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 5월은 넷플릭스에게는 위기의 시간이었다. 가입자가 11년 만에 처음으로 감소했다는 소식에 이어 주가가 폭락했고, 뒤이어 150명의 직원을 감축한다는 소식이 나왔다. 게다가 상황이 당장 나아질 것으로 보이지도 않는다. 가장 많은 가입자가 있는 미국에서는 수십 년 만에 최악의 인플레이션이 닥쳐서 많은 사람들이 지출을 줄일 곳을 찾고 있다. 여러 개의 비디오 스트리밍 서비스(SVOD)에 가입했던 가정들에서는 이제 '우리가 정말로 이 서비스를 유지할 필요가 있을까?' 하는 고민을 하게 되는 시점이 되었다. 넷플릭스가 첫 가입자 감소를 발표하면서 2분기에도 2백만 명의 가입자를 잃을 것으로 예측한 이유이기도 하다.

이런 시점이면 기업은 PR에 신경을 쓰게 된다. 단순히 페이드 미디어(paid media)를 통한 광고, 홍보가 아니라, 언드 미디어(earned media)를 통해 자신에게 유리한 메시지를 전달하는 작업이다. (Paid media, earned media, owned media라는 건 마케팅에서 사용하는 개념으로, 이에 대한 쉬운 설명은 여기에서 읽어볼 수 있다.) 가장 인기 있는 방법 중 하나는 평소 바쁘다는 이유로 좀처럼 인터뷰에 나서지 않는 기업의 핵심 인물이 유명한 매체의 기자와 오랜 시간(최소 며칠에서 길게는 몇 주 동안 자주 만나거나 심지어 동행하기도 한다) 대화를 나누며 프로필 기사를 쓸 기회를 준다. 따라서 유명 기업 대표의 프로필 기사가 나왔다는 건 그가 해명을 해야 할 일이 생겼거나, 현재 기업에 불리하게 진행되는 미디어의 내러티브를 바꿀 필요가 있다는 얘기다.

따라서 지난달 말, 넷플릭스의 공동 CEO인 테드 사란도스가 뉴욕타임즈의 인기 칼럼니스트 모린 다우드(Maureen Dowd)에게 자신의 프로필 기사를 작성할 수 있도록 기회를 허락한 것은 그런 맥락에서 이해해야 한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뉴욕타임즈가 홍보 기사를 써줬다는 얘기는 아니다. 사란도스의 말을 써주지만 그의 주장에 최종적인 평가를 내리는 건 기자의 몫이다. 게다가 기자는 이 기회에 궁금했던 모든 질문을 던질 수 있고, 대답을 회피할 경우 회피했다는 사실을 기록함으로써 독자들에게 맥락을 제공할 수 있다.

그렇게 나온 기사의 제목은 이렇다: "테드 사란도스, 주가 하락과 데이브 샤펠 논란, (곤경에 빠진 넷플릭스를) 고소하게 생각하는 헐리우드에 대해서 입을 열다." 기사의 전문은 여기에서 읽을 수 있다.

뉴욕타임즈의 기사

잘 알다시피 넷플릭스의 창업자, CEO는 리드 헤이스팅스이고, 테드 사란도스는 넷플릭스의 최고 콘텐츠 책임자(CCO)로 무려 22년 넘게 일했다. 하지만 2020년 7월에 사란도스는 헤이스팅스와 넷플릭스를 함께 이끄는 공동 CEO가 되었다. 실리콘밸리의 유명한 테크 기업들을 보면 사람들에게 잘 알려진 창업자/CEO가 있고, 그 창업자와 초창기부터 함께 하면서 기업을 키워온 2인자가 존재하는 경우가 있다. 마이크로소프트의 스티브 발머, 아마존의 앤디 재시 같은 사람들이 그런 경우인데, 이들은 창업자와 목표를 공유할 뿐 아니라 기업의 작동방식을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에 창업자/대표가 물러날 경우 그의 뒤를 이어 CEO가 되기도 한다.

콘텐츠 책임자

하지만 사란도스는 조금 다르다. 팔방미인인 창업자를 옆에서 충실히 보좌했다기보다는 창업자가 잘 모르는, 그러나 기업의 핵심역량이 되는 부분을 도맡은 사람이라는 점에서 애플의 공동 창업자 스티브 워즈니악과 비슷한 존재다. 기술을 잘 이해했지만 엔지니어는 아니었던 스티브 잡스가 애플이라는 세계 최고의 테크 기업을 세운 데는 워즈니악의 존재가 필수적이었다. 넷플릭스의 헤이스팅스는 수학과 컴퓨터공학을 공부한 전형적인 엔지니어였지만 정작 사업의 핵심 영역인 영화 콘텐츠에 박식한 사람은 아니었다. 그 역할을 해준 사람이 테드 사란도스다.

넷플릭스의 공동 CEO 리스 헤이스팅스와 테드 사란도스

사란도스의 경력은 꽤 흥미롭다. 폴인에서 발행한 이 글에서 잘 설명하지만, 사란도스는 커뮤니티 칼리지(2년제 지역 대학교)를 졸업하고 비디오 가게 점원으로 일을 시작했다. 쿠엔틴 타란티노가 비디오 가게에서 일하면서 영화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갖추고 세계적인 감독이 되었다면, 사란도스는 비디오 가게에서 콘텐츠 유통을 배워 세계 1위 스트리밍 업체의 CEO가 된 사람이다. 가게에서 손님들에게 인기 있는 비디오를 추천해주다가 가게가 속한 비디오 체인에서 인기 있을 영화 테이프를 확보하는 일을 하게 되었고, VHS 테이프에서 DVD로 전환되는 시점에 체인을 대표해서 DVD 대여 수익배분 협상을 하는 과정에서 콘텐츠 수급과 매출에 관한 전문가가 되었다.

그리고 바로 그 시점에 헤이스팅스를 만났다. 기술적인 측면은 잘 알아도 DVD를 고르고 유통하는 일에는 자신이 없던 헤이스팅스는 1999년에 사란도스를 만나 그가 적임자임을 알게 된 후 그를 영입했고, 나머지는 굳이 설명이 필요 없는 넷플릭스의 역사다. 둘은 완벽한 분업으로 지금의 넷플릭스를 만들어냈다. 좀 더 정확하게 말하면, 이 둘은 새로운 기업을 만들어낸 게 아니라 전에 없던 업종을 만들어낸 거다.

위기에 대한 책임

최고 책임자는 기업이 성공했을 때 공을 가져가지만, 기업이 위기에 빠질 경우 그에 대한 책임도 져야 한다. 그럼 사란도스는 넷플릭스의 위기에 얼마나 책임이 있을까? 대중문화계의 소식으로 유명한 벌처(Vulture)는 지난 4월 말에 "넷플릭스의 나쁜 습관이 결국 넷플릭스의 발목을 잡았다(Netflix's Bad Habits Have Caught Up With It)"라는 기사를 통해 넷플릭스가 처한 문제의 원인을 세 가지로 분석했다. 콘텐츠의 문제와 경쟁기업의 등장, 그리고 경영진의 완고함이다.

디즈니 플러스와 애플TV 플러스, HBO맥스 같은 경쟁 서비스의 등장과 시장의 포화(사란도스는 넷플릭스의 시장이 포화되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사란도스의 책임이 아니지만, 만약 넷플릭스의 콘텐츠가 인기를 잃었다거나 넷플릭스의 운영 방침이 변화한 세상에 맞지 않는다면 그건 사란도스의 책임이 된다.

먼저 가장 많이 이야기되는 "넷플릭스의 콘텐츠가 변했다"라는 주장을 보자. 이 부분에 관해서는 오터레터에서도 '토끼의 실수'를 통해 이야기한 적이 있지만, 업계에서 자주 지적하는 건 사란도스가 2020년에 단행한 콘텐츠 담당자 교체다. 넷플릭스를 좀 아는 사람들은 '넷플릭스=최고의 콘텐츠'라는 인식을 만들어낸 배경에는 신디 홀랜드(Cindy Holland)가 있다고 생각한다. '오렌지 이즈 더 뉴 블랙,' '크라운,' '기묘한 이야기'와 같은 오리지널 콘텐츠를 발굴해서 제작, 히트시킨 인물이다. 하지만 2020년에 단행된 인사이동에서 홀랜드는 넷플릭스를 떠나고, 콘텐츠 수급과 유통을 담당해온 벨라 바자리아가 승진해서 그 자리를 채웠다.

신디 홀랜드(왼쪽)와 벨라 바자리아

그런데 사람들이 "넷플릭스의 콘텐츠가 예전만 못하게 되었다"라고 생각하는 시점이 대략 2020년이다 보니 자연스럽게 그 책임이 벨라 바자리아에 있다는 불평이 나오게 된 것이다. 하지만 업계 전문가가 보기에 이건 말이 되지 않는 비판이다. 매튜 벨(Matthew Bell)에 따르면 스트리밍의 오리지널 콘텐츠 제작 방식은 TV보다는 영화에 가깝기 때문에 프로그램 책임자를 바꾼다고 해서 그 변화가 바로 드러나지 않고 3, 4년 후에나 알게 된다. 따라서 최근 들어 넷플릭스의 콘텐츠가 예전 같지 않다면 그건 신디 홀랜드의 책임이지 2020년에 그의 자리를 차지한 바자리아가 가져온 변화는 아니라는 거다.

사란도스의 자신감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넷플릭스의 콘텐츠 제작 철학에 변함이 없느냐면, 그건 아니다. 넷플릭스는 실험적이고 뛰어난 작품들을 엄선하는 태도를 바꿔 과거 지상파, 혹은 케이블 TV에서 보던 수준의 일반적인 작품을 대거 선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변화를 최종적으로 승인한 사람은 당연히 사란도스다. 넷플릭스의 콘텐츠 질이 떨어졌다는 얘기는 물론 주관적인 평가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느끼고 있다면 사란도스는 그 변화에 대해 답해야 한다.

이런 변화를 두고 사람들은 "티파니였던 넷플릭스가 월마트가 되었다" 혹은 "넷플릭스가 스트리밍의 CBS(미국의 지상파 방송사 중 하나)가 되려 한다"라고 불평한다. 이에 대한 사란도스의 답은 흥미롭다. "CBS는 TV 역사상 가장 성공적인 방송사 중 하나"인데 그게 뭐 나쁘냐는 것. 그는 "(넷플릭스는) 다양한 취향을 만족시키려고 노력한다"라면서 '파워 오브 도그' 같은 예술적인 작품부터 '오징어 게임'처럼 "한 세기에 한 번 나올 만큼의 성공적인 엔터테인먼트"까지 갖추고 있다는 얘기를 한다. "퀄리티에 대한 정의는 사람마다 다르다"라는 게 그의 주장이다.

그의 이런 태도는 근래 들어 넷플릭스가 직면한 비판에 대한 그의 대응에도 드러난다. 넷플릭스는 작년 하반기에 인기 코미디언 데이브 샤펠(Dave Chapelle)의 스탠드업 코미디 스페셜을 방영했는데 이 코미디에서 샤펠이 트랜스젠더를 농담의 소재로 삼은 것이 성소수자 커뮤니티의 거센 반발을 불러왔다. 트랜스젠더 혐오는 코미디가 아니라는 것. 넷플릭스 내부에서도 직원들 사이에 "이런 콘텐츠를 방영해서는 안된다"는 주장이 나왔고, 사내에서 항의 시위까지 일어났다.
그런데 이에 대한 사란도스의 반응은 단호했다. "여러분이 우리가 제공하는 콘텐츠의 폭(다양성)을 지지하기 힘들다면 넷플릭스는 여러분에게 맞는 일터가 아니다"라는 게 그가 직원들에게 보낸 메시지다. 그는 코미디언은 사회적으로 허용되는 발언의 한계를 시험하는 사람들이고, 그렇기 때문에 때로는 그 선을 넘을 수밖에 없다고 믿는다. 따라서 그들에게 그 역할을 맡긴다면 넷플릭스는 검열하면 안 된다는 입장이다.

물론 콘텐츠의 다양성이 위기를 탈출할 수 있는 방법의 전부가 될 수는 없다. 사란도스는 신디 홀랜드를 벨라 바자리아와 교체하는 과정에서 하나의 분명한 선택을 했다는 것이 업계의 해석이다. 홀랜드는 비용을 따지지 않고 좋은 콘텐츠를 찾는 2010년대 넷플릭스의 방침을 대표했다면, 이제부터는 비용과 효율성을 챙기겠다는 것. 그렇다고 콘텐츠 구입에 들어가는 비용을 줄이겠다는 것은 아니다. 앞으로도 이 비용은 꾸준히 늘려가겠지만, 그 증가폭은 줄어들 것이라는 게 업계의 전망이다.

사실 지금처럼만 써도 엄청난 돈이다. 뉴욕타임즈의 기사는 "넷플릭스가 (콘텐츠에) 쓰는 돈은 스웨덴의 국방예산과 맞먹는다"는 NYU의 스캇 갤로웨이 교수의 말을 인용한 후에 사실 2021년 스웨덴 국방비는 70억 달러이고, 넷플릭스가 콘텐츠에 쓴 돈은 170억 달러이기 때문에 훨씬 더 많다고 정정한다. (국방비 지출로 넷플릭스 지출에 가장 근접한 국가는 터키, 스페인이다.)

결론적으로 말해 사란도스는 현재의 노선에 자신감을 갖고 있고, 특별히 바꿀 의향이 없다. 주가 하락에서 보듯 투자자들의 마음은 식었을지 몰라도 넷플릭스는 여전히 인기 있는 스트리밍 서비스이고, 매출도 증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사란도스는 "넷플릭스는 헐리우드의 경쟁자들이 90년 동안 만들어온 콘텐츠를 따라잡아야 하는 입장"이라고 자주 강조한다. 즉, 소수의 최고급 콘텐츠를 만들기보다 물량을 늘리는 것이 중요하다고 본다.

그런 그의 자신감이 맞았는지는 앞으로 몇 년 후에 알게 되겠지만, 적어도 그를 인터뷰한 모린 다우드가 받은 느낌은 글을 통해 엿볼 수 있다. 긴 프로필 기사를 어떻게 끝내는지를 보면 인터뷰어가 인터뷰이의 말을 신뢰하게 되었는지 알 수 있기 때문이다. 다우드는 기사 마지막에 세 명의 발언을 소개한다.

"결정은 알고리듬이 내리지 않아요. 테드(사란도스)와 관련해서 중요한 사실은 그와 한 방에서 얘기하면 그는 거기에 몸만 와있는 게 아닙니다. 그는 전적으로 대화 상대에 집중합니다." –영화감독 기예르모 델 토로

"(헐리우드에서 넷플릭스의 곤경을 고소하다고 생각하는 건) 그냥 점심 먹으면서 떠드는 것에 불과합니다. 그 사람들은 원래 그래요. 사람들은 공을 들고 있는 사람에게 덤벼듭니다. 테드가 지금 공을 들고 있기 때문입니다." –코미디언 제리 사인펠드

"테드 사란도스와 리드 헤이스팅스는 (메이저리그의 전설적인 선수) A 로드와 배리 본즈입니다. 이들이 질 거라고 베팅하는 사람은 없어요." –뉴욕대학교 스캇 갤로웨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