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14일, 우크라이나를 침공 중인 러시아의 순양함 모스크바가 침몰했다. 전쟁 중에 군함이 침몰하는 게 특별한 일이 아닐지 모르지만, 모스크바의 침몰은 특별했다. 현대 해군 편제에서 순양함(cruiser)은 항공모함 다음으로 큰 군함이다. 그보다 작은 급의 구축함(destroyer) 중에는 크기가 커서 사실상 순양함과 구분하는 게 의미가 없는 배들이 있다고는 하지만 (세종대왕함이 "사실상 순양함"이라고 하는 구축함이다) 순양함은 여전히 대양해군의 상징과 같은 존재이고, 공식적으로 순양함을 가진 나라는 미국과 러시아 뿐이다. 그런 러시아도 현재 작전에 투입할 수 있는 순양함은 네 척 밖에 되지 않는데 그 중 하나가 침몰한 것이다. 2차 세계대전 이후로 이렇게 큰 군함이 전투 중에 침몰한 건 이번이 두 번째일 만큼 역사적인 사건이다.

잘 알려진 대로 러시아는 이번 전쟁에서 많은 장군을 잃었다. 장군은 쉽게 죽어서는 안 되는 존재다. 모든 생명이 소중하지만, 전쟁을 치르는 나라가 장군을 잃는다는 것은 작전 수행이 어려워진다는 사실 외에도 군대의 많은 부분이 제대로 작동하고 있지 않음을 의미한다. 모스크바의 침몰도 다르지 않다. 순양함은 쉽게 침몰해서는 안 되는 중요한 군 자산이다. 러시아가 자랑하는 순양함을 잃었다는 건 단순히 상한 자존심의 문제가 아니라 그 배가 수행하던 (가령 방공작전 같은) 중요한 역할을 포기해야 함을 의미한다.

전쟁에서 여간해서 장군이 죽지 않는 이유는 주요 인물을 보호하기 위한 시스템이 있다는 얘기인데, 러시아군이 전쟁 시작 두 달 여만에 9명의 장군을 잃었다는 건 그런 시스템이 없거나 작동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같은 이유로 현재 우크라이나 전쟁에 투여된 러시아 해군 최고의 자산인 순양함이 침몰한 것은 이 배를 보호하는 시스템이 작동하지 않았다는 얘기다. 많은 군사 전문가들이 이 대목에서 머리를 긁적인다. (모스크바함이 포함된) 러시아의 슬라바급 순양함은 스스로를 충분히 지킬 수 있고, 지켰어야 하는 군함이기 때문이다.

침몰의 원인

첫 발표는 우크라이나에서 나왔다. 우크라이나군은 "러시아의 모스크바함을 격침했다"라고 발표했고, 러시아는 이에 대해 부정도, 긍정도 하지 않은 채 침묵을 지켰다. 하지만 오래지 않아 러시아는 이 배에서 "화재가 발생했다"라는 발표를 했다. 배가 공격을 받으면 대개 화재가 나기 때문에 화재가 난 것은 사실이지만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의 공격을 부인했다.

하지만 양쪽 다 사실이 아닌 주장이었다. 우크라이나가 발표할 당시 모스크바함은 침몰하지 않은 상태였다. 그러나 각국 정보당국이 파악한 결과 우크라이나의 공격으로 배가 크게 파괴된 것은 사실이었다. 그리고 몇 시간 후 배는 정말로 침몰했다. 러시아 국방부는 배에 화재가 났으며, 파도가 거세게 이는 바람에 침몰한 것이라고 발표했다. 그런데 나중에 유출된 사진(아래)을 보면 크게 파손된 채 기울어진 모스크바함은 파도가 전혀 없는 잔잔한 바다에 떠있다.

전쟁에서 나오는 소식들은 어느 쪽을 막론하고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부풀리거나 축소하지만, 대체로 전과를 올린 쪽의 주장이 피해를 입은 쪽의 침묵보다 사실에 좀 더 가깝다. 우크라이나는 모스크바함에 두 발의 R-360 넵튠(Neptune) 미사일을 발사해서 두 발 모두 명중했고, 이 배를 침몰시킨 화재는 그 결과였다고 주장했다. 여기까지는 (러시아 국방부를 제외한) 정보기관들이 동의하는 내용이다.

문제는 이런 종류의 대함 미사일을 방어할 수 있는 체계를 갖추고 있는 모스크바함이 어떻게 피격됐느냐는 것이다. 넵튠 미사일은 우크라이나가 개발한 미사일로, 현재 해군 전력이 없는 우크라이나에게는 적의 군함을 공격할 수 있는 중요한 방어체계다. 비슷한 미사일로 한국에는 '해성'이 있고, 미국에는 그 유명한 하푼(Harpoon)이 있다. 그런데 넵튠은 아음속(subsonic)으로 날아가기 때문에 특별히 빠른 미사일이 아니다. 즉, 모스크바함이 막을 수 있었을 미사일이라는 얘기다.

드론 양동작전설

그런데 왜 러시아군이 막지 못했는지를 설명하기 위해 제일 먼저 나온 설명이 "우크라이나군이 군용 드론을 여러 대 띄워 모스크바함을 공격하려는 듯한 교란작전을 폈고, 모스크바함에서 드론을 상대하느라 정신없는 동안 날아온 두 발의 미사일이 명중되었다"라는 것이다. 이번 전쟁에서 우크라이나군에 아주 잘 쓰고 있는 터키제 바이락타르 드론이 여기에 동원되었을 거라고 했다.

이 설명은 꽤 큰 인기를 끌었고, 전투 시뮬레이션 비디오로 유명한 유튜버가 이를 설명하는 영상을 제작하기도 했다. 아래의 영상에서 게이머/크리에이터가 조종하는 공격기는 실제로 이 전투에 동원되지 않았지만, 2:04 지점부터 시작하는 장면에서 드론이 얼마나 모스크바함의 정신을 빼놓았는지 쉽게 이해할 수 있다.

그런데 이 주장에는 문제가 있다. 실제로 드론이 동원되었다는 정보가 없기 때문이다. 우크라이나가 드론으로 러시아 함정을 공격하지 않는 게 아니다. 오늘 나온 뉴스에 따르면 우크라이나가 바이락타르 드론을 사용해 러시아의 경비정 두 척을 파괴했다고 하고, 이는 드론으로 촬영된 영상으로 확인 가능하다. 하지만 이런 전과를 (때로는 부풀려서라도) 자랑스럽게 발표하는 우크라이나군이 모스크바함 공격에 드론을 사용했다는 이야기를 하지 않으면서 이 설명은 근거를 잃었다.

러시아군의 레이더 문제

드론이 동원되어 정신을 빼놓은 게 아니라면 모스크바함은 왜 단 두 발의 미사일이 날아오는 것을 놓쳤을까? 또 다른 주장이 러시아군 레이더가 가진 한계 때문이라는 것이다. 모스크바함에 설치된 대공 방어 시스템인 S300이 가진 레이더는 사방을 돌지 못하고 180도 만을 살필 수 있고, 360도 감시는 그보다 성능이 떨어지는 레이더로 해야 하기 때문에 비바람이 부는 바다에서 낮게 날아오는 넵튠 미사일을 높은 파도와 구분해내지 못했다는 주장이다.

이 주장은 꽤 인기를 끌었지만, 모스크바와 같은 슬라바급 순양함이 가진 레이더의 종류와 성능을 잘 모르는 사람의 분석이라는 반박 앞에서 힘을 잃었다. 180도만 바라보는 건 추적(tracking) 레이더이고, 다른 레이더로도 다가오는 미사일을 충분히 발견할 수 있었다는 거다.

미 해군 출신들이 설명하는 모스크바함의 대공 방어능력

유저 인터페이스 디자인

그렇다면 충분한 방어 능력을 가진 러시아의 전함은 왜 공격을 허용하고 침몰하게 되었을까? 피격과 침몰 과정에서 일어난 일에 대한 자세한 정보가 나오지 않아서 아직은 다들 추측에 그치고 있지만, 그중에서도 눈에 띄는 설명이 있다. 바로 모스크바함의 UI(user interface) 디자인이 가진 문제에 대한 지적이다.

이 주장을 한 사람은 덴마크 해군에서 장교로 복무하고 현재 덴마크 왕립 국방대학교에서 애널리스트로 일하는 앤더스 퍽 닐슨(Anders Puck Nielsen)이다. 그는 자신 역시 이번 사건에 관한 충분한 정보가 없음을 인정하면서도 자신이 해군 장교로 복무하던 시절 종종 목격했던 러시아 해군 함정의 작동 방식에 근거한 추론을 내놓는다. (아래 이어지는 설명은 그가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 Conflix & War에 올라온 영상에 등장한다. 직접 보는 것도 추천한다.)

우선 우크라이나가 만든 넵튠 미사일은 2021년에 도입된 최신형이다. 그 기원은 미국의 하푼 미사일에 있지만, 하푼과 달리 해수면 가까운 낮은 고도에서 접근하면서 레이더에 잡힐 가능성을 최대한 줄였다. 닐슨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스크바함의 레이더는 (적어도 스펙상으로는) 꽤 좋은 성능을 갖고 있기 때문에 미사일에 피격당했다는 건 어디에선가 문제가 발생한 것으로 생각한다.

그는 우선 일부에서 제기하는 레이더 문제는 레이더를 잘 몰라서 하는 소리라고 일축하고, 드론 가설 역시 가치를 두지 않는다. 모스크바함은 여러 개의 표적을 얼마든지 동시에 추적할 수 있다는 것이다. 거기에서 그치지 않고 우크라이나가 드론을 많이 동원했다면 오히려 공격에 실패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게 무슨 말일까?

닐슨에 따르면 모스크바함에서 레이더를 들여다보고 있던 수병들이 날아오는 두 발의 넵튠 미사일을 놓쳤을 가능성이 크다. 이를 설명하기 위해 그는 러시아 함정이 사용하는 레이더의 UI와 서구 국가들이 사용하는 레이더의 UI를 비교해서 보여준다.

러시아 함정의 레이더(왼쪽)와 덴마크 함정의 레이더

레이더 자체의 성능은 차이가 없을지 몰라도 아날로그 방식의 UI를 가진 러시아 해군 장비는 이를 사용하는 사람들의 능력에 크게 의존한다. 레이더 성능 자체는 좋기 때문에 훈련된 수병이라면 서구 해군과 똑같은 실력을 발휘할 수 있지만, 문제는 그 과정이 노동집약적(labor-intensive)이라는 것. 아주 훈련이 잘된 병사들이 계속해서 집중할 수 있을 때만 작동하는 방식이다.

하지만 이 전쟁은 벌써 두 달이 넘었다. 모스크바함은 그 사이에 한 번도 공격을 받지 않았다. 닐슨은 이럴 때 '운영자 피로(operator fatigue)' 현상이 일어난다고 설명한다. 만약 단기간의 군사 훈련이면 모두가 긴장하고 대비해서 표적을 잡아낼 수 있지만 두 달 넘게 그런 상태를 유지하는 건 불가능하다. 그는 위에 있는 왼쪽 사진에 등장하는 화면은 "일반인은 30초도 집중하기 힘들다"라면서, 훈련받은 병사라도 하루에 몇 시간 씩, 두 달 넘게 지켜본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라고 설명한다.

그런데 어느 순간 미사일이 날아왔다고 하자. 레이더 화면 구석에 작은 점으로 처음 등장해서 배에 맞기까지 약 2분 정도가 걸리는데, 그 사이에 장교에게 보고하고 대응을 끝내야 한다. 하지만 레이더 앞에 있던 수병이 담배를 피우거나 잡담을 하면서 첫 1분을 놓치기는 아주 쉽다. 그럼 1분 안에 모든 대응이 이뤄져야 한다. 가능했을까? 어쩌면 아예 놓쳤고, 결국 단거리 추적 레이더가 잡아내어 경고음을 낸 후에야 깨달았을 수도 있다. (닐슨은 오히려 드론들이 주변을 날아다녔다면 모두가 긴장했을 거고 넵튠 미사일도 일찍 발견해서 격추했을 것으로 본다.)

즉, 문제는 러시아의 수병들이 아니라, 인간이 원래 그런 작업을 오래 지속하게 만들어지지 않은 데 있다는 것. 닐슨은 이런 시스템에서 사람이 개입되는 (매뉴얼) 프로세스가 있으면 거기가 취약점이 된다고 한다. 그렇다고 서구 해군이 이런 문제를 완전히 해결한 것은 아니지만, 현대적인 레이더 콘솔은 이런 '휴먼 에러'를 최소화하는 데 초점을 맞추어 개선되어 왔다. TEWA(Threat Evaluation & Weapons Allocation) 시스템이 그런 예로, 시스템이 인간의 집중력에 모든 것을 의존하지 않게 한 것이다.

러시아의 경직된 시스템

앤더스 닐슨이 이런 분석을 하게 된 계기는 그가 덴마크 해군에서 복무할 때 작은 군함에 올라 덴마크 앞바다를 통과하는 러시아 군함들을 호위(escort)하는 일을 했던 경험이다. 그가 목격한 러시아군은 상황 변화에 적응하기를 아주 꺼린다. 정해진 항로를 따라 이동하는 것이 원래 계획이라도 필요할 경우 해상에서 실시간으로 일어나는 상황에 적응해서 항로를 살짝 바꿔야 하는데 지도 상에 있는 항로를 조금도 벗어나려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더 이상했던 건 러시아 함정들의 속도였단다. 같은 속도로 꾸준히 이동하는 게 아니라, 어느 순간 갑자기 속도를 내서 빠르게 가다가 아무런 이유도 없이 속도를 줄이고, 다시 속도를 내는 희한한 행동을 했단다. 처음에는 왜 그러는지 몰랐다가 깨달은 건 러시아 군함들은 이동 중에 지도상의 특정 지점을 특정 시간에 통과하도록 정해놓았기 때문에 이런 지점들에 도착하는 시간에 정확히 맞추기 위해 그런 이상한 모습이 나온다는 것이다.

닐슨은 러시아 해군의 작동 방식을 설명한 것이지만, 이렇게 현장 상황에 따라 작전을 유연하게 펼치지 못하고 미리 정해진 계획(=상부의 명령)만 철저하게 따르다 보니 상황이 달라지고 계획대로 진행되지 않으면 적응에 실패하는 것이다. (이 점에 관해서는 '3 대 1'에서도 이야기했다.)

대응 방식

마지막으로 이야기해야 할 것이 미사일에 맞은 후에 일어난 일이다. 위에 소개한 앤더스 닐슨은 설명 중에 자신은 슬라바급 순양함이라면 이 정도 미사일이면 두 발을 맞았어도 침몰까지 이어지지는 않았을 것 같다고 생각한다는 말이 나온다. 즉, 러시아 함정이 화재진압 등의 대응이 미흡했을 가능성이다.

앞서 소개한 이 영상을 보면 미 해군 출신들이 "미 해군 함정에서는 모두가 피해수습(damage control)을 해야 한다"는 얘기를 한다. 선장부터 막내 수병까지 누구나 소방호스를 꺼내서 작동시킬 수 있어야 하고 평시에도 이런 훈련을 끊임없이 반복한다는 것. 이를 잘 보여주는 것이 영화 '크림슨 타이드'(1995)에 나오는 잠수함 내 화재 진압 장면이다.

그렇다고 해도 군함의 옆구리에 미사일을 두 발이나 맞고도 과연 버틸 수 있을까? 실제로 미군 함정에 그런 일이 있었다. 이란-이라크 전쟁이 진행 중이던 1987년, 미국의 군함 USS 스타크가 이라크 항공기에서 발사된 엑조세 미사일 두 발을 맞고 크게 부서진 채 선상 화재가 난 일이다. 이 배의 수병 37명이 사망하고 21명이 부상당한 큰 사건이었지만, 다른 함정이 도우러 올 때까지 선원들이 모두 힘을 합쳐 5시간을 버티며 화재를 진압했고 침몰을 면할 수 있었다.

그에 비하면 침몰하기 전 불에 타고 있던 모스크바함의 사진에서는 화재를 진압하는 병력이 보이지 않는다.

앤더스 닐슨은 영상의 8:00 지점에서 러시아 수병들이 아무런 보호장구를 입지 않고 훈련에 임하고 있음을 지적한다. 카메라를 들고 훈련 장면을 찍고 있는데도 헬멧이나 방탄조끼를 입지 않고 있다면 실전에서는 과연 입고 있을까?

이 영상도 같은 문제를 지적한다. 2008년 러시아가 조지아를 침공했을 때 러시아 해군 함정 내부를 찍은 이 영상 속 러시아 수병들은 아예 웃통을 벗고 있는 것이 마치 기숙사에 있는 학생들처럼 보인다.  

2008년 조지아를 상대로 전쟁을 하던 러시아 수병들의 모습
훈련 중인 덴마크 함정 내부

모스크바함에는 약 500명이 승선해있었다고 한다. 전해지는 정보에 따르면 생존자는 100명이 채 되지 않는 것 같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