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 20년 전의 일이다. 미국에서 대학원생으로 공부하던 나는 어느 날 아내와 학교 근처 찻집에 들렀다가 같은 곳에 와있던 나의 지도 교수를 우연히 만났다. 아마도 나처럼 저녁을 먹고 시내에 나온 듯했다. 내가 박사과정 프로그램에 들어가기 몇 해 전에 처음 부임한 그 교수는 상당히 젊은 편이었는데, 결혼했는지의 여부는 당연히 사생활이라 알지 못했다. 그런데 내가 아내와 함께 있는 걸 보더니 자기도 마침 자기 "파트너(partner)"와 함께 나왔다면서 서로 인사를 하게 했다. 지도교수는 여성이었고, 그 파트너는 남성이었다.

그 교수는 미국 현대 미술사를 연구하고 있었고, 현대 미술사에서도 젠더(gender)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었다. 그래서인지 수업 시간에 자기에게 "파트너가 있다"는 얘기를 잠깐 한 적이 있었는데 나를 비롯해 많은 학생이 그 교수가 레즈비언일 수 있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남성 '파트너'와 같이 있었던 거다. 흔하게 생각하면 두 사람이 결혼했으면 '남편'이라고 소개했을 텐데 굳이 파트너라고 부른 건 결혼을 하지 않고 동거하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이미지 출처: Brid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