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중간선거일이 다가오던 지난 주말, 미국의 전현직 대통령 세 명이 모두 펜실베이니아주에 모이는 흥미로운 장면이 만들어졌다. 민주당에서는 바이든 대통령과 오바마가, 공화당에서는 트럼프가 펜실베이니아를 돌아다니며 자기 당 후보를 지지하는 연설을 했다.

지난 글에서 설명한 것처럼 펜실베이니아는 이번 선거에서 연방 상원을 민주당이 지키느냐, 공화당이 빼앗느냐를 결정하는 격전지 중 하나였다. 이곳은 워낙 석탄산업과 수압파쇄(fracking)로 알려진 셰일가스 산업이 일자리를 창출하는 주이기 때문에 기후 변화에 대응하는 민주당의 정책을 좋아하지 않고, 그걸 잘 아는 트럼프가 적극 공략해서 공화당 우세로 만들어 놓은 곳이다.

오바마의 존 페터먼 지지 유세 (이미지 출처: New York Post)

하지만 존 페터먼(John Fetterman)이라는 특이한 후보(이 후보에 대해서는 이번 주말에 별도의 글로 다룰 예정이다)가 등장하면서 민주당이 펜실베이니아를 되찾아오겠다는 꿈을 꾸게 되었다. 민주당은 상원에서 다른 주가 공화당으로 넘어가더라도 펜실베이니아를 빼앗아오면 상원을 지킬 수 있다는 계산으로 이 주에 온갖 선거자원을 쏟아부었다. 바이든과 오바마 같은 스타의 방문이 그런 '자원'이었다. 하원과 더불어 상원까지 뺏기면 남은 임기 2년 동안 손발이 묶이게 되는 바이든은 물론이고, 자신의 레거시를 지켜야 하는 오바마도 펜실베이니아를 되찾는 데 총력을 기울였다.

그렇다면 트럼프는 왜 펜실베이니아에 힘을 쏟았을까?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우선 공화당 내에 자신을 철저하게 지지하는 의원들을 최대한 늘리는 것이다. 공화당은 이미 트럼프의 정당이라고들 하지만 뚜껑을 열어보면 트럼프를 진심으로 믿고 따르는 의원은 그리 많지 않다. 많은 공화당 의원들이 트럼프의 주장이 자신의 정치적 지향점이나 이익과 겹치기 때문에 지지하고 있지만 2020년 대선 결과 부정과 의회 난입 사건 등과 관련해서는 생각을 같이 하지 않는 사람들이 많다. 공화당의 상원 원내대표 미치 매코널(Mitch McConnell) 같은 인물이 대표적이다. 트럼프는 자신에게 충성하는 의원이 필요하다.

왜 그들이 필요할까? 여기에 두 번째 이유가 있다. 트럼프는 2024년 대선에 다시 출마해서 대통령이 되려 한다. 자신이 지지하는 후보, 즉 자신에게 충성을 다하는 정치인들을 당선시킴으로써 자신의 영향력이 살아있음을 만방에 과시하는 한편, 자신이 대통령이 되었을 때를 대비하는 것이다.

자신이 공개 지지한 후보 메멧 오즈의 유세를 지원하는 도널드 트럼프 (이미지 출처: Politico)

하지만 특정 후보들을 지지한다는 것은 그들의 성패에 자신의 브랜드를 거는 도박이다.

화요일 밤의 실패

그렇다면 트럼프가 베팅한 후보들은 어떤 성적을 거뒀을까? 이 글을 쓰는 현재 개표가 진행 중인 조지아주의 경우 트럼프는 허셜 워커(Herschel Walker)를 상원의원 후보로 강력 지지했지만 민주당 후보에 밀리고 있다. 반면 그 주에서 주지사로 출마한 공화당 후보인 브라이언 켐프(Brian Kemp)는 트럼프의 2020년 대선 승리 주장에 반대하고 그와 거리를 두면서 트럼프의 분노를 샀지만 (전문가들에 따르면 바로 그랬기 때문에) 민주당 후보를 꺾고 승리할 수 있었다.

뉴햄프셔주에서는 자신의 주장을 충실하게 따르는 돈 볼덕(Don Bolduc) 상원의원 후보를 지지하고, 펜실베이니아에서는 오프라 윈프리 쇼를 통해 유명해진 메멧 오즈(Mehmet Oz, 우리나라에는 '내 몸 사용설명서' 시리즈의 공저자로 알려져 있다)를 지지했지만 둘 다 민주당 후보에 패했다. 승리한 후보도 있다. '힐빌리의 노래'를 쓴 작가로 유명한 J.D. 밴스(Vance)가 그런 후보다.

하지만 전반적인 성적은 좋지 않았고, 언론은 트럼프의 지지가 먹히지 않았다고 결론을 내는 분위기다. 폴리티코는 지지한 후보들이 실패하면서 트럼프가 "하자가 있는 제품(damaged goods)"이 되었다고 했고, 애틀랜틱은 "트럼프 중간선거에서 패했다(Trump Lost the Midterms)"라는 제목을 뽑았다. 물론 이번 선거는 트럼프가 아닌 바이든의 중간선거였지만 이번 선거에서 가장 큰 실패를 맛본 사람은 트럼프라는 얘기다.

이런 질문을 할 수 있다. "어찌 됐든 공화당이 하원 하나라도 찾아왔으면 민주당의 패배 아닌가? 민주당의 패배는 바이든의 패배인데 왜 트럼프에 집중하는 거지?" 이에 대한 답은 간단하다. 트럼프가 지지한 후보들이 아니었으면 공화당은 상원을 쉽게 가져올 수 있었기 때문이다. 즉, 트럼프가 나서지 않았으면 공화당은 하원은 물론 상원까지 쉽게 장악했을 선거였다.

애리조나 주지사 선거에서 공화당 후보 자리를 놓고 겨룬 카린 테일러 롭슨(왼쪽)과 캐리 레이크 (이미지 출처: NBC News)

이는 상원 선거에만 국한된 게 아니다. 가령 애리조나 주지사 선거에서 공화당 후보로 나온 캐리 레이크(Kari Lake)는 (개표 중인 현재) 민주당 후보 케이티 홉스(Katie Hobbs)에 뒤지고 있다. 레이크 후보는 당내 경선에서 트럼프의 지지를 받아 카린 테일러 롭슨(Karrin Taylor Robson)을 물리치고 후보가 되었지만 공화당 전략가에 따르면 "롭슨이 후보가 되었으면 쉽게 민주당의 홉스를 물리치고 당선되었을" 것이지만, 트럼프는 본선에서 이길 후보보다는 자신에게 충성하는 후보 캐리 레이크를 원했다. (현재 레이크는 개표가 완료되지도 않은 상황에서 자신이 뒤지는 것으로 나오자 개표에 문제가 있을 수 있다는 근거 없는 주장을 하고 있다. 트럼프 브랜드의 정치인임을 잘 보여주는 셈이다.)

그럼 공화당이 이를 몰랐을까?

그렇지 않다. 공화당이 상원을 되찾는 것을 누구보다 더 바랄 사람은 공화당 상원 원내대표 미치 매코널이다. 2020년 대선 결과에 불복하는 트럼프에 동의하지 않으면서 트럼프의 주적 1호가 된 매코널은 트럼프의 강력한 지지로 공화당 상원의원 후보가 된 사람들의 "질(quality)" 떨어지기 때문에 본선에서 이기기 힘들다고 분명히 경고한 바 있다. 당의 인기에 쉽게 당락이 쉽게 좌우되는 하원의원들과 달리 상원의 경우는 개별 후보의 능력이 중요하다는 사실은 미국 정치에서 유명한 명제인데, 트럼프가 이를 무시하고 질이 떨어지는 사람들을 채우고 있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공화당이 상원 다수당을 차지하지 못해 미치 매코널이 상원 의장이 되지 못한다면 이는 트럼프가 자신의 이익을 위해 저지른 행동의 결과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플로리다 맨의 웃음

그렇다고 해서 미치 매코널을 미워하는 트럼프가 일부러 골탕을 먹였다고 볼 수는 없다. 누구보다 자신의 브랜드가 상한 사람은 트럼프 자신이기 때문이다. 그럼 질이 떨어지는 후보를 지지한 트럼프는 무슨 생각을 한 걸까? 당연히 그들이 이길 수 있다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자신의 득표력을 믿었기 때문이다. 비록 질이 떨어지는 후보라고 해도 자신의 열성적인 지지자들이 투표소로 몰려가면 인기 없는 바이든의 중간선거쯤은 쉽게 점령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영어 표현에 'skin in the game'이라는 게 있다. 누가 먼저 사용했는지는 모르지만 (유명한 투자가 워런 버핏이라는 설도 있다) 그 의미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 각오해야 할 손실"을 의미한다. 연방 상원에 자신의 지지자를 채우는 것이 트럼프의 목표였다면, 실패할 경우 그가 잃을 건 자신의 브랜드다. "트럼프의 브랜드는 힘을 잃었다," "트럼프는 더 이상 표를 동원하지 못한다"라는 평가다. 누군가 "임금님은 벌거벗었다"라고 외치는 상황에 맞닥뜨리게 된 것이다.

재선 승리를 자축하는 론 드산티스 플로리다 주지사 (이미지 출처: MSNBC)

누가 그걸 외치게 될까? 모두들 플로리다 주지사 론 드산티스를 지목한다. 트럼프가 키웠지만 어느덧 트럼프보다 더 크게 성장하고 있는 드산티스 주지사는 이번 선거에서 민주당 경쟁 후보를 상대로 무려 20%에 가까운 표 차이로 승리해서 재선에 성공했다. (아직 읽지 않으셨다면 'Florida Man'을 꼭 읽어보시기 바란다.) 드산티스는 자신만 승리한 게 아니라 선거구 조정(gerrymandering, 미국 정치의 고질병으로 양당이 모두 이 작업에 매달린다)을 통해 플로리다주에서 다른 공화당 후보들도 당선시키며 득표력을 과시했다.

다른 주에서 트럼프에 매달린 후보들이 시원찮은 성적을 보이는 중에 트럼프와 거리를 둔, 그러나 트럼프주의(Trumpism)에는 충실한 드산티스가 크게 승리한 것은 트럼프주의는 여전히 살아있지만 그걸 현실 정치에서 가장 잘 수행할 인물은 더 이상 트럼프가 아니라는 유권자들의 판단으로 보인다.

이제 드산티스 주지사는 2024년 공화당 대선후보를 향한 힘찬 첫걸음을 내디딘 셈이다.

케빈 매카시의 역할

하지만 트럼프의 브랜드가 상했다고 해도, 론 드산티스가 빠르게 떠오른다고 해도 트럼프가 사라질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다. 시간이 지날수록 공화당이 하원을 차지할 게 확실해 보이기 때문이다. 공화당이 하원 다수당이 되면 공화당의 하원 원내대표인 케빈 매카시(Kevin McCarthy, 우리가 아는 '매카시즘'의 조셉 매카시와는 무관하다)가 낸시 펠로시에게서 하원의장 직을 인수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 그런데 매카시는 트럼프가 2020년에 대선 승리를 도둑맞았다고 주장하는 친 트럼프 정치인이다. (트럼프는 하원의장으로 매카시를 지지한다고 이미 밝혔다.)

하원의장이 될 것으로 보이는 케빈 매카시는 친 트럼프 정치인으로 분류된다. (이미지 출처: The New York Times)

그리고 무엇보다 트럼프를 지지하는 의원들이 여전히 하원을 지키고 있다. 비록 이들이 다수가 아니라고 해도 목소리가 큰 이 정치인들은 케빈 매카시가 바이든 정권과 협상해서 국정에 협조하는 것을 막을 가능성이 크다. 이는 민주당 하원의원인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코르테즈가 바이든을 중도에서 왼쪽으로 끌어가는 역할을 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민주당이나 공화당에서 이렇게 소수의 의원들이 당의 방향을 결정할 수 있는 이유는 이들을 열렬하게 지지하는 유권자들이 있기 때문이고, 이들을 끌어안지 않으면 그 어떤 리더도 자신의 정책을 밀어붙일 수 없기 때문이다.

개표가 진행될수록 공화당이 상원을 가져오는 건 힘들어 보이지만, 어차피 공화당 차지가 되어도 상원을 이끌 사람은 트럼프와 등을 돌린 미치 매코널이기 때문에 트럼프는 관심을 끊을 거다. 트럼프는 그 대신 자신을 지지하는 케빈 매카시를 활용해 영향력을 발휘하려 할 것이다. 바이든 행정부에 대한 조사가 그 첫걸음으로 보인다.

그러는 동안 트럼프는 드산티스의 상승을 꺾는 데 모든 에너지를 쏟게 될 거다. 이게 트럼프의 2023년에 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