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아프가니스탄에서 20년 동안 지속해온 전쟁을 종결하는 작업은 깔끔하지 않았고, 바이든 정부는 이 과정에서 많은 비판을 받았다. 특히 탈출하려는 아프가니스탄 사람들이 공항으로 밀려들어 이륙하는 비행기에 매달렸다가 추락하는 모습, 그리고 공항 근처에 몰린 사람들을 상대로 IS 호라산이 터뜨린 두 개의 폭탄은 미국이 전쟁을 끝내는 절차를 제대로 준비하지 못했다는 인상을 주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더 비극적인 일은 그다음에 일어났다. 두 번의 폭탄 테러 이후 또 다른 테러가 계획되고 있다는 첩보를 입수한 미군이 이를 사전에 저지하기 위해 지난 8월 29일에 드론으로 테러 용의자를 사살했는데, 알고 보니 그 사람은 폭탄을 준비하던 테러리스트가 아니라 아프가니스탄의 구호단체에서 일하던 사람이었다. 그 사람만 죽은 것도 아니고 최대 열 명이 사망했고, 그중에는 세 살짜리 여자아이를 포함해 7명의 아이들도 있다는 보도가 나왔다.

뉴욕타임즈가 미군의 실수를 폭로하는 기사와 함께 제작해 공개한 설명 영상
여기에서 잠깐, 이렇게 미군의 드론 폭격으로 사망한 민간인들은 어떤 보상을 받을까? 미국은 유족에게 2,500달러를 주는 게 일반적이라고 한다. 우리 돈으로 3백만 원에 채 미치지 못하는 돈이다. 일 인당 GDP가 500달러에 불과한 나라에서 적은 돈은 아닐지 모르지만, 미국에는 아주 적은 금액이다. 미국에서 '부수적 피해(collateral damage)'라는 완곡한 표현을 사용하는 이런 죽음이 이어지는 이유가 거기에 있지 않을까?
자식과 남편, 아버지를 잃은 이 가족은 아프가니스탄을 떠나 미국으로 가기 위해 비자 심사를 기다리던 중이었다고 한다. 유족들은 미국을 상대로 진상조사와 배상을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이 소식은 군에서 먼저 나오지 않았다. 뉴욕타임즈의 취재 결과로 먼저 알려졌다. 이 신문은 미 국방부가 "정당한 공격"이었다고 스스로 칭찬하는 이 폭격의 진상을 파악하기 위해 4명의 기자를 투입했고, 그 취재결과를 9월 10일에 기사화했다. 타임즈의 보도로 이 문제에 관심이 쏠리고 다른 언론의 보도가 이어지자 국방부는 첫 보도가 나온 지 일주일 만에 폭격이 "비극적인 실수"였고, 미군이 죽인 사람들은 테러리스트가 아닌 민간인들이라고 인정했다.

그런데 국방부는 이걸 언제 인정했을까? 언론사마다 이 기사가 처음 보도된 시점을 보면 대략 워싱턴이 위치한 동부시간으로 9월 17일 금요일 오후 3시를 넘어서다. 이걸 본 사람들이 "그럼 그렇지, 쓰레기 치우는 날이잖아"라는 반응을 보였다.

CNBC 방송은 미 국방부가 오폭을 인정한 사실은 오후 3시 8분에 알렸고, 저녁 8시가 넘어 기사를 보충했다.

쓰레기 치우는 날(Take Out The Trash Day) 사람들에 따라서는 나쁜 소식 금요일(Bad News Friday)이라고도 부른다. 미국 최고의 인기 정치 드라마였던 '웨스트윙(The West Wing, 1999~2006)'에서 이 표현의 의미를 자세하게 설명하는 장면이 나온다. 대통령 비서실 부실장인 조쉬 라이먼이 그의 비서인 도나 모스에게 하는 말이다:

"금요일을 (백악관에서) 쓰레기 치우는 날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백악관에 불리한 소식들이 있으면 그것들을 한 번에 묶어서 금요일에 발표하기 때문이예요. 왜 따로따로 발표하지 않고 한 번에 쏟아내느냐고요? 신문지의 크기는 정해져 있잖아요? 만약 안 좋은 소식을 매일 하나씩 발표하면 기사를 길게 쓸 수 있죠. 하지만 하루에 다섯 개가 발표되면 다음 날 정해진 지면에 모두 기사화되어야 하니 각각의 소식은 짧게 다루게 됩니다.

그런데 왜 금요일에 내보내느냐고요? 그럼 신문에 등장하는 건 토요일인데, 토요일에는 사람들이 신문을 보지 않으니까요."

이 에피소드가 방송된 것은 2000년 1월이다. 아직 9/11 테러가 일어나기 전이고, 스마트폰이 없었으며, 대부분의 미국인은 아직 전화선으로 인터넷을 사용하던 시절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당시만 해도 사람들은 신문의 웹사이트보다 종이신문으로 뉴스를 읽고 있었다. (지금은 미국에서 온라인에서 무료로 읽을 수 있는 신문을 찾기 쉽지 않지만, 당시만 해도 월스트리트를 제외한 거의 모든 신문이 종이판은 돈을 내고 구독하게 하고, 인터넷에서는 똑같은 기사를 무료로 읽을 수 있게 했다. 이것이 치명적인 실수였음을 깨닫는 데는 약간의 시간이 걸렸다).

따라서 백악관을 비롯한 정부 기관이 국민들로 부터 욕을 먹을 만한 내용을 발표해야 하면 가급적이면 기다렸다가 금요일 오후에 발표하곤 했고, 그래서 금요일을 흔히 '나쁜 소식 금요일' '쓰레기 치우는 날'이라 부르게 된 것이다. 미 국방부는 폭격을 한 후에 사살하려던 테러리스트를 사살했는지 정말 확인하지 않았을까? 확인하지 않았다면 왜 안 했을까? 일개 신문사가 기자들을 현장에 보내 확인하는 동안 국방부는 뭘하고 있었을까? 그리고 뉴욕타임즈가 취재 결과를 보도한 후에 자체조사를 벌인 결과는 왜 하필 정확하게 금요일에 끝나서 금요일 오후에 발표하게 되었을까?

우연일 수 있다. 아니, '나쁜 소식 일요일'이라는 개념 자체가 기자들이 만들어낸 음모론에 불과할 수도 있다. 이 관행에 관해 설명한 뉴욕타임즈 블로그 포스트에 따르면, 2008년 대선에서 나이가 많았던 공화당 후보 존 매케인은 기자들이 오래도록 요구했던 (아주 두툼한) 자신의 건강검진 결과를 다음 월요일이 공휴일이어서 연휴가 시작되는 금요일 오후에 던져줘서 기자들을 화나게 했다. 누군가는 그걸 다 읽고 기사화해야 하니까 일단 화가 나겠고, 그렇게 해서 기사화를 해도 토요일 신문(주말판을 구독하는 사람들은 적고, 가판대 판매도 줄어든다)을 보는 사람도 적으니 고생한 보람도 없어 더 화가 났을 거다. (심지어 재산이 많기로 소문난 매케인 아내의 세금 신고 내역을 기자들에게 배포한 것도 금요일 저녁이었다). 그 블로그에 따르면 그런 짓은 오바마 후보 측도 똑같이 했다고 한다.

구시대의 유물

하지만 이런 관습은 웨스트윙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패션만큼이나 오래된 유물이다. 우선 사람들은 종이신문을 보지 않기 때문에 기사의 아이템이 많아도 온라인에서 얼마든지 소화가 가능할 뿐만 아니라, 주말에는 신문을 보지 않는다는 것 자체가 성립되지 않는다. 사람들은 주말 오전에도 인터넷에 접속하고, 소셜미디어에서 글을 읽고 댓글을 다는 일은 더 많다. 따라서 이제는 만약 금요일 오후에 발표해서 금요일 저녁에 기사화가 되었다면 주말 내내 온라인에서 격론이 벌어질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보수적인 미 국방부는 미디어 환경의 변화에 무지해서 오래된 관습을 반복했을지 모른다.

한국에서 선거가 있는 해에는 추석 귀경 직전에 상대 후보에 대한 흠집 내기용 폭로가 쏟아지는 이유가 바로 긴 연휴 동안에 폭로된 내용이 술상에 올라 소화되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결국 금요일 오후에 '전략적으로' 나쁜 소식을 덤핑한다면 역효과가 날 가능성이 높은 미디어 환경이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리고 그걸 증명이라도 하듯 미 국방부의 오폭 인정 소식은 주말 내내 미국에서 뉴스거리가 되었다.

따라서 PR 전문가들은 이제 금요일에 나쁜 소식을 전하는 일은 하면 안 된다고 조언한다. 발표하는 타이밍을 신경 쓰는 대신 메시지의 깊이와 퀄리티에 신경을 써서 진심을 담은(authentic) 내용을 전달하는 게 좋다는 얘기다. 사람들이 기업이나 기관의 홍보실이 타이밍에 신경을 썼다는 사실을 눈치채는 순간 전달되는 메시지의 진정성을 의심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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