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80년에 조사원들에게 주어진 작업 설명서를 보면 인구조사국은 가정(가족)을 정의할 필요는 느꼈던 것 같지만, 가정 내 관계의 형태를 정확하게 나열해서 보여주지 않고 있다. 다만 인구조사국은 조사원들에게 통계적인 의미에서의 '가정'이 모두 흔히 생각하는 가정의 모습은 아닐 수 있음을 상기시켰다. 설명서는 "인구조사 내에서 가정(falmily)이라는 단어는 혼자 살고 있는 사람도 포함한다"라면서, "일반적인 의미의 가정도 가정에 포함되지만, 더 넓은 의미에서는 한 지붕 밑에서 하나의 식탁을 공유하기만 해도 가정으로 정의된다"라고 한다.

그런데 여기에서 식탁이라는 단어에 주의할 필요가 있다. 가정을 정의할 때–적어도 도시의 주거 방식에서는–식탁은 중요했다. "대도시의 아파트에 여러 가정이 모여살 경우, 식탁을 따로 쓰는 사람들은 별도의 가족으로 기재"해야 한다는 거다.

1935년 뉴욕 맨해튼 상점 뒤쪽에 붙어있던 거주지의 모습 (이미지 출처: archives.nyc)

그로부터 60년 동안 6번의 인구조사가 있었고, "파트너"는 공식적인 관계 분류 명칭으로 바뀌었다. 오래도록 자신의 자리를 찾을 수 없었던 사람들이 자리를 찾게 된 것이다. 1940년 인구조사에서는 "만약 혈연이나 혼인 관계에 있지 않은 두 사람 이상이 같은 주거 단위에 파트너로 함께 살고 있다면, 한 사람을 가장(head)으로, 다른 사람을 파트너로 기록해야 한다"라고 설명한다. 그런데 이 설명은 관계를 설명하는 페이지에서 가장 마지막에, 마치 잊을 뻔했다가 생각났다는 듯이 등장한다. 그야말로 최후의 수단인 셈이다.

내가 "파트너"라는 퍼즐을 처음 발견한 것은 이 책을 쓰기 위한 연구 작업을 시작한 후 몇 달이 지나서였다. 나는 1940년 미국의 인구조사 자료를 일 년 넘게 읽고 있었지만 "파트너"라는 명칭은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그러다가 컬럼비아 대학교의 앤슬리 에릭스(Ansley Erickson)에게서 메시지를 받았다. 그 역시 인구조사 자료를 들여다보고 있었는데, 함께 거주하는 두 명의 여성 중 한 명이 "파트너"로 기록되어있는 게 무슨 의미인지 궁금하다는 것이다. 나도 답을 모르기는 마찬가지였지만 반드시 풀어야 할 의문이었다.

사실 내게는 그 단어가 인구조사에 사용된 데 대해 더 알고 싶은 개인적인 이유가 있었다. "파트너"는 내가 집에서 점점 더 자주 사용하게 된 표현이었다. 나의 결혼은 조금씩 더 퀴어해졌고(이 대목에서 저자는 "our marriage got queerer and queerer"라고만 쓰고 있기 때문에 무슨 의미인지는 정확하게 알 수는 없다. 하지만 첫 글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사람들이 말하는 것 이상을 궁금해하지 않는 게 바람직하다고 본다–옮긴이) 하지만 나는 인구조사에 등장한 이 표현이 정확하게 어떻게 시작된 건지 알 수 없었다. 나는 더 조사해 보기로 한 것이다.

개인적인 이유와 상관없이, 나는 "파트너"라는 단어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희미하게나마 짐작할 수 있었다. 이 단어를 추적하면 인구조사 데이터가 퀴어를 비롯해 사회에서 소외된 사람들을 어떻게 취급했는지 아는 데 도움을 줄 것이었다. 그리고 이 단어를 추적하면 사회의 주변부에 살던 사람들, 그래서 역사책에 기록될 가능성이 적었던 사람들에 대해–비록 형식적일지언정–역사적으로 인정하는 기회를 줄 수 있을 것이었다.

그렇게 해서 "파트너"라는 단어를 추적한 결과는 만족스러웠다. 나는 이를 통해 인구조사원들이 어떤 사람들을 만났는지 알게 되었다. 인구조사의 최종 결과인 숫자만 봐서는 상상도 할 수 없었을 일이다.

1940년 당시 인구조사원의 모습

뉴욕 그리니치 빌리지

1940년 4월 2일, 인구조사원 릴리언 리타 데이비스는 뉴욕시 웨스트 11번가에 있는 작은 아파트 빌딩에 들어가 문을 두드렸다. 그가 인구조사원으로서 방문하게 된 첫 집이었다. 동네는 그다지 좋지 않았다. 아니, 불안한 동네라고 하는 게 맞을지 모른다. 뉴욕시는 이 동네를 3등급, 혹은 C등급으로 분류했다. 데이비스가 받은 자료에 따르면 "아주 낡은 구역"으로, 대부분 "다세대 주택(tenements)"이었다. 전체 가구의 20%가 "방을 세주는 아파트 및 기타"로 분류되었다. 한 가구 안에 있는 방들을 따로 월세를 내주는 집이라면 상태가 좋은 집일 리 없었다. 전통적인 핵가족에 해당하지 않는 사람들이 세입자들이었기 때문이다. (예외는 있었다. 같은 뉴욕이라도 센트럴파크 근처로 가면 이런 다세대 주택은 럭셔리한 레지던스 호텔이 된다.)

데이비스가 문을 두드리자, 안에서 에밀리 H. 브랜드라는 여성이 나왔다. 대학을 졸업한 29세의 브랜드는 백인이었고, 싱글이었다. 조사원인 데이비스에게 자기는 어느 극장에 비서로 일하며 그럭저럭 살아가고 있다고 답했다. 그리고 카트리나 S. 그랜트라는 여성과 함께 살고 있다고 했는데, 그랜트 역시 대학을 졸업한 백인 여성이었고, 싱글이었다. 사회복지사로 일하는 그랜트는 벌이가 나쁘지 않다고 했다.

브랜드가 데이비스에게 함께 사는 그랜트를 자신의 파트너라고 했는지, 아니면 룸메이트, 친구, 반려자, 혹은 연인이라고 했는지 알 수 없다.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데이비스가 브랜드를 '가장(head),' 그랜트를 '파트너'라고 기록해두었다는 것뿐이다.

1940년대 뉴욕 그리니치 빌리지. (Alfred S. Mira, 1942)

데이비스 조사원은 자신이 방문한 구역에서 브랜드와 그랜트 외에도 12명을 "파트너"라고 기록했다. 전국 평균의 4배에 달하는 숫자였다. 이런 파트너들은 대개 특정 지역에 모여 살았고, 그들이 모여 사는 지역은 사회의 주변부인 경우가 많았다. 뉴욕의 그리니치 빌리지 같은 곳 말이다.

지금은 뉴욕의 그리니치 빌리지, 특히 브랜드와 그랜트가 살던 11번가는 배우 사라 제시카 파커, 매튜 브로데릭 부부나 루퍼트 머독 같은 부자들이 사는 동네가 되었지만, 이 지역은 오랫동안 낙후되어 있었고, 동성애자들이 모여 사는 동네로 유명했다. (샌프란시스코의 카스트로 지역이 그렇게 성소수자들의 보금자리로 유명하다). '그 남자의 뒷얘기 ③'에서 잠깐 소개한 적 있는 1969년 스톤월 항쟁이 바로 이 그리니치 빌리지에서 일어났다.

데이비스는 같은 성별(인구조사는 예나 지금이나 성별이나 젠더를 남성과 여성이라는 두 개의 카테고리로 분류하기 때문에 논바이너리, 트랜스젠더 같은 사람들을 제외하거나 잘못 분류한다)을 가진 두 명이 함께 살 경우 파트너라고 기록했다. 그렇게 데이비스가 기록한 파트너들 중 다섯 명이 다른 여성과 함께 사는 여성이었고, 그렇게 함께 사는 두 사람은 대부분 비슷한 나이대였다. 그중에는 두 명의 의사도 있었고, 두 명의 여행사 직원(그냥 함께 일하는 사람들이었을 수도 있다)도 있었고, 편집자와 함께 사는 비서직 여성도, 비서직 여성과 함께 사는 속기사도 있었고, YMCA에서 함께 일하는 비서직 여성과 함께 사는 속기사도 있었다.

비슷한 직종이 자주 등장하는 이유는 여성이 직업을 갖는 일이 흔하지 않던 당시 여성이 가질 수 있는 직업이 한정되었기 때문일 가능성이 높다. 그런데 저자가 굳이 YMCA를 언급한 이유는 이 단체가 체육시설을 갖추고 있어서 같은 성별(남성)의 사람들이 모여서 함께 시간을 보내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20세기 중반에는 동성애자들이 몰래 만날 수 있는 장소로 사용되었기 때문이다.
디스코 그룹 빌리지피플(Village People)의 1978년 히트곡인 "YMCA"는 바로 그 이야기를 하는 노래이고, 그룹 이름에 들어간 "빌리지"가 그리니치 빌리지다. 이 그룹 자체가 "마초 게이 판타지(macho gay-fantasy)"를 대변하는 문화적 아이콘이었다. 그룹 멤버 여섯 명 모두 남성이었고, 각 멤버는 경찰관, 군인, 카우보이 등 남성성을 드러내는 직업, 혹은 정체성을 대표하는 옷을 입고 등장한다. 이들이 모두 동성애자는 아니었고, 이성애자도, 성정체성이 밝혀지지 않은 사람도 있었다. 1970, 80년대 사람들이 모두 그들의 코드를 읽어내지는 못했지만, 성소수자들은 쉽게 알아보고 자신과 동일시했다. '자동차 회사의 젠더 다양성 마케팅'에서 이야기한 스바루 자동차의 광고에서처럼 이런 코드는 모두가 알아보지는 못하기 때문에 더 유용하다고 할 수 있다.

또 다른 속기사 여성은 자신을 테시 핑거(Tessie Finger)라고 소개했고, 그의 파트너는 자신을 리 러스트가든(Lee Lustgarden)이라고 소개했다. 속기사의 이름이 Finger(손가락)라거나, 그와 함께 사는 여성이 Lustgarden(직역하면 '욕망의 정원')이라면 실제 이름이 아닐 수 있지만 적어도 조사원인 데이비스는 그렇게 받아 적었다. 남성 파트너들도 있었는데 그중에는 형사와 경찰관이 함께 사는 집도 있었다.

이들이 함께 살면서 애정 관계로 발전했는지, 이들이 로맨틱한, 혹은 성적인 관계를 맺었는지, 아니면 단지 월세를 나눠 내기 위해 룸메이트가 된 것인지는 확인할 방법이 없다. 하지만 그들이 함께 살게 된 이유와 무관하게 그들의 파트너십(partnership)은 가정에는 '가장'이 존재해야 한다고 생각한 당시 인구조사의 기준으로는 문제가 있는 존재였고,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그들을 퀴어라고 불러도 무방하다.

퀴어(queer) 흔히 성소수자를 가리키는 표현이지만, 원래는 '이상한'이라는 의미를 가진 단어다. 따라서 저자는 사회 주류의 기준에 부합하지 않는다면 성소수자인지 여부와 무관하게 '이상한' 존재라고 볼 수 있다고 하는 것이다.

그들은 인구조사 데이터가 가정하는 경계 너머에 존재했고, 인구조사국에서 일하는 남자들이 생각하는 정상적인 가구의 모습을 벗어난 사람들이다.


'스캐터구드, 파트너 ④'에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