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금요일, 넷플릭스가 오사카 나오미를 다룬 3부작 다큐멘터리 '오사카 나오미: 정상에 서서'를 공개했다. 나오자마자 단숨에 몰아봤다. 오터레터에서 '오사카 나오미, Full Text'와 '괜찮지 않아도 괜찮아'를 이미 읽은 독자들이라면 꼭 보고 싶을 다큐멘터리다. (혹시라도 두 글을 읽지 않았다면 다큐멘터리를 보기 전에 일독을 권한다).

우선 타이밍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오사카 선수가 지난 프랑스 오픈 때 기자회견을 거부하고 대회를 포기하면서 언론의 주목을 받고 있는 시점에 재빨리 다큐멘터리를 내놓은 넷플릭스의 타이밍에 많은 사람들이 놀랐다. 물론 지난 한 달 동안에 만든 다큐멘터리는 아니다. 이미 2019년에 촬영을 시작한 다큐멘터리다. 올해 초에 마지막 촬영이 끝났기 때문에 프랑스 오픈 때 일어난 일과 관련한 내용은 등장하지 않지만, 지난해 호주 오픈에서 패배 후 오사카가 기자회견을 하는 장면은 올해 일어난 일을 짐작할 수 있는 좋은 단서를 제공한다. 감독은 이 장면을 올해 사건을 염두에 두고 편집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나는 이 다큐멘터리가 나온다는 소식을 듣고 누가 감독을 맡았는지 궁금해졌다. 이유는 오사카 나오미가 흔히 보는 스타 플레이어들과는 조금 다른 선수이기 때문이다. 오래 생각하고 적게, 천천히 말할 뿐 아니라 사생활과 정신건강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아무나 촬영을 허락했을 것 같지 않았다. 무엇보다 그런 오사카 선수의 마음속("headspace")을 들여다볼 수 있는 감독은 찾기 쉽지 않을 것 같았다.

이 까다로운 작업을 위해 넷플릭스가 고른 감독은 개럿 브래들리Garrett Bradley다. 이 글은 나오미 오사카 다큐멘터리에 관한 것인 동시에 브래들리 감독에 관한 글이다.  

오사카 나오미의 다큐멘터리를 감독한 개럿 브래들리

주목받는 다큐멘터리 감독

개럿 브래들리는 다큐멘터리 감독들에 대해 잘 모르는 내게는 낯선 이름이었지만, 그의 필모그래피를 찾아보니 내가 이미 본 단편 다큐멘터리 두 편이 포함되어 있었고, 무엇보다 올해 아카데미상 다큐멘터리 부문 후보로 올라간 작품 '타임Time'도 브래들리의 작품이었다.

내가 가장 먼저 접했던 브래들리의 작품은 'Alone'이다. 2017년에 제작된 다큐멘터리로, 뉴욕타임즈에서 다큐멘터리를 소개하는 Op-Docs에서 2018년에 소개했다. 뉴욕타임즈의 유튜브 채널에도 올라와 있고, 10분이 조금 넘는 정도이기 때문에 쉽게 볼 수 있다.

브래들리의 'Alone.' 뉴욕타임즈에 '감옥에 있는 약혼자와 결혼을 해야 할까'라는 제목으로 공개되었다. 

제목인 얼론Alone은 '홀로'라는 의미이기도 하지만 다큐멘터리의 주인공인 흑인 여성의 이름이기도 하다. 얼론은 범죄를 저지르고 감옥에서 형을 살고 있는 남자친구와 옥중 결혼을 계획하고 있는데, 이 다큐멘터리는 이 여성의 생각과 그 계획을 들은 주위의 반응을 담은 짧은 작품이다.

브래들리는 1986년생으로, 뉴욕에서 태어나 UCLA에서 영화를 배운 30대 중반의 젊은 감독이다. 그는 한 인터뷰에서 '오사카 나오미' 이전 작품들은 모두 자신이 이미 개인적으로 알게 된 사람들을 소재로 만든 다큐멘터리라고 했다. 아직 이름값이 높지 않은 학생이나 젊은 창작자에게는 흔한 일이기는 하지만, 브래들리의 경우에는 단순한 소재 발굴의 어려움이 아닌 감독의 접근법을 말해준다고 해도 큰 과장이 아니다. 위의 작품('Alone')에서도 드러나지만, 브래들리의 다큐멘터리는 사회적 상황이나 사건을 '심층 취재'라는 방법론으로 접근하는 다큐멘터리와 달리, 카메라가 등장인물의 개인적 공간(personal space) 안에 들어가서 그의 생각을 살피는 것을 볼 수 있다.

개럿 브래들리의 이런 접근법은 역설적이지만 2018년 작품 'The Earth Is Humming'에서 두드러진다. 지진이 일상화된 일본에서 사람들이 재난에 대비하는 모습을 담은 단편 다큐멘터리는 짐작할 수 있듯 개인의 내면세계와는 거리가 있는 내용이다. 하지만 브래들리는 이런 내용을 다루면서도 멀리서 전체 상황을 찍기 보다는 재난 훈련을 하는 각 인물의 얼굴을 클로즈업으로 촬영하는 쪽을 택한다.

그리고 그 결과, 이 작품은 일본의 재난 대비 훈련이라기보다는 일본인들의 심리에 관한 다큐멘터리처럼 보인다. (참고로 이 작품은 필드오브비전Field of Vision에서 작업을 지원했기 때문에 그 웹사이트에서 무료로 볼 수 있고, 아래 유튜브 채널에서도 볼 수 있다. 필드오브비전에 관해서는 지난 6월 오터레터 '다큐멘터리 보물창고'에서 다뤘으니 다큐멘터리에 관심 있는 독자들은 꼭 한 번 읽어보시길 권한다).

필드오브비전의 지원으로 제작된 브래들리의 'The Earth Is Humming'

Time (2020)

브래들리 감독은 2017년에 'Alone'을 제작하면서 폭스 리치라는 여성을 알게 된다. 이 영상의 후반부에 등장하는 폭스 리치는 젊은 시절, 남편과 함께 운영하던 가게가 자금난으로 문을 닫게 되자 함께 은행을 털다가 붙잡힌 사람이다. 폭스 자신은 3년 반을 살고 나왔지만, 그의 남편은 무려 60년, 그것도 가석방, 조기 석방의 여지가 없는 60년 형을 선고받고 사실상의 무기징역을 살고 있다. 은행강도는 중범죄이지만 5천 달러, 우리 돈으로 5백만 원이 조금 넘는 돈을 훔쳤다는 이유로 60년을 감옥에서 보낸다는 것은 너무나 가혹한 판결이다. 이 여성은 단편인 'Alone'에서도 아주 잠깐 등장하지만, 브래들리 감독은 그의 이야기를 소재로 1시간 20분짜리 다큐멘터리를 만든다.

이 작품이 바로 올해 아카데미상 후보로 올라간 'Time'(2020)'이다. (이 작품은 현재 아마존 프라임 비디오로 볼 수 있다).

브래들리의 장편 다큐멘터리 'Time'의 예고편

미국은 전 세계에서 수감률 1위의 국가일 뿐 아니라, 수감된 사람들의 숫자로도 1위의 국가다. (중국의 경우 수감자 숫자로는 세계 2위이지만, 인구가 많아서일 뿐 수감률은 상위에 속하지 않는다). 이는 단순히 범죄를 저지르는 사람들이 많다고 생기는 숫자가 아니다. 대단하지 않은 범죄에 지나치게 긴 형량을 부여해서 생긴 일이다. 그리고 이런 가혹한 형벌 제도의 최대 피해자는 흑인 남성들이고, 특히 미국 남부지역에서는 사실상 노예제도가 교도소 노동으로 탈바꿈해서 여전히 존재한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개럿 브래들리는 이 심각한 사회문제를 일반적인 탐사 취재 형식의 다큐멘터리가 아닌, 폭스 리치의 가족에만 초점을 맞춰서 보여준다. 'Time'은 주인공 폭스가 20년 전부터 가정용 비디오카메라로 촬영한 장면들을 많이 포함했는데, 촬영하는 사람이 없을 때 주인공이 속마음을 쉽게 이야기하는 것을 본 브래들리는 이를 오사카 나오미의 다큐멘터리에도 사용했다. 특히 오사카가 정신적으로 힘든 상황에서 혼자 있고 싶어할 때는 직접 카메라를 맡겨서 직접 찍게 했는데, 이렇게 얻어진 장면은 셀카에 익숙한 요즘 시대에 꽤 적절해 보인다.

아카데미상 후보작이 된 것으로도 알 수 있지만, 브래들리의 'Time'은 볼 기회가 있다면 절대 놓치면 안되는 다큐멘터리다. 주제도 중요한 주제이지만, 개인이 겪는 심리적 고통을 단순히 울거나 힘들어하는 모습이 아니라, 시청자를 당사자의 애타는 심정에 이입시키는 방법을 통해 전달하려는 감독의 창의적인 시도가 눈길을 끈다. 예를 들어 이런 장면이다:

교도소에 들어간 지 20년이 되어가는 남편을 꺼내기 위해 변호사를 고용하고, 탄원을 하는 일이 일상이 된 폭스는 매 단계마다 법원에 전화해서 진행 과정을 확인하는데, 그때마다 법원의 직원들은 불친절하기 이를 데 없다. 언제까지 된다고 해서 전화하면 일을 처리하지 않았으니 내일 전화하라고 하고, 다시 전화하면 다음 주에 전화하라며 인간 이하의 취급을 한다. 하지만 판사의 기분에 남편의 남은 인생이 달려있으니 절대 싫은 소리를 하지 못한다. 기다리면 기다리고, 나중에 다시 전화하라고 하면 고맙다고 말하고 공손하게 끊어야 한다.

아래 스틸 컷이 그런 장면이다. 찾는 직원이 지금 다른 전화를 받고 있으니 기다리라는 말을 듣고 조용히 기다리는 장면. 그런데 이 장면에서 감독은 컷을 하지 않고 실시간으로 전부 보여준다. 나는 아무런 변화가 없는 이 장면이 길어도 너무 길게 느껴졌다. 그렇게 조바심에 답답함을 느끼다가 어느 순간, 이런 전화를 십 년 넘게 해온 주인공의 심정이 느껴졌다. 분노와 울분이 있어도 절대 표현하지 않고 조용히 기다려야 하는 상황을 이보다 더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을까?

쉴 새 없이 빠르게 정보를 쏟아내고 극적이고 충격적인 비주얼로 메시지를 전달하는 다큐멘터리도 많지만, 단순한 정보 이상의 것을 전달해야 하는 다큐멘터리도 있다. 교도소에서 나오지 못하는 흑인들의 문제는 이제 미국인들 사이에 많이 알려졌다. 그 숫자가 주는 충격도 중요하지만 결국 모든 사회적 문제는 통계가 아닌, 살아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로 전달되지 않으면 안 된다. 브래들리가 사용하는 방법이 효과적인 이유다.

무엇보다 이 부부의 이야기는 흔히 갖기 쉬운 '흑인 가족'에 대한 편견, 혹은 스테레오타입을 벗어나 있다. 고백하지만 다큐멘터리의 첫 장면에 등장하는 젊은 시절의 폭스의 말이 내게는 그저 철없고 대책 없는 흑인 여성의 공허한 다짐처럼 들렸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생이별한 남편의 사진을 확대해서 벽에 붙여두고 "내 남편은 반드시 집에 돌아와야 한다"는 말을 되뇌며 아이들을 혼자 키우는 폭스를 보면서 '세상에 이렇게 의지가 강하고 현명한 여성이 또 있을까'하는 생각으로 바뀌었다.

남편(Rob)이 집에 있어야 한다고 굳게 믿는 폭스는 남편의 사진을 카드보드지에 인쇄해서 집 안에 세워두었다. 그래서 이 다큐멘터리는 원래 'Flat Rob'이라는 제목으로 제작되었다.

이 다큐멘터리를 해피엔딩이다. 활짝 웃는 얼굴로 출옥하는 남편과 소리 지르며 남편을 환영하는 아내의 모습은 결혼하는 커플에게서도 볼 수 없을 만큼 너무나 행복한 장면이다. 아내가 남편을 위해 준비한 리무진을 타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두 사람이 참지 않고 차 안에서 섹스를 하는 장면이 등장하는데, 아주 짧은 장면이지만 단언하건대 극영화에서는 절대 볼 수 없는 최고의 섹스신, 아니 러브신이었다. (Now you really want to see this film, don't you? You should).

오사카 나오미 (2020)

오사카 나오미는 일본에서 태어났지만, 미국에서 영어를 사용하며 자랐다. 하지만 일반 학교에 다니지 않고 집에서 홈스쿨로 공부했고, 어릴 때 부터 하루 8시간씩 테니스 연습을 하며 자랐기 때문에 또래의 일반적인 미국인들과는 말하는 스타일이 많이 다르다. (가령 s 발음을 /sh/에 가깝게 해서, 가령 struggle은 shtruggle에 가깝게 발음한다). 특히 말을 천천히 하고, 마지막 단어를 말할 때 마치 질문하듯 뒷부분을 올리는 버릇이 있는데, 다큐멘터리 뒷부분에 나오미의 어머니 타마키 오사카가 말하는 대목에서 그 비밀이 풀린다. 어머니의 목소리와 나오미의 말소리는 구분이 어려울 만큼 똑같다. (어느 기자의 표현을 빌면 "uncanny resemblance"다). 오사카의 특이한 성장 환경을 짐작하게 해주는 대목.

언론에서 오사카 나오미에 대해 묘사할 때 자주 등장하는 표현이 "soft-spoken"이다. 목소리를 높이지 않고 조용조용 말하는 태도는 요즘, 특히 자신의 주장을 강하게 드러내는 것을 미덕으로 생각하는 미국 문화에서는 쉽게 보기 힘들다. 이런 오사카 나오미를 개럿 브래들리 만큼 잘 들여다 볼 수 있는 감독이 또 있을까 싶다. 같은 흑인/유색인종의 여성이어서만이 아니라, 피사체의 친밀한 공간에 '침입'하지 않고 들어가서 내면세계를 묘사해내는 능력 때문이다.

자신에게 패한 15세의 코코 가우프와 이야기하는 장면은 오사카 나오미의 성격을 잘 보여준다. 이 장면에서 눈물이 나지 않는 관객이 있을까?

브래들리 감독은 '오사카 나오미'가 넷플릭스 같은 대형 스튜디오와 함께 작업한 첫 작품일 뿐 아니라, 스포츠 다큐멘터리로서도 첫 작품이었다. 스포츠 다큐멘터리로서의 긴장감과 구성도 잘 갖추고 있지만 (이 정도면 스포츠팬들도 절대 실망하지 않을 수준이다) 그러면서도 브래들리 특유의 시선을 잃지 않는다. 세계 랭킹 2위, 수익 1위의 스포츠 스타를 다루면서도 오사카가 왜 다른 스타들과 다른지를 잘 찾아내어 보여준다. 특히 첫 번째 에피소드에 등장하는 오사카와 당시 15세였던 코코 가우프와의 대결과 이긴 후에 오사카가 보여준 모습은 오사카에 대해서 들어본 적이 없던 사람들도 단번에 팬으로 만들 만큼 감동적이다. (프랑스 오픈 때 오사카의 발언과도 관련이 있는 장면이다).

오사카 나오미가 다른 선수들과 다르게 느껴지는 이유에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가장 눈에 띄는 건 (다른 선수들과 공감대를 형성할 때와 달리) 때때로 무뚝뚝해 보일 만큼 무표정으로 입을 다물고 있는 모습이 아닐까 싶다. 오사카는 "나는 모든 사람을 기쁘게 할 수 없다는 걸 알았다"고 하고 그가 솔직하게 말하는 것을 들어보면 정말 그렇게 보이지만, 오사카와 함께 지내다시피 하는 마사지사는 "오사카는 모든 사람에게 친절하다"고 단언한다. 이 두 발언은 과연 상호모순적일까?

오사카와 오래 작업한 개럿 브래들리는 인터뷰에서 "(오사카 선수가) 말수가 적을 수는 있어도, 입을 열 때는 정말 의미 있는 말을 한다"고 했는데, 여기에 답이 있는 것 같다. 현대문화, 특히 미국 문화에서는 미소를 짓는 것이 친절함, 혹은 따뜻함과 동일시된다. 누구나 뒤에서는, 혹은 속으로는 다르게 생각하고 미워할 것을 알기 때문에 면전에서 따뜻한 미소를 보이는 것으로 따뜻함을 대신한다. 오사카 나오미는 겉으로는 무뚝뚝하지만 사실 알고 보면 진짜로 상대방에 대한 정이 넘치는 시골 할머니 같은 느낌을 준다. (나오미의 어머니가 자신은 일본의 지방 소도시에서 자랐다고 하는 대목이 있다).

오해를 피하려고 서둘러 상대방이 듣고 싶은 답을 해야 하는 문화에서 표정 없는 얼굴로 천천히 입을 열고, 말끝마다 "Maybe?"라는 투로 자신감 대신 솔직함을 택하는 오사카 나오미는 분명 특이한 존재다. 이런 오사카의 내면을 보여주기 위해 개럿 브래들리를 고른 넷플릭스의 안목을 보면서 왜 넷플릭스가 성공했는지 다시 한번 확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