늑대가 자기 자식이 아닌 새끼들을 입양하는 건 특이한 행동이지만, 늑대를 관찰하면서 알게 되는 건—많은 다른 동물들이 그렇듯—각 개체가 아주 분명한 자기만의 성격(personality)을 갖고 있다는 사실이다. 옐로스톤의 레인저들은 그걸 목격하고 있었다. 어떤 늑대는 아주 공격적이고, 어떤 늑대는 무관심하다. 그런데 8번 늑대는... 이렇게 말하면 좀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아주 착한(nice) 성격을 가진 것 같았다.

21번 늑대

이제는 또 다른 늑대가 등장한다. 양아버지인 8번 늑대 밑에서 자란 새끼 8마리 중 하나인 21번 늑대다.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8번 늑대는 아직 어린 늑대의 습성에서 채 벗어나지 않은 한 살 때 아버지 노릇을 시작했다. 그런 탓이었는지 어린 새끼 늑대들과 잘 어울렸다. 새끼들이 사냥하듯 쫓아오면 겁을 먹은 척 도망했고, 자기를 공격하는 놀이를 하면 진 척하며 배를 위로 향하고 눕기도 했다. 모든 아빠 늑대가 새끼들과 그렇게 놀아주는 게 아니다. 어떤 아빠들은 새끼들에서 떨어지려 하고 제압하기도 한다. (새끼들이 귀찮아서 도로를 건너 숨는 수컷들도 있다고 한다.)

(이미지 출처: The International Wildlife Coexistence Network)

그런데 21번 늑대는 그 여덟 마리중에서도 유독 8번 늑대와 마음이 잘 통하는 듯했다. 시간이 지나면 수컷 늑대는 다 자라서 무리를 떠나 다른 무리에 합류하는 게 일반적이다. 하지만 형제 늑대들이 다 떠나도 21번 늑대는 떠나지 않고 남았다. 어느 해 봄, 이들이 눈에 잘 띄는 곳에 머무르는 바람에 매킨타이어는 이 가족의 행동을 며칠 동안 계속해서 관찰할 수 있었다.

"8번과 21번이 함께 노는 모습을 관찰하면서 이 두 마리의 관계가 얼마나 깊은지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저의 늑대 관찰 경력 중 가장 보람 있던 순간이 그 둘의 관계를 지켜보던 때였습니다."

사실 이 양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는 좀 우스운 데가 있었다. 어릴 때 런트였던 8번은 다 자랐어도 여전히 체구가 작았지만, 21번은 엄청나게 크게 자라서 아빠보다 덩치가 훨씬 더 컸다. 매킨타이어에 따르면 21번은 말하자면 만화에 나오는 늑대 같았다. 만약 마블에서 늑대를 주인공으로 한 수퍼히어로 만화를 만든다면 21번 늑대를 사용했을, 그런 모습이었다.

사냥을 하러 가는 시점은 아빠인 8번이 결정했다. 그런데 주변에 21번이 보이지 않으면 8번은 소리를 내서(howling) 부르고 올 때까지 기다렸다가 함께 움직였다. 사냥감을 발견하면 대개는 힘이 세고 빠른 21번이 먼저 달려가 물고 늘어지면 8번이 합류해서 둘이 함께 쓰러뜨렸다. "그렇게 함께 사냥한 둘은 먹이를 같이 들고 돌아왔죠. 둘은 그렇게 어딜 가도 항상 함께하는 친구였습니다. 모든 일을 같이 했죠. 나이가 많은 8번이 결정하면 사실상 도제인 21번이 따르는 식으로요."  

그렇게 또 한 해가 지났지만 21번은 가족을 떠나지 않았다. 세 살이 거의 다 된 수컷 늑대가 부모 늑대와 함께 사는 건 흔치 않은 일이었다. 말하자면 24살의 성인이 아빠, 엄마 외에는 친구도 없이 집에서 사는 것과 비슷한 상황이었다.

새로운 무리

하지만 결국 21번 늑대도 집을 떠날 시간이 왔다. 그런데 그렇게 가족을 떠나서 새로 합류한 늑대의 무리가 문제였다. 자기가 태어난 가족의 늑대 무리와 사이가 좋지 않은 바로 옆 동네, '드루이드 피크(Druid Peak)' 늑대 떼의 일원이 된 거다. 두 무리는 서로 전투를 벌인 적도 있을 만큼 사이가 좋지 않았고, 항상 긴장 관계에 있었다.

게다가 드루이드 피크 무리를 이끄는 암컷은 폭력성이 강하기로 악명이 높았다. 얼마나 성격이 강한지, 자기 엄마와 자매를 무리에서 몰아낸 전력이 있었다. 매킨타이어의 관찰이 맞다면, 이 암컷은 자기 자매 늑대가 낳은 새끼들을 모두 물어 죽였다. 그것도 2년 연속으로. 그래서 매킨타이어는 지금도 그 늑대를 "사이코패스(the psychopath)"라고 부른다. 21번 늑대는 그 사이코패스가 이끄는 무리에 합류한 거다.

(이미지 출처: Free Range American)

사람들은 알파 수컷 늑대가 무리를 이끈다는 얘기를 종종 한다. 가장 힘이 센 수컷이 다른 늑대들 위에 군림한다는 얘기인데, 이는 잘못 알려진 얘기다. 늑대 무리는 대개는 한 가족이고, 그중에서 새끼들의 아버지가 말하자면 알파 수컷이지만, 실제로 결정권을 가진 건 암컷이다. 무리 내에서 우두머리 암컷 늑대가 전략과 결정을 담당한다. 그런데 21번 늑대가 합류한 무리의 우두머리 암컷은 무시무시한 늑대였다.

21번 늑대가 그 무리에 합류한 지 1년 정도 지난 어느날, 21번의 자매 늑대가 실수로 그 무리의 영역에 들어간 일이 있었다. 그걸 본 사이코패스는 곧바로 쫓아갔다. 그 장면은 마침 비행기로 관찰 중이던 옐로우스톤 늑대 프로젝트 사람들이 목격했다. "비행기에 탄 연구원이 그 모습을 사진으로 촬영할 수 있었죠. 저는 나중에 그 사진을 전부 살펴봤는데 끔찍했습니다. 첫 사진은 하얀 눈밭이었는데, 뒤로 갈수록 피가 낭자했죠. (사이코패스는) 일방적으로 상대 늑대를 물어뜯었습니다."

그 모습을 21번 늑대가 보고 있었다. 하지만 사이코패스는 그 무리의 리더였고, 자신은 그 일원이 되었기 때문에 개입하지 않았다.

21번 늑대를 다룬 책 'The Reign of Wolf 21 (21번 늑대의 지배)'과 저자 릭 매킨타이어 (이미지 출처: Canadian Geographic)

그렇게 세월이 흘러 21번 늑대는 덩치가 더 커졌고, 그가 속한 드루이드 피크 무리도 함께 번성했다. 21번 늑대는 무리에서 가장 크고 강한 수컷이 되었고, 자기만의 새끼들도 생겼다. 엄마 늑대는 42번 늑대로, 21번과 사이가 각별해서 항상 함께 잠을 자는 게 목격되었다.

드루이드 피크 무리는 그 수가 점점 늘어나서 사람들의 관심을 끌었다. 이 무리를 주제로 한 다큐멘터리도 나왔는데 21번 늑대를 찍은 장면이 많았다. 워낙 크고 마치 왕 같은 풍모를 하고 있어서 멀리서 21번 늑대를 보러 옐로우스톤 국립공원을 찾아오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의 아빠인 8번 늑대를 보러 오는 사람은 없었다.

일촉즉발

어느 겨울, 21번 늑대가 속한 드루이드 피크 무리와 8번 늑대가 속한 무리 사이에 긴장이 고조되기 시작했다. 매킨타이어가 오두막에 앉아있노라면 두 무리의 늑대들이 계곡을 사이에 두고 서로를 향해 공격적으로 소리를 높이는 걸 들을 수 있었다. 그는 늑대들에 부착된 추적 장치를 통해 두 무리가 서로의 영역을 조금씩 침범해 들어가고 있음을 확인했다. 어느 한쪽도 물러서려고 하지 않았다.

무리에 속한 늑대가 죽는 이유는 대개 다른 늑대들과의 싸움 때문이다. 매킨타이어는 늑대들끼리 싸우는 것을 여러 차례 목격했다. 늑대는 상대를 잔인하게 제압한다. 만약 21번 늑대와 아버지 8번 늑대가 대결하게 된다면, 21번 늑대의 임무는 자기 무리를 보호하는 것이고, 8번 늑대의 임무도 자기 무리를 보호하는 것이기 때문일 것이다.

"저는 8번 늑대를 걱정했어요. 그 시점에 8번은 이미 나이가 많았고, 건강에 문제가 많았습니다. 힘도 잃고 있었고, 달리는 속력도 많이 떨어졌죠. 반면 21번은 중년의 늑대였습니다. 힘과 전투 능력이 최고조에 달한 시점이었죠. 게다가 21번은 일생에 단 한 번도 싸움에서 진 적이 없었습니다. 말하자면 옐로우스톤에서 무패 기록을 가진 헤비급 챔피언이었죠."

게다가 무리의 우두머리 암컷인 사이코패스가 있었다. 싸움이 벌어지면 8번은 사이코패스도 상대해야 했다. "저는 그때 라마 계곡(Lamar Valley)에 있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있는 곳을 기준으로 동쪽에서는 드루이드 피크 무리가 다가오는 신호가 잡혔고, 서쪽에서는 8번 가족의 무리가 다가오는 신호가 잡혔죠. 두 무리가 서로를 향해 다가가고 있는 겁니다. 두 무리 모두 라마 계곡 남쪽에 있는 스페시먼 능선(Specimen Ridge)를 타고 이동하고 있었어요. 같은 능선을 타고 반대 방향으로 이동하고 있었기 때문에 두 무리는 만날 수밖에 없었고, 만나면 싸움이 벌어질 상황이었습니다."

한쪽에서 울음소리를 내면 그걸 들은 다른 쪽에서 울음소리를 냈다.

눈 내린 옐로우스톤에서 이동 중인 늑대 무리 (이미지 출처: The Spokesman-Review

1월이었고, 산은 눈으로 덮여있었지만, 매킨타이어는 트럭에서 내려 망원경으로 두 늑대 무리를 살폈다. 8번 늑대의 무리는 능선의 높은 곳에 있었고, 21번의 무리는 숲과 들판을 지나 올라가고 있었다. 21번 늑대는 드루이드 피크 무리의 맨 앞에서 걸으며 무리를 이끌고 있었고, 8번도 맨 앞에서 자기 무리를 이끌고 있었다. 두 무리는 서로에게 정면으로 다가가는 중이었다.

"저는 그런 두 무리의 늑대를 보고만 있어야 했습니다. 8번과 21번은 제가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늑대였는데, 그런 아들과 양아버지가 서로를 향해 달려가고 있었죠. 8번은 빠르게 달리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가족의 제일 앞에 있었습니다. 그 무엇도 8번을 막을 수 없었죠.

지금도 그 순간을 생각하면 엄청나게 긴장됩니다. 그때 어떤 느낌이었는지 생생하게 기억하거든요. 저는 8번이 물려 죽는 걸 보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 늑대가 산산이 찢기는 건 차마 제 눈으로 볼 수 없었어요. 언젠가는 죽겠지만, 그렇게 다른 늑대, 그것도 21번 늑대에게 물려 죽는 건 최악의 죽음이었고, 그럼 두 늑대의 아름다운 이야기의 비극적인 종말이니까요."

매킨타이어는 혹시 다른 가능성이 있을까 생각해 봤다. 21번 늑대가 8번을 힘으로 제압하기만 하고 그냥 가게 내버려둘 수 있지 않을까? 하지만 그런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었다. 사이코패스가 21번 바로 뒤를 따르고 있었기 때문에 21번이 제압만 하고 살려두면 사이코패스가 바로 덤벼들어 8번을 죽일 게 분명했다.

"제가 할 수 있는 건 없었습니다. 저는 연구원이었기 때문에 눈앞에 벌어지는 일을 관찰하고 기록하는 것 외에는 다른 어떤 일도 할 수 없었습니다. 그렇게 보고 있는 동안 두 무리의 거리는 40미터, 30미터, 20미터, 10미터로 좁혀들었죠. 눈 깜짝할 순간에 상황은 종료될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순간이 되었습니다. 8번과 21번 사이는 이제 1미터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때, 21번이 특이한 결정을 내렸습니다. 뛰기를 멈추지 않고 8번 옆을 지나친 겁니다. 좁은 길에서 아주 살짝 각도를 틀더니 8번 옆을 스치듯 지나갔어요."

정말 기이한 행동이었다. 두 무리의 늑대가 뛰어와서 전투에 돌입하려는 순간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고 서로를 지나쳐 길을 계속 간 것이다. 21번이 드루이드 피크를 이끌고 있었고, 그가 멈추지 않고 계속 뛰어갔으니 그 뒤를 따를 수밖에 없었다.

(이미지 출처: PBS)

드루이드 피크의 늑대들은 21번을 따라 모두 8번을 지나쳤고, 8번은 가던 길을 돌아서 그들을 공격할 힘이 없었으니 그 역시 가던 길을 가는 수밖에 없었다. 나머지 늑대들은 혼란에 빠졌다. 싸우려던 두 무리의 우두머리가 지나쳐서 갈 길을 가니 다른 늑대들은 우왕좌왕하며 서로를 향해 으르렁거렸다. 하지만 그 혼란 속에서 아무 늑대도 다치지 않았고, 어느 늑대도 싸우지 않았다.

그게 (일어나지 않은) 싸움의 끝이었다.


그 일이 일어난 지 벌써 23년이 지났지만, 매킨타이어는 지금도 항상 그 때의 일을 회상한다. 그는 21번 늑대가 의식적으로 그런 선택을 했다고 확신한다. 21번은 임박한 전투를 뜀박질 게임으로 바꿔 전속력으로 달리기로 한 거다. 그럼 드루이드 피크의 늑대들은 자기를 쫓아올 수밖에 없을 거고, 자기는 무리에서 가장 빠르기 때문에 이들을 그 자리에서 재빨리 빼낼 수 있었다.

"21번 늑대는 자기를 키워준 늑대를 구하기 위해 천재적인 방법을 생각해 낸 겁니다. 그 순간이 아마 제 인생에서 가장 감동적인 순간이었을 겁니다." 그 장면을 목격했을 때는 매킨타이어가 이미 8번 늑대와 21번 늑대를 오랜 시간 관찰한 시점이었다. 그는 그 두 마리의 늑대와 그들의 관계를 보며 감탄했고, 그들을 사랑했다. 그런 그들의 이야기가 비참하게 끝날 거라 생각한 순간, 21번 늑대는 놀라운 방법을 생각해 내 싸움을 피한 것이다.

매킨타이어는 그 두 마리 늑대의 일생을 지켜봤다. 늑대를 두고 이렇게 표현하는 게 이상한 건 알지만, 8번 늑대는 정말 착한 늑대였다. 착하다는 것 외에 다른 형용사를 찾기 힘들다. 늑대의 삶이 얼마나 거칠고 잔인한지 안다면, 그렇게 착한 늑대는 살아남지 못할 거라 생각하겠지만, 결국 8번의 목숨을 구한 것은 그의 착한 행동이었다. 왜냐하면 21번은 양아버지인 8번에게서 늑대가 되는 법을 배웠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자식에게 사랑을 쏟아부었고, 자식은 그런 사랑을 물려받은 것이다.

8번 늑대는 그 일이 있은 지 몇 달 후에 세상을 떠났다. (아마도 가족을 위해) 사냥하던 중에 엘크의 뒷발질에 머리를 맞아 숨을 거뒀다고 한다. 🦦

(이미지 출처: The Dod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