다. 물론 가치와 이익이 반드시 상호 배타적인 건 아니고, 때로는 둘을 분리하기 힘들 만큼 얽혀있기도 하다. 하지만 우리 독일인들은 (국제정치의) 방정식에서 이익이라는 부분을 철저히 거부하라고 배웠고, 우리 세대는 국제관계에 대해 거의 낭만적인 생각을 갖고 자랐다. 동맹은 친구관계라고 생각하고, 의견의 불일치는 가치가 서로 다른 거라고 생각한다.

게다가 독일의 밀레니얼 세대는 군대를 이해하기 힘들어하는데 특히 군대가 지정학적 파워의 한 요소라는 사실을 이해하지 못한다. 이는 이미 독일인들 사이에서 일반적인 (그리고 9월 선거 이후 권력을 얻게 될 가능성이 높은 녹색당 내에서 두드러지는) 현상이다. (이 글은 2021년 5월에 나왔다–옮긴이) 하지만 이 사고방식은 밀레니얼들 사이에서 더욱 분명하게 눈에 띄고, 최근의 여론조사도 이를 보여준다. 독일 국방예산의 축소를 지지하는 비율은 밀레니얼 세대에서 가장 높게 나타나고, 정부예산의 증가에 대한 지지도 다른 세대들에 비해 낮다는 것이다.

우리는 사고에서–그리고 실제적으로도–무기를 내려놓았다. 우리의 전략적 근육은 한 번도 단련하지 않는 바람에 위축되어버렸고, 힘의 정치는 우리가 이해하는 세계의 작동방식과 충돌한다. 우리의 머리는 이렇게 굳어졌고, (지정학적) 언어를 사용할 줄도 모른다. 따라서 우리는 궁극적으로 우리가 유일한 체계라고 생각하는 것에 점점 더 큰 목소리로 이의를 제기하는, 우리와 다른 이해관계를 가진 적을 상대할 준비가 전혀 되어있지 않다. 어쩌다 이렇게 되었을까?  

역사를 살펴보라

우리는 누구나 자신이 자라난 세계에 의해 만들어진다. 이것의 사회경제학적 의미는 다들 잘 알고 있지만 정치(지정학)적인 의미를 생각해본 사람들은 드물다. 우리는 우리가 어떤 특권을 누리고 있는지 알아야 한다고 배우지만 역사를 살펴보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각 세대들은 종종 그들이 겪은 중요한 사건들에 의해 정의된다. 한 세대는 같은 시대를 살고, 같은 나이에 같은 대변동을 경험하면서 하나로 묶이고, 그들을 대표하는 하나의 테마(theme, 주제)가 부여되며, 세상을 바라보는 기준점들(points of reference)이 만들어진다. 물론 특정 시점에 세 개에서 다섯 개 정도의 세대가 동시대에 존재하기 때문에 중요한 사건을 한 세대만 경험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어떤 것이 노멀(normality)인지를 판단하는 기준점은 생애 초기에 동안에 만들어진다.

"밀레니얼 세대"는 1980년대 초중반부터 1990년대 후반 사이에 태어난 사람들이다. 우리가 어린 시절에 천년(millennium)이 바뀌는 것을 목격했다고 해서 그런 이름을 같게 된 것이다. 비록 1999년에서 2000년으로 넘어가는 것이 흥미로운 사건이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우리의 근본을 형성하는 경험은 아니었다. 독일의 밀레니얼 세대는 그 정도가 아니라, 자신들의 근본을 형성하고 속한 세대를 하나로 묶어주는 사건을 경험하지 못했다는 게 나의 주장이다.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우리 세대에게 가장 큰 영향을 준 사건은 우리가 아직 태어나지 않았거나 너무 어려서 이해하지 못하던 1989년에 일어났다. 바로 베를린 장벽의 붕괴다.

이 사건은 소비에트 연방의 종말을 촉발시켰고, 지정학적 무대 전체를 붕괴시키면서 세계를 일극체제(unipolarity, 미-소의 양극체제를 대체하는 미국 중심의 체제)로 가는 길을 마련했다. 1989년을 마지막으로 독일인들은 오랫동안 지정학에 직접적으로 노출되지 않았다. 내가 속한 코호트(cohort)가 권력을 차지하기 시작했기 때문에 이제는 우리 세대의 역사를 살펴보고 우리에게는 어떤 사각지대(blind spot)가 있는지 확인해야 할 시점이 되었다.

('역사는 끝나지 않았다 ②'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