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의 조금 다른 버전이 세계일보 '박상현의 일상 속 문화사'에 게재되었습니다.


새롭게 영토에 편입되는 서부 지역에 노예제도를 확대하지 않으려는 연방정부(북부)와 노예제도를 지키려던 남부 반란군이 엄청난 인명을 희생하며 벌인 남북전쟁 이후, 미국에서는 남부연합(Confederate States)의 장교와 병사들의 동상이 끊임없이 문제가 되어 왔다. 반란군을 지휘한 사람들의 동상을 허용하는 건 언뜻 한국에 북한군 장교의 동상이 들어서는 것과 비슷하게 들리지만, 미국의 역사와 정치 지형에서 그들의 동상은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반란세력인 남부연합을 이끌었던 로버트 E. 리 장군의 동상. 버지니아주 대법원이 최근 철거 판결을 내렸다.

우선 미국은 전쟁 이후 분단되지 않았다. 그렇다고 완전한 통합이라고 하기에는 남부 사람들의 울분이 남았다. 전쟁 후에도 100년이 넘도록 미국, 특히 남부에서는 흑인들에 대한 차별이 강하게 남아있었고, 이를 인정하지 않고 사회를 통합하려는 연방정부, 즉 워싱턴 정치인들에 대한 불신이 사라지지 않았다. 그런 남부가 자신들이 자랑하는 남부연합군 장교들의 동상을 자기네 주에 세우는 것을 막기는 쉽지 않다. 우선 헌법이 보장하는 ‘표현의 자유’가 있고, 각 주의 문제에 연방정부가 개입하는 것에 대한 강한 불신이 있기 때문에 많은 남부 주에서는 자유롭게 반란군 장교의 동상을 세워두고 있었다.

그뿐이 아니다. 포트 베닝(Fort Benning), 포트 브래그(Fort Bragg)처럼 언론에 자주 등장하는 유명한 미군 기지들의 이름이 남부연합군 장군들의 이름을 갖고 있기까지 하다. 지금의 미군은 그 정통성이 당연히 북부군에 있는데, 그런 그들을 상대로 반란을 일으켜 공격한 군인의 이름이 미군 기지에 붙는다는 건 누가 생각해도 황당한 일이지만, 대부분의 미국인은 이런 사실을 모르고 있다. 2차 대전 때 해외로 파병할 군인들을 훈련시키기 위해 급하게 기지들을 건설하는 과정에서 각 주에 명명권을 주는 과정에서 벌어진 일이다.

미 육군의 대표적인 기지인 포트 브래그는 남부연합의 장군 브랙스턴 브래그의 이름을 지니고 있다.

하지만 지난 몇 년 사이에 미국에서는 경찰의 흑인에 대한 인종차별 문제가 크게 두드러졌고, 이에 대한 반발로 BLM(흑인의 생명도 소중하다) 운동이 크게 일어나면서 미국 사회 곳곳에 남아있던 백인우월주의의 요소들이 새롭게 조명받기 시작했다. 그중 하나가 바로 동상들이다. 비판의 대상에는 남부 주에 남아있는 남부연합군 장교들의 동상뿐 아니라, 미국 원주민들을 학살한 앤드루 잭슨 대통령의 동상, 그리고 더 거슬러 올라가 원주민들이 살고 있던 미국 대륙에 피의 역사를 시작한 크리스토퍼 콜럼버스의 동상도 포함된다.

그리고 많은 동상들이 제거되고 있다. 당장 이 글을 쓰는 동안에도 버지니아주에서 리치몬드시에 무려 131년 동안 세워져 있던 남부연합군 총사령관 로버트 E. 리 장군의 기마상을 제거하기로 결정했다. 이런 종류로는 가장 큰 동상이고, 그래서 가장 관심이 크게 모였던 동상이지만 버지니아주 대법원이 내린 결정이라 곧 제거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궁극적인 ‘회복’은 단순히 백인우월주의자들의 상징을 제거하는 것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미국의 역사가 백인들의 역사가 아니라면, 백인들로만 채워졌던 자리에 다양한 인종과 문화가 정당한 대접과 인정을 받고 들어서야 하기 때문이다.

최근 미국 육군사관학교에 설치된 '버펄로 솔저' 기마상

그래서 주목받는 결정이 흔히 ‘웨스트포인트’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미국 육군사관학교가 최근 캠퍼스에 버펄로 솔저(Buffalo Soldier) 동상을 세운 것이다. 약 3 크기의 이 동상은 말을 탄 흑인 병사가 USMA(U.S. Military Academy) 깃발을 들고 있는 모습을 묘사한 기마상이다. 웨스트포인트 캠퍼스에서 야외에 세워진 동상으로는 최초의 흑인 동상이다. 사관학교장 대럴 A 윌리엄스(본인이 흑인이기도 하다) 이 동상을 공개하면서 “버펄로 병사(솔저)들은 웨스트포인트의 모토인 책임과 명예, 국가를 대표한 사람들”이라고 했다. 버펄로 병사들은 누구이고, 왜 그런 이름이 붙었을까.

1802년에 설립된 웨스트포인트는 1877년에 첫 흑인 생도를 졸업시켰다. 헨리 오시언 플리퍼라는 이 생도는 남부 조지아주에서 1856년에 노예로 태어났다가 남부전쟁 중에 노예 신분에서 해방되었고, 전후 재건기(Reconstruction)에 애틀랜타 대학교를 다니고 웨스트포인트에 입학했다. 사관학교에는 이미 네 명의 흑인 생도들이 다니고 있었지만 백인 생도들의 차별로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하지만 플리퍼는 불굴의 의지로 차별을 이겨냈고 최초로 이 학교를 졸업한 흑인 장교가 되었다.

그런 그가 배치된 곳은 제10 기병연대(Cavalry Regiment)였다. 이 기병 부대는 모두 흑인으로만 구성된 부대였다. 당시만 해도 흑인들은 백인과 같은 부대에서 근무하지 못했다. 미군이 인종 구분을 폐지하고 한 부대로 통합된 것은 1948년으로, 6·25전쟁이 사실상 흑백병사가 한 부대의 부대원으로 참가한 첫 전쟁이었다. 흑인 병사들의 인력이 필요했던 미군은 그들을 두 개의 기병연대(9, 10기병)와 두 개의 보병연대(24, 25보병)라는 별도의 부대를 만들어 배치했다. 이 네 부대에 소속된 흑인 병사들을 가리키는 표현이 바로 ‘버펄로 병사’이다.

어거스트 생 고든의 제작한 흑인 부대의 부조 작품

이 네 개 부대 중 최초인 제10보병연대가 만들어진 것은 1866년의 일로 남북전쟁(1861-1865) 직후였다. 물론 흑인 병사들은 남북전쟁에 참가해서 싸웠고, 전쟁 중에 이미 몇 개의 흑인연대들이 존재했다. 대표적인 부대가 제54 매사추세츠 자원병 연대로, 보스턴에 이들을 묘사한 부조 작품이 잘 알려져 있다. 이를 제작한 조각가 어거스트 생 고든은 뉴욕시에 금박이 덮인 것으로 유명한 윌리엄 셔먼 장군의 기마상도 제작했는데, 이 동상에서 셔먼 장군이 탄 말은 조지아의 상징인 전나무를 짓밟고 있어서 남부인들의 기분을 상하게 한다. 미국에서 동상은, 특히 장군의 동상은 정치적인 해석에서 자유로울 수 없음을 보여주는 예다. 하지만 ‘버펄로 병사’라는 별명이 붙은 네 개의 부대는 전시에 임시로 만들어진 연대가 아닌, 미국 의회가 정식으로 창설을 결정한 부대라는 점이 다르다.

뉴욕시를 대표하는 이미지 중 하나인 셔먼 장군의 동상은 남부 조지아를 상징하는 조지아 전나무를 짓밟고 있다. 

그런데 왜 하필 흑인 병사들을 ‘버펄로 병사’라고 불렀을까. 여기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원래 버펄로 병사는 미국 원주민의 한 부족인 샤이엔(야생 버펄로라는 뜻)의 전사들을 가리키는 말이었는데 이들 부대에 붙었다는 이야기도 있고, 10보병연대를 설립하고 코만치 인디언 토벌에 나섰던 벤저민 그리어슨 대령은 코만치 족이 흑인 병사들을 그렇게 불렀다고 얘기했다는 설도 있다. 흑인의 검은 곱슬머리가 버펄로 몸에 난 털을 연상시켰다는 얘기다. 그 기원이야 어떻든 그렇게 한 번 붙은 ‘버펄로 병사’라는 이름은 미군의 흑인부대 상징이 되었다.

이번에 웨스트포인트에 세워진 흑인 병사 기마상은 사관학교 졸업생들로 이루어진 ‘웨스트포인트 버펄로 솔저협회’가 모금한 100만달러로 세워졌다. 웨스트포인트는 2019년에는 사상 최대의 흑인 여자 생도(34명)를 졸업시켰고, 작년에는 최초로 여성 시크(Sikh) 교도를 졸업시켰다. 백인 남성들의 교육기관으로 출발했지만, 이제는 다양화하는 미국 사회를 반영하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