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월스트리트저널이 "한 세대의 미국 남성들이 대학을 포기하고 있다"는 피처 기사를 발행했다. 대학교에 진학하는 남학생들의 수가 줄어들고 있다는 건 이미 다들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이 기사에서 내놓은 전망은 그간 알려진 것보다 좀 더 충격적이다. 우선 2020~21학년도에 미국 내 대학교에 다니는 학생 중에서 여학생의 비율은 59.5%, 남학생은 40.5%로 사상 최대의 격차가 발생했다는 것이다. 대학생의 숫자는 5년 전에 비해 150만 명이 감소했는데, 남학생들이 그 감소분의 71%를 차지한다. 대학교에 진학하는 남학생들의 숫자만 적은 게 아니라, 진학한 후에도 남학생이 졸업할 확률(59%)은 여학생(65%) 보다 떨어진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이런 추세가 지속될 경우 몇 년 후에는 미국에서 대학교를 졸업하는 여학생들의 숫자는 남학생의 두 배가 될 것으로 전망했다. 변화 추세가 궁금해서 찾아보니 2018년에 나온 미국 교육부의 자료를 분석한 아래의 그래프를 볼 수 있었다. 여학생, 남학생의 비율이 6:4가 되는 것은 2027년이었는데, 그 전망이 약 5년 정도 빠르게 현실화한 것이다.

출처: American Enterprise Institute

위의 표를 보면 미국 내에서 대학교 학위를 받는 여학생과 남학생의 비율은 약 60년 만에 완전히 뒤바뀐 것을 알 수 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흔히 생각하는 것처럼 남학생들이 비디오 게임에 열중하는 동안 여학생들이 착실하게 공부하는 바람에 이렇게 되었을까? 남학생들의 공부에 관한 관심을 게임과 포르노가 빼앗는다는 주장은 이 문제를 이야기할 때마다 등장하고, 월스트리트저널 기사에서도 언급한다. 남녀의 비율이 역전되기 시작한 것이 미국에서 컴퓨터 게임이 등장한 1980년대인 것을 보면 틀린 말은 아닌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컴퓨터 게임이 남학생들의 집중을 빼앗는 건 사실이라도 추세 전체를 설명하지는 못한다. 위의 자료를 보면 이미 1960년대 말에도 남학생들의 비율은 꾸준히 감소하기 때문이다. 이건 컴퓨터 게임이 설명할 수 없다.

여성과 남성이 평등한 교육의 기회를 보장받는 사회라면, 아니 모든 아이가 젠더와 무관하게 교육을 받는 이상적인 환경에서라면 위 그래프의 증감 추세는 1981년에 멈췄어야 한다. 여학생들의 비율은 더 이상 증가하지 않고, 남학생들의 비율은 더 이상 감소하지 않아서 그 이후로는 50:50의 비율이 꾸준히 유지되는 게 바람직하다. 1981년까지만 해도 사람들은 대학생의 성비 변화가 교육 기회의 남녀평등을 향한 진보라고 생각했겠지만, 그 이후 40년 동안의 변화를 보면 여기에는 다른 동인이 존재하는 게 아닐까, 하는 의심을 해보게 된다. 사람들이 자꾸 게임을 문제의 원인으로 지목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남학생들의 동기 상실

그러나 전문가들이 지적하는 것처럼 게임이 중독적일 수는 있지만, 게임 중독, 즉 행위중독(behavioral addiction)은 문제의 원인이 아닌 결과일 가능성이 높다. 어떤 게임도 자신의 인생이 잘 풀리는 성공의 경험만큼 중독적이지는 않다. 자신에게 기회를 허용하지 않는 현실에서 빠져 나갈 수 없는 사람들이 하는 손쉬운 선택이 약물이나 행위중독이라는 얘기다. 물론 여기에는 개인 차이가 존재하고, 호르몬 등의 영향으로 젠더 차이 역시 존재하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그런 선택을 한 사람들의 개인적 책임이나 중독의 문제를 이야기하기 전에 그들이 처한 환경을 살펴보는 것이 문제의 근원에 다가가는 방법이다.

위의 기사에는 흥미로운 얘기가 나온다. 한 대학교의 입학 담당자에 따르면 고등학생들이 대학교에 지원하는 과정에서 여학생들이 남학생들보다 서류 제출 등의 절차를 더 꼼꼼하게 챙긴다는 것이다. 미국의 대학교 지원과정은 한국에서 보다 훨씬 더 많은 손이 가는데, 미국의 고등학생들은 평균 8~12개의 대학교를 지원하기 때문에 지원 과정을 제대로 챙기지 않으면 실수를 할 여지가 많다. 그런데 여학생들이 이를 더 잘 챙긴다는 것이다. 이런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많은 사람들이 쉽게 여성과 남성의 스테레오타입으로 회귀하는 오류를 저지른다. "아무래도 여자애가 남자애보다 꼼꼼하지"라는 생각 말이다. 세상의 모든 편견과 마찬가지로 이런 편견은 과학적인 근거가 없이 남자아이들과 여자아이들 모두에게 피해를 준다. 남학생들이 절차를 제대로 챙기지 않는 것이 그 아이들이 받아온 편견("남자애치고 참 섬세하고 꼼꼼하네" "남자애는 좀 대범해야지"같은 말들이 그렇다)에 따른 결과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더 흥미로운 건 여학생들이 학교 내 단체에서 리더십을 차지하는 비율이다. 2019~20학년도에 미국 대학교에서 학생회장 등의 단체 리더십을 여학생들이 차지하는 현상이 뚜렷하게 나타난다는 것이다. 리더는 당연히 남자가 해야 한다고 생각하던 과거와는 완전히 달라진 모습이다. 이를 두고 기사에서는 남학생들이 여학생들보다 목적의식이나 동기가 떨어지는 것을 지적한다. 캠퍼스에서 여학생들이 형편없이 적었던 시절부터 대학교와 사회에서는 여학생들에게 동기를 부여하고 힘을 주는(임파워먼트, empowerment) 노력과 프로그램이 활발하게 전개되었지만, 남학생들을 위한 프로그램은 존재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 사실을 잘 보여주는 것이 백인 남학생들이다. 미국 내 대학교에서 남녀비율의 격차가 가장 두드러지는 집단이 백인인데, 특히 인류의 근현대사에서 항상 '지배자'로 군림해온 백인 남성들에 대한 임파워먼트는 불필요한 것으로 여겨진다는 것이다. 백인 남학생들의 경우 같은 인종의 여학생들에 비해 입학률이 낮은데도 불구하고 이를 개선하자는 목소리는 미국 대학교 내에서 묻혀버린다고 한다. "이미 특권을 누리고 있는 집단에 왜 더 자원을 몰아주려고 하느냐"는 비판이다.

월스트리트저널의 기사는 아무리 특권을 누리는 남학생들이라고 해도 도와주지 않으면 이런 추세에서 빠져나올 수 없다는 쪽으로 결론을 낸다. 틀린 주장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인구학적 변화는 시계추와 같아서 모멘텀이 생긴 추세를 가만히 둔다고 "바람직한" 지점에 멈추지 않는다. 캠퍼스에 남학생들이 적은 것은 여학생들이 적은 것보다 더 나은 상황이라고 할 수 없다.

무엇이 문제일까?

위의 그래프에서 여학생, 남학생의 비율에 차이가 가장 적은 건 아시아계다. 그 이유가 아시아계의 높은 향학열 때문인지, 아니면 전통적인 젠더의식이 살아있기 때문인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한국으로 눈을 돌려보면 얘기는 조금 다르다. 한국도 미국처럼 여학생들의 대학 진학률이 앞선다. 한국에서 남녀 대학생의 비율의 역전된 것은 2005년으로, 2018년 자료에 따르면 여학생 73.8%, 남학생 65.9%이고, 그 차이는 꾸준히 벌어지고 있다. 즉, 이 추세는 미국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는 얘기다.

출처: 더핀치

하지만 여기에서 반드시 언급해야 할 것이 있다. 대학 학위의 여부는 졸업생들이 직장에서 받는 대우에 반영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다. 한국의 2,246개 기업 중에서 여성 임원의 비율은 5.2%에 불과했고, 아예 한 명도 없는 경우가 무려 63.6%에 달한다. 이런 상황에서 단순히 여학생들이 대학교에 더 많이 진학하는 것을 마치 '남성의 위기'처럼 받아들여야 하는지는 한번 생각해볼 문제다.

더 나아가서, 이런 상황을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사용하는 언어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여학생의 대학 진학률이 높아지는 추세를 설명한 어느 기사에서 한 입시 전문가는 이렇게 말한다. “수시, 정시 모집인원 추이에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학생부 중심의 수시모집 비율이 크게 늘면서 내신 관리에 비교 우위가 있는 여학생의 대학 진학률이 남학생보다 앞서게 된 것.” 여학생들이 남학생들보다 내신을 잘 관리하는 것은 사실일지 모르지만, 이 전문가가 사용한 "비교 우위"라는 표현은 마치 여학생들이 유리한 위치에 있다는 말처럼 들릴 수 있다.

여학생들이 내신 관리를 잘했다면 그것은 그들이 그만큼 더 노력했기 때문이지, 그들이 내신 관리에 유리하기 때문이 아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비교 우위" 같은 표현은 '남학생들이 여학생들에게 뒤지는 것은 제도적인 문제'라는 인상을 준다. 수시모집을 늘린 현행 제도가 남학생들에게 불리하게 되어있다는 투다. 흥미로운 건, 남학생들의 대학 진학률이 여학생들보다 훨씬 높았던 시절에는 여학생들은 타고난 지적 능력이 남학생들 보다 떨어지기 때문이라는 얘기를 사람들이 대수롭지 않게 했다는 사실이다.

다양한 사회적 원인의 결과로 나타나는 현상을 젠더의 특성으로 치환해서 설명하려는 일은 항상 존재했다. 여성이 능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것은 제도의 탓이 아니라 타고난 능력의 부족으로 해석해온 것이 인류사회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정작 남학생들의 점수가 떨어지고, 진학률이 떨어지자 사회는 남자아이들의 지적 능력을 의심하는 대신 입시 제도나 게임과 같은 사회적 원인을 심각하게 들여다보고 있는 상황은 코믹하기까지 하다.

맞다. 그 많던 남학생들이 캠퍼스에서 사라지고 있는 것은 그들이 여학생들보다 아이큐가 떨어져서가 아니라 사회적인 요인 때문이다. 하지만 그 주장에 동의하는 사람이라면 현재 여성이 직장에서 승진하지 못하고 밀려나는 것도 그들 개인의 타고난 능력 탓이 아니라 사회가 결정한 것임을 인정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