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흑인들 사이에 오래된 자조적 표현이 있었다. 'DWB (driving while black)'이라는 표현이다. 언뜻 보면 비문처럼 보이지만 이 표현은 음주운전을 뜻하는 'DWI (driving while intoxicated)'라는 표현에서 intoxicated를 black으로 바꾼 것이다. 흑인이 운전을 하면 경찰이 온갖 이유를 만들어 일단 길에 세우고 조사를 하는 것을 두고 나온 표현이다. '흑인들이 운전을 똑바로 하면 되지 않느냐'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차선을 밟거나 멈춤 표지판에서 완전히 정차를 하지 않거나 하는 작은 위반, 혹은 자동차의 등이 깨졌다거나 하는 사소한 문제를 들어서라도 얼마든지 합법적으로 흑인 운전자를 세울 수 있다.

그렇게 일단 세운 후에 샅샅이 조사해서 마리화나 소지 등의 범법행위를 찾아내면 체포가 가능하다. 마리화나는 인종을 불문하고 사용하지만 유독 흑인들이 많이 걸리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특정 도시의 5%가 마리화나를 소지했다고 했을 때 흑인들을 집중적으로 수색하면 "흑인들이 마약을 더 많이 복용한다"는 "통계"를 만들어낼 수가 있는 거다.

Stop and frisk

그리고 이런 종류의 통계는 아무리 문제가 많아도 대중의 편견을 강화하게 된다. 그렇게 강화된 편견은 경찰관으로 하여금 더욱 열심히 흑인들을 붙잡아 수색하게 하고, 특별한 혐의가 없어도 무조건 수색을 하기도 한다. (이런 관행을 'stop and frisk'라 부른다.) 때로는 경찰이 수색 대상이 되는 사람의 옷이나 차에 "증거물"을 몰래 넣어서 혐의를 만들어내기도 하다 보니 흑인들은 경찰을 불신하고, 이런 수색에 강하게 항의하는 일이 흔하다. 뉴스나 소셜미디에 등장하는 영상에서 흑인들이 경찰의 요구에 과도하게 반응하거나 불응하는 것처럼 보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우리는 '왜 시키는대로 순순히 응하지 않지?'라는 생각이 들지만 그들의 집단적 기억과 개인적 경험은 우리와 다르다.

이런 과정을 거쳐 "흑인은 잠재적 범죄자"라는 선입견이 생기고, 누군가 흑인을 신고하면 일단 "흑인이 잘못했겠지"라는 추정을 하게 된다. 이런 일이 수십 년, 아니 백 년 넘게 반복되면 흑인들은 취업이 힘들어지고, 경제적인 기회를 놓치게 되면서 점점 더 소외를 당하게 된다. 경제적으로 낙후된 지역에 모여 살게 되면 마약과 범죄에 쉽게 노출되고, 이는 다시 사회적 편견을 강화하는 악순환의 고리가 완성된다.

Watching Birds While Black

2020년 5월 25일 미네소타주에서 "숨을 쉴 수 없어요(I can't breathe)"라는 말을 반복하다가 숨진 조지 플로이드는 BLM(Black LIves Matter, 흑인의 목숨도 중요하다) 운동의 기름을 부었지만, 그가 숨진 바로 그날 뉴욕시 센트럴파크에서도 한 명의 흑인이 인종차별을 겪는 사건이 있었다. 다행히 뉴욕에서 일어난 사건과 관련해서는 아무도 죽거나 다치지 않았고, 누명을 뒤집어쓸 뻔했던 흑인 남성은 안전하게 귀가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 사건도 조지 플로이드의 죽음과 마찬가지로 휴대폰으로 상황이 녹화되지 않았다면 진실은 밝혀지기 힘들었다.

사건의 발단은 이렇다. 크리스천 쿠퍼(Christian Cooper)라는 흑인 중년 남성은 센트럴파크에서 숲이 많이 우거진 램블(The Ramble)이라는 지점에서 새를 구경하고 있었다. 미국인들 중에는 탐조(birdwatching, birding)를 취미로 가진 사람들이 많은데, 쿠퍼 역시 10살 때부터 새를 구경하는 것을 좋아했고, 뉴욕시에서 새를 구경하기 좋은 센트럴파크를 자주 찾아 취미활동을 해왔다고 한다. 당시 41세였던 그는 뉴욕의 탐조인들 사이에서는 잘 알려진 인물이다. 1980년대에는 하버드 대학교에서 조류 클럽의 회장을 지냈고, 오두본 소사이어티(Audubon Society, 미국 최대의 조류학 단체) 뉴욕지부 이사이기도하다.

그는 그날도 나무가 우거진 이곳에서 새를 구경하고 있었는데 한 백인 여성이 그 장소에 개를 데리고 왔다고 한다. 센트럴파크에는 개를 데리고 오는 게 허용된 지역이지만 아이들도 많고, 무엇보다 야생동물들이 있는 곳이기 때문에 주인은 개에 반드시 목끈을 묶어 잡고 있어야 한다는 규칙이 있다. 그런데 에이미 쿠퍼(Amy Cooper, 우연히 같은 성을 갖고 있다)라는 이름의 이 여성은 자신의 개에 목줄을 하지 않고 있었다.

그걸 본 크리스천은 에이미에게 개가 돌아다니면 새들이 겁을 먹으니 공원의 규정대로 개줄을 묶어달라고 얘기했는데 에이미가 이를 거부하면서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다고 한다. 에이미는 손에 들고 있던 개 간식을 크리스천 쪽으로 던져 개가 그에게 가게 하고는 "내 개를 만지지 말라!"라며 소리를 질렀고, 흑인 남성인 크리스천은 주위에 목격자가 없는 것을 알고 폰을 들어 촬영을 시작했다.

아래 영상이 그 이후에 일어난 일이다:

크리스천이 촬영을 한 것은 증거를 남기지 않으면 백인의 증언과 흑인의 증언이 일치하지 않을 때 미국 사회에서는 백인의 말을 들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하지만 에이미는 그것을 위협으로 취급하기로 작정한 듯 다가와서 촬영을 중지하라고 한다. 크리스천은 혹시라도 신체 접촉이 일어나면 오해를 살까 봐 "내게 다가 오지 말라"고 분명하게 얘기를 하지만, 에이미는 "경찰에 전화해서 흑인 남자가 내 목숨을 위협한다고 말하겠다"고 거꾸로 위협하고, 크리스천이 촬영을 계속하자 경찰에 전화를 해서 "자전거 안전모를 쓴 흑인 남성이 센트럴파크 램블에서 내 목숨을 위협하고 있다"라는 거짓 신고를 한다.

이전에 벌어진 일들

크리스천은 아주 현명하게 상황에 대처했다. 언성을 높이지 않았고, 신체적 접촉을 일절 피하면서 모든 것을 기록으로 남겼다. 그리고 그 결과 이 상황에서 체포되지도, 누명을 쓰지도 않을 수 있었다. 하지만 그가 무사할 수 있었던 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센트럴파크 파이브(Central Park Five)"

우선 센트럴파크는 유명한 인종차별 사건의 현장이다. 1989년 백인 여성이 조깅을 하다가 성폭행을 당한 사건이 있었는데 뉴욕 경찰은 분명한 증거도 없이 사건 당시 공원 다른 곳에 있었던 흑인과 히스패닉 14~16세 소년 5명을 범인으로 몰아 8~12년 형을 선고했다. 무려 13년이 지난 후에 진범이 자백을 했지만 그때까지 이들은 단지 피부색이 어둡다는 이유로 백인을 공격한 성폭력범 취급을 받았고, 길고 긴 옥살이를 했다. 이 사건은 켄 번즈(Ken Burns)가 센트럴파크 파이브(Central Park Five)라는 다큐멘터리로 제작했고, 넷플릭스에서도 '그들이 우리를 바라볼 때(When They See Us)'라는 4편짜리 다큐멘터리를 제작했다.

그런데 이 사건 당시 부동산 개발업자였던 도널드 트럼프는 신문에 이 사건을 두고 "(뉴욕주에) 사형제도를 재도입해야 한다"는 전면광고를 게재했다. 트럼프는 이미 그때부터 백인들의 인종차별적 사고에 기반한 분노를 이용해서 자신의 정치적 인기를 쌓아왔지만, 훗날 이들의 누명이 밝혀진 후에도 당시에 게재한 광고에 대한 사과를 거부했다.
유색 인종 10대 다섯 명을 사형에 처하라고 요구한 트럼프의 전면 광고

물론 센트럴파크 파이브나 크리스천 쿠퍼가 겪은 일은 뉴욕, 아니 미국 전역에서 끊임없이 일어나는 크고 작은 비슷한 일들의 일부일 뿐이다. 오죽했으면 뉴욕의 주의회는 2018년에 인종, 젠더, 종교적으로 소수자로 분류되는 집단에 속한 사람들이 범죄를 저질렀다고 경찰에 허위 신고하는 경우 그 의도가 이들에 대한 차별적 인식에서 비롯되었음이 밝혀질 경우 신고 행위 자체를 증오범죄(hate crime)로 취급하는 법안을 상정했다. 다만 이 법안이 발효된 때는 2020년 6월이라 에이미 쿠퍼는 이 법이 적용되는 것을 피했다.

이런 역사 때문에 에이미 쿠퍼의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 역시 크리스천 쿠퍼를 함부로 의심하지 않았을 것이고, 또 그런 역사를 잘 알고 있는 쿠퍼는 '분노한 흑인 남성(angry black man)'이라는 미국 백인들이 가진 스테레오타입을 피하기 위해 아무리 억울해도 끝까지 언성을 높이지 않고 침착함을 지켰다.

하지만 이 모든 역사보다 더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은 스마트폰이라는 현대문명의 이기다. 위의 모든 것을 지켰다 해도 크리스천이 촬영한 영상이 없었으면 어땠을까? 에이미는 출동한 경찰에게 전화로 한 것과 똑같은 거짓말을 했을 것이고, 이 사건이 법정에 갔다면 백인이 다수를 차지하는 배심원들의 결정을 기다려야 했을지 모른다. 조지 플로이드 살해 사건의 경우 많은 사람들이 플로이드가 죽어가는 모습을 지켜봤지만, 그들의 손에 스마트폰이 없었다면 그들의 증언은 의심받았을 가능성이 높다.  

('센트럴파크의 탐조꾼 ②'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