앤드루 소킨의 '1929' ①
Angela Pa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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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는 제가 미처 읽지 못하는 좋은 책을 잘 골라 주시는 안젤라 님의 책 소개 글입니다. 전체 공개 글이니 읽어 보시고 주위에 추천해주셔도 좋습니다. 책 선물 이벤트가 있으니 2편에 댓글을 남겨 주세요.


가끔 내가 책을 고르는 것이 아니라 책이 나를 고른다는 느낌이 들 때가 있다. 앤드루 로스 소킨의 '1929' (부제: 번영과 낙관은 어떻게 파국으로 치달았는가)가 그랬다. 작년 10월경, 친한 편집자님에게 한국에 번역 출간을 해보자고 이 책을 추천했었다. 판권 확인 결과, 이미 다른 출판사가 계약을 완료하여 아쉽지만, 어려울 것 같다는 회신을 받았다.

그런데 이 편집자님이 연말에 이직을 하셨고, 이직 인사와 함께 이 책의 사진을 보내주셨다. 새 회사에서 편집을 담당하게 된 첫 번째 책이 '1929'라는 것이었다. 만날 책은 결국 만나게 마련인 모양이라며, 우리는 함께 웃었다. 그리고 나는 지금 이 책의 서평을 쓰고 있다. 또다시 책이 나를 골랐다고 중얼거리면서.  

'1929'는 본문만 5백 페이지가 넘는 두꺼운 책이다. 그럼에도 지루한 줄 모르고 책장을 넘겼다. 영어로 “페이지터너(page-turner)”라고 불리는 책의 전형이다.

이 책의 프롤로그는 1929년 10월 28일, 우리가 '블랙 먼데이'라는 이름으로 기억하는 그날 저녁, 내셔널 시티 은행(National City Bank, 현 씨티은행의 전신) 회장인 찰스 미첼의 퇴근길로 시작한다. 뉴욕 증시는 그 전주인 10월 24일('검은 목요일')부터 이미 폭락 중이었다. 한 달 전, 내셔널 시티 은행은 콘익스체인지 은행(Corn Exchange Bank)을 인수하는 데 합의했고, 콘익스체인지 주주들은 주식 매각 대가로 현금 360달러와 내셔널 시티 주식 0.8주 중에서 선택할 수 있었다. 따라서 내셔널 시티의 주가가 450달러 이상으로만 유지된다면 주주들은 자연스럽게 현금 대신 주식을 선택할 것이었다. 실제로 계약이 체결될 당시 내셔널 시티 주가는 496달러였다. 그래서 미첼은 주가가 떨어질 때마다 조금씩 자사주를 사 모으라는 지시를 내려놓은 상황이었다.

그런데 이 모든 것의 전제는 어디까지나 내셔널 시티의 주가가 계속 상승한다는 가정이었다.

10월 28일 장이 마감했을 때 내셔널 시티의 주가는 450달러의 절반도 되지 않는 200달러 언저리였다. 이것도 나중에야 밝혀진 숫자였다. 당시에는 컴퓨터 시스템이 없었기 때문에 가격이 실시간으로 반영되지 않았다. 특히 10월 24일부터 29일까지 나흘의 영업일 동안, 패닉 매도가 폭주하자 거래소의 인력이 처리할 수 있는 한도를 넘어 주가 표시는 수 시간씩 지연되곤 했다. (저자인 소킨은 이를 “3회 이후 업데이트되지 않은 전광판을 보며 8회 말에 야구 경기를 하는 것"에 비유한다.)

이제 미첼에게는 가치가 반 토막 난 자사주만이 남아 있었다. 내셔널 시티에는 콘익스체인지 주주들에게 주식 대금을 지불할 현금이 없었다. 이러한 상황이 외부로 새어 나간다면 뱅크런(bank run, 대규모 예금 인출 사태)은 시간문제였다. 불과 한 달 전까지만 해도 미국 최대의 은행을 넘어 세계 최대 은행으로 도약을 꿈꾸고 있었던 내셔널 시티는 하루아침에 붕괴 직전에 내몰린 것이다. 심지어 내셔널 시티는 1920년대 미국 기업 대출의 4분의 1을 차지하고 있었던 초대형 은행이었다. 내셔널 시티의 붕괴는 단순히 은행 하나가 무너지는 것에 그치지 않고 미국, 그리고 미국을 넘어 전 세계 금융 시장을 뒤흔드는 거대한 파장이 될 수 있었다.

뉴욕 주식시장의 폭락 직후 월스트리트에 몰려든 사람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었을까? 우리는 대공황에 대해서 꽤 많은 것을 알고 있다. 20세기 전반 전 세계를 뒤흔든 초대형 이벤트였다 보니 여기저기서 자주 인용되기 때문이다. 블랙 먼데이에 주식을 매도하기 위해 뉴욕증권거래소에서 미친 듯이 고함을 지르며 가격을 부르는 트레이더들, 예금을 인출하기 위해 은행 지점 밖에 길게 줄을 늘어선 사람들, 일자리를 잃고 무료 급식소에서 수프를 받기 위해 역시 줄을 길게 선 사람들, 루즈벨트 대통령의 뉴딜 정책 등등이 그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대공황을 이러한 '이미지'로 기억할 뿐, 이 모든 일이 왜 일어났는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며, 그 누구도 정확한 원인이나 전후 관계를 설명하지 못한다. 사실 1929년 10월 24일부터 일어난 일들은 작게는 월스트리트로 한정되지만 넓게는 1차 대전 이후 베르사유 조약과 전후 독일의 배상금 문제, 제국주의 패권 국가들의 식민 경쟁 등등 영향을 미친 요인이 너무나 많아서 “이게 문제였다”라고 핀셋으로 하나만 골라내기는 어렵다. 저자는 이러한 다양한 측면들을 전부 한 권의 책에 담아내려는 욕심을 부리지 않는다. 대신 철저하게 뉴욕시, 월스트리트라는 공간과 그 안에 있었던 사람들의 거취만을 현미경처럼 들여다본다.


1920년대는 '광란의 20년대(Roaring Twenties)'라고 불린 시대였고, 1929년은 그 1920년대의 막을 내리는 해였다. 산업혁명에 이어 수많은 발명품이 쉬지 않고 등장하면서 오늘날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는 소비 중심 경제가 탄생했다. 신기술 덕분에 기계가 인간의 노동을 대체했고, 더 짧은 시간에 더 싼 비용으로 더 많이 제품을 생산할 수 있게 되었다. 그 많은 상품들을 누군가는 사주어야 했다.

포드 공장에서 생산되는 자동차들

하지만 평범한 사람들의 소득은 크게 오르지 않았다. 돈이 없는 사람들로 하여금 물건을 살 수 있게 해준 것이 바로 신용이다. 1919년 제너럴 모터스가 자동차 할부 판매 프로그램을 시작한 이래 “빚을 내서 소비하는 것은 죄악”이라는 미국인들의 오랜 청교도적인 신념이 무너져 내렸다. 빚만 내면 자동차, 라디오, 세탁기 등등 무엇이나 살 수 있었다. 덕분에 기업가들과 금융인들은 천문학적인 부를 쌓아 올리고 유럽의 절대군주들이 부럽지 않을 만큼 사치스러운 생활을 했으며, 정·관계를 주물렀다.

신용으로 살 수 있는 “무엇이나”에는 주식도 포함되었다. 중산층 미국인들은 증거금 계좌를 개설해 10% 또는 20%의 증거금만 지불하고 나머지 금액은 빌려서 주식을 샀다. 주가가 끝없이 오르는 동안에는 아무 문제가 없었다. 주가가 오르면 빌린 돈과 이자를 갚고도 돈이 남을 것이었고, 빚은 사실상 무기한 연장할 수 있었다. 이렇게 호황이 장기간 지속되면 사람들은 집단적인 망상에 빠진다. 소킨은 낙관론이 “마약이나 종교, 또는 그 둘의 조합이 되었다”고 진단한다. 하지만, 아무 문제가 없었다. 적어도 주가가 오르는 동안에는.

1920년대 중반, 뉴욕증권거래소(NYSE)에 상장되지 않은 주식을 거래하던 '커브 마켓(Curb Market)'에서 수신호로 거래하는 월스트리트 브로커들

이 책의 가장 아쉬운 점은 그래서 끝없이 오르던 주가가 왜 어느 날 오르기를 멈추고 곤두박질을 쳤느냐에 대한 답이 없다는 것이다. 우리는 다만 책을 읽으며 유추할 수 있을 뿐이다. 저자는 대신 이 모든 일이 벌어지기 약 8개월 전인 1929년 2월로 시계를 돌려, 약 8개월 후 일어날 일들의 주인공들의 행보를 밀착취재하듯 보여준다.

프롤로그에서 등장한 미첼은 물론 당시 월스트리트의 제왕으로 군림했던 JP모건의 후계자 잭 모건, JP모건의 파트너 토머스 러몬트, 제너럴모터스의 창업자 윌리엄 듀런트, 전설적인 투자자 제시 리버모어와 조셉 케네디(훗날 미국 대통령이 되는 존 F 케네디의 아버지이기도 하다), 듀퐁과 제너럴모터스의 임원으로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을 건설한 존 라스콥, 뉴욕증권거래소의 부이사장 리처드 휘트니 등 쟁쟁한 이름들이 서로 앞다퉈 책장에서 튀어나온다. 글래스-스티걸 법으로 유명한 카터 글래스는 물론 허버트 후버, 프랭클린 루즈벨트, 당시에는 파산 직전의 한량에 가까웠던 윈스턴 처칠 등 시대를 풍미한 정치인들도 등장한다. 심지어 별자리를 기반으로 주식 투자 조언을 해서 뉴욕의 명사가 된 점성술사 이밴절린 에덤스까지 등장한다. 이들의 행보를 하나하나 좇다 보면 어느 순간, '아 이래서...' 라는 깨달음이 찾아온다. 그 깨달음이 반드시 유일한 답일 필요는 없다. 애초에 이 책은 '왜'보다 '어떻게'에 더 큰 관심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저술 방식은 저자인 소킨이 언론인 출신이라는 점도 한몫을 한 것 같다. 제대로 훈련받은 미국 레거시 미디어의 정통파 언론인들이 흔히 그러듯, 소킨은 방대한 데이터와 팩트를 수집하고 연구하지만, 특별한 '사명'을 가지고 독자들에게 특정한 '방향'을 제시하지는 않는다. (소킨은 이 책을 쓰기 위해 무려 8년 동안 조사와 자료 수집을 했다고 한다.) 500페이지에 걸쳐 저자가 써 내려간 10개월의 기록을 읽다 보면 나도 모르게 100년 전 월스트리트가 눈앞에 떠오르고, 그 불안과 흥분, 광기가 뒤섞인 공기를 숨 쉬게 된다.

올해 초 다보스 포럼에서 패널 토론의 모더레이터를 맡은 저자 앤드루 소킨

개인적으로 지금까지 내가 대공황을 이해해 온 관점은 경제(사)학자 찰스 P. 킨들버거를 통해서였다. 1978년에 출간된 킨들버거의 대표작 '광기, 패닉, 붕괴 - 금융위기의 역사(Manias, Panics, and Crashes: A History of Financial Crises)'는 이제는 고전의 반열에 올랐으며, 킨들버거는 1996년에 이미 닷컴버블 붕괴발 금융 위기를 정확히 예측하며 “(살날이 얼마 남지 않아) 한 권 더 책을 쓸 수 없는 것”을 아쉬워했다고 한다.

킨들버거에 따르면 새로운 기술 혁신으로 인해 자산 가격이 상승하기 시작할 때는 투자자들도 나름 합리적이다. 문제는 가격 상승이 지속되면서 시장이 ‘합리적 기대’에서 비이성적인 '투기적 광기'로 넘어가는 것이다. 이 단계가 되면 남들이 모두 큰돈을 벌고 있는 동안 나만 기회를 놓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군중 심리를 지배하게 된다. 그 결과 더 많은 돈이 몰리고, 거품은 점점 커진다. 킨들버거는 시장이 스스로 거품을 치유하지 못하고 붕괴하는 것을 막기 위해 중앙은행이 '최후의 대부자(Lender of Last Resort)'로서 적극 개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논리를 이어받아 발전시킨 사람 중 하나가 전 연준 의장인 벤 버냉키이다. 대공황 연구자로도 유명한 버냉키는 시장의 투기를 '비합리적인 광기'로 보지 않았다. 시장 참여자들은 자신에게 주어진 제한적인 정보 내에서 최대한 합리적으로 행동하려 노력한다. 하지만 시장 참여자 개개인의 판단은 합리적일지 몰라도, 그 개개인이 모여 거대한 집단이 되면 그들의 행위는 비합리적일 수 있다. 시장은 이를 자신의 힘으로 교정하지 못하기 때문에 중앙은행의 신속하고 강력한 개입이 필수적이라는 것이 버냉키의 주장이었다. (실제로 버냉키는 2008년 서브프라임 모기지 당시 “헬리콥터 벤”이라는 별명을 얻을 정도로 과감한 양적완화 정책을 펼쳐 공황급 재앙을 막았다는 평가를 받는다.)

벤 버냉키

이후 주류 거시경제학계에서도 대공황을 촉발한 주식시장 붕괴의 가장 큰 트리거는 시장 과열을 우려한 연준의 긴축 정책 때문이라는 것이 정설로 여겨져 왔다. 뉴욕 연방준비은행의 초대 총재였던 벤저민 스트롱 주니어(Benjamin Strong Jr.)는 대공황이 발발하기 꼭 1년 전인 1928년 10월에 사망했는데, 1920년대 가장 위대한 경제 정책가였던 스트롱의 죽음으로 연준은 방향성을 잃고 리더십 공백 사태에 빠졌으며, 결국 어설픈 금리 인상으로 인해 시장 경색이 일어났고, 은행권이 대출 회수에 들어가며 실물 경제의 숨통까지 조여버렸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책에서 가장 흥미로운 지점은 여기이다. 책 전체를 통틀어 단 한번도 “대공황의 원인은 이것”이라고 직접적으로 말한 적이 없는 저자가 단호하게 자기 목소리를 낸다. “한 사람이 죽지 않았더라면 재앙을 막았으리라 믿는 것은 쉽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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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산주의는 많은 사회에서 영향력을 잃었지만, '반공'은 사라지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