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미국 소셜미디어에서 크게 화제가 된 글을 소개합니다. 더컷(The Cut)이라는 온라인 매체에 등장한 이 글은 "여자가 나이 많은 남자와 결혼해야 하는 이유(The Case for Marrying an Older Man)"라는 도발적인 제목을 갖고 있습니다. 소셜미디어에서 화제가 되는 글이 그렇듯, 많은 사람이 좋아하고, 더 많은 사람들이 분노한 글이었죠.

이 글은 여성이 썼는데, 많은 여성들이 저자의 주장에 반대했지만, 또 많은 여성들이 이 글에서 이야기하는 내용에 동의했습니다. 어떤 글인지 흥미가 당기지 않나요? 여러분도 읽고 호불호가 분명하게 갈리실 거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동의하든, 동의하지 않든 한번 읽어볼 만한 글이라 생각해서 공유합니다.

본문의 의미를 최대한 살렸지만, 구성과 이해를 위해 필요한 부분은 약간 손을 봤습니다.


나는 여름이면 남편과 남프랑스에 머무르면서 로또를 산다. 지나치다 싶을 만큼 더운 날씨에, 지나치다 싶을 만큼 아름다운 풍경 속 먼지 나는 시골길을 지나 마을을 향해 걷는다. 우리는 당첨되면 그 돈을 뭘 할지 이야기하지만, 사실 나는 당첨에 관심이 없다. 유로 동전으로 로또를 긁어도 당첨 번호를 확인하지도 않는다. 나는 이미 로또에 당첨된 셈이라서 그렇다.

남편과의 결혼은—결혼 생활이 가진 장단점에도 불구하고—내게는 로또 당첨이었다.

내 남편은 나보다 10년 위다. 좋은 사람을 만나다 보니 우연히 그렇게 된 게 아니라, 내가 그런 나이 차를 일부러 선택한 거다. 살면서 내리게 되는 결정들이 많지만, 이런저런 것들을 모두 고려하면 나는 여자들이 자기보다 나이가 훨씬 많은 남자와 결혼하는 걸 추천한다.

(이미지 출처: French Wedding Style)

하버드 대학교 3학년이었던 스무 살 때, 나는 일련의 거대한 아이러니로 고민하고 있었다. 나는 내가 원하는 만큼 공부할 수 있을 것이고, 그걸 통해 나를 증명할 수 있을 것이었다. 하지만 당시 내가 가진 강력한 이점은 나의 모든 계획보다 압도적인 우위를 갖고 있었다. 그 이점은 나의 젊음이었다. 내 얼굴과 몸은 아직 싱싱했다. 젊음은 별 노력을 하지 않아도 나를 돋보이게 해주었고, 잔인할 정도로 빠르게 사라질 것이었다. 길거리에서 마주치게 되는 많고 평범한 다른 여성들도 나와 같은 젊음을 이점으로 갖고 있었다.

그러다가 하늘에서 떨어지는 낙엽처럼—눈앞에 떨어져서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게 만드는 낙엽처럼—문득 한 생각이 내게 찾아들었다. 나는 앞으로 몇 년 동안 밤을 새워 열심히 일해서 가장 완벽한 인생을 만들어 갈 수 있다. 하지만 그런 결혼을 통해 그런 완벽한 인생을 일찍 만들 수도 있는 거다.

그래서 나는 토요일마다 책을 가득 넣은 캐리어를 끌고 하버드 경영대학원 도서관에 가서 과제를 했다. 거대한 도서관의 한 방에는 지구 최고의 신랑감 50명이 앉아 있었다. 내 가슴은 아직 처지지 않았고, 난자를 많이 갖고 있었고, 아직 순수함을 주장할 수 있었고, 뒤로 묶은 머리는 풍성했고, 내 걸음걸이에는 아직 힘이 있었다.

진보주의자들에게는 미안한 말이지만, 나이 든 남자들은 여전히 그런 것들을 좋아한다.

(이미지 출처: Harvard Business School)

나는 왜 똑똑한 내 또래 여자들이 나와 같은 결정을 하지 않는지 이해하기 힘들었다. 내 계획은 거듭 생각해 봐도 상식적이었다. 젊음은 여성이 가진 초능력인데 왜 그걸 사용하지 않을까? 여성이 갖고 있지만 빠르게 사라져 버리는 이점은 이용하지 않고 불리한 짐만 지려고 하는 걸까? 아마도 그건 여성들이 권력을 갖게 되는 기간이 비참할 정도로 짧기 때문에 그 권력을 사용할 수 있을 때 사용해야 한다는 상식적인 결론을 받아들이기보다는 그에 관해 생각하는 것 자체를 회피하는 게 쉽기 때문 아닐까?

역사를 좋아하고, 빅토리아 시대의 소설을 좋아하는 나는 다르다. 나는 내가 읽은 책에서 여성들이 빠진 함정들이 뭔지 잘 안다. 흡혈귀 같은 남자 친구들은 물론이고, 직장에서 일하고(labor), 병원에서 산통(labor)을 겪어야 한다, 그것도 인생에서 같은 시기에. 그리고 마치 기울어가는 달처럼 나이를 먹어갈수록 사회에서 여성이 설 자리는 줄어든다. 나는 계산적인 사람이라고 불리는 게 싫었지만, 세상의 모든 여성들처럼 나는 머리에 계산기를 장착하고 있다. 답은 불공평을 가리키고 있고, 우리는 그 불공평한 상황에 대비해야 하는데 그걸 무시하는 건 어리석은 일이라는 게 내 생각이다.

나는 천성이 경쟁적이다. 영문학을 전공했기 때문에 내 미래 직업도 관련한 것들을 생각했다. 크게 성공하면 위대한 미국의 소설작가가 되는 거고, 아니면 이메일을 쓰는 직업을 갖게 될 거였다. 원래 보바리즘적인 성향이 좀 있기도 했고, 새로운 장소와 새로운 아이디어를 좋아해서 여기저기 돌아다니고, 새로운 일이 일어나는 현장에 있어야 하는 성격이다.

(이미지 출처: Harvard Business School)

나는 철없고 미성숙한 동급생 남자애들이 싫었다. 그런 애들이 좋아하는 여성의 유형이 있다. 마른 몸매에 여성성을 드러내지 않는, 감정적으로 분리되어 있지만 사회적으로는 연결된 여자들인데, 캠퍼스에서는 이런 타입이 환영받았다. 나와는 완전히 대척점에 있는 여자들이다.

토요일 밤이면 나는 집에 있지 않았다. 빨간 드레스를 입고 초대받지 않은 경영대학원 행사에 몰래 들어가곤 했다. 방법은 간단하다. HDMI 케이블을 들고 가면 모니터 연결 문제를 해결하러 가는 사람으로 생각해서 통과시켜 줬기 때문이다. 그렇게 들어간 나는 공짜로 술을 마시고 춤을 췄다.

그러다가 한 번은 행사 주최 측에서 내가 초대장 없이 들어온 걸 발견하고 나를 내쫓았다. 나는 우버를 불러 올라탔지만 차가 출발하려는 순간 바로 내렸다. 회전문으로 멋진 남자가 나오는 것을 봤기 때문이다. 갈색 눈동자에 끝이 올라간 입술, 깔끔한 재킷을 입은 남자였다. 나는 그에게 다가가 담배를 하나 달라고 하며 말을 걸었다. 그리고 며칠 후, 첫 데이트를 했다. 두 번째 데이트에서 그 남자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타입의 남자인 것 같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유머 감각이 있고, 똑똑하며, 세상을 잘 아는 남자.

내가 과거에 남자를 사랑하는 방식은 남자들이 여자를 사랑하는 방식에 가까웠다. 서툴렀다는 얘기다. 남자들은 자신의 부족함에서 비롯된 허기(hunger)에 끌려 여자를 사랑하고, 나도 그랬다. 하지만 이 남자와는 달랐다. 그와 사귀기 시작하던 무렵, 나는 그에게 우리 가족에 대해 좋은 말을 해줬고, 그의 냉장고에 그가 좋아하는 파스타를 채워줬고, 그의 옷을—내 옷도 그렇게 하지 않을 만큼—깔끔하게 개어줬다. 프랑스에서 태어난 그는 나를 프랑스에 초대했다. 나는 나를 맞아준 그의 어머니에게 나중에 감사 카드를 보냈다. 며느리가 될 사람처럼 처신한 거다. 농담이 아니라, 일은 정말 내 계획대로 진행되었다. 나는 하버드를 졸업하고, 옥스퍼드에서 펠로우십을 마쳤지만, 미국으로 돌아오지 않고 그의 직장이 있는 유럽에 남아 그와 결혼했다. 내가 23살 때의 일이다.

물론 나는 사랑에 빠졌다. 로맨스는 원래 준비되어 있었고, 나는 그 준비된 자리에 나 자신을 밀어 넣은 것뿐이다. 내가 한 것은 시대를 앞선 여성이 빠지게 되는 문제가 뭔지 확인하고, 원칙에 빠져 익사하는 대신, 그 파도를 타고 서핑을 한 것이다. 나는 공정, 불공정, 평등, 불평등에 대한 토론에 지쳤고, 그보다는 '쉽게 사는 법(a thing called ease)'을 택하기로 했다.


남편과 아내의 나이 차가 큰 결혼을 보는 사람들의 평가는 그 나이 차가 얼마나 눈에 띄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남편과 아내의 나이 차이, 사회적 지위의 차이가 크고 눈에 띌수록 사람들이 그 둘의 결혼의 '거래'로 인식할 가능성이 높다. 관계를 그렇게 거래적으로 접근하는 건 아주 미국적인 사고방식인 동시에, 미국인의 낭만적 사고에서 가장 금기시하는 것이기도 하다. 50세의 남자와 25세의 여자가 함께 길을 걷고 있는 모습을 보면 사람들은 부정적이고 불쾌한 기분이 든다.

저 두 사람은 어떤 조건으로 거래했을까? 어느 쪽이 더 이익이었을까? 나라면 저런 선택을 했을까? 남자가 나이가 더 많네. 소득은 나이가 들수록 오르기 때문에 우리는 남자가—적어도 여자보다는—돈이 더 많을 것으로 짐작한다. 돈이 더 많지는 않아도 최소한 남자가 경험과 사회적 끈이 더 많겠지. 여자의 피부가 아직 곱네. 아직 에너지가 넘치겠지. 섹스도 좋아할 때고. 남자에게서 버킨백을 선물로 받지 않을까? 남자는? 나이가 저렇게 많지만, 아내가 젊으니 아이를 선사할 수 있겠지.

그런 두 사람이 손을 잡고 걸어가는 모습을 보는 우리는 우리가 사랑에 빠졌을 때 했던 계산들—그런 계산을 했다는 사실을 완전히 인정하지는 않아도—을 생각해 보게 된다. 당신이 나처럼 세상에서 가장 로맨틱한 장소에서 결혼식을 하더라도 결국 결혼은 일종의 계약에 서명하는 행위다.

'아르놀피니 부부의 초상화(아르놀피니의 결혼)' 1434년 네덜란드의 화가 얀 판 에이크가 그린 그림. 돈 많은 상인과 십 대 여성의 결혼으로 알려져 있다. (이미지 출처: Wikipedia)

20살과 30살의 차이는 30살과 40살의 차이와 다르다. 내가 20대에 갖고 있던 신선함과 나의 어설픈 행동을 본 사람들은 나와 남자친구의 나이 차 10년을 건널 수 없는 강으로 생각했다. 우리가 사귀기 시작했을 때 사람들이 우리를 보면서 가졌던 분노가 아마 그 때문이었을 거다. 사람들은 우리를 보면서 아주, 아주 거북하게 생각했다. 한 번은 그의 친구들과 함께 차를 탔는데, 나와 함께 뒷좌석에 앉은 그 친구(남성)는 나만 들을 수 있는 낮은 목소리로 나를 야단쳤다. "너는 돈 많은 남자 친구를 원하지. 너는 파티를 쫓아다니며 몰래 들어왔잖아." 그는 내게 골드디거(gold digger, 돈 많은 남자를 찾는 여자)라는 단어만 사용하지 않았을 뿐, 결국 그 얘기를 하고 있었다.

우리의 나이 차를 가장 싫어한 사람은 내 남편의 동창인 나이 들고 결혼하지 않은 여성들이었다. 화장실 안에 내가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거울 앞에 서서 내 얘기를 했다. "도대체 걔의 어디가 좋다는 거지? 같이 할 얘기는 있을까?" 내 걱정을 해주고 있었지만, 그들의 걱정은 몽둥이처럼 나를 사정없이 때렸다. 의도하지 않았지만 그들은 나보코프(Nabokov)의 소설 '롤리타(Lolita)'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구절을 인용하고 있었다. "당신은 나의 불리한 점을 이용했어요(You took advantage of my disadvantage)"라는 얘기. 그들은 내 남편이 나의 약점을 이용하고 있는 건 아닌지도 의심했다. 하지만 그랬던 그들은 모든 관계가 결국은 거래라는 사실에는 생각이 미치지 못했다. 그들은 내가 한 거래가 부당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사람은 온갖 다양한 이유로 다른 사람과 사랑에 빠질 수 있다. 그들 사이에는 아주 작은 거래가 오고 간다. 많은 덧셈과 뺄셈 끝에 남은 게 상대를 사랑하는 마음이고, 헌신이고, 약속이다. 상대가 크루아상을 집는 방식, 내 말에 경청하는 태도, 기념일에 내게 해주는 것, 그리고 그에 대한 보답으로 내가 마음을 써서 하는 일들. 상대가 내게 주는 고요함. 당신의 행복, 그 행복을 북돋우는 것.

당신이 자기를 소중하게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파트너는 (사랑의 거래 관계에서) 당신이 그에게 빚을 지고 있다고 말하는 거다.


같은 나이의 남녀, 혹은 인생에서 같은 시기에 있는 남녀가 결혼한다고 할 때 내 머리에 드는 생각은 '여자가 받는 것에 비해서 하는 일이 많다'는 거다.  

나는 지금 27살이다. 내 나이 또래의 여성들은 대부분 "파트너"를 갖고 있다. 그리고 요즘은 여성들이 꽤 젊을 때 파트너가 된다. (결혼하지 않은) 파트너라는 건 결혼이라는 압제(oppression)에 대한 현대 세상이 주는 대안이다. 결혼에서 여성은 불리하다. 남자는 집안의 머리(head of a household)가 되지만, 여자는 잘해야 목에 불과하다. 그래서 파트너가 더 나은 대안인 것 같지만, 모든 게 대등하다면 여자는 많은 걸 희생하게 된다. 남자들은 받는 기술이 아주 발달해있다(Men are too skilled at taking).

내 친구는 남자 친구에게 치실을 사용하라고 가르쳐줘야 했다. 그 결과, 그 남자는 지금 깨끗한 입으로 여대생들과 만나 키스를 나눈다. 또 다른 내 친구와 결혼한 남자는 여행가방을 어떻게 싸는지 모른다고 한다. 내 친구는 "그를 위해 가방을 싸주는 게 좋아서" 대신 해준다고 한다. 셀 수 없이 많은 남자가 여성이 편안하게 느끼도록 신체접촉을 할 수 있는 이유는 그걸 가르쳐 준 전 여친이 있기 때문이다. 남자들이 바람을 피우지 않고, 선을 넘지 않고, 예의와 매너를 지키고, 침대에서 이불을 제대로 덮고, 그 이불 밑에서 여성을 존중할 줄 알고, 어머니에게 안부를 묻는 전화를 하고, 매치가 되는 컬러의 옷을 입고, 장례식장에 갈 때 꽃을 사 들고 갈 줄 알고, 화가 날 때 깊은 호흡으로 분노를 조절할 줄 알게 된 것은 그의 인생에서 어떤 여자가 그걸 가르쳐 줬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 여성들이 누구인지 알지만, 그 남자들은 그런 걸 자기에게 가르쳐 준 여성들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는다. 그 여성들은 그렇게 남자를 키우는 동안 일을 하고, 스스로를 키우고, 성인 세계의 가파른 절벽을 기어오른다. 그러면서 자기 남자가 괜찮은 사람이 되도록 끌어 올려준다.

나는 레딧(Reddit)에서 약 5,000 명의 남자들이 댓글에서 "여성의 손길(a woman's touch)"이 무엇인지 정의하는 포스트를 본 적이 있다. 그 남자들은 꽃무늬가 있는 높은 침대, 이불, 자기 가족(여자의 가족이 아니라, 남자의 가족)의 사진이 들어간 액자, 거실 선반에서 밤새 싹을 틔운 화분, 촛불, 컵 받침, 탁자 옆 테이블 같은 것을 "여성의 손길"이 만든 변화라고 말하고 있었다. 빨래 건조기 필터에 쌓인 보풀을 잊지 않고 청소하고, 잘한 일에 칭찬하는 것. 나는 여자들이 그 대가로 무엇을 받았는지 궁금하다.

내게 떠오르는 이미지는 신데렐라를 도와준 쥐들이다. 열심히 뛰어다니며 바쁘게 일하지만, 그들은 그저 주인공을 위해 존재한다. 간혹 두 사람이 함께 성장한 커플을 보게 된다. 그들은—내게는 낯선—우애를 통해 서로를 이해한다. 하지만 내 친구 중에는 그 단계에 들어간 사람이 없다. 그걸 목표로 했지만, 실패한 커플이 주위에 널렸다. 그걸 보면서 나는 '저건 너무 위험한 결정'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큰 나이 차이보다 더 위험한 결정이다.

(이미지 출처: Psych Central)

내 남동생은 이제 20대 초다. 얼굴도 잘생겼고, 성공적인 인생을 살고 있지만, 사는 모습은 엉망이다. 건조가 끝난 빨래를 건조기에 그대로 둔 채 필요한 셔츠를 하나씩 꺼내서 3분 정도 다려서 입는다. 사용한 수건은 바닥에 내팽겨쳐 놓아서 결국 누군가 줍게 만든다. 남동생의 동갑나기 여자 친구는 그런 버릇을—다른 많은 버릇과 함께—고치려고 애쓴다. 능력이 뛰어난 친구지만, 통계적으로 보면 이 둘은 깨질 가능성이 크다.

남동생은 최근 새로운 아파트로 이사했는데, 그 집에서 필요한 물건들의 리스트를 여자친구가 만들어 줬다. 나는 침대보, 옷걸이, 부엌용 콜랜더(체) 같은 것들이 가득 적힌 리스트를 보면서 웃음이 나왔다. 여자 친구는 남동생의 소파도 골라줬다. 남동생과 지금 여자 친구가 헤어지면 여자 친구는 자기가 고른 소파를 다시는 보지 못하게 될 거고, 남동생은 소파에 얽힌 사연을 잊을 거다. 내가 장담하는데, 그 여자 친구는 내 남동생의 빨래 버릇을 고쳐줄 거다. 그렇게 좋은 습관을 갖게 된 남동생을 보며 다음 여자 친구가 감탄할 거다.

나는 남동생의 여자 친구를 좋아하기 때문에 그 둘을 만나면—비록 싫은 소리를 들어도—여자 친구에게 이렇게 충고한다. "쟤한테 너무 많은 걸 해주지 마. 언젠간 헤어질 남자에게 너무 많은 걸 해줄 필요 없어. 아니, 남자에게 너무 많은 걸 해주지 마. 사랑스러운 내 동생이라도 예외가 아냐."  


'남자 키우기 ②'에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