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미국에 건너와서 대학원 생활을 시작했다. 중서부에 위치한 이 대학교에는 가족이 있는 대학원생들을 위한 아파트 단지가 잘 조성되어 있었다. 그런데 워낙 단지가 크고 다양한 문화권에서 온 학생과 가족이 많아서 학교에서는 아파트에 거주하는 학생들 중에서 레지던트 매니저, 즉 일종의 관리인을 선발하는 제도를 시행하고 있었다. 학교 입장에서는 문화적인 갈등을 조율하고, 일종의 자치를 허용하고, 운영비를 절약하려는 일석삼조의 취지였던 것 같다.

매니저의 대단한 일은 아니고 일주일에 한 번 정도 야간, 혹은 당직(이라기보다는 저녁부터 아침까지 비상용 휴대폰을 들고 있게 하는 거다)을 서고 가끔 생기는 문제를 해결해주는 일을 하면 아파트 월세를 내지 않아도 되고, 약간의 월급까지 주는 좋은 자리였다. 나는 운 좋게 그 일을 하게 되었다. 일은 어렵지 않았지만, 간혹 해결하기 힘든 주민 간의 갈등을 중재해야 했다. 중동지역부터 유럽, 아프리카 동아시아까지 다양한 문화가 섞이면 아무리 많이 배운 사람들이라고 해도 다양한 오해와 다툼이 생길 수밖에 없다. 그렇게 해결해야 했던 문제 중 지금도 기억나는 일이 있다.

주말 오후에 당직 휴대폰을 옆에 두고 집에서 책을 보고 있었는데 전화가 울렸다. 오래된 일이라 전화를 한 사람은 정확하게 기억나지 않지만 아랍계, 혹은 인도계 학생이었다. 그 학생은 "옆집에서 닭을 현관에 매달아 두고 있는데 보기에 흉하고 위생상 좋지도 않으니 좀 치우라고 말해달라"는 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