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생각은 중국에도 똑같이 적용되었고, 21세기에 들어와서도 10년 넘게 지속되었다. 하지만 시진핑과 푸틴은 이 명제가 틀렸음을 분명하게 보여주었다. 하지만 오류가 증명되기 전까지 위의 명제를 굳게 믿고 있던 자본주의 국가들은 러시아의 올리가르히들과 아무런 문제 없이 거래했고, 이 돈은 크렘린으로 흘러 들어갔다. 애플바움은 지금 우크라이나인들을 죽이고 있는 탱크와 미사일은 이렇게 들어간 돈이 만들어낸 무기라고 비판한다.

자유민주주의는 스스로를 방어해야 한다.

아래는 애플바움의 글 후반부를 옮긴 것이다. 볼드체는 저자가 강조한 것이고, 번호는 우리말로 옮기는 과정에서 붙였다.


1. 자연스러운 자유민주주의 세계 질서라는 건 존재하지 않는다. 누군가 룰을 지키도록 요구하지 않는 한 자유민주주의의 룰이라는 것도 없다. 민주주의 국가들이 함께 뭉쳐 스스로를 지키지 않으면 권위주의의 힘(forces)이 그들을 파괴할 것이다 (이 링크는 애플바움의 또 다른 글이다. 이 역시 꼭 읽어볼 만한 글이다–옮긴이). 나는 힘(forces)을 의도적으로 복수형으로 사용했다. 미국의 많은 정치인들이 중국과의 장기적인 경쟁에 집중하기를 바라고 있고, 거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하지만 푸틴이 러시아를 지배하는 한 러시아는 우리(미국)와 전쟁 상태에 있다. 벨라루스와 북한, 베네수엘라, 이란, 니카라과, 헝가리를 비롯한 많은 나라들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그런 나라들과 경쟁하기를 원하지 않을지 모르고, 어쩌면 관심을 주기도 싫을 수 있다. 하지만 그들은 우리에게 관심을 갖고 있다. 그들은 민주주의와 반부패(anti-corruption), 정의의 언어가 자신들의 권위주의 권력에 위험하다는 것을 안다. 그들은 이런 언어가 민주주의 세계, 즉 우리가 살고 있는 곳에서 출발했음을 알고 있다.

이 싸움은 이론적인 싸움이 아니다. 이 싸움에는 군대가 필요하고, 전략이 필요하고, 무기와 장기적인 계획이 요구된다. (민주주의 국가들 사이의) 훨씬 더 단결된 협력이 필요하고, 그 범위는 유럽에 국한되지 않고, 태평양, 아프리카, 라틴 아메리카도 포함된다. 북대서양 조약기구(NATO)는 더 이상 '언젠가는 스스로를 방어해야 할지 모른다'는 자세로 임해서는 안되며, 냉전 때 그랬던 것처럼 지금 당장이라도 침공이 시작될 수 있다는 가정 하에 움직여야 한다. 독일이 국방예산을 1천억 유로 증가하기로 한 것은 좋은 출발이다. 덴마크가 국방 예산을 늘리기로 한 결정도 그렇다. 하지만 유럽의 국가들이 군사, 정보를 조정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기구–가령 EU와 연계된, 자원병으로 이루어진 유럽군(European Legion), 스웨덴과 핀란드가 포함된 발틱연합–가 필요할 수 있고, 우리가 유럽과 태평양 방어에 어떻게 투자해야 하는지에 대한 새로운 접근이 필요할 수도 있다.

2. 우리가 권위주의 세계에 우리의 메시지를 전달할 방법을 마련하지 않으면 아무도 우리의 생각을 들을 수 없다. 우리(미국)가 9/11 테러 이후 다급한 마음으로 국토안보부를 조직했던 것처럼 이제 우리는 미국 정부 내에 산재되어 있는 커뮤니케이션(대외 연락, 홍보) 역량을 한 곳에 모아야 한다. 프로파간다를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세계의 더 많은 사람들에게 더 좋은 정보를 전달하고, 권위주의 정부들이 정보를 왜곡하는 것을 막아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왜 아직까지 푸틴의 프로파간다에 맞설 수 있는 러시아어로 된 TV 방송국을 갖고 있지 않은가? 왜 만다린(중국)어, 혹은 위구르어로 된 방송 프로그램을 더 많이 제작하지 않는가? 자유유럽방송(Radio Free Europe/Radio Liberty), 자유아시아방송(Radio Free Asia), 쿠바인을 위한 라디오 마르티(Radio Martí) 같은 외국어 방송기관은 프로그램 비용만 지원할 것이 아니라 연구에도 대규모 투자를 해야 한다. 우리는 러시아의 오디언스에 대해 아는 게 거의 없다. 그들이 평소에 뭘 읽는지, 뭘 알고 싶어 하는지 우리는 모른다.

교육과 문화에 대한 투자도 다시 생각해야 한다. 최근 모스크바를 탈출한 지식인들과 사상가들을 위해 빌니우스(리투아니아의 수도)나 바르샤바(폴란드의 수도)에 러시아어로 가르치는 대학교가 있어야 하지 않을까? 우리는 아랍어, 힌디어, 페르시아어로 된 교육에 더 많은 투자를 해야 하지 않을까? 현재 문화외교라 할 수 있는 것들이 대부분 특별한 계획이 없이 운용되고 있다. 이런 프로그램들은 독재정권들이 자국민들로부터 정보(지식)를 감추고 있는 새로운 시대–정보를 구하기 더 용이해진 세상에서 이런 일이 일어나고 있다–에 맞게 재편되어야 한다.

3. 권위주의 국가들과 교역을 한다고 민주주의가 발전하지 않으며, 권위주의의 성장을 도울 뿐이다. 미국 의회는 지난 몇 달 동안 전 세계의 독재정권들과의 싸움에서 어느 정도 진전을 보였고, 바이든 행정부는 부패와의 싸움이 정치전략의 핵심이라는 정확한 진단을 내렸다. 하지만 우리는 이보다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다. 회사나 재산, 자금을 익명으로 소유해야 하는 아무런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미국의 모든 주, 세상의 모든 민주주의 국가들은 즉각적으로 이런 소유관계를 투명화 해야 한다. 조세피난처는 불법이 되어야 한다. 자신의 집이나 회사, 그리고 수입의 원천을 비밀로 하려는 사람들은 범죄자 아니면 세금 회피자들이다.

4. 우리는 에너지 소비를 대대적이고 근본적으로 바꿔야 한다. 이는 기후변화에 대한 대응 때문만이 아니다. 우리가 러시아와 이란, 베네수엘라, 사우디아라비아에 지불한 수백 억 달러의 돈은 가장 부패한 세계 최악의 독재자들을 돕는 데 사용된다. 석유와 천연가스 같은 에너지원을 벗어나는 작업은 훨씬 더 빠르고 과단성 있게 진행되어야 한다. 러시아 석유를 사는 데 사용된 달러가 우크라이나의 민간인들을 죽이는 포탄을 구입하는 데 사용되고 있다.

5. 민주주의를 진지하게 취급해야 한다. 우리는 민주주의를 가르치고, 논의하고, 개선하고, 방어해야 한다. 자연스러운 자유민주주의 세계 질서(natural liberal world order)라는 건 없을지 모르지만 자유민주주의 사회는 존재하며, 닫힌 독재국가들에 비해 시민들에게 삶을 유용하게 살 수 있는 더 나은 기회를 주는 개방된 자유 국가들은 존재한다. 물론 그런 사회들도 완벽함과는 거리가 멀고, 깊은 결함을 갖고 있으며, 심각한 분열과 역사적인 흉터를 갖고 있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더욱더 지키고 보호해야 한다. 인류 역사에서 이런 사회들은 찾아보기 쉽지 않다. 대부분 잠시 존재했다가 실패해서 사라졌다. 외부의 침략으로 무너지기도 했지만 내부에서 분열과 선동가들에 의해 붕괴되기도 했다.

어쩌면 우리는 이번 전쟁이 끝난 후에 우크라이나 사람들에게서 교훈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지난 수십 년 동안 우리는 자유민주주의의 가치와 무력의 형태를 한 애국주의 사이에서 문화전쟁(culture war)을 벌여왔다. 우크라이나인들은 이 둘이 공존할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그들은 침공이 시작되자마자 많은 정치적 분열–우크라이나의 정치적 분열은 미국 못지않다–을 극복하고 자국의 주권과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무기를 손에 들었다. 그들은 애국자(patriot, 이 단어는 보수 백인들이 즐겨 사용한다–옮긴이)이면서 동시에 열린사회를 믿을 수 있음을 보여줬고, 민주주의는 적들보다 더 강하고 맹렬할 수 있음을 증명해주었다.

자유민주주의 세계 질서나 규정, 룰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바로 그 이유로 우리는 그 가치를 위해, 자유주의에 대한 희망을 위해 치열하게 싸워야 한다. 열린 사회가 계속해서 존재하기를 원한다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