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리티코(Politico)에서 2024년 미국 대선에 관한 흥미로운 전망이 나왔다. 잘 아는 것처럼 내년 미국 대선은 조 바이든 대통령이 재선을 노리는 해이고, 2020년 선거에서 패배한–그러나 자기는 승리를 뺏긴 거라고 주장하는–도널드 트럼프가 출마를 선언한 선거. 현재 트럼프는 공화당 내에서 압도적인 선두를 달리고 있기 때문에 이변이 없는 한 공화당 후보가 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따라서 현재 추세라면 바이든과 트럼프의 재격돌을 피할 수 없는 상황이다. 오터레터의 글(트럼프는 출마를 포기할까)에서도 이야기했지만, 바이든이 승리할 가능성이 크다. 흥미로운 건 그 방법이다. 폴리티코의 기사에서 설명한 바에 따르면–하지만 이건 폴리티코만의 전망은 아니다–2016년, 2020년 대선에서 트럼프가 가져간 주들을 바이든이 가져오게 되는데, 이 과정에서 지난해 연방 대법원이 여성의 임신 중지 권리(로 대 웨이드 판결)를 부정한 충격적인 결정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

선을 넘은 대법원 ① 토머스의 별개의견
로 대 웨이드 판결을 뒤집는 결정은 보수의 총공격이 임신중지 문제에만 국한되지 않을 것임을 암시하고 있다.

오하이오에서 일어난 일

폴리티코가 이런 전망을 하게 된 계기는 지난주에 있었던 오하이오주의 주민투표 결과 때문이다. 오하이오는 공화당이 의회를 장악한 주일 뿐 아니라, 유난히 요란한 트럼프 지지자들이 많은 주로 알려져 있다. 그런 오하이오주에서는 현재 여성의 임신 중지와 관련한 격렬한 싸움이 진행 중이다. 약간 복잡해 보일 수 있는 문제이지만 간략하게 설명하면 이렇다:

1. 2022년에 연방 대법원에서 내린 판결은 여성의 임신 중지(낙태) 권리는 연방 헌법이 보장하지 않으니  각 주에서 법대로 결정하라는 판결이었다. 이 판결이 나오자 공화당이 우세한 많은 주에서는 임신 중지를 금지하는 법안을 재빨리 통과시켰고, 오하이오주도 그중 하나였다.
2. 하지만 오하이오주의 유권자들은 오하이오주의 새로운 법(낙태금지법)이 오하이오주의 헌법(연방 헌법과는 다르다)에 위배된다며 소송을 제기했고, 이 소송이 진행중인 동안에는 오하이오주가 여성의 임신 중지를 금지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
3. 이렇게 여성의 권리 침해를 소송으로 잠시 저지하는 동안, 오하이오주 유권자들은 여성의 임신 중지 권리를 보장하는 내용을 아예 오하이오주 헌법에 넣기로 했다. 공화당 의원들이 여성의 권리를 빼앗는 짓을 하기 힘들게 만들려는 거다. 이 개헌안은 오는 11월에 찬반 투표에 들어간다.
4. 그러자 공화당 의원들은 이런 개헌을 사전에 저지하려 했다. 개헌의 문턱을 높이기 위해 헌법 개정안의 가결 정족수를 60%로 끌어올리는 개헌안을 발의해서 주민투표에 부친 것이다. 그게 지난 주에 있었던 주민투표였다.

결과는? 공화당의 꼼수에 유권자들이 쐐기를 박았다. 그런 꼼수 개헌은 안 되고, 원래 예정된 것처럼 여성에게 임신 중지의 권리를 오하이오주의 헌법이 보장해야 하는지를 11월에 공정하게 투표하자는 것이다. 특히 유난히 더운 날씨에도 높은 투표 참여율을 보이면서, 이 문제가 여성과 진보 유권자들을 끌어내는 중요한 이슈임을 보여주었다.

생각을 바꾼 바이든

원래 바이든의 2024년 선거 전략은 2020년의 선거 전략과 다르지 않았다. 러스트벨트(Rust Belt, "녹슨 지역." 미국의 오대호 주변 제조업 공업지대였다가 쇠락한 지역으로, 펜실베이니아주, 오하이오주, 미시건주, 위스컨신주, 일리노이주, 인디애나주, 웨스트버지니아주, 그리고 뉴욕주 북부 등이 포함된다)에 해당하면서 전통적으로 민주당을 지지해 온 "블루월(Blue Wall)"을 지켜내고, 2020년에 격전을 벌인 애리조나와 조지아에서 다시 한번 격전을 벌인다는 것이다.

참고로, 아래 2020년 대선 결과 지도에서 바이든이 빼앗아 온 지역(별표 다섯 개) 중 북부에 있는 세 주(위스컨신, 미시건, 펜실베이니아)가 민주당이 반드시 지켜야 하는 러스트벨트/블루월이고, 남부에 있는 두 지역(애리조나, 조지아)이 "가져오면 좋을" 주에 해당한다.

2020년 선거 결과에서 별표를 한 곳이 힐러리 클린턴이 빼앗겼다가 바이든이 되찾아온 주이다. 왼쪽부터 애리조나, 위스컨신, 미시건, 조지아, 펜실베이니아 (이미지 출처: Wikipedia)

하지만 바이든의 선거운동본부는 생각을 바꾸고 있다. 예를 들어 노스캐롤라이나주를 보자. 미국 남동부에 있는 노스캐롤라이나(위의 지도에서 동쪽 끝에 선거인단 수가 "15"로 표시된 주)는 2016년, 2020년 모두 트럼프가 승리한 주이지만, 2020년 선거에서 트럼프는 1% 차이로 이 주를 손에 넣었다. 그런데 이 주에서 12주 이후 임신 중지가 금지되는 법이 제정된 이후로 여성 유권자들이 분노하고 있기 때문에 그때보다 민주당에 더 유리한 상황이 만들어졌다. 따라서 바이든의 선거 참모들은 노스캐롤라이나도 싸워볼 만한 주로 넣었다.

그런 상황에서 위에서 설명한 상황이 오하이오주에서 벌어진 것이다. 오하이오주는 러스트벨트이지만 워낙 굳건한 "트럼프의 땅(Trump country)"으로 알려진 곳이라 엄두도 내기 힘든 곳이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오하이오의 여성 유권자들이 분노한 상황인데 민주당이 오하이오주가 이번에도 트럼프에게 넘어갈 거라 단정할 수 없다고 말한다.

바이든이 오하이오를 가져오는 꿈이 정말로 이뤄질까?

'힐빌리의 노래'로 유명한 저자 J.D. 밴스는 트럼프의 물결을 타고 오하이오에서 연방 상원에 당선되었다. (이미지 출처: Ohio Capital Journal)

폴리티코는 2020년에 바이든이 가져온 조지아주와 애리조나주도 당시에는 사람들이 어림없는 일이라고 했었지만, 바이든의 선거 참모들은 가능하다고 판단했다는 사실을 일깨운다. 2020년 선거에서 바이든이 이기는 가장 손쉬운 방법은 힐러리 클린턴이 잃었던 러스트벨트의 블루월(위스컨신, 미시건, 펜실베이니아)을 되찾아 오는 것이었다. 2016년에 민주당이 당연히 이길 거라 생각했다가 빼앗겼던 곳이라 이 세 곳에 선거운동 역량을 집중해서 찾아오면 이길 수 있었지만, 바이든 참모들은 애리조나와 조지아까지 공략하는 확장 전략을 사용했고, 성공했다. 그리고 이번에는 그때의 전략을 더욱 확장해서 2024년에는 트럼프의 심장인 오하이오와 플로리다까지 노리고 있다.

물론, 이건 아주 큰 꿈이고 실현되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오하이오와 플로리다는 버락 오바마가 2008, 2012년 대선에서 모두 손에 넣은 주이지만, 2016년 이후로 트럼프의 유전자가 깊숙하게 침투하면서 트럼프의 아성이 된 지역이라서 그렇다.

참고로, 다른 공화당 우세주도 많은데 굳이 이 두 곳을 이야기하는 이유는 오하이오와 플로리다의 대통령 선거인단의 수를 합하면 47명이기 때문이다. 전국에서 270명을 확보하면 승리하는 미국 대선에서 47명은 판을 바꾸는 엄청난 숫자다. 캘리포니아주(55명), 텍사스주(38명), 뉴욕주(29명)도 크지만, 민주당과 공화당 지지가 변할 가능성이 없는 곳이라 선거 전략상 중요하지는 않다.

바이든의 선거운동본부는 러스트벨트의 3개 주에 더해 흔히 선벨트(Sun Belt)라 불리는 미국 남부 지역에서 조지아주와 애리조나주, 그리고 네바다주까지를 공략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단순한 바이든 재선 승리를 넘어, 아예 "거대한 푸른 물결"의 꿈을 갖게 만든 것은 작년에 대법원이 무효로 한 '로 대 웨이드' 판결이다. 절대로 움직이지 않을 것 같은 굳은 땅에 반세기 동안 여성들이 누리던 권리를 빼앗는 폭탄을 터뜨리자 흔들림이 감지된 것이다.  

미국 남부의 '선벨트' (이미지 출처: World Atlas)

안심할 수 없는 블루월

전선을 트럼프의 땅으로 확장하는 이유 중 하나는 러스트벨트의 블루월이 안심할 수 있을 만큼 튼튼하지 않다는 바이든 측의 우려다. 2016년에 민주당이 펜실베이니아주, 미시건주, 위스컨신주를 트럼프에 뺏긴 것은 단지 힐러리 클린턴이 약해서만이 아니다. 가령 민주당에서는 펜실베이니아주의 인구 변화를 보면 10년 전 오하이오주에서 일어난 것과 비슷한 변화를 겪으면서 점점 공화당 지지로 넘어가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현재로서는 바이든의 선거 참모들이 미시건주는 지킬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펜실베이니아주는 장담하기는 힘들다고 보고 있고, 위스컨신주은 더욱 더 치열할 것으로 본다. 박빙 가능성으로 보면 그 뒤를 조지아주와 네바다주가 따르고 있다. 다만, 조지아주의 경우 트럼프가 이곳에서 선거 결과 조작에 개입한 혐의로 기소될 예정이기 때문에 민주당이 넘볼 수 있는 것이고, 만약 트럼프가 아닌 다른 후보가 공화당 티켓으로 나온다면 조지아는 공화당이 가져갈 것이라는 예상도 있다. 블루월 수성을 넘어 트럼프의 땅까지 공략하는 푸른 물결의 전략이기도 하지만, 어떻게 보면 블루월을 지킨다는 보장이 없기 때문에 선택하는 보험이기도 하다.

민주당의 한 선거 전문가는 2024년의 대통령 선거는 "미국 선거 역사상 가장 작은 지도"를 놓고 벌이는 싸움이 될 것으로 전망했다. 트럼프와 바이든이라는 소수의 후보가 부족주의(tribalism)으로 전락한 미국 정치판에서 대결하기 때문에 몇 개의 주에서 결판이 난다는 얘기다. 하지만 이런 "작은 지도"를 넓게 확장하게 될 유일한 이슈가 바로 여성의 임신 중지라는 게 폴리티코의 설명이다. 어느 주에서나 여성은 유권자의 절반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