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의 짧은 버전이 서울신문의 '박상현의 테크/미디어/사회'에 게재 되었습니다.


지난 2월 24일 러시아의 침공으로 시작된 우크라이나 전쟁은 이제 6주를 넘겼지만 그 끝이 보이지 않는다. 침공 직후만 해도 며칠이면 종료될 거라고 생각했던 이 전쟁은 기간만 길어진 게 아니라 그 영향 역시 세계 구석구석으로 퍼져 나가는 중이다. 세계적인 곡창지대 중 하나인 나라와 석유·천연가스 시장의 큰손인 나라가 싸우면서 아랍과 아프리카의 가난한 나라 사람들은 식량 위기에 직면했고, 러시아의 돈줄을 막으려 대대적인 경제 제재에 나선 선진국들은 그 결과로 일어난 에너지 가격 폭등으로 고민 중이다. 우크라이나의 승리를 기원하는 사람들도 휘발유값이 오르면 자기 나라 정부를 탓하기 때문이다.

이 글을 쓴 후에 반드시 그렇다고 볼 수 없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ABC News/Ipsos 조사에 따르면 미국인의 71%가 이번 석유값 폭등의 책임이 푸틴에게 있다고 생각한다고 한다.

그렇다 보니 이번 전쟁은 과거 시리아나 조지아, 예멘에서 일어난 전쟁과 달리 세계 언론이 관심을 갖고 거의 중계를 하다시피 보도하고 있다. 하지만 워낙 많은 기사와 정보가 쏟아지고 있어 그중에는 사실이 아닌 내용이 섞여 있고, 때로는 의도적으로 퍼뜨린 가짜뉴스도 버젓이 돌아다닌다. 이는 새로운 현상이 아니다. 소셜미디어 등장 이후 ‘가짜뉴스’라는 말이 보편화됐지만 원래 전쟁 중에 나오는 보도는 믿기 힘든 것들이 많다. 여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가령 뉴욕타임즈 1면 톱 기사는 2월 24일 이후 항상 우크라이나 전쟁 기사다. 최초의 흑인 여성 대법관 임명이라는 큰 뉴스가 나왔을 때도 전쟁 뉴스를 맨 윗줄에서 내리지 않았다. 시카고 시장 로리 라이트풋의 트위터

우선 전쟁 당사국들은 자국 병사들의 사기 진작과 전쟁의 승리를 위해 유리한 정보만을 발표하거나, 유리한 정보가 없을 때는 이를 지어내는 일도 서슴지 않는다. 이는 국가가 만들어 내는 의도적 가짜뉴스에 해당한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모든 정부는 평상시에도 자신들에게 유리한 프로파간다를 끊임없이 생산한다. 적당히 할 경우 국정 홍보, 혹은 프레이밍(framing)이지만, 도를 넘을 경우 기만적인 가짜뉴스가 된다. 정권, 혹은 국가의 사활이 걸린 전쟁 중에 이런 활동이 크게 증가하는 건 충분히 상상할 수 있다.

'전쟁의 안개'와 언론 보도

전쟁 보도에서 진실을 찾기 힘든 또 하나의 이유는 소위 ‘전쟁의 안개’(fog of war)라 불리는 전쟁 특유의 불확실성이다. 전쟁 얘기만 나오면 항상 인용되는 프로이센의 전략가 카를 폰 클라우제비츠가 처음 사용한 것으로 알려진 이 표현(그는 단순히 ‘안개’라고 불렀다)은 “전쟁은 불확실성의 영역이며, 전쟁에서 수행되는 일의 대부분은 불확실성에 기반하고 있기 때문에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기 위한 정보 활동과 판단력이 요구된다”는 그의 주장에서 나왔다.

천안함을 공격한 어뢰 잔해에 남은 '1번'이라는 표시 하나를 두고도 많은 논란이 있었다.

전쟁의 안개가 어떤 것인지는 2010년에 일어난 천안함 피격 사건을 통해 짐작해 볼 수 있다. 한국의 해군 초계함이 북한 잠수정의 어뢰에 피격돼 침몰한 이 사건은 3월 26일에 일어났지만 최종적이고 공식적으로 북한의 소행임이 확인된 것은 2개월 후의 일이다. 그사이 ‘암초에 부딪힌 결과’라거나 ‘금속피로로 인한 결과’(당시 해군참모총장과  이명박 대통령도 북한의 공격이 아닐 거라는 발언을 했다) 혹은 자작설까지 다양한 주장이 나왔다. 평시에 일어난 폭침 사건을 두고 온 나라가, 아니 국제조사단까지 참여해 조사한 결과가 나오는 데 두 달이 걸렸다면 같은 종류의 공격이 우크라이나 같은 넓은 땅 곳곳에서 매일, 그것도 6주 넘게 이어진다면? 이런 상황에서 진실을 찾는다는 건 거의 불가능한 일처럼 보이기도 한다.

이런 어려움을 잘 보여 주는 사례가 지난주 금요일에 일어난 크라마토르스크 기차역 공격이다. 크라마토르스크는 수도 키이우 공략에 실패한 러시아군이 병력을 우크라이나 동부 돈바스 지역으로 재배치하는 과정에서 양측이 양보할 수 없는 격전지가 될 것으로 지목된 도시다. 우크라이나 정부는 러시아의 무차별 공격으로 폐허가 된 마리우폴이나 하르키우의 상황으로 보아 이 도시의 주민들도 위험하다고 판단해 대피하게 했는데, 이들이 이동하기 위해 모인 크라마토르스크 역에 미사일 두 개가 떨어진 사건이다.

수천 명의 피란민이 열차를 기다리고 있던 중에 미사일이 떨어졌기 때문에 아이들을 포함한 50명 이상이 그 자리에서 사망했고, 수백 명이 부상을 입었다. 러시아가 전쟁이 시작된 이후 피란민을 포함한 민간인을 겨냥한 공격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 여러 매체와 증언, 심지어 위성사진으로도 확인이 됐기 때문에 크라마토르스크 공격도 러시아군의 소행으로 추정하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이 사건을 보도하는 한국 주요 매체의 기사들을 보면 "러 '크라마토르스크 기차역 공격 안 해'" "러, '크라마토르스크 기차역 공격 안 해...우크라이나군이 미사일 쏴'" 같은 제목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물론 이런 기사들은 이것이 러시아가 하는 주장임을 명백하게 밝히고 있기 때문에 사건의 실체가 어떻게 밝혀지든 오보라고 할 수 없다.

러시아 국방부 청사

그런데 많은 매체가 받아 쓴 연합뉴스 기사에 들어가 보면 앞부분 텍스트의 75%가 러시아 국방부와 크렘린의 주장을 상세하게 소개하고 있다. 뒷부분에 “러시아가 공격했다”는 우크라이나의 주장이 짧게 소개됐지만, 이는 독자가 이 사건을 이미 들어서 알고 있고, 이후에도 계속 관련 기사를 읽는다는 것을 가정하는 일종의 후속 기사로, 한쪽의 발표를 그대로 전달만 하는 한국의 전형적인 단신 기사다. 그러나 사람들은 매체가 기대하는 것처럼 이런 사건을 꾸준히 팔로업하면서 살펴보지 않는다. 많은 독자들에게 뉴스는 본업이 아니고, 이 사건은 이 기사 하나만으로 판단할 가능성이 높다.

거짓말은 많이 할 수록 효과적

문제는 그렇게 전달한 러시아 국방부의 주장이 꽤 설득력 있게 들린다는 사실이다. 우선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모두 기차역에 떨어진 미사일이 ‘토치카U’라고 주장했고, 사진으로 미사일 몸통 잔해를 본 전문가들도 대부분 이에 동의한다. 그런데 연합뉴스가 전달한 크렘린의 주장에 따르면 러시아는 그 기차역을 공격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러시아군은 그런 종류의 미사일을 사용하지 않는다”고 한다. 토치카 미사일은 정확도가 떨어지는 구형 미사일로, 러시아는 이 미사일을 신형인 ‘이스칸데르’ 미사일로 꾸준히 교체해 왔다고 알려져 있고, 옛 소련으로부터 토치카 미사일을 받은 우크라이나가 이번 전쟁에서 이 미사일을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러시아 국방부의 주장은 상당히 설득력 있게 들린다.

이미 3월에 러시아군 토치카-U 미사일을 사용한 기록이 존재한다.

하지만 위에서 말한 기사가 언급하지 않는 것은 러시아가 이번 전쟁에서 여전히 ‘토치카U’ 미사일을 사용하고 있음이 영상과 사진 기록으로 남아 있다는 사실이다. 게다가 이는 두 나라가 아닌 제3자가 기록한 오픈소스에 등장하는 것들이다.

러시아 국방부는 이번 공격이 “우크라이나군 진지 방어를 위해 인간방패로 삼으려 한 주민들이 대규모로 도시를 떠나는 걸 무산시키려는” 목적으로 벌인 우크라이나의 자작극이라고 주장했지만, 우크라이나가 전쟁이 시작된 뒤 러시아 측에 피란민 통로를 보장해 달라는 협상을 꾸준히 진행해 왔고, 러시아가 이를 거부하다가 합의한 뒤에는 피란민을 공격했다는 건 이미 객관적으로 확인된 사실이다. 심지어 이런 피란민 공격과 학살은 그 순간이 기자의 카메라에 촬영돼 영상으로 공개되기도 했다.

민간인 공격에 대해 러시아는 “우크라이나도 (친러 반군 점령지인) 돈바스 민간인 거주 지역에 미사일을 쐈다”고 주장하지만, 이를 전달하는 것은 크렘린의 마이크 역할을 하는 타스통신일 뿐 다른 매체들은 “러시아 측이 이 주장에 대한 근거를 보여 주지 않았다”며 확인을 거부했다. 심지어 로이터통신은 타스통신이 아무런 근거를 제시하지 않은 채 크렘린의 주장을 기사로 송신하는 일을 계속하자 자사의 콘텐츠 마켓에서 제외해 버리기도 했다.

러시아는 자국의 안보를 위해 전쟁을 벌였다면서 왜 이렇게 금방 들통날 거짓말을 쏟아놓을까? 카네기 재단의 러시아 지역 연구원인 크리스토퍼 보르트는 크렘린은 이에 대해서 흥미로운 견해를 제시한다. 그는 푸틴의 이런 거짓말을 '브라뇨'라 부른다.

남을 속이기 위한 거짓말을 로쉬(ложь, losh)라고 부르는 데 반해, 거짓말인 걸 누구나 아는 '뻔한 거짓말'을 러시아어로 브라뇨(враньё, vranyo)라고 부른다. 브라뇨는 남을 속이기 위한 거짓말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진실에 불편한 부분을 빼고 하는 말, 환상, 혹은 절반의 진실 따위를 가리킨다고 한다. 러시아인들이 사용하는 브라뇨에서 대해 영미권 매체에서 설명한 기사들 참조.

보르트에 따르면 크렘린은 상대방이 자신의 말이 거짓말임을 알고 있을 때도 거짓말을 하는데, 이렇게 하는 건 "그럼 어쩔 건데?"라는 힘의 과시인 동시에 경고라고 설명한다. 푸틴에 반대하는 사람이나 정치적 경쟁자를 크렘린만 사용하는 것으로 잘 알려진 독극물을 사용해 암살하고도 "우리가 한 게 아니다"라고 뻔뻔스럽게 말하는 것도 그 목적은 위협과 경고라는 거다. 물론 일차적으로는 자신들에게 돌아오는 혐의나 책임을 부인하는 용도로 사용하지만 (푸틴이 지지한 시리아의 바샤르 알아사드 대통령이 시민들을 향해 화학무기를 사용했을 때도 그랬다) 결국에 드러날 것을 알고도 사용하는 이유는 국내외에 자신(들)이 어떤 짓을 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려는 것이다. 가령 푸틴의 정적 알렉시스 나발니(현재 체포, 수감되어 있다)를 독살하려다가 실패한 후 그가 독일 병원에서 치료를 받자, "독일이 나발니를 죽이려 했다"라는, 아무도 믿지 않고 신빙성도 전혀 없는 주장을 한 것은 "우리는 너를 죽일 수 있을 뿐 아니라, 죽이면서 조롱까지 하겠다"는 메시지라는 것이 보르트의 말이다.

트럼프를 지지하는 브라이트바트는 비현실적인 득표율 지도를 그려서 소셜미디어에 뿌릴만큼 거짓말에 과감했다. 

보르트가 제시하는 또 하나의 이유는 서방 세계를 상대로 하는 트롤링(trolling, 온라인에서 관심 끌어 분노와 혼란을 일으키는 행동)이다. 자신들이 거짓말을 하면 배경이나 사실 여부를 모르는, 혹은 '기계적 공평 보도'를 원칙으로 하는 언론이 가져다 인용하고, 자국 정부나 언론을 불신하는 사람들이 믿고 확산시키게 된다는 것이다. 한 팩트 체크에 따르면 임기 중에 3만 573개의 거짓말과 가짜뉴스(하루 평균 20회 이상)를 퍼뜨렸다는 트럼프도 같은 전략을 사용했다. 푸틴과 트럼프의 브라뇨를 이야기한 글도 있지만, 이 둘의 공통점은 거짓말을 쉴새없이 한다는 것이다. 거짓말을 한 번 하면 철저하게 조사받고  비난을 받게 되지만, 끊임없이 쏟아내면 사람들은 진실과 거짓말 모두에 무감각해지기 때문이다.

서구 언론은 트럼프 집권기를 거치며 "이 사람은 이 말을 하고, 저 사람은 저 말을 한다(He Said, She Said)"라는 20세기식 단순 인용 저널리즘은 더 이상 공평한 보도가 아니며 더 많은 거짓말을 더 뻔뻔스럽게 쏟아내는 쪽에 이용당하는 일임을 깨닫고 반성했다. 언론이 해야 할 일이 더 많아진 셈이지만 그런 책임을 엄중하게 받아들이는 언론사는 독자의 신뢰를 받는 데 성공했다. 한국의 매체들은 여기에서 교훈을 얻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