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의 이야기는 Texas Monthly에 "The Juror Who Found Herself Guilty (자기가 유죄임을 깨달은 배심원)"이라는 제목으로 게재된 글입니다. 이해를 돕기 위해 최소한의 의역과 꼭 필요할 경우에 한해 설명을 첨부했습니다.

텍사스주 엘파소 (이미지 출처: Texas Monthly)

에스텔라는 카를로스가 감옥에 가는 걸 막았어야 했다.

매년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면 에스텔라 이바라(Estella Ybarra)는 1990년 12월, 텍사스주 엘파소(El Paso)의 법정에서 있었던 일을 생각한다. 그 법정에서 에스텔라는 배심원석에 앉아 있었다. 피고는 8살짜리 여자아이를 성폭행한 혐의을 받고 있던 카를로스 헤일레(Carlos Jaile). 에스텔라는 그가 범인이라고 주장하는 검사가 내놓은 증거들을 믿기 힘들었다. 검찰의 주장은 사건이 발생한 지 무려 2년이 지난 후에 이뤄진 범인식별절차(police lineup)에서 피해자가 카를로스를 범인이라고 지목했다는 사실에 의존하고 있었다.

피해자는 자기를 폭행한 사람이 정비공 복장을 하고 있었고, 베이지색 세단 차량을 타고 있었다고 했다. 하지만 카를로스는 진공청소기 외판원이었고, 셔츠에 넥타이 차림을 하고 다녔다. 그가 몰던 차량도 빨간색 스바루 해치백이었다. 카를로스의 변호사는 사건 당일에 카를로스가 다른 곳에 함께 있었다고 증언하는 세 명의 알리바이 증인을 내세웠다. 에스텔라는 카를로스가 무죄라고 확신했다.

하지만 휴정 후 배심원실로 자리를 옮기자 상황이 달라졌다. 당시 에스텔라는 48살이었다. 145cm의 키에, 길고 검은 머리를 하고 있었고, 시각장애인을 돕는 단체에서 일하고 있었다. 직장 동료나 친구들과 있으면 활달한 성격이었지만, 모르는 사람들과 있을 때는 그렇지 않았다. 에스텔라에게 배심원은 난생처음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에스텔라의 영어가 문제였다. 엘파소에서 나고 자랐지만, 줄곧 스페인어를 쓰면 살아왔고, 영어를 어느 정도 편하게 사용하기 시작한 것은 근래에 들어서였다.

배심원들은 2시 30분쯤 심리를 시작했다. 다른 배심원들이 입을 여는 즉시 에스텔라는 카를로스가 무죄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거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특히 두 명의 백인 남자가 배심원실에 들어오자마자 목소리를 높여 그가 범인이라고 밀어붙였다. 이들은 재판 중에 피해자가 재판정에 있던 카를로스를 가리켜 범인이라고 말하던 극적인 장면을 반복해서 이야기했다. 그것 외에 또 무슨 증거가 필요하냐는 태도였다.

유죄를 주장하는 백인 배심원들의 주장은 시간이 흐를수록 강해졌고, 나중에는 "우리는 이렇게 앉아서 정부의 돈을 낭비하고 있으면 안 된다"는 말까지 하며 유죄를 확신하지 못하는 배심원들—이들은 에스텔라처럼 모두 멕시코계 여성들이었다—을 압박했다. 이들은 결국 하나 둘씩 카를로스의 유죄를 인정하는 쪽으로 돌아섰다.

오후 5시가 되어가면서 마침내 에스텔라도 압력에 굴복하고 말았다. 다시 법정으로 돌아간 배심원들은 평결을 알렸다. 카를로스 헤일레가 유죄라고 발표하는 동안 에스텔라는 고개를 들지 못했다. 자신이 죽을 때까지 감옥에서 나오지 못할 거라는 말을 듣는 카를로스의 얼굴을 차마 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에스텔라는 날이 어두워진 후에야 귀가할 수 있었다. 엘파소에서 블루칼라 노동자들이 사는 로어밸리에 있는 에스텔라의 집은 길이 끝나는 곳에 있는 작은 벽돌집이었다. 날이 차가웠다. 에스텔라는 남편과 아들들에게 재판 얘기를 하면서 잘못된 평결이 내려진 것 같다고 했다. 전직 보안관인 남편과 이미 장성한 네 명의 아들들은 에스텔라에게 재판이 끝났고,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해도 다른 방법이 없다고 했다. 아무도 에스텔라의 말을 들어주지 않는 것 같았다.  

에스텔라가 재판 후에 받은 감사장 (이미지 출처: Texas Monthly)

며칠 후 에스텔라의 집으로 우편물 하나가 날아들었다. 열어보니 감사장이었다. "제65지방법원에서 배심원으로 봉사해 주신 것에 감사하는 증서"라고 적혀 있었다. "시민으로서 어려우면서도 중요한 임무를 공정하고 양심적으로 수행하심으로써 배심원에 의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지켜 주셨습니다. 이 권리는 시민의 자유와 생명, 재산을 지켜주는 방패입니다."

감사장의 문구를 읽던 에스텔라는 역겨움에 코웃음을 쳤다. '우리는 죄 없는 사람에게 종신형을 내렸어.' 에스텔라는 감사장을 다시 봉투에 담아 책상 서랍에 던져 넣었다.

에스텔라의 일상은 계속되었다. 해가 지났고, 수십 년이 흘렀다. 아들 넷은 모두 결혼했고, 손주들이 태어났고, 에스텔라는 이제 '아부엘라(abuela, 할머니)'라는 새로운 역할을 맡게 되었다. 에스텔라는 더 이상 일을 하지 않았고, 남편도 하던 일에서 은퇴했다. 그리고 매해 크리스마스가 되면 크리스마스트리에 옆에서 자식들과 손주들에 둘러싸여 함께 선물을 뜯고, 지난 한 해를 이야기했다. 에스텔라는 크리스마스를 소중하게 생각했다.

하지만 크리스마스 가족 모임을 할 때마다 에스텔라의 머리에는 카를로스가 떠올랐다. 텍사스의 교도소에 갇혀있는 그에게 크리스마스는 어떤 날일까? 그에게도 아이들이 있을까? 그의 부모는? 그런 생각을 할 때마다 에스텔라에게 부끄러움이 밀려들었다. 나는 왜 당당하게 내 생각을 주장하지 못했을까?  

그러던 어느날이었다. 에스텔라는 책상 서랍을 정리하다가 낡은 봉투를 발견했다. 까맣게 잊고 있던 그 봉투를 열어 보니 배심원들이 받은 감사장이 나왔다. 2017년의 일이니, 재판 후 27년이 지난 시점이었지만, 그 감사장은 마치 새것처럼 보였다. 에스텔라는 그 감사장을 다시 펴 들고 적힌 내용을 차근차근 다시 읽었다. 공정, 양심, 생명, 자유... 재판 직후에 받아 보고 에스텔라의 기분을 상하게 했던 단어들이었다. 과거의 후회가 새롭게 밀려들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정확하게 표현하기 힘들었지만, 그때와는 다른 생각이 들었다.

에스텔라는 이제는 뭐라도 해봐야겠다고 결심했다.

엘파소 최고의 진공청소기 외판원

1980년대, 카를로스 헤일레는 엘파소 최고의 진공청소기 외판원이었다. 그가 팔던 청소기는 커비(Kirby) 브랜드로, 넓은 흡입구가 돋보이는, 눈에 띄는 우아한 레트로 디자인을 하고 있었다. 커비 청소기는 고가였고, 외판원을 통해서만 구입이 가능했다. 이들은 잠재 고객의 집을 방문해서 물건을 팔았는데, 카를로스가 제일 잘하는 게 바로 그런 일대일 판촉이었다. 그는 모르는 사람의 집을 찾아가 문 앞에서 구매를 설득하는 게 정말 짜릿하고 좋았다.

카를로스는 뛰어난 외판원의 조건을 모두 갖추고 있었다. 열정적이었고, 자신감이 있었을 뿐 아니라, 공감 능력이 뛰어났다. 게다가 검은 머리숱에 항상 웃음을 띤, 잘생긴 얼굴도 그의 강점이었다. 그는 잠재 고객의 집 안에 들어간 후부터 5분 이내에 상대가 편안하게 느끼도록 만들어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렇게 한 다음에 비로소 청소기를 팔 수 있는 것이다.

그만큼 열심히 일하는 직원도 없었다. 카를로스는 사무실에서 가장 일찍 출근하고, 가장 늦게까지 남아있는 사람이었다. 엘파소 전역이 그의 시장이었다. 그는 상대적으로 소득 수준이 높은 고급 동네와 주택지가 새로 개발된 지역, 그리고 국경을 넘어 멕시코의 후아레즈까지 다니며 청소기를 팔았다. 그는 동료들에게 "부끄럼을 타는 외판원의 아이들은 배를 곯는다"라며, "사지 않고 버티는 고객도 끈질기게 설득하면 넘어온다"고 했다. 그의 상사는 그달에 가장 많은 청소기를 판 직원에게 50달러의 상금과 트로피를 주었다. 카를로스는 곰이 일어선 모양을 하고 있어 "곰 사냥꾼 상(Bear Hunter Award)"이라는 이름이 붙은 이 트로피를 하도 많이 받아서 동료들은 그를 "베어"라는 별명으로 불렀다.

카를로스 헤일레가 1980년대에 팔던 것과 같은 커비 진공청소기 (이미지 출처: Texas Monthly)

청소기 판매 일을 처음 시작하던 1982년, 카를로스는 20대 중반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5년을 일한 후에는 펠리카노 드라이브에 직접 대리점을 운영하기 시작했고, 나중에는 열 명이 넘는 외판원과 직원을 고용했다. 그는 대리점 외벽에 큰 글씨로 '헤일레 엔터프라이즈'라는 이름을 적었다.

'아메리칸 드림'을 이루려는 카를로스의 집념은 아버지에게서 물려받은 것이었다. 그의 아버지 프랑코 헤일레는 쿠바가 공산화되던 1966에 고국을 떠나 미국 시카고 서부 교외 지역인 메이우드(Maywood)에 정착했다. 쿠바에서 식료품점을 운영하던 프랑코는 메이우드에서도 식료품점을 운영하며 크게 성공한 후 주류매장도 열었다. 카를로스는 그렇게 열심히 일하는 아버지를 존경했고, 때로는 아버지를 따라 매장에 나와 아버지가 손님들을 어떻게 친절하게 대하는지 지켜봤다. 아버지는 손님들의 이름을 대부분 기억하고 있었다.

신앙심이 깊었던 카를로스의 어머니 에스터는 활달한 성격이었고, 가정을 돌보는 일에 집중했다. 카를로스는 세 명의 형, 누나와 함께 가톨릭계 학교에 다녔다. 막내인 그는 자라면서 아버지와 어머니의 귀여움을 독차지했다. 카를로스의 고등학교 시절 여자친구 킴 스팔론(Kim Spallone)에 따르면 그가 부모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자랐을 뿐 아니라, 학교에서도 인기가 좋았다. 집 근처 공터에서 친구들과 야구를 하며 놀았고, TV에서 시카고 컵스의 경기를 중계하는 날은 함께 모여서 시청했다.

카를로스의 부모는 그가 의사가 되었으면 했다. 1977년 고등학교를 졸업한 카를로스는 부모의 바람대로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근처 커뮤니티 칼리지에서 의과 대학원 진학을 위한 수업을 몇 개 들었다. 카를로스는 후아레즈에서 의대를 다니던 고등학교 친구를 보러 갔다가 인접한 엘파소에 들렀다가 도시가 마음에 그곳 의대에 지원했고, 합격했다.

의대에 진학하기 위해 텍사스로 떠나기 직전, 카를로스는 여자 친구 킴과 결혼했다. 둘은 엘파소의 동쪽 지역에 살고 있던 친구 집에 잠시 얹혀 살았다. 그 주소가 2825 Chaswood Street이었다.

킴과 카를로스가 결혼 후에 살던 집 (이미지 출처: Texas Monthly)

하지만 카를로스와 킴은 너무 어린 나이에 결혼했고, 결혼 생활은 순탄치 않았다. 1980년 5월, 둘은 다른 친구의 집에 갔다가 크게 다투었고, 누군가 경찰을 불렀다. 그 사실에 더 화가 난 카를로스는 출동한 경찰에게 "뭐 하러 왔느냐"고 소리를 질렀고, 경찰은 그를 현장에서 체포했다. 경찰은 주거 침입죄와 체포 불응죄를 적용했다. 그 일로 카를로스에게는 좋지 않은 기록이 남았다. 킴은 그를 고소하지 않기로 했지만, 둘은 그해 10월 결국 이혼했다.

그 후 4개월 만에 카를로스는 또 문제를 일으켰다. 23살의 남자가 16살짜리 여자아이를 사귀기 시작한 거다. 이를 안 아이의 부모가 경찰에 고소했고, 경찰은 카를로스는 미성년자의제강간(statutory rape)으로 체포했다. 이후 여자아이가 합의 하에 관계를 가졌다고 끝까지 주장하는 바람에 처벌은 피할 수 있었다.


1981년 8월,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면서 카를로스의 인생은 크게 변한다. 그가 인생에 가졌던 야망은 아버지에게 온 것이었다. 그는 아버지를 자랑스럽게 하기 위해 열심히 노력했지만,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자 의사가 되고 싶은 생각이 없어진 것이다. 카를로스는 의대를 중퇴했고, 갑자기 미래가 불투명해졌다.

카를로스는 형, 누나들이 모두 사업을 하거나, 직장에 다니는 걸 보면서 자기도 그렇게 돈을 벌기로 하고 적성에 맞는 일을 찾다가 신문 광고를 보고 커비 진공청소기를 팔기로 한다. 그는 커비 대리점에 갔다가 그곳 직원들이 마음에 들었고, 성능 좋고 멋진 제품을 파는 일이 마음에 들었다. 그는 세일즈야말로 자기의 미래라고 생각했다.

그즈음 카를로스는 팸 예이츠(Pam Yates)라는 여성을 사귀고 있었다. 금발의 아름다운 여성이었고, 똑똑한 간호사 지망생이었다. 둘은 관계가 깊어지면서 가정을 꾸리고 싶었고, 1984년에 결혼식을 올린다. 팸과 카를로스는 엘파소가 좋았다. 엘파소의 날씨도, 산도 좋았고, 바로 국경을 넘어 멕시코 후아레즈에서 쇼핑을 하기에도 편리했기 때문이다.

부부는 그곳에서 친구가 많았다. 카를로스는 주말이면 부모님이 고등학교 졸업 선물로 사주신 검은색 폰티악 승용차를 고치고 가꾸는 게 취미였고, 동네 자동차 클럽에 가입했다. 엘파소는 이제 그의 고향과도 같은 도시가 되었고, 그렇게 영원히 그곳에서 살 수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1989년 6월 26일, 그의 인생은 또 한 번 바뀐다.

그가 사무실에서 점심식사를 마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경찰차가 건물 앞에 다가와 멈췄다. 유니폼을 입은 경찰 두 명이 들어오더니 "카를로스 헤일레라는 사람을 찾고 있다"고 했다. 직원들이 무슨 일인가 하고 두리번거렸고, 카를로스는 "내가 카를로스 헤일레입니다" 하고 대답했다. "무슨 일이죠?"

체포 영장을 갖고 왔다는 경찰들의 말에 카를로스는 깜짝 놀랐다. "이게 무슨 장난 같은 소리냐"고 항의했지만, 경찰은 그에게 수갑을 채워 경찰차에 태웠다.

카를로스 헤일레의 최근 사진 (이미지 출처: Texas Monthly)

'에스텔라를 찌른 가시 ②'에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