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서 발행한 1편2편에서는 필 리빈이 소셜미디어가 촉발한 커뮤니티의 분열을 메타버스가 얼마나 더 악화시킬 수 있는지, 그리고 좀 더 구체적으로 메타버스를 어떻게 정의하고 성공 여부를 평가할 수 있는지에 관해 이야기한 내용을 소개했다. 오늘은 마지막으로 팟캐스트에서 리빈과 진행자들이 메타버스에 내재된 디스토피아(dystopia)를 논의한 내용을 모아서 정리했다.

하지만 본격적인 디스토피아 이야기를 하기 전에 먼저 서비스로서의 메타버스가 정말로 좋아질 수 있는지에 관한 언급을 소개해본다. 옛 소련(러시아)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을 보낸 리빈은 아주 흥미로운 관점을 제시한다. 그리고 그 얘기는 "좋은 서비스, 성공하는 서비스란 어떤 것인가"라는, 아주 유익한 논의로 이어진다.


실패할 아이디어, 성공할 아이디어

에릭 뉴커머: 만약 VR 헤드셋의 해상도가 높아지게 되면 제품이 안 좋아서 메타버스가 성공하지 못할 거라는 주장은 힘을 잃지 않을까요?

필 리빈: 말도 안 되는 얘기(bullshit)입니다. (웃음) 저는 옛 소련의 레닌그라드에서 태어나서 자랐습니다. 지금은 상트페테르부르크라고 부르니까 옛날얘기죠. 제가 초등학교 1학년 때까지만 해도 소련의 프로파간다를 많이 봤어요. 제가 어리던 그때 많이 들었던 말이 "(완전한) 공산주의는 아직 존재하지 않는다," "아직 공산주의의 건설이 끝나지 않았지만 언젠가는 만들어질 것이다"라는 거였죠. 우리가 일상적으로 보는 끔찍한 풍경은 공산주의가 아니고, 우리가 그런 진정한 공산주의에 도달하게 되면 정말 훌륭한 사회를 목격하게 될 거라는 얘기였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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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거 아세요? 실패할 아이디어는 완성되기 전에도 그 냄새를 맡을 수 있어요. 저는 "메타버스는 아직 존재하지 않아. 지금 보는 멍청하고 엉성하고 쓸모없는 것들은 메타버스가 아냐. 진정한 메타버스가 오고 있어"라고 하는 소리를 듣고 싶지 않아요.

사람들은 이런 말을 합니다. "지금 있는 건 좋지 않아. 아직 준비가 완전하지 않기 때문에 그래." 하지만 성공한 테크놀로지들을 돌이켜 보면 그렇지 않았어요. 가령, 아주 오래전부터 게임을 했잖아요. 아타리 2600 시절부터 했죠. (지금 기준으로 보면) 형편없었지만, 정말 기가 막혔거든요! 그 게임기가 훌륭하다는 건 그 때 이미 알아볼 수 있었어요.

아타리 2600. 당시 게임이 궁금하다면 여기에서 볼 수 있다.

케이티 배너: 사람들은 페이스북이 간신히 작동하던 시절부터 페이스북을 썼죠. 하지만 곧 많은 사람이 쓰게 될 거라고 아주 분명하게 알 수 있었잖아요.

리빈: 제가 아마존에서 처음으로 책을 주문한 게 아마 1998년 즈음이었을 거예요. 1990년대 말에 한 주문인데 (지금도 들어가 보면) 제가 주문한 기록을 확인할 수 있어요. 그때 제임스 랜디의 책을 두 권 주문한 게 저의 첫 전자상거래 경험이었습니다. 당시 아마존은 아주 원시적인 웹사이트였어요. 텍스트만 가득했고, (1990년대 특유의) 깜빡거리는 텍스트에.. 지금 보면 한심하죠.

그런데 리빈이 샀다는 책의 저자가 제임스 랜디(Jame Randi)라는 사실은 좀 흥미롭다. 제임스 랜디는 원래 마술사였지만, 초능력자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의 거짓말을 밝혀내는 활동으로 유명했다. 정말로 초능력을 증명하는 사람에게 1백만 달러를 주겠다는 챌린지를 했지만 아무도 받아 가지 않았다는 얘기는 잘 알려져 있다. 리빈은 이미 1990년대에도 대중을 현혹하는 주장을 싫어하는 성격이었던 것 같다.

웹사이트는 그렇게 원시적이었는데 그 경험은 놀라웠습니다. 그 순간에 (성공을) 예감할 수 있었죠. 우와, 내가 지금 컴퓨터에서 물건을 샀단 말이야? 이게 우리 집으로 배달되어 온다고? 서점에 가지 않아도 살 수 있는데, 살 수 있는 책의 종류는 집 근처에 있는 반즈앤드노블(당시 미국 최대의 서점 체인) 매장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많았죠. 그 초창기에 말이죠.

아마존의 초창기 웹사이트

(좋은 제품, 좋은 서비스는) 형편없게 시작했다가 나중에 좋아지는 게 아니라, 훌륭하게 시작해서 더 매끈해지고, 더 발전하는 겁니다. (Things don't start terrible and then become good; things start great and then become smoother, more advanced.) 따라서 메타버스가 아직 발전하지 못해서 좋지 못하다는 말은 헛소리입니다. 멍청하기 때문에 좋지 않은 거고(it sucks because it's stupid), 앞으로도 계속 그럴 거예요.

가난한 이들을 위한 세상

배너: 제가 아는 사람 중에서 메타버스를 가장 응원하고 다니는 사람들, 특히 투자 쪽에서 일하는 사람들 중에서 메타버스를 주장하는 사람들이 지난 크리스마스 연휴를 뭘 하면서 보낸 줄 아세요? 비행기를 타고 그리스 크레테 섬에 가고, 프랑스 남부로 가더라고요. 스키를 타러 간 사람들도 있어요. VR 스키 말고 진짜 스키요. 오프라인 매장에 가서 돈을 쓰고, 친구들과 물리적으로 만나서 파티를 했어요. 그 투자자들 중 어느 한 사람도 휴가 기간을 메타버스에서 보내지 않았습니다.

제가 아는 한, 본인들은 다른 시간에도 메타버스 안 해요. 이런 사람들이 메타버스를 가장 열심히 외치고 다니는 사람들입니다. 제가 볼 때 그 사람들이 좋아하는 활동은 메타버스가 아니에요.

케이티 배너는 언급하지 않았지만 배너의 주장을 가장 잘 보여주는 사람은 다름 아닌 메타의 CEO 저커버그다. 그는 회사에서는 메타버스를 개발하는 한편, 개인적으로는 일 년 열두 달 날씨가 좋고 경치가 아름다운 하와이에 사유지를 계속 넓혀가고 있다.
저커버그 부부가 하와이 카우아이섬에서 매입하고 있는 지역
메타버스 발표 때 등장한 흰 얼굴의 저커버그 아바타는 하와이에서 서핑을 하다가 찍힌 이 사진에서 비롯되었다.

톰 도턴: 저는 부자들이 "나는 스페인의 마요르카 해변에 갈 수 있고, 프라이빗 콘서트에 갈 수 있고, 인스타그램 인플루언서의 삶을 살 수 있는데, 나머지 사람들은 그럴 돈이 없으니까 그 사람들이 가상의 세상에서 그런 경험을 할 수 있게 하자"라는 생각으로 메타버스를 추진하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요. 많은 투자가 사실 가진 게 별로 없는 사람들, 평범한 사람들이 원하는 게 뭘까, 하고 짐작하는 작업 아니냐는 거죠.

그런 잠재된 에너지(잠재 수요)를 운동 에너지(투자)로 바꾸는 작업이라면, 메타버스는 부자들 외에는 할 수 없는 경험을 그들에게 제공하는 게 목표라는 겁니다. 시니컬하게 들리겠지만 말이죠.

배너: 제가 아프리카 나미비아에 살던 시절에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주택건설 사업을 기억합니다. 아파르트헤이트(Apartheid, 유색인종 차별정책)가 막 끝났던 시점이었고, 이들에게 주택을 공급하려고 하고 있었죠. 그런데 제대로 된 주택을 짓겠다고 해서 비판을 받았습니다. 수돗물도 나오고 화장실도 있는 주택을 짓는 대신 양철판으로 된 오두막을 지으면 (같은 돈으로) 집 없는 모든 사람에게 집을 줄 수 있지 않으냐는 비판이었어요.

이미 좋은 집을 가지고 있고 가난한 사람들에게 공감하지 못하는, 돈 있는 사람들의 생각이 이런 겁니다. '나는 수돗물이 나오고 화장실이 있는 좋은 집을 가질 수 있지만, 저 사람들은 당장 집이 없잖아. 그러니까 양철로 된 오두막으로도 만족할 거야.' 그런 생각을 가진 부자들에게 사람들은 '그걸로 행복해지지 않을 뿐 아니라, 그렇게 질이 떨어지는 경험에 사람들이 만족할 거라는 그런 생각이 결국 큰 사회문제를 낳을 것'이라고 경고했고, 그들의 생각은 맞았습니다.

나미비아의 양철 오두막촌

따라서 실제 세상에서 사랑하는 사람과 진정한, 대면 경험을 할 수 있는 자원이 있는 사람들이 '돈이 없는 사람들은 완전한 가상의 비물리적인 경험으로 완전히 만족할 것'이라고 생각하거나, 적어도 들고 일어나서 부자들을 죽이지는 않을 거로 생각한다면 오산입니다. 그게 아니라면 다른 사람들은 상하수도가 갖춰진 주택에 사는 동안 우리는 양철 오두막에 사는 거로 만족하겠죠.

리빈: 네, 저는 메타버스에 투자하는 돈으로 사람들의 현실 생활을 개선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왜 '레디 플레이어 원(Ready Player One)'처럼 이상한 디스토피아 시나리오 같은 것에 투자하죠? 그게 탈출구가 됩니까?

생각해보세요. 메타버스라는 아이디어, 적어도 페이스북의 저커버그가 이야기하는 메타버스 아이디어는 창의력이라고는 전혀 들어가지 않은 거예요. 거짓말 보태지 않고 40년 전 아이디어를, 그것도 디스토피아 SF에서 하나도 바꾸지 않고 다시 데워서 가지고 나왔죠.

그런데 그 과정에서 '흠.. 메타버스가 등장하는 SF들은 왜 예외 없이 모두 디스토피아를 그리고 있을까?'라는 질문은 하지 않아요. 메타버스는 유토피아 SF에서 가져온 게 아니에요. 세상을 끔찍한 곳으로 묘사하는 소설, 미래에 대한 경고로 쓰인 SF를 보면서 '그래, 메타버스 만들 수 있을 것 같아'라고 결정한 거죠.

'레디 플레이어 원'에 등장하는 미래의 오하이오주 콜럼버스

저는 회사를 완전히 원격근무로 바꾼 후에 아칸소주 벤튼빌로 이사를 했습니다. 저희 직원들 모두가 그렇게 집값이 비싼 샌프란시스코를 떠나 저렴하고 좋은 환경으로 이사해서 잘살고 있고 문화생활을 누리고 있어요. 양질의 삶을 누릴 방법이 있어요.

지난 글에서 언급했지만, 다른 진행자들(배너, 도턴)은 초대손님인 필 리빈의 비판적인 시각과 비관적인 전망에 동의하지만 한 명, 에릭 뉴커머의 생각은 조금 다르다. 뉴커머는 저커버그의 비전에는 동의하지 않지만 리빈의 비판은 지나치다는 입장이다. 그런데 그의 반대의견은 꽤 설득력이 있다.

뉴커머: 제 (반대) 주장이 그거예요. 메타버스가 대체하려는 시간은 이미 사람들이 원격근무를 하고 비디오 게임을 하는 시간이지, 오프라인의 물리적 환경에서 누리는 시간이 아니라는 겁니다.

도턴, 배너: 하지만 메타버스 기업들이 주장하는 건 그게 아니잖아요. 그 사람들은 단지 줌을 대체하겠다고 그러는 게 아니에요. 메타버스에서 콘서트에 간다잖아요(즉, 오프라인의 콘서트를 가상 콘서트로 대체하려 한다는 것).

뉴커머: 아뇨, 그렇게 주장하는 기업들 있어요! 물론 저도 페이스북이 제시하는 메타버스 비전에 동의하지는 않아요. 그런 점에서 저도 여러분에 동의하고, VR의 가능성을 강하게 주장을 하려는 건 아니에요. 따라서 저는 페이스북의 메타버스 비전을 옹호하려는 사람은 아닙니다. 하지만 저는 사무실에서 하는 일을 아바타로 대체하거나, 지속적인 온라인 오피스를 유지하고, 비디오 게임들 사이가 좀 더 연결되고 하는 것들이 말이 된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아까 리빈 씨께서 포트나이트가 VR에서 하나도 재미없다고 하신 건, 사람들이 새로운 걸 좋아한다는 사실을 지나치게 평가절하하시는 거 같아요. 물론 사람들은 게임을 하려고 포트나이트를 시작했죠. 마인크래프트처럼 말이죠. 그런데 포트나이트 안에서 콘서트가 가능한 거예요. 이렇게 사람들의 에너지를 (게임에서 콘서트로) 방향 전환하는 거, 그런 건 멋지고 새로운 일이잖아요. 저는 그렇게 새로운 걸 기꺼이 시도하려는 사람들의 열린 태도가 메타버스를 만드는 동력이라고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탈중앙화, 웹3 같은 걸 사용하는 금전적 이해의 경우, 사람들은 자신이 투자한 (=온라인에서 구매한) 것들이 다른 컨텍스트(게임, 가상공간)에서도 인정받고 싶어 하는 욕구 같은 게 서로 다른 공간을 연결(해서 메타버스를 만들려고)하는 데 관심을 갖게 만든다고 봅니다. 그게 제 생각이에요.

리빈: 방금 말씀하신 게 페이스북이 설명한 비전보다 훨씬 더 정확한 것 같아요. 물론 저는 여전히 그게 현실화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제가 틀릴 수 있죠. 만약 1년, 혹은 2년 후에 메타버스가 사람들에게 기쁨과 즐거움을 주는 것으로 드러날 수 있다면, 저도 그렇게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저는 단지 그런 일이 일어날 것 같지 않은 거고, (일어나도) 디스토피아일 거로 생각할 뿐입니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디스토피아가 되지는 않을 겁니다. 아무도 메타버스를 쓰지 않을 거니까요.


여기까지가 1시간 동안의 대화 중 메타버스에 관한 내용이다. 이후 30분 동안은 주제를 바꿔서 필 리빈이 새로 세운 회사(올터틀즈, 음흠)와 완전한 원격근무, 직원에 대한 보상원칙 등에 관해 이야기하는데, 이 글에서 소개하지는 않겠지만 한 번 들어볼 만한 흥미로운 얘기가 많다. (여기에서 들을 수 있다.)

에릭 뉴커머의 반박처럼 필 리빈의 주장은 다소 일방적인 과소평가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렇게 주장하는 건 리빈만이 아니다. 오터레터 독자 윤채원님께서 앞의 글을 읽고 보내주신 가디언의 기사도 리빈의 생각과 아주 비슷하다. 하지만 더 나아가서 리빈이 언급하지 않은 온라인 공간의 여성 혐오와 성 소수자 혐오 등의 문제까지 이야기한다. 글이 참 좋으니 꼭 한 번 읽어보시길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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