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캐터구드, 파트너 ④
• 댓글 남기기뉴욕 다운타운의 그리니치 빌리지에서 데이비스가 인구조사를 하는 동안 업타운(Uptown)인 브롱크스에서는 베라 모드 스미스라는 조사원이 자신이 배정된 인구조사 지구 31-1723B를 돌아다니고 있었다. 이 지역은 뉴욕에서 D, 혹은 4등급으로 표시되었고, 다음과 같은 설명이 붙어 있었다.
"한때는 1가구 주택으로 이뤄진 좋은 주거지였으나, 현재는 대부분 흑인("negro") 세입자들이 살면서 주택은 방을 월세로 내주는 공동주택으로 전환되었다. 인구 과밀화 때문에 임대는 좋은 편(Rentals are fair due to crowding)." 그런데 이 마지막 문장을 주의깊게 들여다 볼 필요가 있다. 이건 은행가의 입장에서 한 말이기 때문이다.
부동산업자들이 인종을 분리하는 정책을 사용하는 바람에 돈이 있어도 좋은 동네에 집을 사지 못하는 흑인들이 브롱크스 같은 곳으로 몰렸고, 이런 지역이 과밀화되는 바람에 임대료가 상승하니 은행이 보기에는 투자에 적절하다고 평가한 것이다. 하지만 부동산 임대업자를 제외한 다른 사람들은 은행에서 돈을 빌리기도 힘들고, 정책적으로 높아지게 된 인구 밀도를 감내해야 했다.
할렘의 파트너: M7
앞의 글에서 이야기한 그리니치 빌리지의 "파트너"들이 인구조사원의 교육자료에 등장한 예외 사항 설명에 딱 들어맞는 사람들이었다면, 맨해튼 북쪽의 할렘이나 브롱크스의 파트너들은 분류하기에 훨씬 더 까다로운 사람들이었다. 이들을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특정 지역의 파트너들은 비슷한 처지에 있지만, 파트너의 의미는 지역마다, 커뮤니티마다 다르다는 사실이다. 인구조사원의 기록에서 이를 볼 수 있다.
베라 모드 스미스 조사원이 처음으로 '파트너'라는 명칭을 사용한 사례를 보자. 이들은 스미스가 담당한 구역에서 파트너라는 꼬리표를 붙인 14쌍(28명)과 흡사한 동시에, 분명한 차이점을 갖고 있다. 할렘의 파트너들이 그리니치 빌리지의 파트너들과 다른 점은 이 지역에서 함께 사는 파트너 중 한 사람은 기혼자였다는 것이다.
스미스가 처음으로 "파트너"라고 기록한 사람은 42세의 엘리자베스 힉슨으로, 이혼한 여성이었다. 스미스 조사원은 힉슨을 인디언, 그러니까 미국 원주민을 표시하는 명칭인 "Ind"라고 기록했는데, 이는 오류로 보인다. 왜냐하면 힉슨의 어머니는 인도에서 태어났고, 아버지는 인디애나주 출신이었다. 이런 경우 미국 인구조사에서는 "Hindu"라는 분류명을 사용하게 한다. 힉슨이 함께 사는 사람은 가장(head)으로 기록된 윌리엄 로스. 45세의 핸디맨(집수리를 하는 사람)으로, 스미스가 담당한 구역에서는 보기 드문 백인이었다.
스미스 조사원은 로스라는 이 백인 남성에게 기혼자라는 의미의 "M" 기호를 부여했다. 하지만 로스는 자신과 함께 사는 힉슨의 남편이 아니었다. 인구조사 기록만으로 로스의 배우자가 누구인지는 확인이 불가능하다.
그런데 조사원이 M으로 기록한 게 끝이 아니다. 이 기록지는 후에 워싱턴 DC에 위치한 인구조사국으로 보내졌고, 그곳에서 입력을 위해 자료를 수정하던 에디터의 손을 거쳤다. 이 종이를 받아 살핀 에디터는 스미스가 로스에게 부여한 M이라는 글자에 한 줄을 긋고는 "7"이라는 숫자를 적었다.
원래 기혼자(M)에 부여되는 숫자는 2였다. (싱글은 S이고 숫자는 1이 부여된다.) 하지만 기혼이어도 별거하는 사람들은 M2가 아닌 M7으로 분류된다. M7은 이런 혼인 관계 분류에서 가장 끝에 있는 기호다. 즉 인구조사국에서 가장 주변부로 취급하는 사람들에 해당하는 거다. 이들은 비정상적이고, 통계적으로 꼼꼼하게 다시 살펴봐야 하는 사람들이었다. 할렘을 돌아다니면서 스미스 조사원이 만나 파트너로 분류한 사람들은 최소한 한 명은 이렇게 자신의 배우자가 아닌 사람과 함께 거주하는 기혼자였다. 그래서 스미스는 이들에게 계속해서 M을 부여했고, 이 기록을 살피는 인구조사국의 에디터는 (기록지에 배우자가 보이지 않으니) 전부 7이라는 숫자를 옆에 적었던 것이다.
그렇게 해서 M7이 된 사람 중에는 31세 여성 올리비아 파커도 있었다. 두 아이를 데리고 사는 파커는 제빵사였는데 스미스 조사원은 파커를 25세의 싱글 남성 올리 시먼스–흑인, 댄서–의 파트너로 기록했다. 화물하역자로 일하는 25세의 흑인 남성인 허버트 힐은 22세의 흑인 자동차 정비원 제임스 파커라는 파트너와 거주하고 있었다.
대학 교육을 2년 받고 하녀로 일하는 25세의 싱글 흑인 여성인 이네즈 리드는 역시 하녀로 일하는 프래니 도지어–흑인, 27세–의 파트너였다. 그런데 프래니 도지어는 남부인 사우스캐롤라이나주에서 뉴욕으로 온 M7이었다. 이들과 같은 동네에 사는 20대의 알린 브룩스와 머리 웨스콧 역시 사우스캐롤라이나에서 올라온 M7이었다.
이들은 미국에서 20세기 초중반에 일어난 흑인 대이동(The Great Migration) 당시 남부 농촌 지역을 떠나 뉴욕과 같은 북부 대도시로 이주해 할렘 등의 지역에 정착한 사람들이다. 이렇게 일자리를 찾아 이주하는 과정에서 많은 부부가 별거하게 되었다. 일시적인 별거로 끝난 예도 있지만, 완전히 헤어진 예도 있었다. 어떤 사람들에게는 가슴 아픈 이별이었겠고, 어떤 사람들에게는 해방이었겠지만, 인구조사 기록으로는 이 둘이 구분되지 않는다.
이렇게 "파트너"라는 호칭이 집중적으로 등장하는 곳들은 하나같이 자본이 주변부로 밀어낸 지역에 자리 잡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지역들이 하나같이 퀴어들의 동네였다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작가 조지 촌시(George Chauncey)는 그의 책 'Gay New York'에서 데이비스 조사원이 돌아다녔던 뉴욕의 그리니치 빌리지가 "외부인이 보기에는 가장 악명높은 게이 동네"로 여겨졌다고 했고, 저자 사이디야 하트먼(Saidiya Hartman)은 'Wayward Lives, Beautiful Experiments'에서 할렘이 "반항적인 흑인 여자애들, 문제를 일으키는 여성들, 그리고 급진적인 퀴어들"이 있는 곳이었다고 말한다. 이런 동네들은 임대주택들이 많았고, 집 전체가 아닌 방–가구가 포함된 방도 많았다–만 월세로 빌릴 수 있었기 때문에 독신자나 결혼하지 않은 커플들이 모여 퀴어 동네를 형성할 수 있는 조건이 만들어진 것이다. 그리고 그 결과 이런 동네의 인구조사에 파트너들이 집중적으로 나타나게 되었다.
정상적인 가구들(normal households)은 다들 비슷한 모습인 반면, 특이한(peculiar) 가구들은 그 안에서도 서로 다른 모습을 하고 있다. '파트너'는 이렇게 다양한 모습을 하고 있는 특이한 가구들을 모두 포함할 수 있는 표현이었고, 이 표현이 있었기 때문에 사회의 주변부가 인구조사 안에 들어와 기록될 수 있었다. 엄청나게 다양한 이유와 형태로 함께 사는 사람들을 모두 포함하는 '빅 텐트'였던 것이다.
그럼, 마가렛 스캐터구드는 어떤 사연을 갖고 있었을까?
마지막 편 '스캐터구드, 파트너 ⑤'에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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