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제가 최근에 The Moth에서 듣고 너무 좋아서 꼭 공유해야겠다고 마음먹은 이야기를 번역해서 옮긴 겁니다. 가능한 한 원래 표현에 충실했고, 꼭 필요한 부분만 의역을 했어요. 청중의 반응, 혹은 내용을 영어로 직접 듣고 싶으신 분은 아래 삽입된 유튜브로 보셔도 좋습니다.


저는 1980년대에 이스라엘에서 자랐습니다. 제 아버지는 인생의 목표가 자신의 하나뿐인 아들이 진짜 사나이(real man)로 자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제 아버지는 제가 4살이 되자 매주 토요일에 제게 사격훈련을 시키셨어요. 이게 좀 웃긴 일인데요, 사용했던 권총이 제 팔 길이만 했습니다.  

그 후 2, 3년이 지나 제가 6, 7살 정도 되었을 때부터 아버지는 제게 운전하는 법을 가르치셨죠. 당시 이스라엘의 렌터카 업체들의 규정이 놀랄 만큼 느슨했는데, 그걸 제 아버지가 활용한 거죠. 운전석에 앉은 아버지는 저를 무릎 위에 앉혔지만 저는 운전대를 제대로 잡지 못할 만큼 작아서 정말 무서웠습니다. 그리고 2, 3주에 한 번은 특별한 순서도 있었어요. 아버지는 렌터카를 길가에 세우고 제게 자동차 타이어를 바꾸게 했습니다. 타이어를 바꿔야 할 일이 없어도 그렇게 한 이유는, 아버지의 생각에 자동차 타이어를 직접 바꿀 수 있는 것이야 말로 남성성의 완성이었으니까요.

저는 타이어 바꾸는 게 정말 싫었습니다. 아버지와 보내는 토요일 오후도 정말 싫었지만 아버지는 별 신경을 쓰지 않았어요. 왜냐하면 아버지는 저를 마초 남자들의 세계에 끌어들이고 있었으니까요. 그래서 가끔씩 저를 영화관에 데려가서 영웅들, 그러니까 실베스터 스탤론이나 척 노리스, 버트 레이놀즈 같은 남자들이 나오는 영화를 보여주셨죠. 제가 그 배우들을 싫어한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제 우상도 아니었습니다.

리엘 리보비츠가 The Moth에서 이 이야기를 들려주는 영상

당시 저의 진정한 우상은 실존하는 인물이었습니다. 바로 '모터사이클 밴디트'(Motorcycle Bandit, 여기에서 밴디트는 강도, 도둑의 의미이지만, '해적'이나 '의적단'이라는 단어가 주는 것 같은 약간의 낭만적 느낌이 있다–옮긴이)였죠. 모터사이클 밴디트가 처음 등장한 건 제가 12살이 막 되었을 때였습니다. 이스라엘 전국을 돌아다니며 은행을 줄줄이 터는 은행강도였죠. 모터사이클 밴디트는 은행을 터는데 40초를 넘기지 않았을 뿐 아니라, 아무런 단서도 남기지 않았습니다. 진짜 이름이 뭔지, 정체가 도대체 뭔지 알 수 없어 사람들이 환장했죠.

그런데 이 은행강도가 대중적인 인기를 끌면서 코미디쇼의 소재가 되기도 했습니다. 말하자면 SNL 같은 이스라엘의 코미디 쇼였는데 한 에피소드에서 모터사이클 밴디트가 예루살렘에 있는 은행만 털지 않는 건 예루살렘에 관심이 없기 때문이라는 농담을 한 적이 있어요. 그런데 바로 다음날 모터사이클 밴디트가 마치 자신이 좋아하는 코미디쇼에 헌사라도 하듯 예루살렘의 은행을 털었으니 어땠겠어요. 사람들은 난리가 났습니다. 심지어 은행의 여자 직원들은 자기 이름과 전화번호를 쪽지에 적어두고 있었다고 해요. 혹시라도 자기가 일하는 지점을 털러 들어오면 섹시한 모터사이클 밴디트에게 건네주고 전화를 하라고 하려고 말이죠.

그래도 모터사이클 밴디트를 가장 좋아한 건 십 대 소년들이었습니다. 우리들에게 모터사이클 밴디트는 완벽한 영웅이었죠. 유대문화에서 할로윈과 비슷한 부림절(Purim)이면 우리는 가죽점퍼에 모터사이클 헬멧을 쓰고, 크고 번쩍이는 총을 든 모터사이클 밴디트로 분장했습니다.

그리고 약 1년 반 정도가 지나 제가 13살 반이 되었을 무렵의 일입니다. 당시 8학년이었던 제가 어느 날 학교에서 돌아왔는데 집에 아무도 없길래 간식거리를 만들러 부엌으로 걸어가는데 밖에서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어요. 조용하게 똑똑똑 두드리는 게 아니라 쾅쾅쾅, 하는 요란한 소리였습니다. 그래서 현관문을 열었더니 세 명의 경찰관이 문 앞에 서 있었습니다. 그런데 아무도 저를 보지 않았고, 아무도 입을 열지 않더라고요. 그렇게 30초 정도 지난 후에야, 그중 하나가 고개를 들고 제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모터사이클 밴디트의 이야기는 꽤 많이 알려져 있다.

"얘야, 얼마 전에 우리 경찰이 너희 아버지를 체포했다. 모터사이클 헬멧과 가죽점퍼를 입고 크고 번쩍이는 총을 소지하고 있었다."

그 말을 듣고 제게 처음 들었던 생각은 "말도 안 돼! 똥배 나오고 앞머리가 벗어지고, 웃기지도 않는 아재 농담을 하는 우리 아빠가 정말로 모터사이클 밴디트라고 생각한다고?"였습니다. 하지만 몇 시간이 지나고, 며칠, 몇 주가 지나면서 아버지가 정말로 모터사이클 밴디트였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나의 아버지 이야기

그 후 오래지 않아 이 일이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알게 되었습니다. 그로부터 약 2년 전, 이스라엘에서 손꼽히는 부자였던 할아버지가 당시 35세였던 제 아버지를 불러서 중요한 얘기를 하자고 했답니다. 'Dallas'나 'Dynasty,' 'Knott's Landing' 같은 드라마를 보신 적이 있으면 알 겁니다. 어느 부자가 철없는 바람둥이 아들을 불러 앉히고는 "얘야, 너도 이제 철 좀 들고 남자 구실을 해야 하지 않겠니. 네 인생에 책임을 지고 일자리도 구하고 해라"하고 쓴소리 하는 거 말이죠.

제 아버지는 그 소리가 듣기 싫어서 할아버지의 서재를 박차고 나왔고, 모터사이클에 올라타고는 해변으로 달려가 지중해 너머로 해가 지는 모습을 바라보면서 자신의 인생을 정말 진지하게 생각해봤다고 합니다. 제 아버지는 1960년대에 자랐기 때문에 "네가 사랑하는 일을 하라"라던가 "네 마음이 가는 곳으로 가라" 같은 말들을 정말로 믿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자신의 마음을 따라가서 정말로 하고 싶던 은행털이가 된 겁니다. (웃음)

그런데 알고 보니 아버지가 소질이 있었어요. 아니, 엄청난 재능이 있었던 겁니다. 은행털이 기법의 발명가이자 혁신가였고, 말하자면 은행강도계의 일런 머스크 같은 사람이었죠. 아버지가 은행을 터는 방법에 대해 나중에 들었는데 정말 기가 막힌 방법이었습니다. 40초 안에 은행을 털고 뛰어나와 모터사이클에 올라탄 후에 모퉁이를 돌아 세워둔 화물트럭에 올라탑니다. 손으로 직접 만든 경사로를 이용해서 말이죠. 그리고는 그곳에 앉아 미친 철인왕(哲人王, philosopher king)처럼 은행강도의 존재론적 고민을 하는 겁니다. "(출동한 경찰이) 은행강도가 절대로 숨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는 장소는 어디인가?"라는 질문 말이죠.

그 답은 바로–혹시 여기에 은행털이 업계에서 일하시려는 분들이 계시면 귀를 기울여주세요–은행입니다. 그래서 아버지는 가죽점퍼와 헬멧을 벗고 총을 바지춤에 넣은 후에 트럭에서 걸어 나와 모퉁이를 돌아 자기가 방금 털었던 그 은행에 들어갑니다. 그때쯤이면 은행은 범행 현장이 되었기 때문에 경찰관들이 깔려있고, 은행에 들어오는 아버지에게 달려가 "선생님, 여기는 범행 현장이니 들어오시면 안됩니다!"하고 제지하죠. 그러면 아버지는 불쌍한 표정으로 경찰관을 바라보면서 "제발 이 돈 입금만 좀 하면 안 될까요? 이거 안 하면 아내한테 싫은 소리 들어야 하는데 말이죠." 그 말을 들은 경찰관은 "알겠습니다. 빨리 하고 나가세요"라고 하는 거죠. 그리고 아버지는 창구에 가서 3분 전에 자신이 훔친 돈을 고스란히 계좌에 입금합니다. 그때가 1980년대였고 컴퓨터가 아직 보편화되기 전이라 아버지는 그렇게 훔친 돈을 사실상 추적이 불가능하게 만들어버린 거죠. 천재적인 솜씨였습니다.

아버지는 워낙 솜씨가 좋았고 유명해지면서 자신감이 생겼습니다. 하루에 한 은행을 털다가 그다음에는 하루에 두 곳을 털고, 그 다음에는 두 도시에서 두 곳을 털었습니다. 한 번은 공항으로 가는 길에 갑자기 은행을 털고 싶다는 충동이 생겨서 택시 기사에게 차를 잠깐 볼 일이 있으니 기다려달라고 하면서 "1분이면 된다"라고 하고 은행을 털었다고 합니다. 정말로 1분 안에 끝내고 다시 택시에 올라타서 공항에 가서 뉴욕으로 떠나 은행돈으로 휴가를 즐기고 오는 겁니다.  

그런데 이 얘기가 어떻게 끝나는지 아세요? 아버지는 결국 경찰에 잡혔습니다. 아버지가 구속된 후로 일상은 이상하게 바뀌었습니다. 여기에는 이스라엘이 가진 특이한 점이 한몫을 합니다. 들어보셨을 수도 있겠지만 이스라엘은 적국으로 둘러싸인 조금만 나라라서 독특한 교도소 시스템을 갖고 있는데요, 그중 하나가 한 달에 한 번 주말에 휴가를 줘서 집에 가서 쉬고 오게 하는 겁니다. 이스라엘에는 공항이 단 하나뿐이고 보안이 엄청 철저하니까, 다른 곳으로 가봐야 가자지구(팔레스타인 사람들의 거주지–옮긴이)나 시리아니까 달아나고 싶으면 얼마든지 달아나 보라는 거죠.

그래서 매달 네 번째 금요일이면 제가 교도소에 가서 아버지를 모셔오고 함께 주말을 보내며 밖을 돌아다니는 게 일상이 되었습니다. 거리에 나가면 아버지를 알아보는 사람들이 다가와 아버지와 하이파이브를 하고 등을 두드리면서 "밴디트! 팬입니다, 멋져요!" 같은 소리를 했죠.

하지만 제게 아버지는 멋지지도 않았고, 밴디트도 아니었습니다. 아버지는 그저 정말 멍청한 짓을 해서 20년을 감옥에서 보내는 사람이었을 뿐입니다. 그런데 더 낯선 일상은 아버지가 집에 오는 주말이 아니라 그 사이에 있는 세 번의 주말이었습니다. 왜냐면, 토요일인데 사격 연습도 없고, 운전 연습도 없었고, 타이어 교체도 없었으니까요. 버트 레이놀즈 영화를 보러 가지도 않고.. 저는 그런 주말에 뭘 해야 할지 몰랐습니다.

진정한 남자 되기

그래서 어느 날 오후 저는 옷을 차려입고 밖에 나가기로 했어요. 이게 또 괴로운 일이었는데요, 왜냐하면 경찰이 집안을 수색하면서 아버지의 소지품을 모두 가져갔는데, 제가 아버지와 체구가 비슷해서 비슷한 사이즈의 입을 입었는데 경찰이 제 옷도 함께 가져간 겁니다. 남은 옷 중에 꼴 보기 싫은 보라색 트레이닝복이 있었어요. 앞에 배트맨 로고가 그려진 거라 경찰도 '설마 멀쩡한 은행강도가 이런 걸 입겠어'하고 가져가지 않은 거죠. 그래서 그걸 입고 밖에 나가 내 인생에 어떤 전환점이 나타나기를 바라며 거리를 걸었습니다.

그런데 정말로 전환점이 나타난 거예요. 어느 공연장 앞을 지나는데, 거기에서 일본 남성 현대무용단의 공연이 있다고 광고를 하고 있더라고요. 저는 약 5초 정도 생각하고 보기로 했죠. 아마 제 아버지가 그걸 알았다면 아마 저와 인연을 끊었을 겁니다. 저는 표를 사서 극장 안에 들어갔습니다. 공연은 너무나 좋았습니다. 무대 위에 놀라울 정도로 우아한 모습의 남성들이 올라왔는데, 그거 아세요? 아무도 주먹질을 하지 않았고, 할리데이비슨 모터사이클을 타지도 않고, 그저 춤을 출 뿐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사람들은 자신의 몸, 자신의 남성성에 자신감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 모습을 보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죠. '만약 저게 남자가 되는 또 다른 방법이라면, (내가 모르는) 다른 어떤 방법들이 더 있을까?'

그렇게 해서 20년에 걸친 긴 과정이 시작되었습니다. 온갖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내가 원하는 남자가 되는 방법을 찾아 나선 거죠. 그렇게 알게 된 것들 중에는 충분히 짐작할 만한 것들도 있습니다. 가령 저는 버번(bourbon) 위스키를 좋아하고, 운동경기는 뭐든지 봅니다. 하지만 깜짝 놀랄 만한 것들도 있어요. 가령 어떤 프랑스 시를 읽으면 눈물이 납니다. 제가 버본 위스키를 좋아한다고 했지만 또 뭐가 맛있는지 아세요? 로제 와인(와인 애호가들이 흔히 낮게 평가한다–옮긴이)이에요. 그리고 제가 비록 자동차 타이어 교체를 아주 잘하지만 운전 중에 타이어에 펑크가 나면 그냥 출장 서비스를 부릅니다.

저는 이렇게 알게 된 걸 아버지에게 이야기하지 않았습니다. 일단 아버지는 인생에서 깨달은 것을 듣는 걸 좋아하는 종류의 사람이 아니고, 무엇보다 아버지가 형을 끝내고 출소했을 때 저는 이미 성인이 되어 있었기 때문에 아버지가 제게 영향을 주어 원하는 사람으로 만들기에는 이미 늦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아버지는 제가 가정을 꾸리고 사는 뉴욕에 종종 오십니다. 한 번은 그렇게 오셔서 저와 거실에 함께 앉아 있었습니다. 서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앉아 있었는데 남자들이 원래 그렇죠. 그런데 그 때 제 아들이 거실로 활보(prancing, 흔히 무용하듯 걷는 걸음걸이를 의미–옮긴이)하며 들어오는 겁니다. 이 아이는 세 살인데, 저랑 똑같이 생겼고, 저는 제 아버지랑 똑같이 생겼습니다. 그런데 제 아들이 세상에서 제일 좋아하는 사람이 자기 누나고, 그 누나가 세상에서 제일 좋아하는 게 디즈니 공주들입니다. 그래서 제 아들이 거실로 무용하듯 걸어 들어왔을 때는 '겨울왕국'의 안나 공주의 드레스를 입고 있었습니다.

안나 공주의 이 드레스

저는 제 아이를 보고, 제 아이를 보는 제 아버지를 봤습니다. 여기에서 아셔야 할 게 있는데요, 제 아들은 녹색 호박단(琥珀緞, taffeta)으로 된 드레스를 입고 있었는데 검은색 보디스(bodice, 드레스 상체를 조이는 가슴 부위–옮긴이)와 예쁜 레이스까지 더해져서 정말 예뻤습니다. 저는 아버지가 저를 못마땅하게 생각하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거 아세요? 저는 개의치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좀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바로 그 순간에 깨달은 사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제 아버지가 교도소 갇혀 지내는 바람에 저만 황당한 마초 짓으로부터 풀려난 게 아니라, 제 아들도 자기가 원하면 예쁜 공주놀이도 할 수 있는 행복한 남자아이로 자랄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이죠. 덕분에 저와 제 아들이 아무 생각 없이 터프한 남자 흉내를 내며 사는 대신 자유롭게 진정한 남자가 될 수 있었다는 게 얼마나 감사한 일이지 모릅니다.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