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읽고 있는 책이 있다. 이사벨 윌커슨(Isabel Wilkerson)이 2020년에 펴낸 'Caste: The Lies That Divide Us (카스트: 우리를 분열하는 거짓말들)'이라는 책이다. 사람들이 흔히 인도에 국한된 문제로 생각하는 카스트 제도가 사실은 미국에도 존재하고 있고, 그게 미국 인종차별의 작동 기제라는 게 이 책의 주장이다. 처음 들으면 설마 그럴까, 싶지만 저자 윌커슨은 인도의 카스트 제도가 작동하는 방식을 미국과 나치 독일의 차별적 제도, 관습과 꼼꼼하게 비교해서 아주 설득력 있게 제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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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자세하게 소개하는 글을 쓰려고 하지만, 오늘은 먼저 이 책의 5장, “The Container We Have Built for You (너를 위해 만든 상자)"에 등장하는 "미스(Miss)"라는 이름의 흑인 여성의 이야기를 옮긴다. 그런 특이한 이름을 갖게 된 배경에는 유명한 역사적 사건이 등장하는데, 흥미로운 이야기라고 생각하고 읽다가 끝에 가서 급소를 맞는 기분이 든다.


그 여자의 이름은 미스(Miss)였다. "미스 아무개"가 아니라 그냥 이름이 미스였다. 1970년대에 태어난 그에게 미스라는 특이한 이름이 붙은 데는 이유가 있다. 그의 부모는 미국에서 흑인을 차별하기 위해 만들어진 짐 크로우(Jim Crow)법이 지배하던 세상에서 자랐기 때문이다.

짐 크로우 법은 미국에서 가장 하위 카스트에 해당하는 흑인들이 언제나, 어떤 상황에서도, 어떤 일이 있어도 낮은 위치를 벗어나지 못하게 하도록 설계되었다. 그런 세상에서는 흑인을 묘사할 때 반드시 열등한 위치를 표시하곤 했다. 가령 열차 사고를 보도하는 신문 기사가 "남자 두 명, 여자 두 명, 그리고 니그로(Negro) 넷이 죽었다"라고 작성되는 식이다. 흑인 남자를 가리킬 때는 어떤 경우에도 성(姓)에 미스터(Mister)라는 표현을 사용하지 않았고, 흑인 여성을 가리킬 때도 미스(Miss)나 미시즈(Mrs.)를 사용하지 않았다. 성을 빼고 그냥 이름만 붙이거나, 나이, 결혼 여부와 상관없이 "auntie(아줌마)"나 걸(girl)의 속칭인 "gal"을 사용했다.

이런 사회적 룰은 아주 엄격하게 적용되었기 때문에 이를 어길 경우 큰 대가를 치러야 했다. 가령 1961년 미국 남부 앨라배마주 버밍햄(Birmingham)에서 있었던 시장 선거 때 일어난 일이 그렇다. 백인우월주의자였던 버밍햄의 경찰서장은 자기가 원하는 후보를 당선시키기 위해 경쟁 후보에 흠집을 내기로 했다. 그는 한 흑인에게 돈을 주고 경쟁 후보에게 손을 불쑥 내밀어 악수하게 했고, 사진사를 대기 시켰다가 그 장면을 찍었다. 후보가 흑인과 손을 잡았다는 뉴스가 지역 신문에 등장했고, 그 후보는 경찰서장의 계획대로 선거에 패했다. 남부 백인들의 눈에 흑인에게 미스터나 미스, 미시즈 같은 경칭을 사용하거나, (동등한 존재로 대우해서) 악수하는 건 범죄 행위가 다름없었다.  

셀마에서 행진을 준비하는 마틴 루터 킹 목사 (이미지 출처: USA Today)

해럴드 헤일(Harold Hale)은 버밍햄에서 남쪽으로 약 150km 떨어진 셀마(Selma)에서 자라면서 낯선 백인들이—심지어 아이들도—자기 엄마나 할머니를 마치 애를 부르듯 "펄리(Pearlie)!"라고 이름을 부르는 것을 보며 자랐다. 자기 엄마와 할머니는 외출할 때는 마치 교회에 가듯 단정하고 좋은 옷을 입었지만, 백인들은 절대로 "미시즈 헤일(Mrs. Hale)"이라고 제대로 부르는 법이 없었다. 해럴드 헤일은 백인들이 친근한 척 하면서 나이든 흑인을 성인 대접하지 않는 것이 싫었다. 흑인들을 밟아 낮은 위치에 머무르게 하려는 시도였지만, 그로서는 백인들의 말버릇을 고칠 방법이 없었다.

1965년 초, 마틴 루터 킹 목사(Dr. Martin Luther King, Jr.)가 셀마를 방문했다. 노예 해방을 위한 남북전쟁이 끝난 지 무려 100년이 지났고, 수정헌법 15조가 투표권을 보장했지만, 하위 카스트인 흑인들은 여전히 투표를 할 수 없었다. 해럴드 헤일은 셀마에서 출발해 몽고메리(Montgomery)까지 가는 킹 목사의 행진에 참여하기로 했다. 그 행진의 출발점인 에드먼드 페터스(Edmund Pettus) 다리는 헤일이 살고 있던 집에서 몇 블록 안 되는 거리에 있었다.  

하지만 헤일을 포함한 약 600명의 참가자가 다리 초입에 도착했을 때 그들을 맞이한 건 헬멧을 쓰고 말을 탄 채 길을 막고 있던 경찰병력이었다. 이들은 시위대를 향해 돌진해서 최루탄을 쏘고, 곤봉으로 때리고, 밟았다. 이 장면을 TV로 지켜본 작가 조지 레너드(George B. Leonard)는 "땅에 쓰러진 사람들 위로 말이 달렸다"고 했다. 나치 전범 재판을 다룬 영화 '뉘른베르크의 재판'을 방송하고 있던 ABC 방송은 정규 프로그램을 중단하고 셀마에서 일어나는 상황을 보도했다. 두 개의 끔찍한 사건이 만나는 순간이었다.

셀마의 시위대를 폭행하는 백인 경찰 (이미지 출처: Politico)

아직 십 대였고 행진의 리더 그룹과는 멀리 떨어져 있던 해럴드 헤일은 경찰의 공격에 다치지는 않았지만, 그 장면을 보면서 세상이 변하려면 얼마나 기다려야 할지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 자리에서 헤일은 훗날 태어날 자기 자식들은 지배 계급의 존중을 받도록 만들어야겠다는 결심을 했다. 그리고 나중에 결혼해서 딸아이를 낳았을 때 미스(Miss)라는 이름을 지어줬다. 흑인을 우습게 보는 미국의 카스트 제도에 대항하겠다는 태도였다. 이름을 아예 경칭으로 만들어 자기 어머니와 할머니의 이름을 함부로 부른 지배 계급의 사람들이 딸아이도 우습게 부를 수 없게 한 것이다. 그의 아내 린다도 동의했다.


이제 50대에 들어선 미스는 지난날을 회상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백인들은 제가 그들이 정해준 위치를 벗어나지 않는 한 저를 괴롭히지 않았습니다. 제가 그들이 저희를 가두기 위해 만들어 놓은 박스 밖으로 나가려 하지만 않으면 말이죠. 하지만 제가 그 밖으로 나가는 순간, 문제가 생겼습니다."

미스의 가족은 미스가 어릴 때 동부 텍사스의 작은 마을로 이사했다. 그들은 이사 간 동네에서 유일한 흑인 가정이었다. 해럴드 헤일은 집 앞 정원을 완벽하게 유지했고, 거기에 자부심을 느끼고 있었다. 해럴드가 정원을 가꾸는 시간은 일을 끝낸 저녁일 때가 많았다. 바깥이 어둑어둑해진 후에 나가서 꽃밭을 갈아 엎고 새로운 꽃을 심었기 때문에 이웃들은 아침에 일어나서 완전히 새롭게 변신한 미스의 집 앞뜰을 보며 감탄했다.

그런데 하루는 이웃에 사는 한 백인 남자가 해럴드가 뜰의 잔디를 깎고 있는 것을 보았다. 그는 뜰을 참 잘 가꾼다고 칭찬하면서 그 작업을 맡기려면 얼마냐고 물었다. 해럴드는 "아, 돈 받고 하는 일이 아녜요. 저는 이 집에 살아요"라고 대답했다.  

동네에 흑인 가정이 산다는 말이 퍼지자, 백인 이웃들은 야구 배트를 들고 찾아와서 앞뜰에 있는 우편함을 때려 부쉈다. 쓰러진 우편함을 본 해럴드는 아예 콘크리트로 우편함을 만들어서 아무도 부술 수 없게 했다. 그걸 모르는 백인들이 차를 타고 가면서 우편함을 부수려다가 실패했다. 미스는 "콘크리트인 줄 모르는 백인들이 몽둥이를 휘둘렀다가 몽둥이가 튀어 올라 오히려 자기네가 다치고는 화가 나서 소리를 질렀죠"라며, 그 이후로는 아무도 그 집의 우편함을 건드리지 않았다고 한다.

흑인 가정이 백인 동네에 이사오면서 생기는 일을 다룬 2021년 영화 'Them' (이미지 출처: Amazon Studios)

그들이 살던 동네의 고등학교는 미스의 가족이 이사하기 이전인 1970년대 초에 이미 인종 분리를 끝내고 한 학교에서 두 인종의 학생들이 함께 수업을 들을 수 있게 했다. 미스는 학교에서 쉬는 시간에 친구들과 무전기를 사용하다가 선생님에게 들켰다고 한다. 미국 학교에서는 문제 학생은 교장과 면담을 하게 된다. 그렇게 교장실에 끌려간 미스는 선생님에게 무전기를 보여줬다. 교장은 미스에게 이름이 뭐냐고 물었다.

"Miss Hale(미스 헤일입니다)."

"성 말고, 이름이 뭐냐고."

"미스예요."

"내가 이름이 뭐냐고 묻지 않았니?"

"이름이 미스라고요."

"너랑 장난할 시간 없으니까, 빨리 이름을 대!"

미스는 아버지가 지어준 이름을 다시 한번 말했고, 화가 치민 교장은 직원을 시켜 학생기록부를 가져오라고 했다. 기록부를 보니 정말로 이름이 미스였다. "성이 헤일(Hale)이라고? 흠."

미국 남부의 작은 마을들에 사는 백인들은 그 동네에 사는 흑인들을 모두 알고 있거나, 알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흑인들의 대부분은 백인에게서 임금을 받거나, 백인에 의존하지 않고는 생계를 이어갈 수 없었다. 교장은 그 흑인 중 어떤 인간이 딸에게 감히 미스라는 이름을 붙여 백인들이 "미스 헤일"이라고 부를 수밖에 없게 했는지 알아내고 싶었다.  

"헤일이라는 이름은 이 동네에서 들어본 적이 없는데? 너 이곳 출신이 아니지? 네 아빠는 어디 출신이냐?"

"앨라배마에서 왔어요."

"어디서 일하지?"

미스는 교장에게 아버지의 직장을 말했다. 텍사스주 밖에 있는, 포춘500에 들어가는 대기업이었다. 미스의 부모는 미스에게 아빠가 그 회사에 다닌다는 말을 꼭 하라고 가르쳤다. 이런 상황에서 그게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네가 이곳 출신이 아닌 줄 알았다." 교장이 말했다. "어떻게 알았는지 알아?"

미스는 고개를 저었다. 그저 교장실을 나갈 수 있기만을 바다.

"너는 내가 얘기하는데 내 눈을 똑바로 쳐다보거든. 이곳 흑인들은 그렇게 하면 안 된다는 걸 아는데, 너는 모르고 있으니까." 미스가 미국 카스트 제도의 규범을 깼다는 얘기였다.

미스는 마침내 교장실에서 풀려날 수 있었다. 학교가 끝나고 귀가한 미스는 아버지에게 학교에서 겪은 일을 들려줬다. 이런 날이 오기를 20년 동안 기다렸던 아버지 해럴드는 "교장이 뭐라고 했다고?" "그다음에는 뭐라고 했는데?" "그렇게 말하니까 뭐라든?" 하며 신나서 물었다. 자기가 계획한 대로 된 것이다.

해럴드는 미스에게 "네 이름에 걸맞게 행동해야 한다"고 거듭 말하면서, "백인들만 인간성을 가진 게 아니고, 백인들만 여성성을 독점하는 게 아니다. 백인 여자만 온전하고, 존경할 만하고, 고귀하고, 명예롭다고 주장할 수 없다. 그 사람들은 그걸 독점할 수 없어."


세월이 흐른 후 미스는 미국의 다른 지역에서의 삶을 경험할 수 있었다. 대학교에 다니던 중, 친구가 뉴욕 롱아일랜드에 있는 자기 집에 미스를 초대한 것이다. (롱아일랜드는 뉴욕 부자들의 별장이 있는 부촌으로 유명하고, 북부 백인들은 남부와 달리 진보적이라는 게 미국에서 일반적인 견해다—옮긴이) 친구의 가족은 미스의 이름을 너무나 재미있게 생각했고, 미스가 남부 인종주의자들을 꼼짝 못하게 한 것을 통쾌하게 생각했다.

(이미지 출처: Pinterest)

미스는 그 집에 머무르면서 친구의 할머니를 깍듯하게 대했고, 할머니도 미스를 무척 마음에 들어 했다. 미스는 상냥했고, 사람들과 잘 지내는 성격이었을 뿐 아니라, 미국 남부 사람들이 그렇듯 노인들을 존중하는 태도가 몸에 배 있었다. 여름이 끝나가면서 미스와 친구가 학교로 돌아가게 되자, 미스에 큰 정이 들었던 친구의 할머니는 몹시 아쉬워했다. 집안의 어른인 그 할머니는 미스에게 "네가 계속 남아있으면 좋겠구나"라면서 어떻게든 설득해 보려 했다.

학생이었던 미스는 친구 할머니를 달래며 자기가 학업을 마치기 위해 돌아가야 한다고 설명했다. 그런데 미스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할머니는 아쉬움과 경고가 섞인 듯한 말투로 불쑥 이렇게 말했다. "옛날 같으면 너를 가지 못하게 막을 수 있었지."

'너 같은 흑인'은 백인의 말을 들어야 했던 시절이 있었음을 상기시킨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