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트너'라는 단어는 다양한 의미를 포함하는 흥미로운 꼬리표다. 같은 일을 하는 동업자라는 뜻도 있고, 로펌의 변호사들 중에도 파트너 변호사가 있다. 공범(共犯, partners in crime)을 가리킬 때도 파트너를 사용한다. 하지만 요즘은 파트너라고 하면 연인(lover)이나 배우자(companion)를 떠올린다. 퀴어나 퀴어가 아닌 사람도, 결혼했거나 하지 않은 사람도 성적으로 친밀한 관계를 장기간 지속하는 상대를 가리켜 그냥 '파트너'라 부른다.

사실 이렇게 연인을 파트너라고 부르는 게 근래 들어 새로 시작된 것도 아니다. 존 밀턴(John Milton)이 1667년에 쓴 고전 '실낙원(Paradise Lost)'을 보면 기독교 성경에 나오는 아담과 이브(하와)를 파트너로 묘사하는 대목이 있다. 아담이 이브를 가리켜 "나의 분신, 내 인생의 파트너 (My other self, the partner of life)"라고 부른다.

귀스타브 도레(Paul Gustave Doré)의 그림 (이미지 출처: UChicago Voices)

그렇다면 인구조사원이었던 그레이가 마가렛 스캐터구드에 붙인 '파트너'라는 꼬리표가 실낙원에 나오는 아담과 이브의 관계 같은 것이었을까? 그해(1940년) 미국 인구조사 결과에는 파트너로 분류된 사람들이 무려 20만 명이 되는데 그들이 모두 그런 배우자 관계에 있던 사람들일까?

'관계' 항목의 등장

1880년 이전에는 미국의 인구조사에서 스캐터구드같은 사람을 '파트너'라고 분류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한 가구에 사는 사람들이 '가장(Head)'과 어떤 관련이 있는지를 적는 '관계(Relations)'란이 처음 등장한 것이 1880년 인구조사 때였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 전에 어떻게 기록했을까?

1850년 이전에는 인구조사에 들어가는 이름은 가장의 이름뿐이었고, 나머지 식구들은 그냥 숫자로만 기록되었다. 그러다가 1850년 인구조사 때 식구의 이름을 모두 적도록 한 건 거의 혁명적인 변화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데이터를 관리하기 위한 전략이었다. 인구조사 질문지에 문항이 점점 늘어나면서 제대로 답을 적는지 관리해야 했기 때문이다.

인구조사의 질문은 꾸준히 변했어도 가장 기본이 되는 것, 즉 조사의 기본 단위가 '가정(Family)'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고 있었다. 이를 설계한 통계학자들은 조사원들에게 각 가정을 방문해서 먼저 남성 가장의 이름과 그의 아내와 자녀들을 기입한 후, 혈연관계는 아니지만 하인과 하숙인(lodger), 도제(徒弟, apprentice)처럼 그 "가정"에 포함된 사람들의 이름을 적게 했다. 그후로 가정은 '가구(Household)'로 대체되었지만, 구성원을 기재하는 원칙은 변하지 않았다. 가장 최근에 있었던 2020년 미국의 인구조사 때도 질문에 답하는 사람들은 비록 혼자 살더라도 자신을 가구 단위로 기록해야 했다. (이 부분은 한국의 일인가구 개념과 다르지 않다–옮긴이) 단, 가장(Head)이라는 표기는 사라졌다.

1880년 미국 인구조사 기록. 붉은색으로 강조한 부분이 '관계' 항목이다. (이미지 출처: Wikimedia)

그러면 한 가구 내 '관계' 꼬리표는 왜 필요했던 걸까? 무슨 이유로 이 항목이 1880년 인구조사에 등장했을까? 아마도 당시에 일어난 큰 변화와 관련이 있었을 것이다. 그즈음에 인구조사를 담당하는 통계학자들은 처음으로 조사를 계획하고–비록 의회 여당의 승인을 받아야 하기는 했지만–조사원들을 선발하는 권한을 부여받게 되었다. 그리고 이렇게 연방정부가 인구조사에 대한 통제권을 강화하는 과정에서 조사원들에 대한 관리 문제가 대두되었다. 즉, '관계'라는 항목을 질문지에 추가한 것은 그 질문에 답해야 하는 사람들뿐 아니라, 질문을 하는 사람을 염두에 두고 넣었을 거라는 얘기다. 실제로 미국 인구조사국(Census Bureau)에서 훗날 이 항목을 넣은 이유가 그거라고 밝히기도 했다.

인구조사국은 점점 더 늘어나는 질문 항목 때문에 1917년에는 '관계' 항목을 없애자는 안을 두고 투표까지 했다고 한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이를 없애지 않은 것은 조사원들이 존재하지도 않는 사람들을 만들어내어 질문지를 채우는 일이 종종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관행을 가리키는 "패딩(padding, 부풀리기)"이라는 표현까지 있었고, 조사원들이 방문해야 할 집에 들어가지 않고 길에 앉아서 질문지를 허위로 작성하는 일을 가리켜 "커브스토닝(curbstoning, 돌길에 앉기)"라고 부르기도 했다.

1910년에 있었던 인구조사 때는 유난히 허위 작성이 심했다. 특히 워싱턴주 타코마(Tacoma)시에서는 조사원들이 모의해서 존재하지도 않는 3만 명의 인구를 만들어 냈다. 이 시의 인구로 기록된 사람들의 1/4에 해당하는 숫자다. 시의 지위, 영향력을 높이기 위해 한 일이지만, 조사원들은 그렇게 부풀려주는 대가로 돈을 받아 챙겼다.

인구조사국 담당자들은 어떻게 하면 이 고질적인 문제를 없앨까 고민했고, 결국 미국 의회에 부탁해서 이렇게 허위로 보고하는 조사원들을 처벌할 수 있도록 인구조사법을 개정해달라고 했다. 또 다른 해결책이 질문의 문항을 제한하기 위해 없애려고 했던 '관계' 항목을 유지하는 것이었다. 그 항목이 있으면 인구 부풀리기를 막는 데 도움이 되기 때문이었다.

1880년대 미국 네브라스카주의 어느 가족 (이미지 출처: Reddit)

결국 '관계' 항목은 조사원들의 부정 방지용이었지만, 동시에 그 항목을 집어넣고 유지한 국가와 기관이 어떤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 보여준다. 즉, 이 데이터를 설계한 사람들은 정상적인 가족(normal family)란 것이 존재하며, 정상적인 가구와 비정상적인(abnormal) 가구를 구분할 수 있으며, (통계상 허위로 존재하는 게 아니라) 실제로 존재하는 사람들은 정상적인 가구에 속한다고 믿었다.

분명한 자리

민족주의를 연구하는 베네딕트 앤더슨(Benedict Anderson)은 "인구조사가 가진 허구는 이런 조사가 모든 사람을 기록할 수 있으며, 각 사람은 아주 분명하고 유일한 자리(place)를 갖고 있다고 믿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 "분명한 자리(clear place)"가 어디인지를 결정하는 힘은 정부가 가지고 있으며, 권력을 가진 사람들은 자신이 속하고 싶은 자리를 선택할 수 있다. 반대로, "파트너"로 기록되는 사람들은 자신이 들어갈 수 있는 "아주 분명한 자리"를 찾을 수 없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사회가 가진 틀, 규범(social norms)에 들어 맞지 않는다.

1880년 인구조사에서 조사원들이 "가정"이라는 틀 내에서 적절한 관계 명칭을 찾지 못해 파트너라는 꼬리표를 붙인 사람들은 5만 명에 달한다. 그 해 미국 인구가 약 5,000만 명이었으니, 미국 인구의 0.1%에 달하는 사람들이 "분명한 자리"를 찾지 못한 것이다.

그런 사람 중 일부는 과거 사업을 가족 중심으로 운영하던 시절의 유산으로 보인다. 가령 인구조사 기록에 따르면 건재상을 하는 헨리 콤즈와 조지 콤즈는 성이 같으니 형제였을 수 있지만. 하지만 조사원은 조지가 헨리의 "파트너"라고 기록했다. 기록을 찾아보면 실제로 당시 건재상을 하던 사람들 중에는 파트너로 표기된 경우가 제법 있다.

상업자본주의 사회에서 파트너는 꽤 유용한 개념이었다.

19세기 중국 이민 노동자들의 거주형태를 묘사한 그림 (이미지 출처: FamilySearch)

그뿐이 아니다. 당시 서부에서 미국의 산업을 일으키던 남성 노동자들은 가족과 떨어져 지내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들이 공동으로 거주할 때 '파트너'라는 명칭은 그들을 분류하기에 편리했다. 가령 네바다주의 한 조사원은 석탄 광부로 일하는 이탈리아 출신 노동자들 한 무리를 파트너로 분류해 질문지 한 장을 채웠고, 캘리포니아에서는 한 집에 모여 사는 많은 중국계 이민 남성들을 모두 파트너라고 적었다. 이탈리아 광부들과 마찬가지로 중국계 노동자들은 캘리포니아를 건설하기 바빴는데, 인구조사에 따르면 이들이 머무르는 임시 숙소는 파트너들이 함께 사는 '가구'였다.

많은 외국인 이주 노동자들이 파트너 관계로 모여 살고 있다는 사실에 겁을 먹은 백인들이 많았다. 미국인들은 이들 노동자가 미국의 핵가족과 직접적으로 경쟁 관계에 있다고 생각했다. 특히 캘리포니아에서 반중국 정서를 가진 사람들은 중국계 노동자들이 산업 발전의 원동력이 되고 있음을 보지 못했다. 그들 눈에 중국 노동자들은 동화되지 못할 사람들이었고, 그들이 미국에서 전통적인 가족관계를 만들지 못하고, 더 낮은 임금을 받고 일하려 하는 태도가 백인 노동계급의 남성이 가구 내에서 가장(head)의 역할을 하지 못하게 위협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이들을 보는 미국인들의 시각은 샌프란시스코의 한 인구 조사원이 적어 놓은 기록지를 통해 엿볼 수 있다. 그 기록에는 함께 거주하는 중국계 세탁 노동자들의 관계를 파트너로 기록하는 대신, "세탁업자(laundryman)"이라는 직업명을 직업란과 관계란에 모두 적어 넣었다. 미국 인구조사의 틀에 맞지 않는 사람들을 집어넣기 위해 새로운 '세탁업자'라는 "관계"를 만들어 낸 셈이다. 당연한 얘기지만 세탁업자는 1880년 인구조사에서 사용된 공식 관계 카테고리가 아니다.

하지만 파트너 역시 공식적인 카테고리가 아니기는 마찬가지였다.

1900년 경 샌프란시스코 차이나타운 모습 (이미지 출처: Library of Congress)

'스캐터구드, 파트너 ③'에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