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서 언급한 롤링스톤의 기사는 "조니 뎁은 술과 마약에 취해서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고, 결혼 생활은 파탄이 났고, 더 이상 감당할 수 없는 라이프 스타일을 갖고 있다"라고 했다. 그런 뎁은 왜 허드에게 소송을 걸었고, 어떻게 이길 생각이었을까?

이미 내려진 판결에 따르면 둘 사이의 일은 "쌍방 과실(mutual abuse)"이라고 하지만, 복스(Vox)를 비롯한 많은 언론이 뎁이 다르보(DARVO) 전략을 구사한 혐의가 있다고 본다. 다르보란 '(사실을) 부인하고, 공격하고, 피해자와 가해자를 뒤바꾸는(Deny, Attack, and Reverse Victim and Offender)'하는 행동을 가리키는 것으로 폭력, 성범죄 등의 혐의가 있는 남성들이 혐의를 부인하고, 무죄를 입증하는 대신 "사실은 내가 피해자"라며 상황을 뒤집어 오히려 여성을 공격하는 전략이다. 즉, 이미 영국 법원에서 폭력 사실을 인정한 뎁이 미국의 법원에서는 거꾸로 피해자가 되어 허드를 공격한 것이다.

1990년대부터 인기를 끌어온 조니 뎁과 달리 이름이 막 알려지기 시작한 앰버 허드가 뎁이 요구한 금액을 지불할 능력이 없다는 건 잘 알려진 사실이고, 뎁도 이를 모를 리 없다. 따라서 사람들은 뎁이 건 소송은 '아내를 때리는 사람(wife beater)'라는 오명을 떨치고 허드를 '응징'하는 데 목적이 있는 소송이라고 해석한다.

조니 뎁과 그의 변호팀은 언론에 공개되어 대중의 관심을 끌 수 있는 재판이라는 점을 십분 활용해서 소셜미디어를 통한 대대적인 여론전을 구사했다. 복스는 가디언의 보도를 인용해 조니 뎁의 변호팀이 소셜미디어 봇(bot)을 사용해서 허드에 대한 대중의 분노를 끌어낸 흔적을 찾아냈다고 했다. 그리고 이 방법은 완벽하게 작동했다. 한 변호사는 "유명한 사건들을 많이 봤지만 (대중의) 이렇게 엄청난 반응은 본 적이 없다"라고 했을 만큼 철저하고 일방적인 마녀사냥이었다.

순환논법: 소시오패스

앞의 글에서도 이야기했지만 소셜미디어에서는 "앰버 허드=소시오패스"라고 결론을 내렸다. 가령, 부부 침대 위에 대변을 보았다는 주장이 좋은 예다. 한국의 몇몇 언론에서도 흥미로운 뉴스 정도로 다룬 이 사건은 조니 뎁이 부부싸움을 한 후에 집을 나간 후에 허드가 부부가 사용하는 침대 위에 대변을 올려놓았다는 내용으로 허드가 소시오패스라는 증거로 가장 많이 돌아다닌다.

하지만 이 문제는 사실로 밝혀진 적이 없다. 우선 부부의 개가 그보다 일 년 전에도 침대 위에서 대변을 본 일이 있었고, 이를 허드가 직접 치운 일은 이미 알려진 사실이다. 따라서 가장 쉽게 생각할 수 있는 건 그 개가 똑같은 행동을 또 한 것이다. 조니 뎁 측은 "사람의 똥 같지 않다"라고 말한 가정부의 말을 "그게 허드의 대변"이라는 근거로 들었다.

증거는 없어도 앰버 허드에게는 앰버 터드(Turd, 똥)이라는 별명이 붙었다.

앞에서도 언급했던 기자는 이런 반론을 제기한다. "만약 허드가 남편에 대한 미움과 보복으로 그랬다고 하자. 그럼 왜 자신도 사용하는 침대에 그랬을까? 게다가 그렇게 집을 나가면 몇 주 동안 들어오지도 않곤 하는데, 당연히 가정부가 그걸 치우게 되고, 뎁이 돌아왔을 때는 깨끗한 침대일 거다. 그런 상황에서 정말로 미움과 보복의 행동이라면 사진이나 텍스트로 뎁에게 알려줬어야 할 텐데 그런 증거도 없다. 그럼 허드는 도대체 누구에게 보복한 건가? 게다가 일 년 전에 일어난 강아지 대변 사건 때는 가정부에게 그걸 치우게 하는 건 예의가 아니라며 허드가 직접 치웠다."

오컴의 면도날을 사용하면 개가 했다고 생각하는 게 당연해 보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중이 이 일을 "허드가 소시오패스"인 증거라고 생각하는 것을 두고 이 기자는 "순환논법"이라고 주장한다. '상식적으로 그런 일을 할 사람은 없는데 그렇게 했으면 소시오패스'라는 것이고, '앰버 허드는 소시오패스이기 때문에 그렇게 했을 것'이라는 것이 틱톡을 비롯한 소셜미디어에서 쉽게 보는 논리다.

문제 많은 피해자

그럼 왜 하필 소시오패스라는 말이 붙게 되었을까? 그가 이상적인 피해자(ideal victim)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조니 뎁은 앰버 허드가 던진 병에 맞아 손가락 끝부분이 절단된 것을 두고 "허드는 폭력을 휘두르는 여자"라고 주장해왔고, 이는 소셜미디어에서도 잘 알려져 있다. 하지만 이 일이 서로 치고받으며 싸우는 중에 일어났다는 사실, 앞의 글에서 말한 것처럼 뎁이 허드를 쳐서 쓰러뜨리거나 목을 조르는 일도 많았음을 고려해야 한다. (게다가 던진 병에 손가락을 다친 뎁이 제정신이 아닌 채로 손가락으로 벽에 글씨를 쓰는 등의 기괴한 행동으로 상처를 그렇게 만들었다는 얘기도 있다.)

다시 한번 이야기하지만 앰버 허드가 좋은 사람이라는 주장을 하려고 이 글을 쓰는 게 아니다. 아니, 허드가 좋은 사람이 아니라는 것이 이 글의 핵심이다. 허드는 폭력을 휘두르는 남편을 상대로 똑같은 폭력을 휘두른 사람이다. 둘 다 미성숙한 사람들로 보인다. 하지만 첫째, 우리는 누구나 어느 순간에는 미성숙한 사람이고, 둘째, 함께 폭력을 주고받은 조니 뎁을 향해서는 아무도 소시오패스라는 말을 하지 않는다.

폴 베타니, 조니 뎁

조니 뎁이 패소한 영국 재판에서 공개된, 그리고 채택된 증거에 뎁이 친구인 배우 폴 베타니에게 보낸 텍스트가 있다.

조니 뎁: "Let's burn Amber!!!" 앰버를 불에 태우자!!!
폴 베타니: "I'm not sure we should burn Amber. She is delightful company and pleasing on the eye. We could of course do the English course of action and perform a drowning test. Thoughts? You have a swimming pool." 태우는 것까지는 잘 모르겠다. 앰버는 같이 있을 때는 재미있고 예쁜데. 영국에서는 영국식이 있으니까 익사 테스트를 해볼 수 있어. (몸을 줄로 묶고 물에 빠뜨려서 가라앉으면 마녀가 아니라고 생각한 과거 영국의 마녀 테스트 방식—옮긴이) 어때? 너 수영장 있잖아.
조니 뎁: "Let's drown her before we burn her!!! I will f*** her burnt corpse afterwards to make sure she is dead." 먼저 물에 빠뜨려 죽이고 그다음에 태우자!!! 타버린 시체에다 내가 f***을 해서 완전히 죽었는지를 확인하는 거야.

누가 이런 이야기를 했다면 소시오패스로 보지 않을까? 그런데 왜 사람들은 조니 뎁의 이 텍스트를 두고 소시오패스라고 부르지 않았을까? 여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조니 뎁은 조니 뎁이기 때문이다. '에드워드 가위손,' '블로우,' '캐리비안의 해적' 등의 영화에서 그는 하나같이 특이하고 개성 있는 역을 연기했기 때문에 그가 그런 소리를 해도 마치 연기의 연장선이거나, 아니면 그저 특이하고 재미있는 사람이라고 치부한다. 물론 이런 특권은 대개 남자 배우들에게 있다. 남자 배우들은 악역을 맡아도 인기를 끄는 반면, 여자배우가 악역을 맡으면 배우와 역할을 동일시해서 "나쁜 X"이라는 욕을 먹는다는 사실은 유명하다. "배우도 사람"이라는 이해는 대개 남성에게만 (특히 헐리우드에서는 백인 남성에게만) 부여된다. 그외에는 모두 평면적인 사람들이다.

따라서 대중은 앰버 허드를 '착하고 죄없는 피해자,' 혹은 '남자와 대중을 속이고 괴롭히는 소시오패스' 중 하나의 역할만을 허용한다. 왜냐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여성은 그렇게 평면적인 존재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가디언의 모이라 도네건의 말처럼 "어떤 피해자도 완벽하지 않다. 어떤 피해자도 완벽할 필요가 없다. 상대 여성이 완벽하지 않는 한 때리는 남성이 폭력적인 인간으로 규정될 수 없다면, 도대체 여성은 얼마나 완벽해야 때리면 안 되는 존재로 인식될 수 있겠는가?"

아주 오래된 습관

하지만 조금만 더 생각해보면 이는 아주, 아주 익숙한 사고방식이다.

미국이 독립하기 한참 전인 1600년대 매사추세츠의 해들리라는 마을에 매리 웹스터(Mary Webster)라는 여성이 살았다. 그의 남편은 7살 많은 윌리엄 웹스터였는데, 둘은 가난했고 평생 아이가 없었다. 그런데 매리가 60세 즈음 되었을 때 그는 이웃사람들에 의해 "마녀짓(witchcraft)"을 한다고 고발을 당했다. 정확하게 무슨 행동을 했던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마을 사람들이 매리를 폭행하는 날만 남편이 편하게 잘 수 있었기 때문에, 모든 것을 고려하면 마녀가 맞다고 결론을 내렸다고 하는 식이니 상황을 파악하기는 힘들다) 남아있는 기록을 보면 매리는 동네 사람들에게 평판이 별로 좋지 않았다. 집이 워낙 가난해서 이웃 사람들이 종종 도움을 주었는데 그런 도움을 받으면서도 그다지 고마워하지도 않았고, 성품도 온화한 편이 아니었단다. 한 마디로 '성격이 유별난 여자'였던 거다.

하지만 성격이 유별난 사람은 세상에 널렸다. 여기에는 남자와 여자가 다르지 않다. 하지만 남들과 행동할 경우 그저 '유별난 사람'으로 인식될 권리는 대개 남자들에게 있다. 여자가 유별나다면? 1600년대에는 마녀였고, 2000년대에는 소시오패스가 된다.

말콤 글래드웰의 책 '타인의 해석(Talking to Strangers)'에는 아만다 녹스(Amanda Knox)라는 여성의 이야기가 나온다. 교환학생으로 이탈리아에 머무는 동안 자신의 집에서 일어난 (영국인 여학생의) 살인사건의 범인으로 지목되어 오래도록 "섹스에 미친 여자" "싸이코패스, 소시오패스" 등의 이름으로 불리며 전 세계 언론에 도배되었던 유명한 인물이다. 글래드웰은 책에서 이탈리아 경찰이 분명한 범인을 놔두고 증거도 없는 녹스에게 누명을 씌워 수년 동안 괴롭히게 된 이유를 자세하게 설명한다. (글래드웰의 모든 책이 뛰어나지는 않지만 이 책은 꼭 한 번 읽어보시기를 권한다. 특히 예전에 썼던 '블링크'에서 자신이 했던 주장을 뒤집은 책이라는 점에서 더욱 흥미롭다.) 글래드웰의 진단은 이렇다. 아만다 녹스의 행동이 억울한 사람, 친구를 잃은 여성으로 보이지 않았기 때문에 이탈리아 경찰과 대중이 녹스를 "소시오패스"로 생각했고, "소시오패스이니 범인일 것"으로 생각했다는 것.

우리나라에도 익숙한 예가 있다. 1996년에 스스로 목숨을 끊은 가수 김광석의 죽음을 두고 전문적인 지식이 없는 기자 한 사람이 "아내 서해순이 범인"이라고 지목하고 다큐멘터리까지 만들고, 남편뿐 아니라 딸도 죽인 것 같다는 음모론을 퍼뜨린 사건이다. 경찰에서 서해순 씨에게는 혐의가 없다고 판단했음에도 불구하고 순전히 여론의 재판에 의해 끌려 나와 인기 뉴스 프로그램에서 인터뷰까지 했던 그 사건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시청자들의 반응이었다. "어떻게 남편과 아이의 죽음을 이야기하는 사람이 얼굴에 미소를 지을 수 있느냐" "손을 많이 움직이는 걸 보니 거짓말쟁이가 틀림없다"는 댓글이 넘쳐났고, 심지어 범죄 프로파일러라는 교수도 "사회적 기능에 문제 있는 사람처럼 보였고, 딸과의 애착도 느껴지지 않았다"는, 순전히 인상에 근거한 평가를 하기도 했다.

이런 평가는 대중이 가진 "여성은 이래야 한다"는 틀을 벗어난 사람들이 받게 되는 일종의 사회적 판결이다. 인류사회는 수백, 아니 수천 년 동안 변함없이 이런 판결을 내려왔다. 앰버 허드에 대한 소셜미디어의 판결은 인류사회에 이런 습관이 변함없이 남아 있음을 보여준 예에 불과하다. 단지 여성이라고 해서 좋은 사람이어야 할 필요는 없다. 여성이라도 특이한 사람일 수 있고, 사람에 따라서는 남의 감정을 배려할 줄 모르는 여성도 있다. 하지만 당신의 생각하는 '좋은 여성상'에서 어긋난다고 해서 마녀이거나 소시오패스인 건 아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그 여성들이 그런 취급을 받아야 할 이유가 되는 것도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