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초, 임신 중지의 권리가 여성에게 있다고 했던 1973년의 '로 대 웨이드(Roe v. Wade)' 판결을 뒤집기로 하는 결정을 담은 연방 대법원의 판결문 초안이 유출되었을 때 ('범인은 누구인가') 사람들은 대법원이 최종 결정을 내렸다고 생각했다. 이미 아홉 명의 대법관들 사이에 표결이 이뤄지고 이를 다수의견을 가진 법관 중 한 명이 초안까지 작성했는데 결론이 바뀔 가능성은 없기 때문이다. "이제 발표만 남았다"는 게 당시의 예상이었고, 발표는 6월 중에 이뤄질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전망이었다. 그 발표가 지난 금요일(24일)에 나왔다. 거의 모든 게 예상했던 대로, 우려했던 대로 일어났다.

예상과 우려는 다를 수 있다. 로 대 웨이드 판결이 뒤집힐 수 있다는 '우려'는 꾸준히 존재해왔다. 로 대 웨이드를 뒤집기 위한 보수세력의 공격은 치밀하게, 그리고 쉬지 않고 진행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많은 우려들이 현실화하지 않았다. 가령 1992년에는 '플랜드페런트후드 대 케이시 사건'으로 로 대 웨이드를 뒤집으려고 했지만 대법원은 여성의 선택권 쪽 손을 들어주었다. 그렇게 49년을 버텨왔다.

그러나 "로 대 웨이드 판결을 뒤집을 대법관을 임명하겠다"라고 약속한 도널드 트럼프가 대통령에 당선되면서 그 우려는 더욱 커졌고, 트럼프가 공약대로 세 명의 판사를 대법원에 밀어넣는 데 성공하자 그 우려는 "로 대 웨이드 판결은 결국 뒤집힐 것"이라는 예상의 영역으로 넘어가기 시작했다. 그래도 대다수의 사람들은 아무리 트럼프가 임명한 대법관들이라고 해도 정말로 50년 가까이 지켜져 온 권리를 빼앗는 결정을 내릴 거라고 믿기 힘들어했지만, 이 권리를 지키기 위해 최전방에서 싸워온 사람들은 그게 단순한 우려가 아님을 알았다. 그들은 보수진영이 얼마나 오랫동안 치밀하게 준비해왔는지 잘 알고 있었다.

그런데 금요일에 대법원이 발표한 내용을 보면서 사람들은 또 다른 우려가 현실화될 수 있음을 감지했다.

토머스 대법관의 별개의견

이번에 대법원이 심의한 내용은 임신 15주 이후에 임신 중지를 하는 것을 금지한 미시시피의 주법이 위헌이냐, 아니냐였다. 이를 두고 진보 성향의 대법관 3명을 제외한 6명이 위헌이 아니라고 판단한 것이다. 존 로버츠 대법원장은 기존의 판례, 즉 로 대 웨이드 판례를 뒤집는 것에는 찬성하지 않았지만 그 판결이 위헌이라는 데에는 동의했다. 물론 연방 대법원이 이를 불법화한 것이 아니다. 대법원이 특정 권리가 헌법에 근거한 권리가 아니라고 판단할 경우 각 주가 자신들의 법에 따라 사안을 결정하게 되는데, 그렇게 할 경우 같은 미국에 사는 여성이라고 해도 보수가 장악한 지역(많게는 26개 주)에서는 임신 중지를 권리로 인정받지 못하고, 처벌의 대상이 될 수 있다. 이번 대법원 판결의 의미가 그거다.

여기에서 잠깐, 판결문 초안이 유출되었던 5월 초로 돌아가 보자. 보수 대법관인 새뮤얼 알리토가 작성한 판결문을 읽어본 전문가들은 "이 견해가 받아들여진다면 여성의 임시중지권뿐 아니라, 동성 간의 성관계, 심지어 피임약/기구를 사용하는 것도 불법화될 가능성이 있다"라고 우려했다. 이게 무슨 말일까? 미국에서 피임이 불법화될 수 있다는 게 가능한 얘기일까? 알리토의 판결문은 어떤 견해와 논리를 갖고 있길래 그런 우려가 나왔을까?

클래런스 토머스 대법관(왼쪽), 새뮤얼 알리토 대법관

알리토 대법관은 로 대 웨이드 사건에서 임신중지권이 '실체적 적법절차(substantive due process)'라는 논리를 바탕으로 합헌 판결을 받은 것을 문제 삼았다. 실체적 적법절차에 대해서는 다음 글에서 자세하게 설명하겠지만, 로 대 웨이드가 가진 가장 치명적인 약점이 바로 이 논리에 있다는 사실은 알리토뿐 아니라 대부분의 보수 법률가들이 지적해왔다. 아니, 여성의 임시중지권을 지지하는 진보적인 법률가들 중에도 로 대 웨이드가 이 논리를 사용해서 합헌 판결을 받은 것은 유감이라는 지적을 하는 사람들이 있을 만큼 실체적 적법절차 논리는 로 대 웨이드 합헌 판결의 아킬레스건이었다.

하지만 이는 로 대 웨이드에 국한된 것이 아니다. 이 판결보다 앞서 나온 다른 판결들도 실체적 적법절차라는 논리를 근거로 합헌 판결을 받았기 때문에 만약 대법원이 이 논리가 부적하다는 이유로 로 대 웨이드 판결을 뒤집는다면 다른 판결 역시 뒤집지 말라는 보장이 없다. 알리토의 초안이 공개된 후에 사람들이 동성 간의 성관계, 피임약, 피임기구의 사용도 불법화될 수 있다고 우려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실체적 적법절차의 부적절성에 근거해 판결문을 작성한 알리토도 이런 우려가 발생할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다수의견에서 확대 해석하지 말라며 다음과 같이 분명하게 선을 그었다. "우리의 결정이 오해되거나 곡해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이번 결정은 임신 중지의 헌법적 권리 여부만을 이야기하는 것일 뿐 다른 권리와 관련이 없음을 강조한다. 이 의견에 등장하는 어떤 것도 임신 중지와 무관한 다른 선례를 의심하는 것으로 해석되어서는 안 된다."

알리토 대법관이 이렇게 강조를 했는데 왜 사람들은 이 논리가 다른 권리에도 적용될 수 있다고 우려했을까? 다른 권리를 합헌이라고 판단한 다른 결정들이 이번 결정에서 부당하다고 판단한 것과 같은 근거를 갖고 있다면 로 대 웨이드를 뒤집은 논리를 다른 곳에 적용하면 안 될 이유나 제한이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설마 동성 간의 성관계, 피임약 사용이 불법화될까? 다시 말하지만, 대법원은 이런 것들을 불법화하지 않는다. 극보수주의자들이 자신의 주에서 이를 불법화하는 것을 막을 권리가 연방정부에 없다고 결정하는 것뿐이다. 텍사스를 비롯한 일부 주에서는 모든 임신 중지를 불법화하고 있다. 성폭행의 결과로 임신했어도 여성은 아이를 낳아야 하고, 근친상간의 결과로 임신했어도 아이를 낳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피임이나 동성 간의 성관계를 절대 불법화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한다면 지난 몇 년 동안 다른 별에 살다온 사람일 것이다.

물론 연방 대법원은 텍사스주가 아니다. 알리토 대법관이 "이번 결정은 임신 중지에만 관련된 것"이라고 이야기했으면 대법원의 의지를 믿어줘도 되지 않을까? 믿기로 결정하기 전에 위의 두 문장을 다시 한번 읽어보자:

"우리의 결정이 오해되거나 곡해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이번 결정은 임신 중지의 헌법적 권리 여부만을 이야기하는 것일 뿐 다른 권리와 관련이 없음을 강조한다. 이 의견에 등장하는 어떤 것도 임신 중지와 무관한 다른 선례를 의심하는 것으로 해석되어서는 안 된다."

알리토가 이야기하는 건 대법원이 현재의 시점에서 다른 판결을 의심하는 게 아니라는 것이지 앞으로 다른 사건이 올라올 경우 이를 논리를 적용해서 판단하지 않겠다는 약속이 아니다. 이번 의견은 이 사건에만 관련된 것이라는 선언에 불과하다.

그리고 이를 분명하게 보여준 것이 또 다른 보수 대법관 클래런스 토머스의 '별개의견'이다. 별개의견(concurring opinion, 동조의견이라고 번역되기도 한다)이란 다수의견에는 동의하지만 그 결론에 도달한 근거/이유에는 동의하지 않거나 다른 견해를 가진 대법관이 작성하는 의견서다. 토머스의 별개의견서에는 이런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이런 이유로 다음 사건(케이스)들에서는 그리스월드, 로렌스, 오버게펠처럼 대법원이 실체적 적법절차를 사용한 선례들을 재심사해야 한다. 실체적 적법절차를 근거로 한 판결은 모두 '명백한 오류'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우리에게는 이런 판결에서 일어난 '실수를 수정'해야 할 의무가 있다."

토머스가 말한 '그리스월드'란 1965년에 나온 그리스월드 대 코네티컷(Griswold v. Connecticut) 판결로, 부부가 피임을 결정하는 것을 주 정부가 간섭할 수 없다는 내용이다. 즉, 피임을 하는 것을 헌법 상의 권리로 인정한 것이다. 지금으로서는 상상하기 힘들지만 1960년대에 코네티컷을 비롯한 많은 주에 있던 임신을 막는 약이나 도구는 금지하는 법을 무효화시킨 판결이다. 그리고 '로렌스'란 2003년에 나온 로렌스 대 텍사스(Lawrence v. Texas) 판결로, 그때까지도 미국 곳곳에 남아있던 "비정상적 성관계"를 금지하는 시대착오적 법을 일시에 무효화시킨 판결이다. (워낙 흥미로운 사례라서 기회가 되면 별도의 글로 소개하려 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토머스가 언급한 '오버게펠'은 2015년에 나온 오버게펠 대 호지스(Obergefell v. Hodges) 판결로, 동성결혼은 미국에서 합법이라고 선언한 것이다. 토마스 대법관은 이 모든 판결들이 실체적 적법절차라는, "명백한 오류를 가진" 논리로 내려진 결정이기 때문에 이를 사용한 모든 판결을 모두 재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클래런스 토머스 대법관은 이번 판결과 무관하게 아내 지니 토머스의 문제로 중립성을 의심받고 있다.

그렇다면 실체적 적법절차는 도대체 어떤 논리이길래 이런 모든 결정에 사용되었고, 이제 와서 무효화될 위기에 처하게 된 걸까? 미국에서의 임신중지권 논의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 단어만 보면 지루한 법리 논쟁처럼 보이지만 그렇지 않다. 우리가 당연한 권리라고 생각하는 것들의 근거에 관한 문제이고, 그런 점에서 개별 국가와 문화를 뛰어넘는 보편적인 주제다.

무엇보다, 전개된 논의가 흥미롭다.

('선을 넘은 대법원 ②'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