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 전쟁은 시작된 지 1년을 넘었지만, 여전히 진행 중이고, 당장 끝날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2023년은 우크라이나가 승리하는 해가 될 거라고 장담하지만 이 말에 동의하는 사람들은 많지 않다. 우크라이나가 패할 것으로 전망해서가 아니라, 승리를 어떻게 규정하느냐는 간단한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우크라이나가 주장하는 것처럼 러시아에 빼앗긴 모든 영토를 회복하는 것을 승리라면 쉽지 않은 목표이지만, 전면전이 시작된 2022년 이전의 영토를 수복하는 건 불가능하지 않다. 하지만 우크라이나 국민이 이를 승리로 받아들일지는 알 수 없다.

그런데 이 전쟁을 일으킨 러시아의 승패를 생각하면 결론은 쉽게 도출된다는 주장이 있다. 이 전쟁이 어떻게 끝나느냐와 상관없이 이 전쟁은 러시아의 패배라는 것이다. 심지어 현재 빼앗은 땅을 모두 지키고 평화협정을 맺어도 러시아는 전략적으로 패했다는 주장이다. 이를 가장 설득력 있게 이야기하는 설명이 있어 소개한다. 세계의 군사 문제, 특히 군사 투자 전략에 관한 이야기를 하는 페룬(Perun)이라는 채널로, 이번 전쟁에서 꼼꼼한 자료 조사와 차분한 설명, 신중한 전망으로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아래의 글은 그가 한 시간 정도 설명한 내용을 한국어로 옮긴 것이다. 영상은 여기에서 볼 수 있다.


미 육군참모총장 마크 밀리(Mark Milley)는 우크라이나 전쟁을 진단하면서 "러시아는 전략, 작전, 전술에서 모두 패했다"라고 했다. 러시아의 공격은 1년이 지난 지금도 지속되고 있고, 우크라이나에 큰 피해를 주고 있는 상황에서 한 말이다. 최전선에서 러시아의 치열한 공격을 막아내고 있는 우크라이나 병사들은 밀리 총장의 진단에 얼마나 동의할까?

푸틴은 단순히 우크라이나의 영토 일부를 빼앗기 위해서 전쟁을 시작한 게 아니다. 다른 모든 전쟁과 마찬가지로 푸틴의 전쟁 역시 일련의 전략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시작되었다. 그렇게 봤을 때 이 전쟁의 승패나 특정 전투의 결과가 어떻게 도출되는지와 상관없이 밀리 총장의 진단은 맞다. 러시아 스스로 세운 기준에 따르면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것은 전략적으로는 재난이다. 러시아를 약화시켰고, 지정학적 라이벌들을 강화시켰기 때문이다. (어떻게 약화, 강화되었는지에 대해서는 글에서 설명한다–옮긴이) 그리고 앞으로 전쟁이 어떻게 전개되든 이 두 가지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러시아가 전략적으로 실패했다고 해서 그것이 우크라이나의 미래가 어떻게 될 것인지를 예측해주지는 못한다. 러시아가 전략적으로 패했다는 사실은 우크라이나가 전략적으로 승리했다는 얘기가 아니다. 자유롭고 번영한 독립 국가 우크라이나를 위한 싸움은 아직 진행 중이므로 결과를 지켜봐야 하지만, 더 강한 러시아, 혹은 러시아 제국의 복원이라는 푸틴의 목표는 이미 실패했다.

이를 설명하기 위해 1) 러시아 제국의 역사가 보여주는 패턴 2) 우크라이나 전쟁에 임한 러시아의 전략적 목표와 독트린 3) 러시아가 패배했다고 보는 이유 4) 우크라이나의 전략적 목표, 이렇게 네 가지 부분으로 나눠 설명해보기로 한다.

러시아 제국의 역사

제국으로서의 러시아의 역사는 러시아의 전략적 사고, 혹은 독트린과 서로 분리해서 생각하기 힘들다. 러시아 국영 방송에서는 러시아는 평범한 국가가 아니라 단일한 강대국(great power)이며, 제국(empire)이라는 주장을 다양한 방법으로 거의 매일 설명한다. 지금의 러시아는 소비에트 연합과 러시아 제국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위대한 유산을 이어받은 나라라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고, 그러므로 러시아에는 주변 국가들에 권력을 행사할 권리와 의무가 있다는 얘기다.

볼셰비키 혁명 100주년을 기념하는 행사가 열린 모크바의 붉은 광장 모습. (이미지 출처: South China Morning Post)

이들의 이야기에서 동유럽 국가들과 발트 3국, 그리고 중앙아시아 지역의 나라들은 이렇게 러시아의 안보와 "러시아가 당연히 누려야 할" 이익이라는 관점에서 설명된다. 이 나라들의 자유와 독립에 관한 권리는 언급되지 않으며, 가장 중요한 것은 모스크바의 목소리다. 모스크바가 이야기하면 이 나라들은 들어야 한다.

러시아의 역사와 지리를 살펴보면 러시아인들이 어떻게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는지 이해할 수 있다. 특정 국가가 강대국으로 발전하게 될지 여부를 결정하는 요인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영토와 자원, 인구 등이 그런 요인들로, 러시아는 역사적으로 이런 이점을 많이 갖고 있었다. 특히 러시아 제국 시절로 거슬러 올라가 보면 이를 금방 확인할 수 있다. 1897년 당시 러시아는 1억 2천만 명이 넘는 인구를 갖고 있었다. 같은 시점에 미국의 인구가 7천 6백만 명이었던 것과 비교해보라. 게다가 러시아 제국은 엄청나게 넓은 영토를 자랑했고, 비록 제국이 무너진 후에 발견되기는 했지만, 러시아 영토 내에는 아주 풍부한 자원이 있었다.

러시아에게 유리한 점은 그 외에도 많았다. 가령 러시아는 동방 정교회가 퍼진 지역들 중에서 지배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고, 유럽 전역에 살고 있는 슬라브계 사람들을 묶어주는 문화적 연결점도 갖고 있었다.

이렇게 유리한 위치에 있었지만 러시아는 자신들이 가진 이점을 충분히 활용하지 못했다. 물론 세계사에는 이렇게 유리한 위치에 있었으면서도 무너진 제국이 많다. 중국의 경우 "1백년 동안의 수치"라고 부르는 시기는 1839년 아편 전쟁으로 시작되었는데, 그 당시 중국은 세계에서 가장 많은 인구와 길고 풍부한 역사를 자랑하고 있었다. 그런 나라들도 다른 나라의 발 앞에 굴복하는 일이 흔하다.

제국의 흥망성쇠에는 많은 요인이 작용한다. 기근이나 홍수와 같은 자연 재난도 그런 요인들이지만, 그 나라의 정부와 개인들이 내리는 결정도 그렇다. 특히 나쁜 리더십 때문에 제국이 내부적으로 붕괴하고 실패하는 일이 있다. 물론 반대의 경우도 있다. 옆 나라에 유난히 뛰어난 지도자가 있으면 이는 위협 요인이 된다. 하필 당신 옆 나라의 지도자가 알렉산더 대왕이라는 사람이라면? 당신 나라의 유구하고 찬란한 역사는 곧 끝날 수 있다.

반복되는 실수

러시아는 역사적으로 다양한 종류의 리더들을 겪었다. 뛰어난 지도자도, 무능의 극치를 보여준 지도자도 있었다. 하지만 러시아 역사에서는 몇 가지 주요한 전략적 실패가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경향이 있다. 1) 정치와 시민사회의 개혁을 통해 부정부패 등을 해결하는 데 실패하는 것 2) 나라의 자원을 국민의 삶의 질을 개선하는 데 사용하는 대신 군대를 키우는 데 사용하는 것 3) 주변국가들을 이끄는 대신 그들을 지배하고 '러시아화'하려는 경향 4) 지나친 자신감으로 능력 이상으로 욕심을 내다가 시스템의 붕괴를 맞는 것이 그렇다. 물론 이 네 가지 실수는 수 세기에 걸친 역사와 발전을 지나치게 단순화한 것이지만 현재 우크라이나에서 일어나는 일을 이해하는 데 좋은 틀을 제공한다.

이런 실수들이 실제로 어떻게 일어나는지 설명하기 위해 1차 세계 대전 이전의 러시아 제국으로 돌아가 보자.

프랑스 스트라스부르 소재 러시아 영사관에 있는 러시아 문장 (이미지 출처: PBS)

러시아 제국이 끝난 지는 한 세기가 넘었지만 러시아에서는 지금도 러시아 제국의 상징을 쉽게 볼 수 있다. 바로 머리가 둘 달린 독수리가 등장하는 국가 문장(state coat of arms)이다. 텔레그램에서 러시아의 우익 방송인들을 팔로우 해보면 그들이 러시아 제국의 국경과 제국의 힘을 자주 언급하는 것을 들을 수 있다. 흥미로운 건 러시아의 황제를 죽인 사람들이 소비에트 공산주의자들인데도 불구하고 소비에트 연방에 향수를 가진 사람들과 러시아 제국에 대한 향수를 가진 사람들이 같은 사람들이라는 사실이다. 결국 이들에게 중요한 것은 이데올로기가 아니라 러시아가 강했던 시절에 대한 기억일 뿐이다.

러시아는 단순히 강하기만 했던 게 아니라, 빠르게 성장하고 있었다. 흔히 1차 대전 이전의 러시아는 산업화와 문맹률, 기대수명 등의 지표에서 서구 국가들에 비해 크게 뒤져 있었다고 말한다. 그건 사실이지만, 러시아의 산업이 엄청난 속도로 성장하고 있었던 것도 사실이고, 이와 함께 인구도 증가하고 있었다.

1차 세계 대전이 일어나기 전, 러시아의 성장을 지켜보는 독일인들은 러시아와 전쟁을 하려면 일찍 하는 게 늦게 하는 것보다 낫다는 전략적 진단을 내렸다. 중장기적으로 봤을 때 러시아의 산업화와 군대의 현대화가 계속된다면 독일은 점점 더 큰 위협에 직면하게 되고, 나중에 러시아는 독일이 통제하지 못할 국가가 될 것이었기 때문이다. 당시 러시아 제국은 종이에 적힌 숫자만으로는 후진적이었지만, 앞으로 강대국이 될 모든 조건을 갖추고 있었다.

많은 거대한 제국들과 마찬가지로 러시아의 가장 큰 적은 러시아 자신이었다. 러시아의 역사에서 관리(공무원)들은 봉급을 받지 않은 경우가 흔했다. 당연히 뇌물로 돈을 벌 것으로 여겨졌기 때문에 그들에게 따로 봉급을 줄 필요가 없었다. 게다가 군사력을 비롯한 국가 프로젝트에 자원을 쏟아부으면서도 국민 삶의 질을 높이려는 노력은 별로 없었다. 이런 상황은 결국 혁명으로 발전할 수 있는 국민의 불만을 낳았다.

그리고 러시아가 제국 내의 비(非)러시아계 민족들을 다룬 방식에 문제가 있다. 러시아는 이들에게 러시아화(Russification) 정책을 사용했다. 이는 1800년대 말로 가면서 두드러졌는데, 러시아는 제국 내에 사는 타민족들이 러시아인이 되기를 진정으로 바라고 있다고 생각했다. 폴란드어를 사용하고 로마 가톨릭을 믿는 폴란드 사람들에게 러시아어와 정교회를 장려한 게 그런 예다.

일리야 레핀, '1901년 국가의회 100주년 기념 국가평의회' (이미지 출처: Wikipedia)

핀란드의 경우 제국의 압제에 반발하는 폴란드와 달리 자신들이 러시아 제국의 일원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었다. 지금이야 물론 독립국임을 자랑스럽게 생각하지만 과거에는 러시아의 지배를 우호적으로 받아들였고, 이에 러시아는 핀란드에 상당한 법적, 언어적인 자율성을 부여하는 것으로 화답했다. 특히 1800년대 중반 알렉산드르 2세 치하에서 많은 발전이 있었고, 믿기 힘들겠지만 지금도 수도 헬싱키에는 알렉산드르 2세의 동상이 서 있다.

하지만 핀란드 역시 러시아 제국 말기에 이르면 생각이 바뀐다. 핀란드의 법적 자율성은 사라지고 러시아의 법이 지배했고, 핀란드어 대신 러시아어가 장려되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핀란드인을 대상으로 한 징집이 확대되었다. 핀란드에서는 이 시기를 "압제의 시기"로 부른다. 러시아의 정책 변화는 핀란드인을 러시아인으로 바꾸는 대신 러시아에 충성적이었던 사람들을 분리주의자로 만드는 역할을 했다. 잘 알려진 것처럼 이후에 일어난 러일전쟁과 1차 세계 대전은 러시아 제국을 무너뜨리게 된다.

제국이 흔들리는 모습을 보이는 순간 핀란드, 폴란드 같은 나라들이 제일 먼저 독립을 시도한다. 내전과 뒤따른 압제는 러시아 제국 안에 사는 사람들과 산업에 큰 재난이었다. 결과적으로 소비에트 연방(소련)이 러시아 제국의 자리를 차지할 때까지 수백만 명이 사망한다.


'전략적 패배 ②'에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