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새로 나온 책, '친애하는 슐츠 씨'의 서문입니다. 이 책의 제목을 어떻게 정할지 오래 고민하면서 들고 있던 후보가 '아주 오래된 습관'이었죠. '친애하는 슐츠 씨'가 더 마음에 들어서 그렇게 정했지만, 이 제목에도 정이 들어서 서문의 제목으로 사용했습니다.


내 머리에 남아있는 어린 시절의 첫 기억 중 하나는 아버지가 방에서 TV를 보고 계신 장면이다. 아마도 권투 중계였던 것 같지만 정확하지는 않다. 분명히 기억하는 건 아버지가 담배를 피우고 계셨다는 것이다. 1970년대, 아니 1980년대에도 방에 두툼한 유리 재떨이가 있는 집이 흔했고, 사무실에서 담배를 피우는 게 한국뿐 아니라 전 세계 어디에서도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걸 내가 기억하는 이유는 아마도 어머니가 그 시절 얘기를 종종 하셨기 때문일 것이다. 옛날 기억은 그렇게 이야기 속에 등장하면서 생명이 연장된다. 그 과정에서 왜곡이 일어나기도 하지만.

어머니가 들려주신 아버지의 담배 이야기는 정확하게는 담배를 끊게 만든 이야기였다. 어머니는 아버지의 흡연 습관을 싫어하셨다. 모든 비흡연자들이 담배 냄새를 싫어하지만 어머니는 어린 세 아이가 담배 연기를 마시게 되는 게 못마땅하셨던 것 같다. 지금은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지만, 그 당시 담배는 커피와 다름없는 기호품이었기 때문에 아이가 옆에 있는 건 큰 문제가 아니었다. 아침마다 가정예배를 드리는 걸 평생 원칙으로 삼으셨던 어머니는 기도에 “아빠가 담배를 끊게 해주세요”라는 말을 빼놓지 않으셨고 아버지는 결국 담배를 끊으셨다. 내 기억 속에 아버지가 담배를 피우는 장면이 하나밖에 없는 걸 보면 아버지는 내가 아주 어릴 때 금연에 성공하셨고 이후 담배에 전혀 손을 대지 않으셨다. 꽤 오래 피우셨던 담배를 하루아침에 끊으셨기 때문에 우리 식구는 담배를 끊는 것이 그렇게 힘든 일인 줄은 몰랐다.

1970년대 조선호텔 노조원들이 사무실에서 파업 중에 담배를 피우는 모습 (이미지 출처: 오픈아카이브)

이후 나는 세상에서 흡연이 서서히 사라지는 모습을 보며 자랐다. 한국의 경우 1990년대에 들어서면서 사무실, 비행기를 비롯한 공공장소에서 흡연이 금지되었고, 금연 구역은 점점 확대되어 이제는 별도로 지정되지 않은 곳에서는 담배를 피울 수 없게 되었다. 문화마다 조금씩 다르긴 하지만 많은 나라들이 비슷한 조치를 취하고 있다. 물론 이런 변화를 불러온 건 흡연이 폐암을 비롯한 각종 질병을 유발한다는 경고였다. 지금은 상식이 된 지구의 기후변화와 마찬가지로 처음에는 의사와 과학자들의 문제 제기에서 시작되어 사회적 공감대가 확대되고, 사업에 위협을 느낀 기업들이 이를 부정하는 연구를 지원하거나 정치인들을 상대로 로비를 하며 버티다가 결국 굴복하고 인정하게 되는 과정을 겪었다. 그런 기나긴 줄다리기 과정에서 흡연의 폐해를 100퍼센트 확신한 건 실험 연구를 한 의사와 담배로 인해 병에 걸린 환자들 뿐이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막연하게 ‘나쁠 것 같다’는 두려움과 ‘그래도 나는 괜찮지 않을까?’ 하는 무모한 기대 사이를 오가며 흡연을 계속했다. 담배 회사들에게는 이런 사람들이 많을수록 좋았다.

1994년 4월 어느 날, 미국의 7대 담배 회사의 CEO들이 연방 의회 청문회에 출두했다. 이들은 진실만을 말하겠다고 선서한 후 담배는 폐암을 유발한다고 생각하지 않으며, 니코틴은 중독성이 없다고 증언했다. 나를 비롯해 당시 이 뉴스를 본 사람들은 혼란스러웠다. ‘의회에서 선서하고 저렇게 자신 있게 말할 정도라면 담배의 폐해는 과장된 게 아닐까?’ 나는 그 뉴스를 읽으면서 1970년대에 담배를 끊으신 아버지의 결정 과정이 궁금해졌다.

‘아버지는 흡연이 폐암을 유발한다는 사실을 얼마나 확신하셨을까?’

버크셔 작전

사실 담배가 몸에 해롭다는 건 훨씬 오래전부터 알려져 있었다. 1600년대 초에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를 지배한 제임스 1세는 담배 연기가 눈과 코를 아프게 할 뿐 아니라 “뇌와 폐에 해롭다”고 말한 기록이 있다. 파이프 담배를 피우는 것이 구강암 발병과 관련 있다는 주장도 1700년대에 이미 나왔고, 1800년대 말부터는 흡연이 다양한 암의 발병과 관련이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기 시작했다. 그렇다면 우리 아버지를 포함해 20세기에 담배를 피우기 시작한 사람들은 처음부터 흡연의 위험성을 알고 있었다고 말해도 될까?

답은 간단하지 않다. 의사들은 흡연의 위험을 경고했지만 그들의 메시지는 다른 주장들이 내는 소음에 묻혀 분명하게 전달되지 않았다. 흡연과 암 발생의 인과관계를 본격적으로 증명한 연구가 쏟아져 나오기 시작한 것은 1950년대다. 사람들은 흡연의 위험성에 대해 익히 들어왔음에도 영국과 미국의 의료진들이 대규모 연구를 통해 이를 밝힌 후에야 본격적으로 담배의 해악을 걱정하기 시작했다. 심지어 담배 회사가 내부적으로 진행한 연구에서도 담배가 암을 유발한다는 사실이 지적되기도 했다.

말보로 담배의 광고 '말보로맨' (이미지 출처: JTTB, NBC News)

그런데 1950년대는 미국 드라마 <매드맨(Mad Men)>으로 유명한 뉴욕의 광고 산업이 전성기에 접어들기 시작한 시점이고 대형 담배 회사들은 미국 광고 업계의 큰손이었다. 지금은 금지되었지만 50년 넘게 미국 담배 광고의 상징이었던 ‘말보로맨(Marlboro Man)’이 처음 등장한 게 1954년이었다. 즉 담배의 위험성이 의학적으로 증명되던 시점에 담배 회사들의 광고가 본격적으로 쏟아져 나온 것이다. 심지어 R. J. 레이놀즈 담배 회사는 실제 의사들을 모델로 내세워서 “의사들이 가장 선호하는 담배는 카멜”이라는 광고까지 내보냈다. 흡연과 발암에 관한 연구 결과를 보며 ‘내가 피우는 담배가 몸에 해롭지 않을까?’ 하고 걱정하던 흡연자들은 의사가 카멜 담배를 선호한다는 광고를 보며 안심할 수 있었다. 담배 회사들의 목표는 담배가 암을 비롯한 많은 질병을 유발한다는 연구들을 모조리 부정해서 무해함을 증명하는 게 아니었다. 그저 이런 광고와 홍보를 통해 적당한 수준의 소음만 만들어 내는 것으로 충분했다.

의사들이 카멜 담배를 추천하는 광고 (이미지 출처: Reddit)

이는 전기차처럼 대중에게 익숙하지 않은 제품을 팔아야 하는 기업들과는 완전히 다른 작업이다. 테슬라를 비롯한 전기차 업체들은 초기에 구매자들의 우려를 불식시키기 위해 전기차가 얼마나 안전한가를 '증명'하는 데 큰 노력을 기울였다. 하지만 담배 회사의 고객은 이미 습관—정확하게는 니코틴 중독—이 형성된 사람들이었다. 소비자들이 새로운 행동을 하도록 유도해야 했던 테슬라와 달리 담배 회사들은 흡연자들이 습관을 끊지 않도록 적당히 다독여주기만 하면 되었던 것이다. 새로운 습관(귀가 후 전기차 충전)을 만들어내는 데 들어가는 노력과 기존 습관(스트레스받을 때 흡연)을 이어가도록 돕는 데 들어가는 노력의 차이는 물리학의 관성을 생각해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담배 회사들이 소음을 일으켜서 의학계의 경고를 묻어버리는 작업을 가장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사례가 ‘버크셔 작전(Operation Berkshire)’이다. 1977년 대형 담배 회사의 CEO들이 영국 모처에서 비밀회동을 갖고 대중이 흡연과 질병에 관한 정확한 정보를 듣지 못하도록 반대되는 연구를 지원해서 ‘논란’을 만들어내자고 결의한 것이다. 이런 집요한 노력의 결과, 흡연자들은 담배의 해악에 대해서는 ‘의학계에서도 완전히 동의하지 않은’ 문제라고 인식하게 되었고, 그 덕분에 불안을 달래가며 흡연 습관을 이어갈 수 있었다. 1994년 청문회에서 담배 회사의 CEO들이 그 사실을 부인한 것은 담배회사들이 수십 년간 이어온 소음 만들기의 일환이었다.

하지만 그들이 의회 청문회에서 증언을 하는 동안 담배회사들이 이미 오래전부터 니코틴의 중독성은 물론 담배에 발암 물질이 들어있다(담배라는 식물에 들어있는 발암물질 외에도 기업들은 빠른 중독을 돕기 위해 다른 발암물질을 추가로 주입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음을 밝히려는 사람들이 있었다. 담배 회사의 연구개발팀에서 일하던 화학자 제프리 와이갠드(Jeffrey Wigand), 담배 회사의 법적 문제를 도와주던 로펌 직원 메럴 윌리엄스(Merrell Williams Jr.) 같은 사람들이다. 이들은 회사에서 고액의 연봉을 받으며 일하다가 담배 회사들이 거짓말을 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문서를 접하게 되었고 양심의 가책 탓에 이를 폭로하기로 결심했다. 담배 회사를 상대로 한 소송은 이전에도 많았지만, 기업의 고의성을 입증하지 못해 번번이 패소했다. 하지만 와이갠드와 윌리엄스의 용기있는 증언과 그들이 제시한 물증으로 무장한 46개 주의 법무장관들은 1996년에 대형 담배 회사들을 상대로 새로운 소송을 시작했고 결국 승리하게 된다.

"너무나 많은 것을 알았던 남자"라는 제목으로 제프리 와이갠드의 증언을 소개한 기사 (출처: Vanity Fair)

개인적인 수준에서 흡연은 습관이다. 사람들은 자발적으로 혹은 또래의 압력 때문에 흡연을 시작한다.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결정이기 때문에 원한다면 습관을 버리고 흡연을 중단할 수 있다는 게 담배회사들의 주장이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같은 습관을 갖기 시작하면 이는 사회적 관습으로 발전하고 이렇게 관습이 되면 여기에 다양한 이권이 개입하게 된다. 그 이권은 기업의 수익일 수도 있고, 개인과 조직, 그리고 국가의 정치적 이익일 수도 있다. 이 관습으로 이득을 보는 사람들이 많아지면 그들은 이를 철저하게 감싸고 보호하게 되고, 이런 일을 하는 사람들이 양심의 가책을 느끼는 것을 최소화하는 시스템이 만들어진다.

하지만 그런 시스템은 양심을 달래주는 역할에 그치지 않고 나쁜 일을 적극적으로 옹호하는 논리를 만들어낸다. 가령 나치의 지배를 받던 독일인 중에는 히틀러의 독재를 마지못해 인정하고 따른 사람들도 있었지만, 나치의 주장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 믿는 사람들도 많았다. 같은 언어를 사용하고 같은 마을에서 살던 사람들을 발가벗겨 가스실에 밀어 넣는 것은 단순히 개인적인 결정으로 가능한 일이 아니다. 사회적 합의와 공동체의 참여가 필수적이다. 나치는 고작 10여 년간 독일을 지배했지만, 독일을 비롯한 인류 사회에 오래도록 존재하던 차별과 배제의 습관을 활용했기 때문에 단기간에 독일 국민을 동원할 수 있었다.

이렇게 거대한 조직이나 사회에 스며든 습관은 문화라는 이름으로 자기복제를 한다. 내가 중국어를 배울 때 사용하던 교과서는 중국에서 제작한 것이었는데, 처음 만난 사람과 인사를 나눌 때 담배를 권하는 것을 자연스러운 대화로 가르쳤다. 논산훈련소에서는 두세 시간의 훈련이나 작업을 마친 후에 흡연을 위한 휴식 시간을 제공한 것은 물론, 훈련생에게 담배를 무료로 지급하기도 했다. 이렇게 우리를 둘러싼 환경이 흡연을 권한다면 담배를 끊는 것이 과연 ‘개인의 선택, 개인의 자유’라고 할 수 있을까?


이 책은 '오터레터'를 통해 소개한 글 중에 인류의 오래된 습관들을 이야기한 내용만을 골라 모은 것이다. 1부에서는 인류 사회에 만연한 차별과 배제 중 얼마나 많은 것들이 무지에서 비롯되는지를 이야기한다. 여성이 입는 바지에 왜 주머니가 없는지, 혹은 남성복에 비해 형편없이 작은 주머니가 붙는지(그리고 사람들은 왜 그게 여성 소비자의 선택이라고 생각하는지)처럼 사소해 보이는 문제부터 특정 젠더나 인종의 권리를 인정하지 않으려는 치밀하고 지독한 공격까지 다양한 사례를 통해 차별과 배제가 얼마나 철저하고 자연스럽게 이뤄졌는지 살펴본다.

2부에서는 차별이 일상인 세상에 태어났지만 그런 관습에 순응하기를 거부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룬다. 그중에는 마틴 루서 킹이나 주디 휴먼처럼 사회의 인식과 제도를 바꾼 사람이 있는가 하면 자기에게 맡겨진 일을 수행하면서 정치적 압력을 견뎌낸 데이비드 케이 같은 사람도 있다. 인류의 오래된 습관을 깨고, 크고 작은 변화를 가져온 이들의 이야기를 통해 변화를 바라고 변화를 위해 노력하는 이들이 힘을 얻을 수 있다면 더 바랄 게 없겠다.

사족: 1970년대 중반에 담배를 끊으신 아버지는 40년이 지난 후에 폐암 조기진단을 받으셨다. 금연 후 20년이 지나면 발병 가능성이 없어지기 때문에 흡연 전력과는 무관하다고 했고 수술 후 완치 판정을 받으셨다. 🦦


'친애하는 슐츠 씨'의 발간을 축하해주신 독자님들께 감사드립니다. 출판사 어크로스의 후원으로 열 명의 독자님들께 책을 선물합니다. 원하시는 분들은 댓글에 남겨주시면 토요일 오전에 추첨해서 발표하겠습니다. 이메일을 꼭 확인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