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미국 옐로스톤 국립공원의 늑대에 관해서 처음 알게 된 건 토플(TOEFL) 시험을 보면서였다. 토플, 토익 등의 시험을 주관하는 ETS는 다양한 곳에서 지문을 가져오는데, 내가 1990년대 말 치른 토플 시험에 옐로우스톤의 생태계를 다룬 지문이 들어있었다. 그 내용은 대략 이랬다:

옐로스톤 국립공원은 미국 정부가 지정한 첫 국립공원이다. 국립공원이라는 게 원래 자연이 파괴되는 것을 막기 위해 생겨났지만, 당시(1872년에 지정되었다)만 해도 사람들은 생태계에 대한 지식이 부족했기 때문에 그들이 취한 조처가 항상 자연 보호에 도움이 되는 건 아니었다. 당시 사람들은 늑대는 흔히 볼 수 있는 포식자로 취급했고, 이들이 엘크(elk, 와피티 사슴)와 같은 옐로스톤에 사는 아름다운 초식동물들을 잡아먹는 해로운 존재라고 인식했기 때문에 늑대를 모조리 사냥해서 없애면 옐로스톤을 동물의 천국으로 만들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렇게 늑대를 없애고 보니 사슴의 숫자가 크게 늘어나면서 오히려 자연이 파괴되었고, 생태계의 다양성이 줄어들면서 국립공원의 이상과 거리가 멀어지고 있음을 깨닫게 된다. 그래서 미국 정부는 1995년, 옐로스톤에 살던 회색늑대를 다시 데려와 풀어놓기로 하고 캐나다에서 여러 마리를 데려왔다. 그랬더니 사슴의 개체 수가 줄어 적정 숫자를 유지하면서 식물의 군락이 바뀌었고, 바뀐 환경 때문에 사라졌던 동물들이 찾아오면서 국립공원이 비로소 '자연'에 가까운 모습으로 변하게 되었다.

1995년 조치 이전과 이후를 비교하는 그림 (이미지 출처: Reddit)

천적이 생긴 사슴들은 숫자는 줄었지만 오히려 건강해졌고, 심지어 강, 개천의 물 흐름까지 바뀌었다는 게 지금까지 내가 기억하는 그 지문의 내용이다. (오랜 세월이 흐른 후 내 딸아이가 SAT 시험을 봤을 때도 같은 내용이 있었다고 해서 놀랐는데, 아마 시험 지문으로 적절한 내용이라고 판단한 것 같기도 하다.)

그런데 옐로스톤에서는 그냥 캐나다에서 늑대를 데려다가 풀어 놓은 게 아니다. 데려온 늑대는 물론이고, 그 늑대가 낳은 새끼들에도 모두 번호를 붙여서 구분했고, 필요한 경우 목에 추적 장치까지 채워서 철저하게 관찰했가다. 이 늑대들을 가장 가까이에서 관찰한 옐로스톤 국립공원 관리인—레인저(ranger)라 부른다—이었던 릭 매킨타이어(Rick McIntyre)는 훗날 이들 중 네 마리의 이야기를 각각 책으로 내서 유명해졌다.

아래의 이야기는 그가 방송에 나와서 이야기한 내용을 옮긴 것이다.

(출처: 릭 매킨타이어의 웹사이트)

릭 매킨타이어는 세상의 그 누구보다 더 긴 시간 동안 늑대를 지켜본 사람이다. 무려 40년 동안 늑대들을 관찰했다. 그는 옐로우스톤 바로 옆에 위치한 오두막에 살면서 오로지 늑대만을 관찰하며 살았다. 매일 해가 뜨기 전에 일어나 늑대들의 위치를 파악하고, 그들이 있는 곳으로 이동해 행동을 관찰하고 기록하는 일을 주말에 쉬는 법도 없이 매일 했다. 그가 종이에 촘촘하게 기록한 필드 노트는 1만 3,000페이지에 달한다. 그가 쓴 네 권의 책은 이 기록을 바탕으로 한 것이다.  

그의 책을 읽으면 마치 저자와 함께 밖에 나가 늑대들을 함께 보고 있는 느낌이 든다. 실제로 그의 기록을 바탕으로 많은 연구 논문이 나왔다. 매킨타이어를 비롯한 레인저들이 관찰하기 전까지 우리는 늑대에 대해서 아는 게 거의 없었다. 인간은 그저 주변에 늑대가 없었으면 했을 뿐이다. 심지어 옐로우스톤 국립공원에서도 그랬다.

"1920년대, 초창기 국립공원 레인저들은 평균적인 미국인들과 다르지 않아서, 늑대는 하등 쓸데없는 동물이라고 생각했죠. 그래서 모두 잡아 죽이는 게 맞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래서 아주 철저하게 사냥해서 완전히 없애버린 겁니다." (이 글에서 인용문은 모두 매킨타이어의 말이다—옮긴이)

옐로우스톤 국립공원 레인저들은 마지막 남은 늑대까지 죽였다. 하지만 1990년대가 되어 그게 큰 실수임을 깨닫고 캐나다에서 야생 늑대들을 데려온 것이다. 그렇게 데려온 늑대 세 가족을 국립공원에 풀어놓고 번식하게 했다. 그냥 풀어놓은 게 아니라 목에 추적 장치를 달아서 위치를 확인하고 관찰했다. 그렇게 해서 인류 역사에 알려지지 않은 늑대들의 습성을 처음 배우게 된 것이다. 그걸 담당한 사람이 릭 매킨타이어였다.

매킨타이어는 그 일을 하면서 많은 늑대들의 이야기를 알게 되었지만, 그중에서도 그에게 가장 인상 깊게 다가온 늑대 두 마리가 있었다. 이게 오늘 들려줄 아빠와 아들 늑대, 두 마리의 이야기다. 이 이야기는 아버지 늑대로 시작한다. 매킨타이어가 처음 그 늑대를 봤을 때는 캐나다에서 데려온 세 가족 중 하나에 속한 어린 늑대였다.

(이미지 출처: Phys.org)

8번 늑대

매킨타이어는 "이 이야기를 셰익스피어가 들려줬다면" 아마 깊은 숲속, 늑대들의 소굴에서 시작했을 거라고 했다. 먼저 세 마리의 새끼 늑대들이 소굴에서 달려 나온다. 이들은 아버지를 닮아서 튼튼하고 강인한 모습이었다. 그런데 그 세 마리의 뒤를 이어 한 마리가 더 나온다. 다른 새끼들과 달리 비쩍 마르고 걷는 모양새도 볼품없었다. 런트(runt)였다.

런트는 한 배에서 나온 새끼 중 가장 작고 허약한 새끼를 말한다. 작게 태어나는 바람에 다른 형제들에 치여서 젖꼭지를 놓치기도 해서 성장도 더딘 악순환이 생겨 일찍 죽기도 하고, 다 자라도 덩치가 작다.

레인저들이 그 새끼 늑대에게 채운 위치 추적기는 8번이었기 때문에 '8번 늑대(Wolf 8)'라고 불리게 된다. 8번 늑대는 형제들보다 작기만 한 게 아니라, 가족 전체에서 두드러지게 초라했다. 엄마 늑대는 흰색에 가까운, 아름답고 밝은 털을 하고 있었고, 아빠 늑대와 다른 세 형제는 모두 짙은 검정색 털을 하고 있어서 하나같이 아름다운 가족이었다. 그러니 8번 늑대만—안 좋은 쪽으로—달라 보였다. "게다가 형제들이 8번을 끊임없이 괴롭혔어요. 먹이를 먹을 때도 다른 식구가 다 먹을 때까지 기다렸다가 나중에 먹어야 했죠. 심심하면 8번을 몰아붙이고 내리눌러서 괴로운 나날을 보내더라고요."

캐나다에서 온 늑대들에게도 옐로우스톤은 낯선 곳이었지만, 그 일을 시작한 매킨타이어에게도 낯선 환경이었다. 그렇게 가까이에서 늑대를 보는 건 그에게도 처음이었다. 그런 탓에 그는 8번 늑대에게 정이 갔고, 그 늑대를 "꼬마(little guy)"라 부르며 무슨 일이 생기지 않을까 걱정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8번을 포함한 어린 늑대들이 숲에서 서로를 쫓으며 놀고 있다가 갑자기 멈추더니 나무가 많은 숲으로 빠르게 뛰어 들어가는 게 보였다. 나무들에 가려서 왜 뛰어갔는지, 무슨 일이 있는지 알 수 없었다. 그러다가 갑자기 늑대들이 전속력으로 달려 나왔다. 덩치가 가장 큰 놈이 제일 먼저 나왔고, 다른 늑대들이 그 뒤를 따랐다. 그리고 제일 느린 8번 늑대가 가장 늦게 나타났다.

매킨타이어가 자세히 보니 가장 큰 놈은 죽은 엘크 새끼를 끌고 나온 게 보였다. 그 모습을 보고 처음에는 감탄했다. 어린 늑대가 죽이기에는 꽤 큰 사냥감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잠시 후, 엘크를 사냥한 게 늑대들이 아니었음을 알게 되었다. 달려 나오는 8번 늑대 뒤로 거대한 그리즐리 곰이 나타났기 때문이다. 곰이 사냥한 엘크 새끼를 늑대들이 훔친 것이었다.

곰은 빠르게 달려 8번 늑대와의 거리가 점점 좁혀지고 있었다.

(이미지 출처: Rob's Wildlife)

8번 늑대는 고개를 돌려 추격하는 곰을 봤다. 당장이라도 곰이 덮칠 듯했다. 당시 8번 늑대는 몸무게가 30kg 정도에 불과했고, 그리즐리 곰은 180kg은 되어 보였다. 여섯 배나 되는 곰과 맞붙으면 8번은 살 가망이 없었다.

"그런데 그 순간, 8번 늑대는 달아나기를 멈추고 돌아서더니 거대한 곰과 싸우겠다는 자세를 취했죠. 어처구니없는 결정이었는지 모르지만, 그걸 본 곰은 그 자리에 멈춰 섰어요. 곰은 그 작고 어린 늑대가 상황 파악을 못 하고 자신에게 덤비는 걸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듯 보였죠. 하지만 그러는 사이 자기가 사냥한 엘크 새끼를 문 다른 늑대가 시야에서 사라졌기 때문에 이 상황에서 뭘 해야 할지 혼란스러운 눈치였습니다. 자기가 할 수 있는 게 없다고 판단한 곰은 포기하고 돌아서서 숲으로 향했죠. 저는 그 장면을 보고 8번 늑대가 우리가 생각했던 것과는 다른 애라는 생각을 처음 갖게 되었어요."

하지만 8번의 형제들은 꼬마의 영웅적인 행동을 목격하지 못했고, 곰을 막은 막내에게 엘크 고기를 나눠주지도 않았다. 그리고 괴롭힘은 계속되었다.

그렇게 여러 달이 지나면서 8번 늑대는 무리에서 떨어져 혼자 지내는 시간이 점점 많아졌다. 마치 식구들이 있는 집에서 나와 돌아다니는 고등학생처럼 혼자서 숲을 배회했다. 매킨타이어는 식구 중 아무도 이해해 주지 않는 8번 늑대의 외로운 모습을 애틋하게 바라봤다.

새로운 가족

그러던 어느 날,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혼자 돌아다니던 8번 늑대는 자기보다 훨씬 어린 늑대 새끼들을 만나게 되었다. 그 아이들의 엄마 늑대는 아주 힘든 처지에 있었다. 그 엄마는 새끼를 무려 8마리나 낳았는데, 새끼들이 태어난 날 아빠 늑대가 불법 사냥꾼의 총에 죽임을 당했던 거다. 늑대가 새끼를 혼자 키우는 건 몹시 어렵다. 새끼들에게 젖을 주려면 사냥을 해서 먹어야 하는데, 사냥하는 동안 새끼들은 아무런 보호를 받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뿐 아니다. 새끼 늑대들은 스스로 체온을 조절하지 못하기 때문에 추울 때는 다른 늑대가 품어줘야 한다. 따라서 여덟 마리의 새끼들은 굶거나 얼어 죽을 위기에 있었다. 옐로우스톤의 늑대 프로젝트 담당자들은 이 어미와 여덟 마리의 새끼들이 죽을까 봐 잠시 포획해서 먹이를 주기도 했다.

8번 늑대가 만난 게 그 늑대 가족이었다. 이제 막 한 살이 넘은 작고 볼품없는 외톨이가 또 다른 가족의 새끼들과 만나 함께 놀며 시간을 보낸 거다. 엄마 늑대는 그 장면을 조금 떨어진 곳에서 지켜봤다. 낯선 늑대가 자기 새끼들과 있었지만 엄마 늑대는 다급한 상황에 있었다. "누구라도 도와줄 수 있으면 반길 수밖에 없었는데, 8번 늑대가 나타나서 자기 아들, 딸 늑대들과 놀아주는 걸 본 거예요. 잠시 후 엄마 늑대는 8번 늑대에게 다가갔고, 둘은 서로 인사를 나누고 잠시 장난치며 시간을 보내더라고요."

낯선 늑대들이었지만 8번 늑대는 그 가족이 좋았다. 그들과 어울리기 시작한 8번은 직접 사냥해서 새끼들에게 먹이를 나눠주었다. 참고로, 늑대는 사냥 후 먹이를 먹은 후에 다시 토해내서 새끼를 먹인다. 늑대는 최대 9kg의 고기를 배에 넣어 운반할 수 있다. 같은 무게를 입에 물고 장거리를 이동하는 것보다 훨씬 쉽다. 그렇게 돌아온 아빠나 엄마 늑대의 얼굴을 새끼 늑대들이 핥는데, 그 행동이 구토를 유발해서 위에 있던 음식을 먹인다. (개가 주인의 얼굴을 핥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라고 한다.) 수컷 늑대가 그렇게 사냥을 해서 자기 자식이 아닌 새끼들을 먹이는 사례는 8번 늑대의 행동을 통해 처음으로 알려졌다.

"게다가 8번 늑대는 그 가족의 일원으로 초대된 거죠. 자기가 태어난 가족에게서 놀림감이 되고 괴롭힘을 당하던 덩치가 작은 늑대에서 한 가족의 알파 수컷(alpha male, 집단의 우두머리 수컷)이 된 겁니다. 새끼를 데리고 있던 엄마 늑대로서는 이렇게 어리고 작은 수컷이 최고의 후보는 아니었겠지만, 어쨌거나 8번 늑대는 그 역할을 자원한 유일한 후보였으니까요."


'8번 늑대 ②'에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