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에 유엔 산하 기구인 세계 식량 계획(WFP)의 사무총장 데이비드 비즐리와 테슬라의 일런 머스크 사이에 트윗을 통한 설전이 오고 갔다. 4천 2백만 명의 목숨을 위해 재산의 약 2%를 내놓을 수 있느냐는 트윗 때문에 시작되기는 했지만 언론의 도발적인 기사제목 뽑기가 불을 지른 일이다.

사무총장의 트윗

발단은 비즐리 사무총장의 트윗이다. 비즐리는 특히 최근 주가 상승으로 자산가치 1위가 된 머스크를 멘션해서 "제프 베이조스를 제치고 세계 최고의 부자가 된 것을 축하드린다"고 말한 후, "66억 달러로 4천 2백만 명의 목숨을 구할 수 있는 평생 단 한 번의 기회"를 주겠다고 했다. 그리고 "이 오퍼는 금방 끝나고, 그들의 목숨도 그렇다"라며 시간이 많지 않음을 알렸다. 미국 공화당 정치인 출신의 비즐리 사무총장의 이 말은 그 자체로 도발적이었던 게 사실이다.

CNN의 인터뷰

이 트윗이 화제가 되자 CNN이 그를 인터뷰했다. 반드시 트윗 때문이라기보다는 현재 세계적으로 식량부족 문제가 심각한 상황이고, WFP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적극적인 홍보를 한 결과라고 보는 게 맞다. 그의 인터뷰 내용은 이랬다. "(기아 문제에) 각국 정부들이 나서지 않고 있다. 이게 억만장자들이 필요한 이유다. 우리가 돕지 않으면 4천 2백만 명이 정말로 죽는다. 이들을 돕기 위해 60억 달러를 한 번만(one-time basis) 내라는 거다. 복잡한 문제가 아니며, 매일, 매주, 매년 하라는 게 아니다."

비즐리 사무총장의 인터뷰

그가 "이번 한 번만 도와달라"고 하는 이유는 이렇다. 현재 세계는 식량부족의 퍼펙트 스톰을 맞고 있다. 분쟁과 기후 변화, 그리고 코로나19 팬데믹이 한 번에 몰려온 상황이다. 43개국에서 4천 2백만 명이 4단계 기아 상황(IPC Level 4)에 처해있다. 비즐리는 더도 말고 "머스크의 지난 하루 재산 증가분의 10%만 이들을 구하는 데 사용해달라"고 사정했다.

비즐리는 더 나아가 이런 말도 했다. "미국의 최상위 부자 400명의 재산은 지난 1년 동안 1.8조 달러(2,121조 원)가 증가했다. 이분들이 재산 증가분의 0.36%만 기부하면 지금 당장 죽는 사람들을 살릴 수 있다. 당신의 딸이 굶고 있으면 하지 않겠는가?" (이를 확인해보기 위해 찾았는데, 비즐리의 말에는 약간의 오류가 있는 듯 하다. 이 통계에 따르면 상위부자 708명의 지난 17개월 간 재산 증가분이 1.8조 원이다).

자극적인 제목

그런데 CNN은 이 인터뷰를 기사화하면서 언론이 흔히 하듯 제목을 좀 더 자극적으로 뽑았다. 비즐리는 "4천 2백만 명의 목숨을 구하게 도와달라(help us save)"라고 말했지만, CNN의 기사는 그가 "일런 머스크 재산의 2%면 전 세계 기아 문제를 해결(solve)할 수 있다고 말했다"라는 제목을 붙여 내보냈다. 'Help us save 42 million people'과 'solve world hunger'는 전혀 다른 말이지만, CNN 기자의 귀에는 차이가 없었던 것 같다.

그런데 CNN의 기사를 본 한 트위터 유저가 기사 제목을 캡처해서 이런 트윗을 했다. "팩트체크: 일런 머스크 재산의 2%면 60억 달러이고, 유엔 세계 식량 계획의 지난 해 예산은 84억 달러인데, 왜 '전 세계 기아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거지?"

머스크의 대답

이 트윗이 큰 인기를 끌자 PR 기회라면 절대 놓치지 않는 일런 머스크가 등장해서 이렇게 답했다. "만약에 세계 식량 계획이 이 트윗 스레드에 60억 달러가 정확히 어떻게 세계 기아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지 설명한다면 테슬라 주식을 당장 팔겠다."

사람들은 언론과 소셜미디어가 만들어낸 두 사람의 대결 아닌 대결에 큰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4천 2백만 명의 목숨이 달려있으니 세계 식량 계획은 어서 답하라"고 했다. 마치 비즐리 사무총장이 제대로 문제를 풀면 수천 만이 목숨을 건질 수 있는 게임이 된 거다.

비즐리 사무총장은 CNN 기사의 제목이 잘못되었음을 지적하는 트윗을 했다. "헤드라인에 오류가 있다. 60억 달러로는 세계의 기아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 하지만 그 돈이면 지정학적 불안과 대량 난민사태를 막을 수 있고, 아사 직전에 있는 4천 2백만 명을 구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머스크의 관심은 다른 데 있었다. "현재 지출 명세와 앞으로의 지출 계획을 공개하세요. 돈이 어디로 가는지 사람들이 볼 수 있게 말이죠. 햇볕(투명성)은 좋은 겁니다."

이쯤 되면 이야기가 다른 곳으로 흐르고 있음을 눈치챘을 거다. 많은 사람이 과연 세계 식량 계획이 머스크의 기부를 받아내 목숨을 살릴 수 있을까에 집중했지만, 사실 머스크의 관심은 거기에 있지 않았다. 그는 애초에 유엔과 같은 큰 조직에 대해서 좋은 생각을 갖고 있지 않다. 그가 국가 정부에 대해 가진 생각을 들어보면 쉽게 짐작할 수 있다. 그는 "정부가 규제와 관료주의를 늘려나가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면서 정부는 기업의 혁신을 가로막지 말고 물러나라고 한다. 궁극적으로 정부는 운동장의 심판이 되기를 거부하고 하나의 플레이어가 되려고 한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그런 그가 각국 정부로부터도 비판을 받곤 하는 유엔 기구의 요청에 흔쾌히 재산의 2%를 기부할까? 워낙 럭비공처럼 튀는 방향을 예측하기 힘든 사람이지만, 아래의 트윗을 보면 그럴 마음이 전혀 없다는 데 베팅을 하고 싶을 거다.

머스크가 트윗에 링크한 건 2015년에 나온 기사다. 이 사건은 반기문 총장 시절에 일어난 최대의 스캔들 중 하나로, 유니세프(UNICEF, 유엔 아동기금)와 유엔 평화유지군이 식량을 주는 대가로 아이들에게 성관계를 요구했다는 사실이 밝혀진 일이다. 식량 계획과 유니세프는 같은 유엔 산하 조직이지만 엄연히 다른 기구다. 하지만 머스크는 식량과 관계된 일이고, 유엔이면 특별히 상관없는 듯하다. 다른 조직이 6년 전에 일으킨 문제를 들고 와서 식량 계획에 그 때 무슨 일이 있었냐고 묻는 사람은 재산의 2%를 기부할 마음이 있는 것 같지는 않다.

4천 2백만 명

유엔의 비효율성과 내부적 문제를 옹호하거나 두둔할 마음은 없다. 많은 사람이 유엔의 문제를 지적해왔다. (비판의 핵심은 대개 지나치게 조직이 방대하고 비민주적이며 돈을 불필요하게 많이 쓴다는 것이다). 그런 유엔의 조직이 갑부를 지명(call out)해서 돈을 내라고 했는데, 하필 그 사람이 유엔은 물론, 국가 정부 조직도 혐오하는 일런 머스크였던 거다.

게다가 머스크의 재산이 늘었다고는 하지만 그건 현금화된 자산이 아니다. 은행에 잔고가 늘어난 게 아니라 자신이 가진 기업 지분의 가치가 상승했을 뿐이다. 따라서 그가 60억 달러를 기부하려면 자신의 지분을 팔아야 한다. 이는 기업의 설립자 CEO들이 극도로 민감하게 생각하는 거다. 머스크의 테슬라와 스페이스 X는 비록 높은 기업가치를 갖고 있지만 여전히 스타트업이고, 현재의 기업가치는 앞으로 머스크가 이 기업들이 큰 이윤을 내도록 이끈다는 희망의 반영일 뿐이다. 따라서 그 임무를 맡은 CEO는 자신의 의결권을 지켜야 한다고 믿는다.

그렇다고 해서 머스크가 주식의 일부를 팔아 60억 달러를 마련할 수 없다는 얘기는 아니다. 그렇게 할 경우 기업의 리더십에 타격이 생길 수준이라면 그가 "당장이라도 팔겠다"는 트윗을 했을 때 주가가 내려가겠지만 주말이 지난 후 테슬라의 주식은 또다시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시장이 보기에 심각한 문제는 아닌 거다.

조금 다른 얘기지만 주식이 올라서 자산이 크게 늘어난 사람들은 주식을 팔 경우 세금을 내야 하기 때문에 돈이 필요하면 대출을 받는다. 팬데믹 동안 크게 오른 주가로 자산이 증가한 주식 부자들이 기록적인 수준의 대출을 받았다는 기사도 나왔다. 게다가 머스크는 세금을 내기 싫어 텍사스로 이주했다는 비난을 받고 있다. 테슬라를 성공시키기 위해 정부의 돈을 사용한 머스크가 정부를 싫어하고 세금을 내지 않겠다는 건 위선이다.

유엔은 개혁이 필요하다. 하지만 팬데믹 동안에 악화된 식량부족은 유엔이 만들어낸 것도 아니고, 4천 2백만 명이라는 숫자도 꾸며낸 것은 아니다. 그들은 트윗에서 오고 간 공방을 아마 볼 수 없었겠지만, 현실 세상에 살아있는 사람들이고 누군가 나서지 않으면 심각한 기아에 목숨을 잃게 되는 사람들이다.

물론 머스크가 그들을 반드시 도와야 한다는 법은 없다. 각국에서 선출한 정부도 돕지 않는데, 부자가 되었다고 돈을 내야 하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요청을 받고 마치 유엔을 비난할 기회를 잡았다는 듯 설교를 하는 세계 1위의 갑부를 보는 것도 즐거운 일은 아니다. 그의 트윗에서 사람들의 목숨은 전혀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