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9'는 한 명의 주인공을 중심으로 전개되는 책은 아니지만, 비교적 주인공에 가까운 구도를 형성하고 있는 것이 내셔널 시티 은행의 찰스 미첼(Charles E. Mitchell) 은행장과 카터 글래스(Carter Glass) 연방 상원의원이다. 1928년 3월, 연준은 금리 인상을 통해 단계적으로 시장의 거품을 빼려고 했다. 그런데 시장이 급락하며 패닉에 빠지자, 미첼은 연준의 경고를 무시하고 일개 민간은행에 불과한 내셔널 시티 은행이 필요에 따라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대출을 제공해 패닉을 끝내겠다고 선언했다. 폭락하던 장은 상승세로 돌아섰고, 미첼은 단숨에 월스트리트의 영웅이 되었다. 하지만 장기적으로 시장은 끝내 붕괴했다. 최후의 광란처럼 1년 7개월 동안 더 상승한 만큼 붕괴의 폭은 1928년 3월보다 훨씬 컸다.
이에 대해서도 저자는 미첼의 행위가 옳다 그르다 단정해서 말하지는 않지만 (분노한 연준과 글래스의 목소리는 객관적으로 실었다) 다른 대목에서 간접적으로 자신의 의견을 슬쩍 드러낸다. 대중을 안심시키기 위해 경제 위기의 명칭을 '패닉(panic, 공황. 원래는 ‘단기적 공포’라는 뜻)'이 아니라 '디프레션(depression, 불황)'으로 바꾼 것이야말로 당시 대통령이었던 허버트 후버(Herbert Hoover)의 가장 큰 실책 중의 하나라는 것이다. 공황의 유일한 장점이라면 오래 지속되지 않는다는 점인데, 불황은 얼마나 오래 갈지 아무도 모른다는 것. 그렇다면 결국 광란과도 같은 시장 과열은 패닉을 감수하면서라도 조금씩 김을 빼는 편이 옳은 것일까?
미첼에 대한 적개심이 삶의 원동력인 것처럼 보이는 카터 글래스에 대한 가감 없는 묘사도 흥미롭다. 시대의 광기 속에서 유일하게 제정신을 유지한 의인으로 비치기 쉽지만, 실상 글래스는 지독한 인종차별주의자였으며 당대의 산업·금융계가 대표하는 북부와 농업으로 대표되는 남부 사이의 대립에서 후자의 이익을 위해 맹렬히 싸웠던 사람이었다. 또한 상업은행과 투자은행(증권사)의 분리를 맹렬하게 주장하면서도 자신과 친분이 있었던 JP모건의 해체는 원하지 않았다. 뱅크런을 방지하고 은행들을 안정시킨 대표적인 정책으로 알려진 연방예금보험공사(FDIC)의 설립 역시 맹렬하게 반대했다.
하지만 뜻하지 않게도 JP모건과 앙숙이었던 존 D. 로커펠러 주니어의 처남 윈스럽 올드리치가 직접 프랭클린 루즈벨트(Franklin D. Roosevelt) 대통령을 만나 글래스 법의 범위를 상장기업뿐 아니라 (JP모건과 같은 비상장기업을 포함한) 모든 금융기관으로 확대하자고 제안했고, 루즈벨트는 이를 기꺼이 받아들였다. 결국 앨라배마주 출신 연방 상원의원 헨리 스티걸(Henry B. Steagall)이 예금자 보호 조항을 밀어붙여, 글래스-스티걸법은 글래스가 애초에 의도했던 법안과는 상당히 다른 형태로 통과되었다.
뉴딜 정책으로 미국을 대공황에서 구해낸 또 다른 영웅으로 역사에 기록된 프랭클린 루즈벨트였지만, 그는 후버가 자신의 임기 마지막 며칠 동안 예금자 보호 등 금융시장을 안정시킬 수 있는 정책들을 일단 시작하자는 후버의 요청을 가차 없이 거부한다. 정치적 감각이 뛰어나고 이해관계를 계산하는 데 대단히 빨랐던 루즈벨트는 어떤 형태로든 후버 정부와 자신의 이미지가 얽히는 것을 철저하게 차단했다.

이 책에서 아쉬운 점을 하나만 더 말하자면, 월스트리트에서 시작해서 월스트리트에서 끝난다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실제로 고통스러운 대공황의 실상은 전혀 담기지 않았다. 이 역사적인 재앙을 초래한 월스트리트의 거물들은 대공황 기간에도 여전히 사치스러운 생활을 계속했고, 심지어 찰스 미첼은 자신이 보유한 주식을 아내에게 헐값에 팔아넘겨 이로 인해 거액의 세금을 면제받은 뒤 훗날 주가가 반등하자, 다시 사들여서 상원 청문회에 소환당하기까지 했다.
이 때문에 미국의 일부 매체들은 이 책에 대해 상당히 비판적인 서평을 내놓았다. 커커스 리뷰는 1929년의 주식시장 붕괴와 그 여파로 실제로 삶이 파괴된 수많은 무명의 미국인들이 이 책에서는 거의 목소리를 내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소킨의 렌즈는 예리하지만, 그 렌즈가 비추는 곳은 여전히 특권층의 응접실과 파티룸이다. 진정한 피해자들—직장에서 해고당하고, 저축이 증발하고, '후버빌(Hoovervilles)'이라 불린 판자촌으로 내몰린 수백만 명의 보통 사람들—은 이 책에서 찾아볼 수 없다.

뉴욕타임스 역시 소킨이 부유층과 유명인들의 삶을 서술하는 데 상당한 분량을 할애한 반면, 시장 붕괴의 원인인 도금 시대의 경제 양극화에 대해서는 스쳐 지나갔으며, 1929년의 금융가들을 "그 시대에는 누구나 했을 법한 일들을 했을 뿐인, 평범한 인간 군상"으로 묘사하는 바람에 역으로 그들에 대한 묵시적 변호로 작용했다고 비판한다. 아무래도 소킨 본인이 금융 기자이고, 수많은 결함에도 불구하고 현재의 금융 자본주의에 일정한 애정을 가진 사람이라는 한계가 드러난다는 것이다. 즉 단순한 문학적 비평을 넘어서 저자의 근본적인 세계관에 대한 문제 제기라 할 수 있다. (소킨이 거의 30년째 뉴욕타임스에 금융 관련 칼럼을 싣고 있다는 점과 뉴욕타임스가 현재 미국에서 가장 진보적인 레거시 언론사라는 점을 모두 고려하면 이러한 서평은 그 자체로도 상당히 의미가 있다.)
실제로 소킨은 책의 말미에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1929년의 이야기는 금리나 규제, 금융의 실패에 대한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훨씬 더 영속적인 것, 즉 인간의 본성에 관한 이야기라는 것이다. 아무리 많은 경고가 발령되고 아무리 많은 법이 제정되더라도 사람들은 또다시 미래가 장밋빛일 거라는 근거를 기어코 찾아내고야 만다. 그리하여 어떤 시스템도 완벽하지 않으며, 어떤 시장도 완전히 합리적이지 않고, 어떤 세대도 예외일 수 없음을 인정하는 겸손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킨이 뉴욕 연방준비은행 이사회 의사록, 관련자들의 일기와 편지, 내부자의 미공개 회고록 등 기존 연구자들이 접근하지 못했던 자료들을 발굴해 이야기 속에 엮어냈다는 점은 높이 평가할 만하다. 그는 이미 수십 년 전에 세상을 떠난 인물들을 지금 우리 곁에 살아 있는 사람들처럼 생생하게 재구성했고, 결국 한 편의 픽션 같은 논픽션으로 풀어냈다.
동시에 미국인이 아닌 우리들에게 미국식 자본주의에 대한 깊은 통찰을 아이러니하게도 역시 미국인이 아닌 윈스턴 처칠의 표현을 빌려 전달해 준다. 처칠은 1929년 시장 붕괴 당시 미국을 여행 중이었고, 자기 자신도 전 재산을 털어 미국 주식에 투자했다가 큰 손해를 입었고, 실제로 자신이 머물고 있던 플라자 호텔에서 절망한 투자자가 투신자살을 하는 모습을 목격하기까지 했지만, 시대의 비극에 흔들리지 않았다. 미국인은 영국인과 달리 투자 실패를 파멸로만 받아들이지 않는다며, 이는 "비록 파산하더라도 모든 것을 되찾고 그 이상을 벌 기회가 반드시 찾아온다고 믿기 때문"이라는 그의 관찰은 미국의 회복력과 “어떤 위기가 닥쳐와도 끝내 살아남는 것이 목적”인 시스템에 깊은 신뢰를 보낸다. (그런 맥락에서 1999년 글래스-스티걸법의 핵심 조항 상당수가 폐지되고, 2008년 금융 위기를 거치면서 또다시 도드-프랭크법으로 그 취지가 부활한 것, 그리고 2018년 트럼프 정권에서 도드-프랭크법 역시 사실상 폐지에 가까운 개정을 당한 것 역시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앤드루 소킨의 '1929'는 단순히 1929년에 관한 책이 아니다. 1929년의 패턴이 2026년과 어떻게 공명하는지를 날카롭게 포착하고 있다는 점에서, 뉴요커는 이 책이 역사를 현재에 대한 경고로 읽게 만든다고 평가했다. AI 버블에 대한 의구심과 빅테크의 공공연한 정치세력화, 경제 양극화에 대한 경고음이 끊임없이 울리는 가운데 매일 사상 최고치를 갈아치우고 있는 미국 증시를 보며 이 책을 읽는다면 우리 자신이 살고 있는 시대적 맥락이 눈에 들어온다.
언론 인터뷰에서 소킨은 이 책을 집필하며 배운 가장 큰 교훈이 '레버리지(leverage),' 즉 빚으로 모든 것을 쌓아 올리는 구조라고 언급한 바 있다. 전작에서 2008년을, 이번 작품에서 1929년을 취재하며 거듭 확인한 패턴이라는 것이다. 소킨은 AI 인프라 구축을 위해 엔비디아 칩과 데이터센터에 천문학적인 자금이 투입되고 있는 현재 상황을 언급하며, 이러한 투자를 정당화할 수 있는 매출과 이익이 따라오지 않는다면, 현재의 엄청난 레버리지는 다음번 위기의 씨앗이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어쩌면 독자들이 이 책에서 읽어야 하는 것은 저자가 쓴 이야기가 아닌, 쓰지 않은 이야기인지도 모른다. 대중을 위한 역사 서술이란 극적으로, 재미있게, 독자가 몰입할 수 있도록 쓰는 것과, 구조적 분석과 비판적 판단을 잃지 않는 것 사이의 균형이다. 소킨은 전자에서 그 누구보다 탁월함을 또 한 번 증명했다. 후자를 판단하는 것은 그가 쓰지 않은, 그러나 동시에 감추지도 않은 이야기를 읽어낼 독자들의 몫이다. 그리고 그 판단은, 이 책을 읽어야만 할 수 있다.
덧붙이자면, 나는 전자책 애독자지만, 이 책만큼은 종이책으로 읽기를 강력 추천한다. 시간 순서에 따라 수많은 인물들이 등장했다 사라지기를 반복하기 때문에 종이책으로 읽는 편이 더 편하다. 오랜만에 두꺼운 벽돌책을 읽는 재미를 만끽하게 해준 작품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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