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버스 전도사들의 이야기에 자주 등장하는 게 "메타버스는 이미 우리 곁에 와 있다," "우리는 이미 메타버스를 사용하고 있다"라는 주장이다. 메타의 저커버그나 마이크로소프의 나델라가 메타버스를 준비하고 있다는 얘기를 들으면 메타버스는 아직 도착하지 않은 것 같은데 우리가 이미 메타버스를 경험하고 있다는 주장은 어떻게 성립하는 걸까?

현재 상황을 초기 인터넷에 비유하는 건 정확하지 않다. 첫 인터넷 실험에 성공한 후 약 20년 동안 대중은 인터넷을 사실상 사용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미 메타버스를 경험하고 있다"는 주장은 이미 대중이 온라인 게임이나 줌(Zoom)을 사용하는 경험이 초기, 혹은 원시적 형태의 메타버스라는 얘기다. 과연 그럴까? 필 리빈은 이 문제에 대해 분명한 의견을 갖고 있다.


톰 도턴: (팟캐스트 공동 진행자) 에릭은 게임이야말로 메타버스가 왜 재미있고, 좋은지, 그리고 어떤 의미에서 이미 세상에 존재한다는 증거라고 생각하죠. 어떤 게임을 좋아하세요?

필 리빈: 자랑스럽게 할 말은 아니지만 몇 주 전에 마인크래프트를 다시 시작했어요. 거의 10년 동안 안 했는데, 친구들이 마인크래프트가 많이 바뀌었다고 해서요. 그전에는 '옥시즌 낫 인클루디드(Oxygen Not Included)'를 하는 데 많은 시간을 썼죠. 이 게임은 쉽게 설명하자면 화장실 시뮬레이션인데요, 우주에서 화장실 배관을 고치는 게임이 재미없을 거라고 생각하신다면 큰 오산입니다. 정말 재미있어요.

도턴:  제 생각에는 방금 하신 얘기는 결국 메타버스를 옹호하는 주장처럼 들리는데요? 결국 MMORPG 같은 네트워크 게임은 취미 활동으로 하는 일상의 탈출(현실도피)이기 때문에 게임 밖의 온라인 세상에 그걸 연결하고 싶지 않다는 말씀이시죠? 게임은 게임으로 놔둬야 좋을 뿐, 게임이 아닌 세상과 즐기는 게임을 연결하는 건 아무런 매력이 없다는 것으로 이해했습니다.

게임, 협업, 메타버스

리빈: 네, 그게 제가 하는 얘기 중 하나예요. 다른 하나는, 이건 멍청한 걸(dumb things) 주장하는 사람들이 사용하는 전형적인 방법인데요, 이미 존재하고 인기 있는 것들을 포함하도록 개념을 재정의(redefine)한다는 거예요.

가령 "포트나이트 게임도 메타버스"라는 주장이 그렇죠. 포트나이트가 왜 메타버스죠? 그건 그냥 포트나이트예요. 메타버스 하이프가 생기기 전부터 존재하던 게임입니다. 저는 월드오브워크래프트(WoW)를 하는 데 많은 시간을 썼어요. 에버노트 초기에 우리 팀이 이 게임에 너무 몰두하는 바람에 이러면 안 되겠다 싶어서 에버노트에 집중하기 위해 다 같이 이 게임을 지우기도 했죠. 그런데 월드오브워크래프트가 메타버스라구요? 그거 메타버스 아닙니다.

사람들이 포트나이트를 하는 이유는 그게 재미있어서입니다. 포트나이트를 VR로 할 수 없어서 VR 버전을 안 하는 걸까요? 누군가는 만들었을걸요? 포트나이트를 VR로 하면 재미없어서 안 하는 것뿐입니다.

도턴: 이미 존재하는 걸 메타버스라고 재정의한 후에 "봐, 너는 이미 메타버스 하고 있는 거야"라고 말한다는 얘기죠.

에릭 뉴커머: 개더(Gather)는 해 보셨어요? 그것도 세쿼이아캐피털이 투자한 회사죠. 일종 비디오 챗과 협업을 하는 메타버스인데, 그건 어떻게 생각하세요?

리빈: 오큘러스를 사용해서 하는 것들은 많이 해봤어요. 페이스북의 호라이즌을 포함해서요. 저보고 해보라고 초대하는 바람에 써봤는데요, 사람들이 모이자마자 다들 불평을 늘어 놓더라구요. 그걸 듣는 순간 당장 여기를 나가야겠다고 생각하고 (메타버스 내에서) 자살을 하기로 했죠. 그래서 절벽에서 뛰어내렸는데,  곧바로 다시 태어나더라고요, 불평하는 사람들 옆에. (웃음) 거기에 들어가면 자살도 못 해요.

도턴: 지옥이네요.

리빈: 지옥이 뭐냐면요, 메타버스에서 만나는 사람들이 지옥입니다. 저는 사람들과 이야기하는 거 좋아해요. 온라인에서 비동기적(asynchronous, 이메일처럼 실시간으로 확인할 필요가 없는 경우)으로, 혹은 동기적(synchronous, 실시간 챗이나 줌 대화처럼 실시간으로 진행되는 경우)으로 대화하는 거 좋아요. 저희가 (올터틀즈에서) 만든 게 바로 그걸 돕는 서비스고요.

하지만 쓰고 있으면 땀 나고, 시야를 제한하는 헤드셋을 쓰고 다리가 없는 스큐오모픽 3-D 아바타들과 얘기할 생각은 전혀 없습니다.

메타버스 정의하기

뉴커머: 개더나 스타듀밸리(Stardew Valley) 같은 2-D앱도 메타버스일까요? 아니면 메타버스를 훨씬 더 엄격하게 정의하시나요?

리빈: 좋은 질문입니다. 만약 줌이 메타버스라고 한다면? 메타버스는 이미 대성공입니다.

뉴커머: (웃음) 제 생각에는 줌을 메타버스라고 부를 수 없을 것 같아요. 줌은 지속되지(persistent) 않으니까요. 줌을 하루 종일 켜놓을 사람은 없죠. 메타버스가 반드시 VR이어야 할 필요는 없지만, 오래 지속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리빈: 좋아요. 그럼 지속되는 2-D 환경에서 다른 사람들과 만나서 대화를 할 수 있는 게 메타버스라면 슬랙(Slack)이나 피그마(Figma), 줌에 그런 버전이 있을 겁니다. 세컨드라이프(Second Life)도 포함되겠죠. 그게 메타버스의 교활한 재정의(weaselly redefinition)입니다.

팟캐스트 진행자 중에서 뉴커머는 리빈의 주장에 반대하는 입장(이라기 보다는 악마의 변호인devil's advocate 역할)이고, 도턴은 동의하는 쪽이다. 리빈이 제기한 메타버스의 교활한 재정의에 대해서 도턴이 아주 좋은 예를 가져온다.

도턴: 맞아요. 그게 아주 페이스북스러운 짓이기도 하죠. 제가 페이스북 와치(Watch)를 취재할 때 일이 기억납니다. 기억하실지 모르겠지만, 제가 아는 바로는 와치는 실패작이었습니다.

그런데 (실패가 분명해지자) 페이스북은 와치를 새롭게 정의했죠. "페이스북에서 보는 모든 동영상이 페이스북 와치"라는 거에요. 그렇게 바꿔놓고는 "사람들은 페이스북 와치에서 수십억 개의 동영상을 본다"고 했죠.

(리빈 씨가) 메타버스에 대해서 말씀하시는 것도 같다고 봅니다. 반응이 없으면 "여러분이 잘 쓰고 있는 줌이 메타버스"라고 하겠죠.

리빈: 만약 지리적으로 떨어져 있는 사람들이 다양한 기기를 사용해 온라인에서 지속적으로 대화하는 걸 메타버스라고 한다면 메타버스는 이미 엄청난 성공입니다. 하지만 메타버스가 VR를 사용하고 3-D에, 스큐오모픽 비주얼을 사용하고 NFT를 포함한 거라면, 메타버스는 절대로 성공하지 못할 겁니다. 헛소리가 가득한 얘기니까요.

메타버스의 '성공' 정의하기

이렇게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 식으로 정의한다면 메타버스가 성공했느냐, 실패했느냐도 규정할 수 없다. 리빈의 말처럼 절대로 실패할 수 없는 정의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리빈은 메타버스가 어떤 단계에 도달하면 성공했다고 할 수 있는지를 정의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의 제안을 들어보자.

리빈: 제 생각이 틀렸을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습니다. 저는 이런저런 주장을 항상 하기 때문에 언제든지 제가 한 얘기가 완전히 틀렸다고 밝혀질 가능성이 아주 큽니다. 저는 틀리는 것을 개의치 않습니다. 저 스스로에게 "내가 틀리는 건 좋다"고 항상 얘기하죠. 이건 제게는 일종의 초능력입니다.

하지만 제가 맞았는지 틀렸는지를 확인할 수 있는 근거가 필요합니다. 1년, 혹은 2년 안에 어떤 측정 가능한 일이 일어나면 제가 "내가 틀렸네. 메타버스 성공했군"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하이프(hype)를 그 기준으로 삼을 수는 없습니다. 하이프는 파생된(derivative) 것이기 때문에 그걸로 성공 여부를 측정할 수 없습니다.

특정 암호화폐의 가치가 올라갔다고 해서 메타버스가 성공했다고 할 수도 없습니다. 암호화폐의 가치는 투기적(speculative, 추측에 근거한)이기 때문이죠. 12개월이든, 24개월이든 원하는 기한을 설정하고 그 기한 안에 어떤 조건이 발생하면 "이게 메타버스야" "사람들이 메타버스에서 시간을 쓰고, 좋아하고, 오가닉(organic, 인위적이지 않은)한 가치를 얻고 있어"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케이티 배너: 저는 사람들이 사용하는 시간만이 측정 가능한 척도(metrics)라고 생각합니다.

리빈: 하지만 사람들이 어디에서 시간을 쓰는지도 정해야죠. VR 헤드셋을 쓰고 보내는 시간이어야 하는지, 아니면 모니터를 보면서 보낸 시간도 메타버스에 포함하는 건지를 규정해야 합니다.

도턴: 그럼 오큘러스 (VR) 헤드셋이 크리스마스 선물로 큰 인기를 끄는 건 성공 여부의 기준이 될까요? 많은 사람이 오큘러스 앱을 다운로드했는데, 그렇다면 회사가 이 제품을 많이 팔았다고 짐작할 수 있는데 말이죠.

리빈: 저도 샀어요. 제가 그동안 사서 벽장에 처박아둔 VR 헤드셋이 어마어마하게 많아요. 그 벽장문을 조심해서 열지 않으면 쏟아져 내려서 깔려 죽을지 몰라요.

저는 새로운 VR 헤드셋이 나올 때마다 똑같은 일을 반복합니다. 신제품이 나오면 '오, 멋진데?'하고 바로 삽니다. 그걸 갖고 놀다가 3일째가 되면 흥미가 떨어지죠. 그래도 1, 2주 동안은 TV 옆에 놔둬요. 대신 용도가 바뀝니다. 친구들이 오면 쓰고 놀게 하죠. 그리고 친구들이 헤드셋 쓰고 멍청해 보이는 모습을 비디오로 찍어서 같이 보면서 웃는 거죠. 그렇게 2주가 지나면 그 재미도 없어져서 벽장에 넣어버립니다. 이걸 1, 2년에 한 번씩 지난 20, 30년 동안 반복했어요.

사용시간 vs. 판매량

배너: 저는 하드웨어의 판매량도 결국 하이프라고 봅니다. 스냅챗 스펙터클도 그랬지만, 각종 하드웨어가 처음에는 잘 팔리고 그다음에는 아무도 안 쓰니까요. 사물인터넷 제품들도 그래서 잘 팔린 후에 사람들이 쓰는 것도 있지만, 안 쓰는 것도 많죠.  

도턴: 아마존 에코(스마트 스피커)도 그렇죠. 아마존이 엄청나게 팔았고, 저도 집에 두 개 있지만, 그게 제 일상을 바꾸지 않았거든요. 그게 저를 메타버스로 인도하지 않았습니다.

리빈: 제가 벤처투자자(VC)를 하던 시절에 얻은 가장 큰 깨달음이 있습니다. 그 깨달음 덕분에 제가 쓸 만한 VC가 될 수 있었죠. 그건 바로 "내가 사고 싶은 제품과 내가 투자해야 하는 회사는 다르다"는 거였습니다.

뒤늦게 안 사실인데, 저는 제품을 사는 기준이 아주 낮더라고요. 특히 그게 테크 제품이면 불이 반짝이고 버튼만 있으면 솔깃해서 사버립니다. 그래서 처음에는 둘을 혼동했어요. '내가 사고 싶은 제품을 만드는 회사면 투자해야 하는 거 아닌가?'하고 말이죠. 그러다가 그 둘은 큰 차이가 있다는 걸 깨달은 거죠. 말씀하신 게 맞아요. 하드웨어 판매량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사람들이 얼마나 사용하느냐(activity)가 중요한 거죠.

따라서 가령 메타버스를 옹호하는 사람들이 "12개월 후인 2023년 1월까지는 사람들이 스마트폰을 사용하는 시간의 10%에 해당하는 시간을 VR을 쓰고 보내게 될 것"이라고 한다면 적절한 예측일까요? 저는 그런 일은 절대 일어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I hate the metaverse" ③ 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