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 두 기사의 제목을 보자. 하나는 1899년에 나온 기사이고, 다른 하나는 2023년에 나온 기사이지만, "남자 옷에는 주머니가 많은데 왜 여자 옷에서는 주머니가 드물까?"라는 같은 질문을 한다. 신문도 똑같은 뉴욕타임즈다. 19세기 말에 이미 여자 옷에 주머니가 필요하다고 주장했지만, 124년이 지난 지금도 이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고, 여전히 많은 여성이 주머니—무늬만 주머니 말고, 실제로 사용할 수 있는 주머니—가 있는 옷을 원한다고 말한다.

(이미지 출처: The New York Times)

왜 여자 옷에 주머니를 만들지 않느냐는 건 단순한 질문이지만, 그 답은 절대 간단하지 않다. 2016년에 마이크(Mic)라는 온라인 매체에서 여자 옷에 주머니가 없는 이유를 의복의 역사적 측면에서 간략하게 다룬 적이 있는데, 당시 그 기사를 한국의 뉴스페퍼민트에서 '‘주머니’의 역사와 여성용 옷에 숨어있는 성차별'이라는 제목으로 한국어로 옮겨서 소개했다.  

그런데 뉴스페퍼민트 글 아래에 달린 댓글들은 그다지 호의적이지 않았다. "주머니가 들어가면 핏(fit)이 살아나지 않기 때문에 주머니 없는 옷을 더 선호한다"라는 의견은 꽤 많다. 어차피 핸드백을 비롯한 다양한 백을 들고 다니니 굳이 바지 주머니에 힘들게 쑤셔 넣어 불편하게 다닐 필요가 없다는 거다. (사실 남자인 나도 주머니에 물건을 넣는 일은 거의 없다. 동전을 쓰게 되지 않으면서 더욱 그렇게 되었다. 그저 두 손을 모두 사용해야 할 때 잠시 폰을 넣어두는 용도를 벗어나지 않는다.)

하지만 뉴스페퍼민트가 소개한 마이크의 글은 그렇게 욕을 먹을 글은 아니었다. 그 글의 원제는 'The Weird, Complicated, Sexist History of Pockets (이상하고, 간단하지 않은, 그리고 성차별적인 주머니의 역사)'다. '여성용 옷에 숨어있는 성차별'이라는 뉴스페퍼민트의 제목 번역은 언뜻 보면 비슷한 것 같지만, 원문 기사가 오해를 피하기 위해 조심스럽게 "여자 옷은 성차별적 역사를 갖고 있다"는 의미로 뽑은 제목을 "오늘날 여자 옷에 주머니가 없는 것은 성차별"이라는 식으로 거칠게 옮기는 바람에 독자들이 무리한 주장이라고 생각하게 되었을 것 같다.

마이크의 글은 뉴스페퍼민트가 요약, 번역한 것보다 훨씬 알차다. 지금의 현상만을 보면 남자와 여자가 형태적으로 크게 다르지 않은 바지를 입어도 여자 옷에만 주머니가 없거나 '무늬만 주머니'가 있는 것으로 보이지만, 사실 여자와 남자의 옷은 (적어도 우리가 입는 서양식 옷의 경우) 전혀 계통으로 다르게 발전했다는 거다. 결론적으로 지금은 남자와 여자가 모두 바지를 입어도 여자 옷이 주머니를 무시하는 이유는 이렇게 다른 역사를 통해서 현재의 비슷한 모습에 도달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마이크의 짧은 기사보다 이 주제를 훨씬 더 자세하게 다룬 책이 나왔다. 로드아일랜드 디자인 스쿨(RISD)에서 패션의 역사를 가르치는 해나 칼슨(Hannah Carlson)의 책, 'Pockets: An Intimate History of How We Keep Things Close (주머니: 우리가 물건을 몸에 지니고 다니는 방법에 관한 사적인 역사)'다. 이 책은 마이크의 기사와 달리, (의복) 주머니의 성차별적 역사에 집중하는 대신 우리가 입는 옷에 주머니가 달리게 된 역사를 전체적으로 조망한다. 그리고 그중 한 챕터(4장)에서 주머니의 역사에 스며있는 성차별(sexism)을 살핀다.

책의 일부저자의 인터뷰, 그리고 이 책을 소개한 몇 개의 글에 등장한 내용을 읽기 쉽게 정리했다.

먼저 간략한 옷의 발전사를 살펴보자.

역사를 통틀어 인류가 입었던 옷은 대부분 길고 헐렁한 천으로 몸을 감싸는 형태였다. 부분적인 차이는 있었어도 이런 기본 틀에는 남자 옷과 여자 옷이 차이가 없었다. (이렇게 긴 천을 두르는 경우 복잡한 재단이 필요 없을 뿐 아니라, 여성의 경우 임신과 출산으로 체형이 자주 변해도 별도의 임부복을 마련하지 않아도 되는 장점이 있다—옮긴이)

고대 그리스(왼쪽)와 중국의 의복 (이미지 출처: Wikipedia, NEWHANFU)

그렇다면 현재 많은 나라에서 입는 서양화된 의복에서 볼 수 있는 '바지'는 언제, 왜 등장했을까? 저자 해나 칼슨은 1330년대를 꼽는다. 바로 갑옷의 등장이다. 갑옷(armor)이 전통적인 의복 형태의 쇠자갑(chain mail, 아래 사진 왼쪽)에서 판금갑(plate armor)으로 발전하는 과정에서 이를 입어야 하는 기사의 허리둘레, 팔다리의 길이 등 체형을 정확하게 측정할 필요가 생겨났고, '재단(tailoring)'의 시초가 되었다.

쇠자갑(왼쪽)과 발전된 형태의 갑옷 (이미지 출처: Quora)

하지만 중세까지만 해도 옷에는 주머니가 붙어있지 않았다. (한국에서 전통 '주머니'가 옷과 분리된 작은 파우치를 의미하는 것처럼) 당시 유럽에서 'pocket'이라는 것도 옷의 일부가 아니라, 허리띠에 부착하는 형태였다. 이는 남녀 모두 마찬가지였다. 다만 남자들은 허리띠에 가깝게 주머니를 차고 있었고, 필요할 경우 짧은 칼을 주머니와 함께 차고 다녔다면, 여자들은 주머니를 다리쪽으로 길게 늘어뜨린 형태로 차고 다녔다는 정도의 차이가 존재했다고 한다.

보카치오의 '데카메론'에 등장하는 삽화. 남자와 여자의 주머니는 둘 다 허리띠에 매여있지만, 위치는 다르다. (이미지 출처: Pockets)

그러다가 유럽의 남자들은 트렁크 호즈(trunk hose), 브리치즈(breeches) 같은 본격적인 바지 형태의 옷을 입게 되면서 비로소 주머니가 남자 옷의 일부가 되는 현상이 나타났다. 이런 초기의 바지들은 패션 아이템이 되면서 커다랗게 부풀어 오른 모양을 하기도 했기 때문에 몸에 붙지 않아 여유 공간이 충분했다. 칼슨은 남자들의 바지가 (아래 사진 왼쪽처럼) 커다란 통 모양이 되니 전통적으로 허리띠에 차던 주머니를 그 위에 얹는 것보다는 그냥 안으로 넣자는 생각을 한 재단사들이 나타났을 것으로 추측한다.

그냥 주머니를 바지 안쪽에 매다는 게 아니라, 아예 꿰매 넣기로 하면서 우리가 아는 '바지 주머니'가 탄생하게 된 거다. 그게 1550년대에 일어난 일이다.

왼쪽이 트렁크 호즈, 오른쪽이 브리치즈. 긴 양말, 혹은 각반은 따로 입게 되어 있어 둘 다 짧은 바지의 형태를 하고 있다. (이미지 출처: Pinterest, Wikipedia)

여기에서 궁금해지는 건, 그렇게 탄생한 바지가 왜 남성용으로 국한되었느냐는 거다.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다. 한 역사학자에 따르면 "(서양에서) 남자 옷은 여자 옷보다 더 발전된 형태였고, 더 현대적이었다." 흔히 남자들은 "양복 정장"처럼 모두 똑같은 옷을 입고, 유행을 타지 않고, 변하지도 않는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옷의 역사에서 먼저 발전한 건 남자 옷이었다.

변화했다는 사실 자체보다 더 중요한 건 남자 옷의 변화 방향이었다. 남자 옷은 활동을 반영하고, 몸의 움직임에 도움이 되는 쪽으로 변했다. 통으로 된 치마 형태에서 두 다리를 따로 감싸는 '바지'가 등장하게 된 것은 그렇게 남성들이 참여한 전쟁과 스포츠 같은 활동을 염두에 둔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옷의 기본적인 형태가 젠더에 따라 달라지면서 옷은 단순히 기능을 가진 물건이 아니라, 사회문화적 함의, 특히 성역할에 관한 함의를 담게 된다. 영어권에서 유명한 표현, "Who wears the pants in this family? (이 집에서 누가 바지를 입냐?)"라는 말은 '부부 중 누가 결정권을 쥐고 있느냐'는 말이다. 물론 집마다 사정이 다르기 때문에 아내가 더 큰 발언권, 결정권을 가진 집도 많지만, 그 결정권을 바지와 동일시하는 것은 애초에 그걸 남성이 가졌다는 사실을 기반으로 하고, 치마를 입는 사람, 즉 아내는 원래는/과거에는 수동적인 존재라는 함의가 있다.

바지를 두고 싸우는 남편과 아내의 모습은 가정 내 권력 싸움을 상징한다. (이미지 출처: Pockets)

즉, 바지는 등장한 직후부터 권력(power)을 의미했다.


'여자옷과 주머니 ②'에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