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코미디언 데미 아디주이베(Demi Adejuyibe)는 NBC의 히트 코미디 시리즈 굿 플레이스(The Good Place)에 작가로 참여했고, 자신의 이름을 딴 유튜브 채널에 9만 명 정도의 구독자를 모았지만, 그렇다고 미국인들이 잘 아는 코미디언이라고 하기는 힘들다. 하지만 아디주이베는 지난 몇 년 동안 매해 9월 21일 단 하루 동안 소셜에서 큰 인기를 누린다. 그가 일 년에 한 번 만드는 영상이 미국의 많은 유튜브와 레딧, 트위터, 페이스북에서 공유되기 때문이다.

이런 공익광고에도 등장했다.

발단은 그가 2016년에 장난삼아 만든 영상이었다. 1970, 80년대에 인기를 끌었던 R&B 그룹인 어스 윈드 앤드 파이어(Earth, Wind & Fire)의 노래 중에 'September(9월)'이라는 노래가 있는데 그 노래는 "9월 21일 밤을 기억하시나요(Do you remember, 21st night of September)?"로 시작하는데, 자신의 아파트에서 그 가사에 맞춰 춤을 추는 단순한 영상이다. 아래에서 보다시피 제작비라고는 그 날짜가 적힌 셔츠 한 장이 전부였을 게 분명하다. 그는 별 생각 없이 이 영상을 만들어서 날짜에 맞춰 트위터 계정에 올렸다가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  

"9/21/16"

다들 한 번 웃고 말았지만, 무슨 생각에서였는지 그는 이듬해인 2017년에 후속 영상을 만들었다. 여전히 간단하게 만든 영상이어도 2016에 비하면 약간의 소품이 등장한다. 대수롭지 않은 장난이었지만 한 해 전의 일을 기억하는 사람들은 "다시 그날이 되었다"며 환호했고, 더 큰 인기를 얻었다.

9/21/17

그때부터 아디주이베는 이 비디오를 매년 만들어 올리기로 한다. 그는 2020년에 한 인터뷰에서 "내가 스스로 만든 감옥에 갇힌 것 같다"고 했는데, 그도 그럴 것이 세 번째 해부터는 오디언스가 기억하고 기다리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1편보다 2편의 "퀄리티"가 높아졌다고 사람들이 박수를 쳤기 때문에 3편의 퀄리티는 최소한 2편보다는 높아져야 했다.

그래서 나온 2018년의 작품이 아래 영상이다. 단순한 차고에서 시작하지만, 연습을 꽤 한 듯 춤솜씨도 좋아졌고, 카메라 트릭도 사용하고, 무엇보다 혼자 등장하지 않는다. 스포일러를 피하기 위해 자세하게 설명하지 않으니 직접 보시길. Sept21st.com이라는 웹사이트가 만들어진 것도 이때다.

9/21/18

3년을 했으니 이제는 멈출 수 없게 되었다. 이듬해인 2019년은 거의 프로덕션에 근접한 느낌이 난다. 물론 여전히 아마추어적인 향기는 간직하고 있지만, 영상 제작인력이 들어갔음을 볼 수 있다.

9/21/19

하지만 제작비가 본격적으로 증가한 것은 2020년이다. 첫 영상처럼 자신의 작은 아파트에서 시작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프로덕션 규모는 비교가 안 되게 커졌다. 매년 이날을 기다리는 사람들의 기대도 커졌지만, 무엇보다 꾸준한 퀄리티 높이기는 거의 모든 성공적인 비즈니스가 가진 특성이기도 하다. 소비자, 사용자의 기대를 살짝 넘는 제품, 서비스를 선보여서 감동을 주고, 그 후에 더 높아진 기대를 또다시 살짝 넘는 선물을 안겨주는 거다.

9/21/20

특히 2020년은 팬데믹으로 많은 사람이 집과 인터넷에 갇혀 지냈기 때문에 사람들의 상상을 초월한 퀄리티는 큰 기쁨을 안겨줬고, 이때부터 언론의 주목을 본격적으로 받기 시작했다. 앞서 언급한 인터뷰도 이때 나왔다.

그리고 다시 9월 21일이 되었고, 올해 아디주이베의 영상은 마치 스트리밍 영화를 보는 듯한 느낌마저 든다. 이 영상은 다른 영상보다 길다. 음악이 끝난 후에 아디주이베의 메시지가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어스 윈드 앤드 파이어도 등장한다!)

9/21/21

아디주이베은 영상은 한국에서 10월 31일이면 연례행사처럼 듣게 되는 이용의 '잊혀진 계절'의 인기와 다르지 않은, 우연히 생겨난 인기에 가깝다. 하지만 그는 우연히 얻게 온라인 인기(라고 하기에는 아주 많은 노력이 들어갔지만)를 좋은 목적에 사용한다. 위의 영상 뒷부분에서 볼 수 있듯 매해 시청자들에게 기부를 요청, 펀드를 조성해서 필요한 곳에 기부하는 거다.

인터넷은 여전히 재미있고 흥미로운 곳이다. 온갖 특이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고, 상상도 못한 일이 매일 일어난다. 빅테크는 이런 인터넷을 쪼개고 부정직한 돈벌이를 하는 데 사용하고 있지만, 아직 희망을 버리지 못하는 건 아디주이베 같은 사람들 때문이다.

그는 9월 22일이 일 년 중 가장 행복한 날이라고 한다. 일 년 내내 다음 영상을 잘 만들어야 한다는 고민에 빠져 지내기 때문이다. 그래도 아마 살아있는 동안은 빠져나올 수 없을 것 같다. 대중적인 인기라는 게 그런 거니까. (Edit: 아디주이베는 이게 마지막 비디오라고 한다, which I don't or can't believ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