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상황이 계속되다면 패닉의 강도를 1에서 10까지로 봤을 때, 민주당의 패닉은 내일이면 28을 찍을 것(On a 1 to 10 point scale — if this continues — the panic explosion inside the Democratic Party will hit 28 tmmrw).”

조 바이든 대통령이 도널드 트럼프와 첫 토론회를 마친 후 민주당의 패닉(공포, 공황상태)은 극도에 달했다. 애초에 바이든이 토론을 잘 할 것이라는 기대를 한 사람은 없다. 그는 1972년, 29세의 나이에 연방 상원의원이 되었고, 누구보다 오랫동안 정치를 했지만 토론 실력은 형편 없는 것으로 악명 높다. 어린 시절 말을 더듬어서 (당시만 해도 말을 더듬는 사람은 지능이 낮다고 생각하던 시절이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노력했고, 누구보다 일찍 상원의원이 되었지만, 말솜씨로 정치인이 되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다. 어제 토론회에서 사람들이 충격을 받은 것은 그가 토론을 못했기 때문이 아니라, 그가 정상적인 의사소통이 가능하냐는 의심을 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특히 초반 15분은 "미국 대선 토론회 역사상 최악"이라는 조롱을 받기에 충분했다. 바이든은 토론 중에 자기가 하고 있는 말의 주제를 잊은 듯 말을 멈췄고, "우리는 드디어 메디케어를 무찔렀습니다(We finally beat Medicare)" 같은 황당한 이야기를 했다. 메디케어는 고령층을 위한 미국의 의료보험으로, 민주당이 자랑하고 지키는 사회보장제도다. 바이든이 하려던 말은 "우리는 코로나19를 무찔렀습니다"였다. 전국, 아니 전세계가 지켜보는 토론회에서 단순한 말실수는 누구나 할 수 있다. 트럼프도 토론 중에 "미국은 최고의 H2O 숫자를 갖고 있다" 같은 황당한 말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토론 후 모두들 바이든의 정신 건강만 이야기하는 이유는 그런 실수 때문이 아니다.

초반에 토론의 주제가 여성의 임신 중지권으로 넘어가자, 바이든은 "그런 결정을 각 주가 알아서 결정하게 해야 한다"는 말로 대답을 시작하더니 갑자기 "불법 이민자에게 살해당한 젊은 여성"의 장례식에 간 이야기를 꺼냈다. 그건 불법 이민자들이 미국 여성을 강간, 살해한다는 트럼프의 주장에 관한 이야기였다. 불법 이민자와 난민 문제는 중요한 이슈인데, 그것과 여성의 임신 중지권을 헷갈린 것이다. 그걸 보는 사람들은 '바이든이 지금 자기가 하고 있는 얘기가 뭔지 모르고 있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바이든을 위한 변명들

원래 미국 정치에서 재선에 도전하는 현직 대통령은 첫 토론회에서 좋은 성적을 내지 못한다. 폴리티코의 설명처럼, 치열한 당내 경쟁을 거치고 잔뜩 물이 오른 도전자에 비해 현직 대통령은 토론회 준비가 덜 되어있다. 잔뜩 쌓인 국내외 문제를 해결하는데 집중해야 하니 토론 준비에 시간을 충분히 내지 못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사정도 어제의 바이든의 횡설수설을 설명하기에는 부족하다.

첫 15분을 넘어선 후에는 바이든의 말은 심각한 수준에서 벗어났고, 후반에는 예전의 모습을 조금씩 회복해서 적절한 공격을 날렸지만, 사람들은 이미 토론 초반의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물론 가장 큰 충격을 받은 사람들은 바이든을 응원하는 민주당 지지자들이었다. 토론회에 들어가자마자 바이든이 헛소리를 하자 민주당 사람들에게는 "이건 재난(disaster)"이라는 문자 메시지가 쏟아졌고, "바이든으로는 안 되겠다. 후보를 교체하라"는 요구가 빗발쳤다고 한다.

그런 요구에 민주당 사람들이 할 수 있는 말은 많지 않았을 거고, 그들이 할 수 있는 위로 중 하나가 "대선 토론회는 실제 결과에 큰 영향이 없다"는 것이었을 거다. 이건 사실이다. 대선의 토론회는 당연히 중요하지만, 과학적인 상관관계가 증명된 건 아니다. 1960년에 열린 사상 첫 대선 TV 토론회인 존 F. 케네디와 리처드 닉슨의 토론회는 케네디의 승리를 예고했다고 하지만, 그 둘의 토론을 라디오로 들은 사람들은 닉슨이 더 잘했다고 평가했다. 토론회 때문에 승패가 갈렸다기 보다는 토론회 때 보인 모습이 시간이 갈수록 확인되기 때문에 결과의 기원을 토론회에서 찾게 되는 것에 가깝다. 그러니 토론회가 결과에 영향이 있다고 말할 수도 있고, 없다고 할 수도 있다.

형편없는 토론 실력이 결과에 영향이 없다고 주장할 수 있는 대표적인 예가 바로 조 바이든이다. 2020년 대선 때도 당내 경선에서 형편없는 토론 실력으로 지지율이 낮았지만, 결국 판을 뒤집는 데 성공했고 대통령이 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위와 같은 변명들은 통하지 않는다는 분석도 있다. 복스는 토론회가 열리기 전, "바이든과 트럼프의 토론회가 영향력을 발휘할 4가지 이유"라는 기사를 통해 이번 토론회가 과거의 토론회들과 어떻게 다른지 설명했다. 기사는 첫째, 이번 대선이 너무나 팽팽하다는 것을 들었다. 토론회 직전 두 사람의 지지율은 트럼프 40.8%, 바이든 40.7%였고, 승패를 가르게 될 격전지인 미시건, 펜실베이니아, 위스컨신에서 두 사람은 근소한 차이로 경쟁하고 있다. 특히 많은 사람들이 두 후보를 모두 좋아하지 않는 상황에서 토론회를 보고 실망한 사람들이 투표소로 가게 되지 않는다면? 2016년 트럼프과 힐러리 클린턴의 대결이 반복될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

복스는 정치에 대한 무관심이 줄어들었다는 것을 두 번째 이유로 들었고, 세 번째로는 바이든이 자신의 취약점인 나이가 들었다는 비판을 잠재울 수 있을 것으로 예상했으며, 마지막으로 트럼프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잊었던 사람들이 트럼프의 참모습을 재확인하게 될 수 있다고 했다. 하지만 바이든은 자신의 취약점을 덮기는 커녕 훨씬 더 분명하게 드러냈고, 트럼프는 거의 자멸에 가깝게 횡설수설하는 바이든을 조롱하거나 심하게 공격하지 않는 영리한 결정을 내렸다. 복스의 예상과 달리 트럼프는 침착한 모습을 보여 준 것이다.

대선 후보 교체 주장

바이든의 토론 모습을 보고 후보를 교체해야 한다고 말한 사람들은 지지자들만이 아니다. 2020년 대선에서 바이든과 경쟁하면서 상당한 인기를 끌었던 앤드류 양(Andrew Yang)은 토론 직후 X에 다음과 같은 포스팅을 했다.

"조 바이든의 초능력이 뭘까? 나라를 위해서라면 무슨 일이든 하는 것이 그의 초능력이다. 그렇다면 이제는 당이 다른 후보를 선택하도록 후보직에서 물러나야 한다."

앤드류 양의 X 계정

민주당은 후보를 교체할 수 있을까? 불가능하지 않다. 백악관과 민주당이 대선 토론회를 전례없이 일찍 열기로 해서 양당이 후보를 공식적으로 지명하는 전당대회 이전에 토론회가 개최되었지만, 아직 대선까지는 4개월 정도 남은 상황이다. 공식적 후보로 지명되었어도 (한국에서 "유고시有故時"라고 표현하는) 특별한 사정이나 사고가 일어나면 교체해야 하는데, 공식 후보도 아니니 작정만 하면 얼마든지 교체가 가능하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후보가 스스로 결정할 수 없는 상황이다. 현재 당내 경선 절차를 모두 통과한 현직 대통령이 대선에 나서겠다고 하는데 그를 말릴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아니, 엄밀하게 말해 한 명 밖에 없다.

뉴욕타임즈 기자에 따르면 바이든에게 이번 출마를 포기하라고 설득해서 말을 듣게 할 수 있는 사람은 그의 아내 질 바이든(Jill Biden) 밖에 없다. 그런데 기자도 설명하듯, 바이든의 아내는 남편의 가장 강력한 지지자다. 2020년 당내 경선에서 젊고 쟁쟁한 경쟁 후보들에 밀려서 지지율이 오르지 않고, 토론회 성적도 나빠서 영 가망이 없어 보이는 상황에서 그에게 완주를 해야 한다고 응원했던 사람이 질 바이든이다. TV 카메라 앞에서 아무리 버벅거리며 실수를 해도 조 바이든의 인지능력을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이다. 그런 그가 남편이 트럼프와 재대결해서 이길 거라고 믿는다면? 조 바이든은 11월에 트럼프와 재대결을ㅈ 하게 된다.

하지만 미국처럼 누구나 자기 생각을 말할 수 있는 사회에서 아랑곳하지 않고 민주당의 후보 교체를 요구하는 사람들은 많다. 당장 뉴욕타임즈가 금요일 사설, 즉 신문사 편집진 회의의 의견으로 바이든이 "나라를 위해" 출마를 포기하라고 건의했다. 바이든은 그동안 미국을 위해 참 열심히 일했고, 국익을 위해 활동했지만, 트럼프를 막아야 하는 이번 대선은 그가 모험을 하기에는 너무나 위험한 선거라는 게 내용의 핵심이다. 그리고 바이든은 "4년 전의 그가 아니다(Mr. Biden is not the man he was four years ago)"라는 거다.

바이든과 민주당의 결정

뉴욕타임즈의 사설까지 그렇게 나온 건 충격적이지만, 그 매체가 진보적인 성향을 갖고 있다고 해서 민주당과 정치인들이 그들의 의견을 항상 듣는 건 아니다. 뉴욕타임즈의 편집진이나 민주당에 기부금을 내는 미국의 진보 엘리트들이 민심을 대변하지는 않는다. 그들의 판단도 소수의 현실 인식에 불과할 수 있다. 뉴욕타임즈 칼럼니스트들의 조언을 따랐다면 오바마는 2008년 대선에 나오기에는 시기상조였고, 바이든은 2020년에 나와서 이길 수 있었던 후보가 아니다. 따라서 민주당과 백악관은 여론의 하나로 참고는 하겠지만, 결정은 다를 가능성이 높다.

백악관 참모와 민주당 중진은 바이든을 믿는 것 같다. 최악의 토론회를 마친 바이든은 노스캐롤라이나에 가서 선거운동 집회에 참석해서 토론회 때와는 크게 다른 모습으로 열정적인 연설을 했다. 토론회 때는 "그가 피곤하고 감기에 걸려서 초반에 잠시 헤맨 것일 뿐"이라는 주장을 뒷받침하는 모습이었다. 그는 "내가 젊은 사람이 아닌 건 나도 안다"며, "내가 예전처럼 걷지 못하고, 예전처럼 말을 하지 못하고, 예전처럼 토론하지 못하지만, 나는 진실이 무엇이고, 틀린 게 무엇이고, 대통령직을 수행하는 법을 안다"고 했다. 그리고 "많은 미국인들처럼 넘어지면 일어나는 법을 안다"고 열정적으로 호소했다.

토론회 후에 열린 집회에서 연설하는 바이든 (이미지 출처: The New Yorker)

노쇠한 바이든이 트럼프와 대결할 후보로 부적격하다는 의견이 사라지지는 않겠지만, 토론회 직후에 나온 그런 의견은 빠르게 줄어드는 모습이다. 지금에 와서 후보 교체는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판단을 빠르게 내린 결과일 수도 있지만, 현재 민주당의 정치인 중에서 트럼프와 대결해서 이길 수 있는 후보는 없다. 이건 단순한 정치공학의 문제이지, "미국에 인재가 없다"는 얘기가 아니다. 바이든, 트럼프보다 뛰어난 정치인은 넘쳐난다. 문제는 그들이 3억이 넘는 인구를 대상으로 브랜드를 키울 수 있는 시간이 없다는 것이다. 현재 민주당에서 트럼프를 잡을 수 있는 유일한 무기는 바이든이라는 게 상식이다.

바이든의 후보 사퇴를 요구한 앤드류 양의 주장에 동의하는 사람이 많았고, 양은 그런 사람들의 생각을 대변해서 큰 인기를 끌었지만, 그런 이유로 그는 민주당의 주류 정치인이 되기 힘들어 보인다. 당과 리더가 가장 취약한 순간에 상대편의 주장에 힘을 실어줄 수 있는 발언을 했기 때문이다. 그의 생각이 옳고 그름을 떠나, 그 시점에 발언을 했어야 했느냐는 적절성 여부의 문제다. 많은 리트윗을 끌어내고, 언론의 관심을 받을 수 있는 발언이었지, 당과 후보를 보호할 수 있는 발언은 아니었다.

앤드류 양과 대비되는 발언을 한 사람이 있다. 바로 개빈 뉴섬(Gavin Newsom) 캘리포니아 주지사다. 그는 바이든의 토론회 직후에 쏟아지는 후보 교체 주장을 일축하면서 "나는 절대로 바이든 대통령에 등을 돌리지 않겠다"고 한 후에 "우리 당에서 그렇게 하는 사람이 있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I don't know a Democrat in my party that would do so)"라며 후보 교체를 주장하는 사람이 있다면 민주당 사람으로 생각하지도 않겠다는 뉘앙스가 섞인 말을 했다. 트럼프를 상대로 싸우고 있는 리더를 흔들면 안된다고 철벽 방어를 한 것으로, 이 발언은 불안해하던 많은 민주당 지지자들을 안심시켰다. 당의 사랑을 얻는 방법이 어떤 것인지 보여준 장면이었다.

뉴욕대학교의 스캇 갤로웨이(Scott Galloway)가 "트럼프는 어젯밤 토론회에서 승리했고, 뉴섬은 (다음번) 대통령 선거에서 승리했다"라고 말한 건 바로 그런 의미에서 한 말일 거다.

스캇 갤로웨이의 스레드

바이든을 지지하던 유권자가 지난 토론회를 보고 트럼프를 지지할 일은 생기지 않는다. 트럼프를 지지하던 사람들이 바이든을 지지할 리는 더더욱 없다. 결국 문제는 두 사람 사이에서 결정을 내리지 못하던 유권자가 트럼프를 지지하게 되는 것이고, 더 중요하게는 바이든을 지지하던 사람이 토론회에서 횡설수설한 그의 모습에 실망해서 아예 투표장에 나가지 않게 되는 상황이다. 2016년 선거에서 힐러리 클린턴에 실망한 민주당 지지자들이 했던 바로 그 선택 말이다.

미래를 예측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에 조심스럽지만, 그런 일이 일어날 가능성은 크지 않다. 힐러리와 트럼프가 대결했을 때만 해도 중도층은 트럼프가 어떤 사람인지, 어떻게 민주주의를 파괴할 수 있는지 몰랐지만 지금은 알고 있다. 지난 토론회에서 "트럼프는 한 명의 새로운 유권자도 자기 편으로 끌어들이지 못했다(Trump didn’t add anyone)"라는 말은 틀린 말이 아니다. 바이든의 모습이 사람들의 관심을 끌어서 그렇지, 트럼프는 전과 다름없는 거짓말과 황당한 주장을 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정치에 관심을 가진 소수의 사람들을 제외하고 대선 토론회를 보는 사람은 많지 않고, 그 숫자도 해마다 줄어들고 있다. 그 토론회를 직접 보지 않은 대부분의 사람들은 바이든의 모습을 소셜미디어로 돌아다니는 동영상과 짤을 통해 접하게 될 것이다. 그런데 미국인들은 바이든이 늙어서 제정신이 아니라는 짤을 지난 4년 넘게 봐왔다. 당장은 화제가 되겠지만, 사우스캐롤라이나의 집회처럼 다시 정신차린 모습의 바이든 영상으로 서서히 이미지가 교체될 거다.

미국의 정치는 크고 느리다. 마음만 먹으면 단결해서 대통령도 끌어내릴 수 있는 한국의 역동적인 정치와는 작동 방식이 많이 다르다. 그런 미국의 정치를 잘 아는 민주당이 후보를 교체할 가능성은 사실상 없다. 민주당 대선본부에서는 "바이든이 후보직을 내려놓는 일은 절대 없다(Of course he’s not dropping out)"고 일축했다. 토론회를 죽쑨 후에 바이든 선거운동에 기부금이 기록적으로 쏟아진 것도 사람들의 흔들림 없는 지지를 보여준다.

선거 운동 중에 뇌졸중을 겪고, 말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승리해 연방 상원의원이 된 존 페터먼(John Fetterman)은 불안해 하는 민주당 지지자들을 향해 "제발 진정하라(chill the fuck out)"고 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나는 토론회가 끝난 후에 바이든의 시체를 뜯어 먹으려고 덤벼드는 콘도르 무리에 동참하지 않겠다. 토론회 하나를 망친 것으로 후보의 전체를 평가할 수 없다는 것을 나만큼 잘 아는 사람도 없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