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타임즈의 트위터 고민
• 댓글 2개 보기최근 뉴욕타임즈의 편집장 딘 바케이(Dean Baquet)가 기자들은 "트윗을 좀 적게, 신중하게 하고, 기사를 쓰는 데 더 많은 시간을 쓰기 바란다"는 충고를 해서 화제가 되었다. 언뜻 들으면 시대를 잘 모르는 나이 든 언론인이 젊은 기자들에게 하는 잔소리 혹은 "게임하는 그만하고 공부 좀 해라"라는 학부모의 한숨처럼 들릴 수 있지만, 그의 충고는 쉽게 나온 게 아니다.
그냥 지나가는 말로 가볍게 한 것도 아니다. 바케이는 직원들에게 보낸 메모(memorandum은 공식 내부문서다–옮긴이)를 통해 앞으로 기자들이 트위터를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지에 대한 새로운 가이드라인을 전달한 것이다. 언론계에서는 뉴욕타임즈의 새로운 가이드라인이 지난 7, 8년 동안 뉴욕타임즈가 유지해왔던 정책/가이드라인을 대폭 수정한 것으로 받아들인다. (메모의 전문과 문답은 여기에서 직접 읽을 수 있다.)
특히 위에 있는 대목이 그 변화를 보여준다. "뉴욕타임즈의 기자가 트위터나 소셜미디어를 사용하는 것은 앞으로는 전적으로 선택의 문제입니다. 수십 명의 기자들과 이야기를 나눠 본 결과, 소셜미디어 사용을 그만해야 할 많은 이유가 있음이 분명해졌습니다. 따라서 소셜미디어를 그만 사용하겠다고 하는 기자들이 있으면 우리는 (그 결정을) 지지할 것입니다. 그래도 계속 사용하겠다면, 플랫폼에 머물면서 트윗을 쓰거나 스크롤하는 시간을 기자로서의 다른 업무와 비교했을 때 의미 있는 수준으로 줄이기를 권고합니다."
2014년의 진단과 해결책
그렇다면 이제까지 뉴욕타임즈는 기자들에게 소셜미디어 사용과 관련해서 어떤 가이드라인을 갖고 있었을까? 이는 뉴욕타임즈가 2014년에 내부용으로 작성한 백서인 '뉴욕타임즈 혁신 보고서'(번역본은 여기에서 다운로드 가능)에서 확인할 수 있다. 보고서의 65페이지를 보면 이런 말이 나온다.
2014년 당시만 해도 뉴욕타임즈는 양질의 기사를 작성하고도 이를 포장해서 온라인에 확산시키는 능력이 떨어지는 바람에 (당시 허핑턴포스트, 버즈피드 같은) 뉴미디어와 소셜미디어에 독자의 관심을 뺏기고 있다고 판단하고 있었고, 이는 틀린 말이 아니었다. 그런 추세가 계속된다면 뉴욕타임즈는 새로운 미디어 환경에서 설 자리가 없어질 것이었고, 이에 위기감을 느낀 경영진은 철저한 자기반성의 자세로 이 백서를 만든 것이다.
그런데 뉴욕타임즈의 혁신 보고서가 세계 언론의 관심을 받은 이유는 내용이 단순한 진단과 위기의식 전달에 그치지 않고 아주 구체적인 제안을 했기 때문이다. 65페이지에 등장한 제안이 대표적이다. 뉴욕타임즈는 기사의 프로모션을 잘하는 다른 매체들을 관찰하고 담당자들과 인터뷰를 한 결과, 기자들이 기사만 쓰면 자신의 일이 끝났다고 생각하는 전통적인 역할에서 벗어나 다른 온라인 매체들처럼 기자가 트위터나 페이스북 같은 곳에서 자신의 이름을 걸고 자기가 쓴 기사를 홍보해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예를 들어 소셜을 통해서 버즈피드를 방문하는 독자의 비중은 뉴욕타임즈의 6배가 넘는다. 버즈피드가 얻은 교훈은 페이스북에서 제대로 뜨기만 하면 헤드라인 보다 훨씬 프로모션 효과가 좋고, 소셜의 효과도 모바일에서 더 크다는 사실이다. (60페이지)
심지어 전통적인 언론의 가치를 지키고 있는 프로퍼블리카(ProPublica) 역시 기사를 프로모션 하는데 전력을 다하고 있다. 프로퍼블리카의 편집자는 검색, 소셜, 그리고 홍보전문가들과 만나서 모든 기사의 프로모션 전략을 일일이 개발하며, 기자들은 하나의 기사를 작성할 때마다 다섯 개의 트윗을 써야 한다. (59페이지)
그렇다면 위와 같은 일련의 제안들은 어떤 성과를 거뒀을까? 이 신문의 디지털 구독자 증가를 보여주는 아래 도표가 그 답이다.
언론계에서는 2016년 트럼프의 당선 이후 전통적인 매체의 구독자가 증가하는 '트럼프 범프(Trump bump)' 현상을 이야기했고, 특히 대선을 전후해 구독자가 더 많이 늘었던 건 사실이지만, 위의 그래프를 보면 바이든의 집권 후에도 뉴욕타임즈의 구독자 증가세는 유지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즉, 뉴욕타임즈의 '디지털 노력'은 목표했던 성과를 달성했다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다.
무엇보다 뉴욕타임즈가 세계 언론계에서 차지하고 있는 나침반 같은 역할을 생각해보면 이 신문의 변화가 미국 뿐 아니라 다른 나라의 언론에도 변화를 가져오는 건 충분히 짐작할 수 있는 일이다. (이를 잘 정리한 것이 '미디어오늘'의 금준경 기자가 쓴 글이다. 미디어, 특히 뉴미디어에 관심이 있다면 금준경 기자의 글은 잘 챙겨볼 필요가 있다.)
뉴스룸을 지배하는 트위터
그런데 2022년의 딘 바케이는 왜 기자들에게 트위터(를 비롯한 소셜미디어)를 사용하는 시간을 줄이라는 이야기를 하게 된 것일까? 그의 메모에 담긴 내용 중 특히 아래의 세 가지 포인트가 눈길을 끈다. 이 내용은 근래들어 미국 언론계, 특히 뉴욕타임즈를 중심으로 크게 불거진 특정한 문제 사례를 배경으로 작성된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 트위터는 기자들이 기사를 쓸 때 가정하는 오디언스(독자층)를 바꾸고 기사에 대한 피드백을 바꿈으로써(트위터 사용자에 국한된 피드백을 의미–옮긴이) 보도에 영향을 준다.
- 트위터는 괴롭힘(harassment)과 공격(abuse)을 부르는 동인이 된다.
- 나쁜 트윗은 뉴욕타임즈와 직원들의 평판에 심각한 위협이 된다.
먼저 2020년 7월, 뉴욕타임즈의 칼럼니스트 배리 와이스(Bari Weiss)가 사직서를 공개적으로 발표하면서 일으킨 파장을 보자. 와이스는 트럼프 당선이라는 문화적 충격을 겪은 뉴욕타임즈가 정치, 문화적으로 좀 더 다양한 목소리를 반영하겠다는 의도로 월스트리스트저널에서 데려온 칼럼니스트다. 그는 뉴욕타임즈의 기대대로 진보적인 신문사 내에서 보수적인 목소리를 냈다.
와이즈가 보수의 의견을 대변하는 유일한 칼럼니스트는 아니었다. 뉴욕타임즈에는 이런 보수 칼럼니스트들이 꾸준히 존재했고, 과거에 비해 그 숫자는 오히려 늘었다. 하지만 트럼프가 쏟아내는 가짜뉴스와 트럼프 집권기간 중 목소리가 커진 백인우월주의자들, BLM운동과 미투운동 등 정치적, 문화적으로 몹시 민감한 상황에서 와이즈가 쓰는 글은 독자들 뿐 아니라 신문사 내에서도 많은 반발과 항의를 불러왔다. 가령 그가 2018년에 쓴 "We're All Fascists Now (이제는 우리 모두가 파시스트다)"라는 칼럼이 그런 글이다. 미국의 진보세력이 우파의 다른 생각을 허용하지 않는다고 비판한 이 칼럼에서 와이즈는 좌익(안티파)을 위장한 우익의 가짜계정의 글을 인용했다는 비판을 받았고, 결국 뉴욕타임즈는 기사 말미에 내용을 정정하는 Editor's Note를 달았다.
하지만 워낙 진보적인 독자들이 많은 매체이다 보니 와이즈의 글은 사사건건 꼬투리가 잡혔고, 뉴욕타임즈 편집진은 소셜미디어에서 쏟아지는 비난에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기자들 사이에서도 와이즈에 대한 불만이 쌓인 것은 물론이다. 와이즈가 사직서를 쓰기 직전, 뉴욕타임즈는 오피니언에 공화당 톰 코튼 상원의원의 칼럼(인종주의에 반대하는 시위대에 대한 무력진압을 옹호하는 내용)이 나간 후 쏟아진 독자들의 비난에 사과하고 그 글의 게재를 결정한 담당자인 제임스 베넷을 해임하기도 했다.
이런 배경을 갖고 나온 와이즈의 사직서는 "(뉴욕타임즈에서는) 트위터가 궁극적인 편집장"이라며 분노한 여론에 휘둘리는 뉴욕타임즈를 비판했다. 이번에 나온 딘 바케이의 트위터 사용 가이드라인에서 와이즈의 사례를 이야기하지는 않지만, "트위터는 기자들이 기사를 쓸 때 가정하는 오디언스(독자층)와 기사에 대한 피드백을 바꿈으로써 보도에 영향을 준다"라는 그의 말은 들끓는 여론과 기사 사이에 적절한 거리를 유지해야 할 필요성을 이야기한 것이다.
두 기자의 소셜 배틀
그뿐이 아니다. 액시오스(Axios)는 딘 바케이의 가이드라인을 보도하면서 두 명의 뉴욕타임즈 기자 사이에 벌어진 공개적인 싸움(feud)을 관련 사례로 이야기했다. 트럼프 당선 이후 뉴욕타임즈가 데려온 매기 해버먼(Maggie Haberman)은 뉴욕에서 오랜 기자생활을 하면서 얻어진 취재원을 사용한 심층 보도로 유명하다. 특히 해버먼의 취재 스타일은 트럼프에 대한 끈질긴 취재에서 잘 드러난다. 그런 해버먼과 의견 충돌이 생긴 기자는 마침 뉴욕타임즈에서 워싱턴포스트로 이직하는 중에 있던 테일러 로렌즈(Taylor Lorenz).
둘 사이에 생긴 일에 대해서는 인텔리젠서(Intelligencer)의 글이 자세히 소개하고 있지만, 궁극적으로는 거침없는 스타일의 두 기자들 사이에 생긴 의견 차이로 보인다. 로렌즈 기자는 뉴욕타임즈가 기자들의 '브랜드'를 키워주지 않는다고 불평을 했는데 해버먼은 그에 동의하지 않은 듯하다. 이런 견해 차이야 당연히 있을 수 있을 텐데 문제는 이런 논쟁이 감정적인 수준으로 발전했고, 무엇보다 트위터에서 모든 사람이 지켜보는 중에 일어났다는 것이다.
결국 해버먼은 "내가 기자생활을 26년을 해왔는데.."라는 '경력 카드'를 꺼내 들었고, 이들의 싸움을 지켜보던 사람들은 "베이비부머들이나 하는 소리"라며 해버먼을 비난했고, 해버먼이 전 직장(뉴욕포스트)에서 가십 칼럼을 썼던 걸 언급하는 등 그의 자격에 대한 공격도 이어졌다.
트위터에서 벌어진 해버먼과 로렌즈의 언쟁은 두 기자가 취재, 보도하는 주제와는 무관한 영역에 속한 일이었지만 이 싸움은 해버먼의 트위터 계정(@maggieNYT)이 보여주듯 뉴욕타임즈의 브랜드를 달고 일어났다는 것이 중요하다. 독자들의 사랑을 받는 뛰어난 기자들이 전통의 브랜드를 걸고 사사로운 감정을 드러내며 싸우는 것은 어느 쪽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 일이었다. "나쁜 트윗은 뉴욕타임즈와 직원들의 평판에 심각한 위협이 된다"라는 딘 바케이 편집장은 말은 이 일을 두고 나온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쉬지 않고 변화하는 미디어 환경
하지만 편집장인 바케이는 트위터의 가치를 여전히 인정한다. 그는 기자들이 트위터 사용을 줄일 것을 권장하는 메모에서 "이것은 트위터에 대한 공격이 아니다"라고 강조하면서 "트위터는 엄청난 가치를 지니고 있다. 트위터에 우리의 독자들이 있고, 우리가 귀를 기울이고 싶은 사람들도 거기에 있다"라고 인정했다. 다만 트위터의 영향력이 너무 커졌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몇몇 기자들은 자신의 기사에 대한 인정을 트위터에서 받고 싶어 하는데, 그 바람에 트위터의 파워가 필요 이상으로 커졌다(I think that gave Twitter more power than, frankly, it deserved)."
뉴욕타임즈의 새로운 가이드라인을 자세히 분석, 보도한 니먼랩(NiemanLab)의 조슈아 벤튼(Joshua Benton)은 "많은 사람들이 바케이 편집장의 의견에 고개를 끄덕이겠지만" 많은 기자들에게 트위터는 여전히 아주 중요한 도구임을 상기시킨다. 자신이 훌륭한 브랜드의 일부이냐, 아니면 스스로 훌륭한 브랜드이냐는 기자들에게만 국한된 고민이 아니지만 (테일러 로렌즈 기자의 주장에서 보듯) 생산물이 기사/글인 기자들에게는 더욱더 중요한 문제다.
벤튼은 또한 트위터에서 받는 피드백이 다양한 의견이 아니라는 바케이의 생각에 동의하지 않을 사람들이 있음을 이야기한다. 뉴욕타임즈의 구독자 보다 트위터의 사용자들이 이데올로기적으로, 혹은 인구학적으로 더 다양한 집단일 수 있다는 것이다. 다만 뉴욕타임즈의 새로운 가이드라인이 철저하게 금지하는 방식이 아니라 최종 결정을 기자들에게 맡기는 유연성을 발휘한 것은 좋은 선택이라고 말한다.
결국 뉴욕타임즈의 새로운 가이드라인이 당장 기자들의 행동을 눈에 띄게 바꿀 것 같지는 않다. 뉴욕타임즈로서도 트위터를 통한 유입을 놓치고 싶지는 않을 것이고, 트위터가 공론장으로서 유효한 이상 그곳에서 언론사로서의 중요성(relevance)을 유지하고 싶을 게 분명하다. 다만 이번 가이드라인은 심각한 존재론적 위기를 겪던 2014년에 비해 2022년의 뉴욕타임즈는 온라인 공간에서 자신감을 회복했고, 소셜미디어에서 완전한 독립은 아니라도 8년 전처럼 전적으로 의지해야 하는 상황은 벗어났음을 보여준다.
이는 일론 머스크의 트위터 인수 가능성이 점점 더 커지고 있는 상황에서 더욱 눈여겨 봐야 할 변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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