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스포츠 언론에 크게 보도된 대로 세계 여자 테니스 랭킹 2위의 오사카 나오미가 올해 프랑스 오픈(5/24-6/13)에 참가를 포기했다. 작게 보면 유명 테니스 선수 하나가 일으킨 작은 파문에 불과할 수 있지만, 이 문제는 선수의 정신건강, 특히 현대 사회에서 젊은 여성이 겪고 있는 정신적인 문제를 잘 보여준다는 점에서 큰 관심을 끌고 있다.

발단은 이렇다. 대회가 시작된 직후인 26일, 오사카는 자신의 소셜미디어 계정을 통해 프랑스 오픈 대회 중에 기자회견을 하지 않겠다는 사실을 밝혔다. 그런데 그랜드 슬램(호주 오픈, 프랑스 오픈, 영국 윔블던, US 오픈)의 주최 측은 대회에 참가한 선수들은 반드시 기자회견에 임해야 한다는 규정(미디어 계약)이 있다며 이를 어기고 나타나지 않았기 때문에 1만 5천 달러(약 1천 6백 만원)의 벌금을 부과했다. 그리고 규정 위반이 반복될 경우 프랑스 오픈에서 실격될 수 있고, 다른 그랜드 슬램 경기에도 불참시킬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 발표가 나온 후 오사카는 다시 소셜미디어를 통해 아예 프랑스 오픈을 기권하고 잠시 테니스 코트에서 벗어나 있겠다는 발표를 한 것이다.

대부분의 언론은 이렇게 사건의 전개 과정만을 짧게 보도하고 있기 때문에 오사카 나오미라는 23세의 여성이 하고 싶었던 말이 잘 전달되지 않는다. 따라서 오사카의 트윗 전문(오사카는 긴 내용이라 트윗에 쓰는 대신 텍스트를 사진으로 찍어 올렸다)을 번역, 소개한다. 먼저 26일에 올린 기자회견을 거부하는 트윗:

여러분 모두 잘 지내고 계시죠? 저는 이번 롤랑가로스(프랑스 오픈의 공식 명칭) 동안에 기자회견을 하지 않을 것임을 말씀드리기 위해 이 글을 씁니다. 저는 사람들이 운동선수의 정신건강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특히 기자회견을 보거나 제가 기자회견에 참여해보면 그렇습니다. 저희보고 앞에 앉으라고 해놓고 전에 여러 번 대답했던 질문을 받거나, 저 자신(의 능력)을 의심하게 만드는 질문을 받습니다. 저는 다른 사람들이 제가 저 자신을 의심하게 만들도록 저를 던져두지 않겠습니다. Hope you're all doing well, I'm writing this to say I'm not going to do any press during Roland Garros. I've often felt that people have no regard for athletes mental health and this rings very true whenever I see a press conference or partake in one. We're often sat there and asked questions that we've been asked multiple times before or asked questions that bring doubt into our minds and I'm just not going to subject myself to people that doubt me.
저는 운동선수들이 패배한 후 기자회견장에서 울음을 터뜨리는 영상을 많이 봤습니다. 여러분도 많이 보셨을 겁니다. 저는 그게 쓰러진 사람을 계속 걷어차는 행위라고 생각하는데, 그걸 정당화할 수 있는 근거가 뭔지 모르겠습니다. 제가 기자회견을 하지 않겠다는 것은 대회 측에 개인적인 감정이 있어서가 아닙니다. 제가 어린 시절부터 저를 인터뷰해온 몇몇 기자분들은 아시겠지만 저는 대부분의 기자와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I've watched many clips of athletes breaking down after a loss in the press room and I know you have as well. I believe that whole situation is kicking a person while they're down and I don't understand the reasoning behind it. Me not doing press is nothing personal to the tournament and a couple journalists have interviewed me since I was young so I have a friendly relationship with most of them.
하지만 대회를 주최하는 쪽에서 계속해서 "기자회견을 하라. 하지 않으면 벌금을 내야 한다"고 말하면서 결국 그 단체가 하는 일의 중심에 있는 운동선수들의 정신건강을 무시하겠다면, 저는 그저 웃겠습니다. 아무튼 저는 제가 벌금으로 내게 된 큰 액수가 정신건강을 다루는 단체에 기부되었으면 합니다. 허그와 키스를 보내며 ✌🏾❤️  However, if the organizations think that they can just keep saying, "do press or you're gonna be fined," and continue to ignore the mental health of the athletes that are the centerpiece of their cooperation then I just gotta laugh. Anyways, I hope the considerable amount that I get fined for this will go towards a mental health charity. xoxo ✌🏾❤️

오사카 나오미는 정치적인 의사 표현도 거침없이 하는 선수다. 백인 관중이 많은 테니스 경기에도 BLM(Black Lives Matter)에 대한 지지를 밝히며 (백인 경찰에 살해당한) 조지 플로이드의 이름이 적힌 검은 마스크를 하고 나오고, "조지플로이드에게 정의를" "침묵이 배신일 때가 있다"는 트윗을 한다. 트윗 끝에 그가 V자를 그린 손가락도 짙은 피부색을 사용하는데, 2년 전 자신을 후원하는 일본의 라면 회사가 자신의 피부를 밝게 표현한 '화이트 워싱' 반발해 자신이 흑인임을 분명히 하기도 했다.

그런 적극적인 의사 표현을 하는 것을 아는 사람들은 오사카 선수가 기자회견을 힘들어한다는 사실을 언뜻 이해하지 못한다. 오사카의 두 번째 트윗, 그러니까 프랑스 오픈의 경고가 나온 후 대회 전체를 포기하겠다는 트윗을 보면 어느 정도 이해를 할 수 있을 거다. 하지만 그 트윗을 읽기 전에 먼저 아래의 영상을 먼저 보자. 지난 2월에 열린 호주 오픈에 우승한 후에 있었던 기자회견 장면이다. 회견 내내 나오미 오사카는 아주 침착하고 차분하게 대답하기 때문에 그가 몹시 긴장하고 있다는 걸 눈치채기 쉽지 않다. 아니, 우승한 선수처럼 보이지도 않는다.

하지만 14:59 지점에서 사회자가 "다음 질문은 뉴욕타임즈의 벤 로센버그 기자입니다"라고 하자 오사카는 "Uh oh"라고 당황(한 척)한다. 아마 잘 아는 기자여서 친근한 감정을 재미있게 표현했을 수도 있고, 아니면 평소에 어려운 질문을 던지는 기자여서 그랬을 수도 있다. 어느 쪽이 사실인지는 모른다. 그렇지만 그가 던지는 질문과 그에 대한 대답은 오사카 나오미가 평소에 가져온 고민과 정신적인 어려움을 살짝 보여준다:

뉴욕타임즈 기자는 오사카에게 "당신을 지켜보는 어린 팬들이 많이 있는데, 당신은 그 사실이 어떤 책임, 혹은 롤모델이 되는 기회로 생각하느냐"라고 묻는다. 대부분 "롤모델이 되기 위해 노력하겠다" 정도로 쉽게 대답하고 넘어갈 만한 질문에 오사카는 놀랄만큼 진심을 다해서 대답한다. 고민의 흔적이 들어있는 답이다.

"예전에만해도 나는 그걸 중대한 책임으로 생각했다. 그래서 항상 겁이 났고 긴장했다. 내가 코트에서 하는 (라켓으로 바닥을 내리치는 등의) 행동이 어린 팬들에게 나쁜 롤모델로 보여서 언론으로부터 나쁜 말을 들을까 봐 걱정했다. 하지만 해가 지나면서 내가 할 수 있는 건 내 자신에게 솔직하는 것(be myself)뿐이라는 걸 깨닫게 되었다. 내가 아니라도 아이들이 롤모델로 삼을 선수들은 얼마든지 있다. 나는 나 자신도 아직 자라고 있기 때문에 나 스스로에게 그걸로 부담을 주고 싶지 않다. 바라기는 그 아이들도 나와 함께 성장했으면 한다."

내향적인 성격의 20대 초반의 여성이 갑자기 전 세계적인 주목을 받게 되고, 경기를 잘하라는 부담에 더해서 "롤모델이 되어라" "그렇게 행동하면 아이들이 보고 뭘 배우겠느냐"는 말을 늘상 기자들에게서 듣는다면 어떤 기분일까? 그게 지난 31일에 오사카가 프랑스 오픈을 기권하면서 날린 트윗에 잘 드러난다. 전문을 번역하면 이렇다:

여러분 안녕하세요. 며칠 전에 글을 올렸을 때만 해도 상상하지 못했던, 혹은 의도하지 않았던 상황이 되었습니다. 저는 제가 파리 오픈에 출전하지 않고, 다른 사람들 경기에 집중하도록 하는 것이 대회에, 다른 선수들에게, 그리고 제 건강(well-being)에 가장 좋은 결정일 것 같습니다. Hey everyone, this isn’t a situation I ever imagined or intended when I posted a few days ago. I think now the best thing for the tournament, the other players and my well-being is that I withdraw so that everyone can get back to focusing on the tennis going on in Paris.
저는 불필요한 관심을 끌고 싶은 마음이 절대 없었습니다. 이 타이밍이 그다지 좋지 않은 것, 그리고 제 메시지가 좀 더 분명했어야 한다는 것을 인정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저는 정신건강을 대수롭지 않게 취급하거나 정신건강이란 단어를 가볍게 사용하지 않습니다. I never wanted to be a distraction and I accept that my timing was not ideal and my message could have been clearer. More importantly I would never trivialise mental health or use the term lightly.
사실을 말씀드리면, 저는 2018년 US 오픈 대회 이후 우울증을 앓았고, 이를 극복하지 못해 큰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저를 아는 사람들은 제가 내향적인(introverted) 성격인 걸 알고 있습니다. 제가 대회가 있을 때마다 헤드폰을 끼고 있는 것을 보신 분들이 많을 텐데요, 저는 사람들 앞에 있을 때 제가 느끼는 불안을 누그러뜨리려 헤드폰을 사용하는 겁니다. The truth is that I have suffered long bouts of depression since the US Open in 2018 and I have had a really hard time coping with that. Anyone that knows me knows I’m introverted, and anyone that has seen me at the tournaments will notice that I’m often wearing headphones as that helps dull my social anxiety.
테니스를 취재하는 언론이 항상 제게 따뜻하게 대해주셨음에도 불구하고 (저 때문에 상처를 받았을 좋은 기자분들께 특별히 사과의 말씀을 드립니다) 저는 사람들 앞에서 말을 잘하는 성격이 아니고, 전 세계에서 온 언론 기자들에게 이야기해야 할 때는 엄청난 불안감이 몰려옵니다. 그럴 때면 저는 몹시 긴장하고, 인터뷰에 집중해서 최선의 답을 드려야 한다는 사실에 스트레스를 받습니다. Though the tennis press has always been kind to me (and I wanna apologize especially to all the cool journalists who I may have hurt), I am not a natural public speaker and get huge waves of anxiety before I speak to the world’s media. I get really nervous and find it stressful to always try to engage and give you the best answers I can.
그런 이유로 저는 이곳 파리에 머물면서 정신적으로 취약한 상태에 있었고 불안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언론인터뷰를 하지 말고 저 자신을 돌보는 것이 좋겠다고 판단했습니다. 제가 미리 말씀드린 것은 (인터뷰를 반드시 해야 한다는) 룰이 부분적으로 너무 시대에 뒤떨어져 있다고 생각했고, 그 사실을 강조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대회 측에 따로 연락해서 사과드리면서 그랜드슬램 대회가 워낙 부담이 크니 대회 후에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고 말씀드렸습니다. So here in Paris I was already feeling vulnerable and anxious so I thought it was better to exercise self-care and skip the press conferences. I announced it preemptively because I do feel like the rules are quite outdated in parts and I wanted to highlight that. I wrote privately to the tournament apologizing and saying that I would be more than happy to speak with them after the tournament as the Slams are intense.
이제 저는 코트에서 잠시 떠나있으려 합니다만, 적절한 때가 되면 저는 대회(Tour) 측과 함께 논의해서 선수와 기자단, 그리고 팬들에게 모두 좋은 방법을 찾고 싶습니다. 여러분 모두 건강하고 안전하게 지내시기 바랍니다. 사랑해요, 여러분. 나중에 뵐게요. I’m gonna take some time away from the court now, but when the time is right I really want to work with the Tour to discuss ways we can make things better for the players, press and fans. Anyways hope you are all doing well and staying safe, love you guys I’ll see you when I see you.

오사카 선수가 겪는 일은 남자선수들도 겪는다. 가령 앤디 로딕이 호주 오픈에서 패한 후 기자들의 성의 없고 사나운 질문에 대답하는 장면을 보면 선수들이 어떤 일을 겪는지 쉽게 알 수 있다. 기자들은 패한 선수에게 질문으로서 가치가 없지만, 선수를 괴롭히는 질문을 던져 울거나 감정이 격해지는 모습을 찍거나, 자신들이 이미 써놓은 기사에 맞춰 인용을 따내기 위해 의미도 없는 질문을 던진다.

하지만 여자선수들, 특히 윌리엄스 자매나 오사카 나오미 같은 유색인종 선수들에게는 더욱더 무겁게 다가온다고 한다. 그들이 마치 인종을 대표하거나, 여성을 대표하는 듯 취급하기 때문이다. 앞서 소개한 뉴욕타임즈 기자의 질문이 좋은 예다.

하지만 오사카 나오미가 기자회견에 다시 나오는 대신 아예 대회를 기권하자 많은 사람, 특히 운동선수들이 오사카의 결정을 응원했다. NBA의 스테판 커리는 오사카의 트윗을 리트윗하면서 격려와 응원을 보냈고, 오사카 경쟁자인 비너스 윌리엄스는 기자들의 사나운 공격을 두고 "나는 내게 질문을 던지는 사람들이 나만큼 테니스를 잘하지 못하고 영원히 그럴 것을 알기 때문에 아무도 나를 건드리지 못하지만" "사람들은 (기자회견의 스트레스를) 다르게 받아들인다"고 말했다. 오사카의 결정을 존중하라는 것이다.

오사카의 기권으로 테니스계는 고민에 빠졌다. 테니스계는 기자회견이 중요한 PR의 일부이고, 그런 PR 때문에 그랜드 슬램이 세계적인 인기를 유지한다고 믿는다. 따라서 한 선수가 반기를 든 것을 두고 이제까지 지켜오던 룰을 바꿀 수는 없다. 하지만 기자회견을 거부한다는 이유로 랭킹 2위의 선수를 출전시키지 않는다는 것도 지나치게 가혹하고 팬들에게 설득력이 없다. 특히 테니스 팬들이 오사카 나오미의 편을 들고 응원할 때는 말이다. "선수는 경기로 말한다. 팬들은 경기에 관심이 있을 뿐"이라는 것이 일반적인 의견이다.

특히 최근 골든글로브의 몰락에서 보듯, 사람들은 기자들이 스스로 하나의 권력이 되어 시청자들과 상관없이 스타들을 재단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고 등을 돌리기 시작했다. 나오미 오사카의 인터뷰 거부와 그에 따른 징계에서 팬들이 보는 것은 언론의 권력이다. (이번 일에서 그런 온도 변화를 느낀 언론에서도 지금의 기자회견 방식의 문제를 지적하고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그리고 더 중요한 정신건강, 특히 20대 여성들의 정신건강 문제가 있다. 팬데믹 이후로 20대 여성들의 자살이 급증하면서 "조용한 학살"이라는 말이 나오고 있지만, 근래 들어 (팬데믹 이전에도) 16세에서 24세 사이의 여성들(오사카는 23세다)은 정신질환의 "고위험군"이라고 분류할 만큼 현대 사회에서 젊은 여성의 정신건강은 큰 사회적 문제로 다뤄야 한다는 경고가 나온 지 오래다.

밀레니얼 여성들의 시각을 잘 대변해온 리파이너리29에서는 이 문제를 좀 더 확장해서 오사카 나오미의 결정은 2021년의 사회가 변화하고 있는 모습을 보여준다고 이야기한다. 점점 더 많은 사람이 과거처럼 "일할 때는 죽기 살기로 노력해야 한다"는 사고방식을 걷어차고 워라밸을 허락하지 않는 직장을 나와버린다는 것이다. 오사카 나오미의 결정은 자신의 직업이 정신건강을 위협한다면 차라리 직업을 포기하겠다는 선언이다. 2021년을 사는 사람들은 인생에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새롭게 정의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