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개전 사유'와 협상의 쟁점

사소한 부분이지만, 이해영 교수는 글에서 '침공'이라는 말보다는 '개전'이라는 표현을 선호한다. 물론 전쟁의 시작이라는 시간적인 의미에서 '개전(開戰)'을 사용하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러시아의 침공을 전 세계인이 실시간으로 봤음에도 침공이라는 단어가 들어가야 할 자리에 '개전 사유'(=침공한 이유) 같은 중립적인 표현을 사용하는 것이 눈길을 끄는 이유는 그가 우크라이나어인 '키이우' 대신 '키에프'를, '하르키우' 대신 '하르코프'를 굳이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한 달 동안 한국의 미디어를 전혀 접하지 않았다면 모를까, 국립국어원까지 "키이우가 적합하다"라고 권하고 모든 매체가 키이우, 하르키우로 통일한 상황에서 굳이 러시아어 표기를 고집하는 건 왜일까?

실수에 불과할 수 있는 외래어 표기와 단어 사용을 굳이 지적하는 건 이해영 교수의 두 번째 주제인 전쟁의 이유와 평화협상의 쟁점에 대한 논의가 전적으로 러시아의 시각에서 전개되기 때문이다. 그는 양측의 협상을 중재하는 터키의 레제프 타이프 에르도안 대통령의 언급했다는 쟁점 6개(우크라이나 중립화, 우크라이나 비무장과 안전보장, 탈나치화, 우크라이나 내 러시아어 사용 보장, 돈바스 2개 공화국 지위, 크림반도 지위)를 소개하면서 그중 다섯 개 반이 러시아가 "개전 사유"로 나열한 것이며, "역사상 그 언제 그 어디서도 패전한 나라가 의제를 결정하진 않는다"라는 말로 다시 한 번 러시아의 승리를 강조한다.

이해영 교수의 글을 읽으면서 러시아가 승리하고 있다는 주장이 그에게 왜 이토록 중요한 것인지 궁금했다. 하지만 만약 이 글이 러시아 측의 주장을 한글로 옮긴 것이라고 가정하면? 모든 궁금증이 풀린다. 물론 나는 이 글이 이해영 교수 본인이 쓴 글임을 전혀 의심하지 않지만, 이 글 전체를 하나로 묶어주는 요소를 하나만 찾으라면 '현재 러시아가 내놓고 있는 주장들'이다.

가령 그가 '우크라이나 내 러시아어 사용 보장'이라는 사안을 이야기하면서 "마이단 혁명 이후 반 러시아 정권이 제정한 러시아어 사용금지법을 철폐하면 된다"라고 살짝 바꾸는 게 그렇다.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어의 사용을 금하지 않았고, 그렇게 할 수도 없다. 공공기관에서 사용하는 언어를 러시아에서 우크라이나어로 바꾼다는 법일 뿐이고, 우크라이나는 기본적으로 바이링구얼(bilingual) 사회다. (심지어 러시아군과 전투를 벌이는 우크라이나 병사들도 러시아어로 소통하는 모습이 흔하게 등장한다.) 공공기관용 언어를 러시아어에서 우크라이나어로 바꾸는 것을 '러시아어 사용금지법'이라고 부르는 것은 러시아의 프레이밍 전략인데, 이해영 교수는 러시아 측의 주장을 거의 그대로 가져오는 듯하다.

나는 이해영 교수의 칼럼에서 푸틴의 주장과 배치되는 주장을 찾지 못했다.

미어샤이머

이번 전쟁에서 우크라이나와 젤렌스키 대통령을 나무랐던 많은 사람들이 그랬던 것처럼 이해영 교수도 시카고 대학교의 존 미어샤이머 교수의 주장을 가져온다. (참고로, 미어샤이머는 2014년 유로마이단 혁명을 공공연하게 "쿠데타"라 부르는 사람이다. 국민의 시위로 부패한 대통령이 탄핵되고 정권이 바뀐 것이 쿠데타라면 2017년 한국의 정권 교체도 쿠데타인 셈이다.) 미어샤이머는 우크라이나가 EU, NATO에 가입을 시도하면 러시아의 성질을 건드릴 것이고, 이는 유럽을 불안에 빠뜨리는 일이기 때문에 미국은 이를 허락하거나 지지해서는 안된다고 주장한다.

그런 미어샤이머의 주장을 이어받아 이해영 교수도 "우크라이나가 동유럽의 스위스처럼만 될 수 있다면, 나토와 러시아 사이에 거대한 완충지대가 생기는 동시에 또 우크라이나 국민들에게도 매우 좋은 일"이라고 말한다. 나는 이런 주장이 얼마나 제국주의적인 발상인지에 대해서 다른 글에서 이야기했지만, 이해영 교수는 우크라이나가 제시한 요구 조건을 철저히 러시아의 시각에서 딱하다는 듯 한탄한다. 젤렌스키가 합의사항을 국민투표에 붙이겠다고 한 말(민주주의 국가에서 대통령이 따라야 하는 당연한 절차)을 두고 그는 이렇게 말한다:

"이것이 또 다른 눈물의 씨앗이 될지도 모르겠다. 러시아도 젤렌스키의 국민투표 안에 대해 도대체 무엇에 대해 국민투표를 어떻게 하자는 것인가에 대해 회의적이다. 특히 전국민투표를 실시할 경우 러시아계 주민이 전인구의 20% 미만인데 무슨 수로 예컨대 돈바스 독립이 통과되겠는가."

국민이 투표로 의견을 밝혔는데 눈물의 씨앗이 된다면 그건 러시아가 미사일을 쏘기 때문이지, 국민투표의 잘못이 아니다. 푸틴이 싫어하면 옆 나라 사람들은 민주주의를 보류해야 한다는 주장일까? 그 주장은 푸틴이 해온 주장이긴 하다. 다시 말하지만 이해영 교수의 글은 러시아어를 번역한 것으로 받아들이면 전혀 어려운 글이 아니다.

3. 침공의 본질

글의 중반 이후부터 이해영 교수는 우크라이나 전쟁의 성격과 원인을 이야기한다. 물론 여기에서 러시아는 전면전이 아니라 "지역분쟁 개입"을 한 것이며, 그래서 "특별 군사작전"이라 부른 것이라는 푸틴의 주장을 다시 한번 친절하게 일깨워준다. "전략자산의 본격 투사도 일어나지 않았다"는 그의 주장도 앞서 이야기한 "러시아는 최정예 병력을 투입하지 않았다"는 내러티브에 해당한다.

그리고 그 유명한 "단 1인치도(not one inch)" 이야기가 나온다. 1990년 독일의 재통일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당시 미국의 제임스 베이커 국무장관이 소련의 고르바초프 서기장에게 "독일이 재통일하게 되면 나토는 동쪽으로 단 1인치로 움직이지 않을 것"이라고 '약속'했는데, 서방 세계가 이를 어기고 나토가 계속 동쪽으로 확장하면서 러시아와의 약속을 깨버렸고, 이에 분노한 푸틴은 러시아를 방어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우크라이나를 침공하게 되었다는 논리다.

이는 미어샤이머와 같은 현실주의 정치를 주장하는 사람들이 즐겨 사용하는 주장인데, 이번 전쟁에서는 "푸틴에게는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는 말로 자주 등장한다. 따라서 러시아 측의 입장에서 바라보는 이해영 교수에게는 당연한 진리일 수 있다. 그는 1997년에 조지 케넌이 나토확장을 경계한 칼럼을 쓴 것을 두고 "우크라이나 전쟁은 이미 예측된 것"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여기에는 세 가지 문제가 있다. 첫째, 미국은 고르바초프에게 그런 약속을 한 적이 없다. 그런 말이 대화 중에 등장한 적은 있지만 "우리가 만약에 그런 약속을 한다면"이라는 가정 형태로 등장했고, 대화 중에 나온 말 이상이 아니었다. 만약 그 문제가 소련이 독일 재통일에 그토록 중요한 요소였으면 그 결과로 만들어진 (서명한) 문서에 들어갔어야 하지만 그런 문서는 존재하지 않는다.

'나토 동진 금지'가 협상의 의제가 아니었다는 말은 다름 아닌 고르바초프에게서 나왔다. 그는 2014년 인터뷰에서 "모든 책임을 지고 말할 수 있다"면서 "나토의 확장은 전혀 이야기되지 않았다"라고 말했다.

고르바초프의 2014년 인터뷰 

고르바초프도 그 이후 나토가 확장된 것은 당시 회담의 "정신(spirit)에 어긋난 것"이라는 말을 하기는 했지만, 단지 대화에 등장했던 "단 1인치도"를 가장 즐겨 사용한 것은 현실정치(realpolitik)를 강조하는 미국의 전통적인 학자나 전직 외교관들이다. 나토의 확대는 그들이 평생 믿고 있던 힘의 균형에 어긋나기 때문이다.

이 주장의 두 번째 문제는 침공을 결정한 푸틴의 책임을 묻지 않는다는 것이다. 엠마 애쉬포드 같은 젊은 학자들은 미어샤이머 같은 학자의 주장을 두고 그들이 말하는 구조적인 요소들은 이 문제를 보는 좋은 틀을 제공하기는 하지만, 궁극적으로 다른 나라를 침공하기로 한 것은 푸틴의 결정이었다는 사실을 간과한다고 주장한다. 푸틴 외에는 아무도 이번 전쟁을 주문하지 않았다. 우크라이나를 침공하라는 국민적인 요구라는 건 존재하지 않았다. (존재했다면 푸틴이 들고 나왔을 것이다.)

미국 책임론

마지막으로 나토 확장의 과정을 누가 주도했느냐는 문제가 있다. 심지어 미어샤이머 조차도 "미국과 나토가 허락했다"라고 말하지, 부추겼다거나 강요했다는 말을 하지 않는다. EU와 나토는 서유럽의 민주주의와 풍요로움을 부러워하는 국가들이 원해서 참여한 것일 뿐이다. 그들은 주권국가이고, 주권국가의 국민들이 원해서 참여하는 것을 미국이 인위적으로 저지한다면 그것이 (지역의 평화를 원하는) 제국주의적인 욕심이지, 그들의 참여를 막지 않은 것이 제국주의적인 욕심이라고 할 수 없다.

무엇보다 바이든 정부는 집권과 함께 아시아로 관심을 옮기겠다는 'Pivot to Asia' 정책을 추진했다. 그는 유럽의 문제는 EU(와 나토)에게 맡기고 미국은 경쟁자로 떠오른 중국을 상대하기 위해 유럽에서 서서히 손을 떼는 중이었다. 대표적인 사건이 호주에게 원자력 잠수함 기술을 제공하기로 한 결정이다. 이미 호주와 재래식 잠수함 판매 계약을 맺은 프랑스에게 외교적인 모욕감을 주었던 이 사건은 "미국은 이제 유럽보다 아시아 태평양이 중요하다"는 시그널을 가장 확실하게 주었다. 이 사건이 러시아로 하여금 오판을 하게 했을 수는 있어도, 우크라이나의 EU나 나토 가입은 미국의 국익과는 무관한 일이었다.

하지만 이해영 교수는 2014년의 유로마이단 혁명을 "러시아 입장에서 미 CIA가 사주한 친미 쿠데타로 규정되는 2014년 이른바 유로마이단 운동"이라며 다시 한번 친절하게 러시아의 입장을 전달해주는데, 그 근거는 당시 나토 주재 대사를 지낸 빅토리아 눌런드(Victoria Nuland)가 현 바이든 행정부 국무부차관이며, 눌런드는 "유서깊은 네오콘 집안의 며느리"이고 "남편이 힐러리 클린턴을 지지했기" 때문이라는 거다. 이해영 교수에게 여성은 아무리 높은 위치에 올라도 스스로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단지 집안의 결정을 따르는 아내와 며느리로만 존재하는 듯하다.

그는 또한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의 네오나치 세력을 없애기 위해 우크라이나에 침공했다는 푸틴의 주장을 가져와 반복한다. (다시 말하지만, 정말 모든 내용이 크렘린의 발표를 따르고 있다.) 우크라이나에는 대부분의 서방 국가와 마찬가지로 네오 나치가 있는 것이 사실이고, 이들이 무장을 하고 친러 반군과 싸우고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푸틴이 네오 나치 핑계를 대는 것은 네오 나치가 친러 반군의 적이기 때문이지 그들이 도덕적으로 나쁜 사람들이어서가 아니다. 도덕적인 문제는 침략국에 있다.

게다가 푸틴은 우크라이나 정부 내에 있는 네오나치를 없애겠다고 했다. 네오나치의 자유당(Svoboda)은 2019년 의회선거에서 2.15%를 득표해서 의석은 배정받지 못했다. 이런 나라의 정부를 네오나치 정부라고 하는 건 차기 한국 정부를 심상정(지난 대선 득표율 2.3%)의 정부라고 부르는 것과 별로 다르게 들리지 않는다.

4. 대응과 전망

마지막 부분인 대응과 전망은 팩트가 아닌 이해영 교수의 예상과 견해이기 때문에 굳이 반박할 필요를 느끼지 못한다. 그는 이번 전쟁에 대한 한국의 대응이 "어설프고 아마추어스럽다"라고 하지만 그로 인한 "국민의 피해"라고 드는 것이 "국적 항공기의 러시아 영공 통과가 금지된 것"이라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동의를 얻을지는 모르겠다.

이해영 교수의 주장에 어느 정도 동의할 수 있는 부분이 전혀 없지는 않다. 바로 많은 국가들이 연합한 대러시아 경제제재가 우크라이나의 분쟁을 끝낼 것 같지 않다는 사실이다. 이 부분은 많은 학자와 전문가들도 동의한다. 그러나 그 결과가 어떤 사람의 주장처럼 "이번 전쟁의 승자는 러시아와 중국"이라는 다소 황당한 결론으로 이어질 것 같지는 않다.


이제까지 이해영 교수의 주장에 대한 반박을 길게 썼지만 (원문이 길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 그의 글이 가진 문제점을 하나로 요약하기는 어렵지 않다. 그리고 그 힌트는 글의 첫머리에 있는 빨간 약과 파란 약의 비유에 있다.

이해영 교수는 미국을 위시한 "서구 세계"에 비판적인 태도를 갖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건 아주 정당한 관점이다. 미국은 그 태동기부터 심각한 문제를 갖고 있던 나라다. 미국은 스스로를 청교도와 계몽주의자들이 건설한 나라라고 자랑하지만, 사실 현재의 미국이 가진 문제는 이 나라가 노예들을 데려오면서 시작한 나라였다는 사실에서 시작한다. 미국이 표방하는 가치와 그를 경제적으로 뒷받침하는 차별과 착취의 구조 사이의 이런 갈등은 미국을 한 순간도 떠난 적이 없다. 다른 나라들이 미국을 비판할 때 지적하는 많은 것들이 바로 이 갈등에서 나온다.

하지만 복잡하고 허구적인 세상에서 진실을 알려주는 '빨간약'은 존재하지 않는다. 영화의 스토리보드에서는 재미있고 편리한 장치이지만, 어느 한쪽이 제공하는 단일한 세계관이 허구적인 현실을 무너뜨리고 진실을 보여주지 못한다. 영화 속 네오는 모피어스가 건네 준 빨간약이 진실이라고 믿고 삼켰고, 다행히 모피어스가 거짓말을 한 게 아니었지만, 그런 알약이 존재한다고 말해주는 사람이 있다면 일단 의심을 해보는 게 맞다.

푸틴의 세계관은 미국과 서방 세계가 가르쳐온 것과는 전혀 다른 세계관을 제시한다. 그리고 이해영 교수는 그게 진실을 보여주는 빨간 약이라고 믿는 듯하다. 문제는 그가 서방 세계의 시각과 푸틴의 시각 중에서 하나만 답이라고 믿는 데 있다. 하지만 미국을 비롯한 서구 국가들이 종종 거짓말을 했다고 해서 그들과 다른 얘기를 하는 푸틴의 말이 모두 사실이라고 믿는다면 그건 이분법적 자가당착이다. 진실은 그들의 주장에서 옳고 그른 것을 하나하나 확인해가면서 프로파간다를 제거하는 과정에서 얻어지는 것이지 눈감고 딱 하나를 선택한다고 얻어지지 않는다.

물론 이해영 교수는 다른 사람들이 서구의 주류 매체가 주는 파란 약을 삼켰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는 "서방의 수많은 언론인이 전쟁 현장에서 소식을 전하는 동안 나는 단 한명의 한국 언론인도 현장에 있는 것을 본 적이 없다. 그저 주로 미영이 흘려주는 뉴스를 베꼈을 뿐이다"라고 말한다. 그리고 미국과 영국의 매체가 제공하는 뉴스를 "가스라이팅"으로 치부한다. 이는 서구 매체를 단일체(monolith)로 보는 데서 오는 편견일 뿐,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렇지 않다. 뉴욕타임즈의 칼럼을 훨씬 작은 매체인 복스가 반박해서 이기는 것에서 보듯이 다양한 이론과 해석이 등장해서 경쟁하고, 더 설득력이 있는 쪽에 무게가 실리고 '주류 의견'으로 등장하는 것이지, "유서 깊은 네오콘 집안"이 영향력을 행사한 결과 "뒷배"가 생기고, 그렇게 나온 견해를 모든 매체들이 받아 적는 게 아니다.

그렇게 언론에 비판적인 견해를 갖고 계신 글쓴이가 러시아 국방부의 발표를 더 신뢰하는 모습은 우리가 정말 '포스트 트루스' 세상에 살고 있음을 증명해주는 것 같아 씁쓸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