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몇 주일 동안 미국의 소셜미디어를 가장 뜨겁게 달군 뉴스는 텍사스주에서 초등학생 열아홉 명을 포함해 스무 명이 넘는 희생자를 낸 총기난사 사건이 아니었다. 2021년 1월에 일어난 국회의사당 습격 사건과 관련한 청문회가 열리고 있지만 그 뉴스도 아니었고, 지난 2월 이후에 시작된 우크라이나 전쟁 뉴스도 아니었다. 사람들이 가장 큰 관심을 갖고 공유하면서 확산된 뉴스는 바로 영화배우 조니 뎁(Johnny Depp)과 앰버 허드(Amber Heard) 사이에 벌어진 명예훼손 소송이었다.

한 때 부부였던 두 사람은 서로 상대방에게 폭언과 폭행을 당했다면서 변호사들을 동원해 법정 공방을 벌였고, 이런 사건들이 그렇듯 많은 TMZ 같은 연예전문 미디어가 열심히 중계했고, 많은 사람들이 이를 소셜미디어에 공유하며 사건을 재미있게 지켜봤다. 하지만 (나를 비롯해) 더 많은 사람들은 연예인들 사이의 법정 공방에 관심이 없어서 뉴스를 팔로우하지 않았다. 그냥 현대 사회에서 애써 피해야 하는 소음 정도로 생각했다.  

앰버 허드와 조니 뎁

하지만 현대 사회가 그렇듯 이 뉴스를 피하기는 쉽지 않았다. 언론사 웹사이트에 나온 이야기는 읽지 않고 피하면 그만이지만, 각종 소셜미디어에서 푸시하는 짧은 영상을 안 보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같은 소셜미디어라도 유튜브에서는 피할 수 있지만, 틱톡이 시작하고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레딧, 심지어 유튜브도 쇼츠(Shorts)라는 이름으로 따라 하는 짧은 영상은 (소셜미디어를 하는 이상) 피할 수 없었다. 언론에 중계된 재판 장면은 짧게 잘려 틱톡의 워터마크를 달고 인터넷을 퍼져나갔다.

그렇게 해서 보게 된 이 재판은 내게 아주 분명한 판결을 내줬다. 소셜미디어에서 진행된 여론 재판에서 이긴 건 조니 뎁이었다. 적어도 내가 본 장면들에 따르면 앰버 허드는 거짓말쟁이였고, 소시오패스였고, 여성이라는 정체성을 이용해서 전 남편의 영화 경력과 인생을 망치려고 작정한 악마 같은 존재였다.

가령 아래와 같은 장면이다. 법정에서 사진기자를 본 허드는 눈물, 콧물을 닦는 시늉을 하며 기자들이 사진을 찍을 수 있도록 멈추고 포즈를 취하는 듯 보인다. 이 영상은 이번 재판 중에 가장 많이 공유되어 사람들의 공분을 산 장면 중 하나가 되었다.

그 영상 아래 달린 "소시오패스"라는 비난 댓글

이렇게 소셜미디어를 돌아다니며 앰버 허드를 조롱하는 영상은 거의 예외 없이 다음과 같은 주장을 한다: "허드는 어설픈 연기를 한다. 따라서 허드는 거짓말이고, 그렇게 거짓말을 하는 이유는 그가 소시오패스이기 때문이다." 이 글은 허드가 좋은 사람이라는 주장을 하려는 게 아니다. 아니, 허드 한 사람에 관한 이야기도 아니다. 이 글은 인류사회가 오래도록 가지고 있는 한 버릇, 21세기에 들어서도 버리지 않고 오히려 미디어의 발전으로 더욱 강화되고 있는 버릇에 관한 이야기다.

하지만 이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는 싫어도 어쩔 수 없이 조니 뎁과 앰버 허드의 법정 공방을 먼저 알아야 한다. 최대한 간결하고 이해하기 쉽게 설명하려고 하니 조금만 참고 읽어주시길 바란다.

조니 뎁을 화나게 한 문장

앞서 말한 것처럼 이 재판은 민사소송 재판이었다. 조니 뎁은 앰버 허드가 근거 없는 주장을 퍼뜨려서 자신의 명예를 실추시켰고, 그 결과 영화배우로 활동하기 힘들어졌기 때문에 이에 상응하는 배상을 해야 한다며 미화 5,000만 달러, 우리 돈으로 약 640억을 청구하는 소송을 걸었다. 허드는 이에 맞소송을 걸었고, 이달 초에 나온 판결은 양쪽에 모두 잘못이 있지만 배상해야 하는 액수는 허드가 훨씬 많았기 때문에 (허드는 뎁에게 1,035만 달러, 뎁은 허드에게 200만 달러를 지불해야 한다) 뎁이 이긴 셈이다.

그런데 허드는 어떤 말을 했기 때문에 1백억 원이 넘는 손해를 입힌 걸까? 그가 2018년에 워싱턴포스트에 기고한 칼럼 때문이다. 정확하게 말하면 뎁은 그 칼럼에 등장하는 한 문장을 문제 삼았다. 칼럼의 제목은 '나는 성폭력에 관해 목소리를 높였다는 이유로 우리 문화(사회)의 분노의 대상이 되었다. 이건 바뀌어야 한다 (I spoke up against sexual violence — and faced our culture’s wrath. That has to change"였고, 문제가 된 문장은 아래와 같다:

2년 전 나는 가정폭력을 대표하는 공인이 되었고, (자신이 받은 피해에 대해) 목소리를 높이는 여성들이 받는 우리 문화의 분노를 정면으로 맞닥뜨리게 되었다. Then two years ago, I became a public figure representing domestic abuse, and I felt the full force of our culture’s wrath for women who speak out.

좀 더 정확하게 말하면 이 문장의 절반에 해당하는 "나는 가정폭력을 대표하는 공인이 되었다"는 대목이다. 허드는 이 글에서 전남편 조니 뎁의 이름을 언급하지 않았지만 둘은 2017년에 이혼했기 때문에 2018년의 글에서 언급한 (2년 전의) 가정폭력 얘기는 뎁에 관한 이야기임을 누구나 알 수 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서는 아무도 부정하지 않는다.

그럼 과연 조니 뎁은 가정폭력을 행사한 적이 있을까, 없을까? 이와 관련해서는 뎁이 2020년 영국에서 거의 똑같은 내용의 소송을 언론사를 상대로 제기했다가 패소한 일이 있다. 그 상대는 영국의 타블로이드 신문인 '더 선(The Sun)'이었다. 선정적인 유명인에 대한 가십 기사로 유명한 이 신문이 기사에서 조니 뎁을 두고 "아내를 때리는 사람(wife beater)"이라는 표현을 썼는데, 이를 두고 뎁이 명예 훼손 소송을 걸었다가 패소한 것이다.

역사적인 이유로 언론의 자유를 무척 철저하게 지켜주는 미국과 달리 영국에서는 언론사라고 해서 무조건적인 자유가 주어지지 않는다. 게다가 인기 있는 A리스트 배우가 '더 선'처럼 많은 사람들이 혐오하는 타블로이드를 상대로 이기기는 어렵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국 법원은 기록을 모두 살펴본 결과 앰버 허드가 주장한 14번의 폭행 중 12개가 사실이라고 인정했다.

아래가 법원에서 사실로 인정한 폭행 내용이다. 내가 좋아하는 배우로서의 조니 뎁과는 크게 다른 이미지다. (아니, 어쩌면 똑같은 이미지이기도 하다. 여기에 대해서는 나중에 더 이야기하려 한다.)

출처: 더 선

위의 내용들은 폭행을 당한 허드가 가족과 친구, 동료에게 이야기한 내용, 폭행과 관련해 조니 뎁이 했던 말을 들은 사람들의 증언 등을 바탕으로 확인한 것으로, 한 기자의 설명에 따르면 "가정폭력(domestic violence) 사건들 중에서 이만큼 증거가 확실한 경우도 드물 만큼" 확실한 사건이어서 이론의 여지가 없는 판결이었다고 한다.  (이 기자가 자세하게 설명하는 영국의 판결 내용은 여기에서 읽어볼 수 있다.)

조니 뎁이 앰버 허드를 결혼 생활 중에 여러 차례 폭행한 것이 밝혀졌기 때문에 더 선이 그를 "wife beater"라고 쓴 것이 명예훼손이 아니라면, 허드가 워싱턴포스트 칼럼에서 자신이 가정폭력의 희생자라고 말하는 것 역시 틀린 말이 아니다. 하지만 뎁은 이번에는 전처인 허드를 상대로 소송을 건 것이다.

그렇다면 조니 뎁은 왜 명예훼손을 입증하기 더 힘든 미국에서 똑같은 재판을 시작했을까? 어떤 이유에서인지는 몰라도 허드를 상대로는 이길 수 있다고 판단한 것 같다. 결과적으로 그의 예상은 맞았다. 뎁의 변호팀은 노련했고 (그중 여성 변호사는 미디어 스타가 되기도 했다) 앰버 허드 측의 주장을 효과적으로 물고 늘어지며 바이럴 영상을 만들어 냈다. 게다가 재판 과정을 조금이라도 본 적이 있다면 허드의 변호팀이 얼마나 엉성했는지 들어봤을 거다. 증인을 불필요하게 모욕했다가 놀림감이 되기도 하고, 정확하지 않은 말을 했다가 '허드가 하는 거짓말' 중 하나로 찍혀 여론의 지탄을 받기도 했다.

허드의 변호인은 허드가 뎁에게 맞은 멍을 감추기 위해 색조 화장을 한 것을 이야기하면서 "이것이 그 제품"이라고 말했다가 해당 화장품 업체가 "그 시점에 나오지 않은 제품"이라고 반박하는 일이 있었다. 허드는 "이 제품이 아니라, 이런 색들을 섞어서 사용했다"라고 설명했지만, 분노한 소셜미디어에서 허드의 말은 중요하지 않았다.

조니 뎁의 주장은 앰버 허드의 칼럼에 등장한 한 줄로 인해 자신이 영화계에서 일하기 힘들어졌고, 그래서 물적 피해를 입었다는 것이다. 이건 사실일까? 뎁의 가정폭력 문제가 언론에 불거졌을 당시 그는 ('해리포터' 시리즈의) J.K. 롤링이 쓴 '신비한 동물사전(Fantastic Beasts)'을 영화화한 '신비한 동물들과 덤블도어의 비밀'에 출연하기로 되어있었다. 그러나 미투 운동이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던 시점에서 부담을 느낀 영화사는 뎁이 등장하는 장면을 단 하나만 찍은 상태에서 그를 하차시켰다. 물론 뎁은 계약에 따라 출연료 1,600만 달러 전액을 받게 되었지만, 앞으로 나올 수 있는 시리즈에 등장하지 못하게 되었기 때문에 물적인 손해를 봤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는 폭력을 휘두른 자신의 잘못이지 그걸 보도한 언론사나 칼럼에 쓴 전처의 잘못이 아니다. 게다가 조니 뎁의 인기는 2010년대를 지나면서 이미 기울기 시작했다는 평가가 일반적이다. 그의 인기는 '캐리비안의 해적' 시리즈가 나온 2000년대에 최절정에 달했고 (이 시리즈의 마지막 편은 2017년에 나왔다), 2010년대에 들어서는 '럼 다이어리(The Rum Diary, 2011)'나 '21 점프 스트리트(21 Jump Street, 2012)' 정도가 약간의 관심을 끌었을 뿐 이렇다 할 흥행작이 없었다.

그런데 이렇게 인기가 시들어 가던 시기가 앰버 허드와의 결혼 생활 때라고 해서 허드를 '악처'라고 보는 사람들도 있다. 허드가 좋은 사람이라고 주장하려는 건 전혀 아니지만, 조니 뎁의 인기 하락은 본인의 관리능력 부재 때문이라는 건 익히 알려진 일이었다. 헐리우드 최고의 인기 남자 배우가 술과 마약에 빠져 실패하는 일은 흔한 일이지만, 조니 뎁이 그런 인물로 대표적인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RDJ)와 다른 점이 있다면 RDJ는 그런 일을 젊은 시절에 겪으며 바닥을 치고 올라왔다면 조니 뎁은 50이 넘어 인기가 사그라드는 시점에 그렇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심도 있는 연예계 소식(뿐 아니라 정치 뉴스로도 훌륭한 기사가 많다)으로 유명한 '롤링스톤'이 2018년에 발행한 프로파일 기사 '조니 뎁의 문제(The Trouble With Johnny Depp)'는 이 모든 것을 분명하게 뎁 본인의 잘못으로 이야기했다. 이 기사는 조니 뎁이 "재산을 날리고, 고립되어 있으며, 한 번만 더 실수하면 업계에서 추방(blackball)당할 것"이라는 잔인한 진단을 내렸다. 4년 전에 나온 기사다.

('아주 오래된 습관 ② DARVO'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