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이 가장 궁금해하는 질문이 '러시아는 과연 핵무기를 사용할 것인가?'라면, 그다음으로 궁금해하는 질문은 '그럼 우크라이나 전쟁은 언제, 어떻게 끝날 것인가?'라고 할 수 있다. 전쟁은 결국 사람이 하는 일이기 때문에 계절이 바뀌는 것처럼 예측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하지만 과거 다른 전쟁의 사례를 통해 어느 정도 짐작을 해보는 건 가능하다. 우선, 전쟁은 양측의 기대만큼 빨리 끝나지 않는다. 전쟁이 아니라 "특별 군사작전"이라고 부른다고 달라지는 게 아니다.

가령 1955년에 시작된 베트남 전쟁은 1975년에 미군이 철수하면서 끝났다. 1979년에 소련이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하면서 시작된 소련-아프가니스탄 전쟁은 거의 10년 가까운 시간이 흐른 뒤에야 (소련군의 철수로) 끝이 났다. 2003년에 미국의 침공으로 시작된 이라크 전쟁은 도널드 럼스펠드 국방부 장관이 첨단무기와 속전속결을 중심으로 한 새로운 군사 독트린을 사용한다고 자랑했지만 2011년 12월에야 흐지부지 끝났다.

하지만 비교적 짧게 끝난 전쟁도 있다. 3년 만에 휴전을 선언한 6.25 전쟁이나 1년이 채 걸리지 않은 걸프전쟁은 비교적 짧은 시간 안에 군사행동이 중지된 경우다. 전자의 경우, 북한이 남한을 점령하려고 전쟁을 벌였다가 많은 희생자를 내고 사실상 전쟁 전의 위치로 돌아갔고, 후자의 경우 이라크가 쿠웨이트를 침공했다가 미국을 비롯한 연합국이 쿠웨이트에서 이라크군을 몰아내며 끝났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10년 전쟁이 되는 걸 피하고 싶다면 6.25나 걸프전 같은 출구 전략을 생각해야 한다.

"러시아에 양보를 하면.."

하지만 그건 한쪽이 압도적인 패배를 인정하거나 전쟁이 교착 상태에 빠져서 더 이상 지속하는 게 무의미하다고 양쪽 모두 판단했을 때 사용할 수 있는 출구다. 그런데 우크라이나와 러시아가 그런 결론을 내릴까?

99세의 헨리 키신저는 신냉전기를 맞아 다시 발언권을 얻고 있는 듯 보인다.

지난 토요일에 나온 뉴스에 따르면 크렘린은 올 가을 즈음에 "승리할 것"으로 생각한다고 한다. 그때 즈음이면 서방의 국가들은 우크라이나에 대한 지원에 지칠 것이고,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사이의 평화 협상을 유도할 것으로 기대하는 것이다. 러시아의 이런 기대에 부응하는 반응이 서방 국가들 사이에서 조심스럽게 등장하고 있다. 5월에 들어 프랑스와 독일이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사이의 평화 협상의 필요성을 이야기하고 있고, 냉전 외교의 상징과 같은 헨리 키신저는 우크라이나가 현실을 직시하고 영토의 일부를 포기함으로써 전쟁을 끝내야 한다고 주장했다.

물론 젤렌스키는 그럴 생각이 전혀 없어 보인다. 그는 키신저의 주장을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에 (영토를) 내어줘야 한다는 지정학적 가정을 하는 '위대한 지정학자(geopolitician)'라는 사람들은 평범한 사람들을 전혀 고려하고 있지 않고 있다. (현재 러시아가 차지한) 지역에 살고 있는 수백만 명을 환상에 불과한 평화와 맞교환하라는 이야기"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우크라이나의 입장은 '조금의 영토도 뺏기지 않고 모두 찾겠다'는 것이고, 여기에는 2014년에 러시아가 점령한 크림반도와 친 러시아 반군이 점령한 돈바스 지역이 포함된다. 젤렌스키는 지나친 욕심을 내는 걸까?

젤렌스키와 그의 주장에 동의하는 서방 국가의 사람들은 푸틴에게 절대로 양보해서는 안 되는 이유로 1938년을 이야기한다. 그해 나치 독일은 오스트리아를 병합하고 체코슬로바키아에서 독일인이 많이 사는 주데텐란트라는 지역을 병합하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독일어를 사용하는 독일인 많이 사는 지역=독일 땅'이라는 논리는 사실 푸틴이 돈바스와 크림반도를 침략한 논리와 똑같다. (이들 지역에는 친 러시아 주민들이 많이 살고 있다.) 이런 논리를 발전시키면 중국 옌볜(연변)에 한국어를 할 줄 아는 조선족이 많이 산다는 이유로 북한이나 한국이 옌볜을 자신의 영토라고 주장하는 셈이고, 이는 현대 세계질서에서 용납할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독일이 군사력을 키우고 있는 것을 본 유럽 국가들은 전쟁을 피하기 위해 히틀러의 요구를 들어주는 유화정책(appeasement)을 선택한다. 이렇게 탄생한 것이 '뮌헨 협정'으로, 독재자의 침략 야욕을 깨닫지 못한 대표적인 외교의 실패 사례로 악명이 높다. 우크라이나가 양보해야 한다는 얘기가 나올 때마다 온라인 댓글에 등장하는 "Because 'appeasement' always works, right? (유화정책을 쓰면 전쟁을 피할 수 있는 거 맞지?)"라는 시니컬한 말은 히틀러를 상대로 했던 1938년의 실수를 반복하지 말라는 말이다.

푸틴이 가진 옵션들

이는 일반인들의 비아냥만은 아니다. 이번 전쟁을 지켜보는 많은 전문가들이 지금 서둘러 평화협정을 맺으면 푸틴은 우크라이나를 다시 침공해서 이번에 이루지 못한 목표를 달성할 시간을 벌어줄 뿐이라고 믿는다. 2014년 크림반도 침공 이후에 러시아가 전쟁을 준비해왔음을 생각해보면 충분히 상상할 수 있는 일이다. 문제는 "그럼 앞으로 10년 전쟁을 할 생각이냐"는 거다.

지금 많은 사람들이 우려하는 건 아래와 같다:

  • 푸틴은 패배를 인정할 수 없는데
  • 현재로서는 전쟁을 이길 수 있는 힘이 없기 때문에
  • 결국 핵무기와 같은 극단적인 방법을 사용해서 끌어내려할 거다

이런 우려를 하는 이유는 우크라이나 전쟁이 몇 년 동안 지속되는 장기전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무의식적으로 받아들이지 않기 때문일 가능성이 높다. '전쟁은 단기간에 끝날 수 있다'라는 신화를 믿어서라기 보다는 러시아가 긴 전쟁을 할 여력이 없고, 10년간 지속된 소련-아프가니스탄 전쟁이 소련의 붕괴로 이어졌다는 역사적인 교훈이 있는데 설마 그렇게 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다. 이는 완전히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핵무기와 같은 극단적인 방법을 사용한다는 것은 푸틴은 "미치광이" 혹은 비이성적인 지도자라고 가정하는 일이다. 앞으로 그렇게 변할 수는 있을지 몰라도 적어도 우리가 아는 푸틴은 (비록 실수를 저지르기는 해도) 철저하게 계산대로 움직이는 사람이다. 따라서 그의 목표와 그가 가진 옵션이 어떤 것들인지를 살펴보는 것이 '전쟁에 이길 수 없다 → 자폭'이라는 성급한 결정을 내리는 것보다 현명한 접근이다.

러시아 순양함 모스크바의 침몰에 대한 분석에서 소개한 적 있는 군사분석가 앤더스 퍽 닐슨은 푸틴에게 가장 중요한 우선순위를 아래와 같이 설명한다:

우크라이나에서 승리하는 것은 푸틴에게 아주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러시아 본토가 전쟁에 휩싸이지 않는 것이고,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자신이 러시아에서 권력을 유지하는 것이다. 즉, 자신이 권력을 유지할 수 있으면 2, 3번은 희생할 수 있는 목표라는 것이다. 이는 세상의 모든 독재자에게 공통되는 우선순위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위와 같은 우선순위를 바탕으로 그가 가진 옵션들을 살펴보면 그의 선택을 짐작해볼 수 있다. 닐슨은 현재 러시아가 처한 상황을 바꿀 수 있는 옵션을 a. 패배를 인정하는 것 b. 국민 동원령 발동 c. 핵전쟁이라고 본다. 패배 인정과 핵전쟁은 이해하기 쉽지만 b. 국민 동원령은 약간의 설명이 필요하다.

러시아는 현재 의무적으로 군 복무를 하는 병력과 직업 군인을 우크라이나에 보내서 전쟁을 하고 있다. 따라서 이미 복무를 마치고 퇴역한 사람들은 전쟁에 나가지 않아도 된다. 하지만 국민 동원령이 내려지면 그 연령에 속한 남성들은 복무 여부와 상관없이 전쟁에 동원되어야 한다.

문제는 그렇게 할 경우 전쟁을 지지하거나, 적어도 드러내어 반대하지 않던 많은 러시아인들이 등을 돌리게 된다는 거다. 당장 내가, 내 아들이, 내 남편이 전쟁터에 나가야 한다면 "이게 정말 필요한 전쟁인지" 생각해보게 된다. 당장 나나 내 가족이 피해를 보지 않기 때문에 전쟁을 지지했던 사람들의 생각이 달라지게 될 것이고, 북한과는 다른 사회인 러시아에서 푸틴의 위치는 흔들릴 수밖에 없다.

결국 국민 동원령을 내리면 우크라이나에서 상당한 승리를 끌어낼 수 있고, 러시아 본토를 위험에 빠뜨리지도 않겠지만 자신의 권력은 위험하게 된다.

핵전쟁은 더더욱 답이 아니다. 핵무기를 사용하는 것은 마지막 카드를 의미하고, 인내심을 발휘해온 미국과 나토는 태도를 바꿀 것이기 때문에 우크라이나에서 이길 수도 없고, 러시아 본토가 위협을 받게 되며, 이는 자신이 권력을 잃게 되는 결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만약 푸틴이 패배를 인정하면 얘기가 다르다. 우크라이나와 나토는 러시아의 본토를 침공할 가능성이 없고 (2편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러시아의 핵 독트린에 따르면 본토 공격은 핵무기를 선제 사용 가능한 조건이 된다) 푸틴의 권력도 안전하게 유지될 수 있다.  

패배와 승리 사이

그런데 여기에서 이런 질문이 나올 수 있다. "푸틴과 같은 스트롱맨(strongman, 독재자)이 패배를 인정하면 권력이 흔들리는 것 아닌가?"

물론 자존심이 상하고 '강한 리더'의 이미지가 훼손되는 건 피할 수 없겠지만, 그것과 권력이 흔들리는 건 전혀 다른 문제다. 닐슨은 오히려 국민 동원령을 내릴 경우 푸틴이 철권통치에 사용하는 경찰 등의 공권력이 군으로 차출되어 반대 시위를 진압하기 힘들어진다고 진단한다. 푸틴이 러시아 사회를 움켜쥐고 있는 한 우크라이나에서의 "작전 실패"가 결정적인 위협은 아니다.

이런 주장을 하는 사람들이 언급하는 것이 러시아의 언론 통제다. 푸틴은 러시아인들이 보고 듣는 언론을 완벽하게 장악하고 있기 때문에 사실상의 패배를 승리라고 얼마든지 포장(spin)할 수 있다는 것이다. 크림반도를 지켰고, 돈바스의 "러시아인들"을 "나치 세력"으로부터 보호했다고 자랑스럽게 홍보할 것이고, 전쟁이 잦아들기만 하면 러시아인들은 이를 믿거나 최소한 속아주는 척할 것이다. 더 나아가 푸틴은 큰 결정을 통해 "호전적인 미국과 나토의 공격으로부터 유럽을 지킨 평화적인 리더"라고 홍보할 수도 있다.

게다가 이를 위해서 반드시 패배를 인정할 필요도 없다. 우크라이나에서 저강도의 분쟁을 지속하면서 "러시아를 지키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면서 "러시아 vs. 서방세계"의 구도를 러시아 국민들에게 주입시키기만 하면 된다. 이는 언론을 장악한 독재권력만 사용할 수 있는 방법이지만 푸틴이 그런 권력이다. (나중에 다른 글에서 이야기해 볼 기회가 있겠지만) 핀란드와 스웨덴이 나토에 가입하겠다는 의사를 밝혔고, 최종 가입까지 걸리는 기간 동안에 있을 러시아의 위협을 막아주겠다고 미국과 영국이 나선 상황은 이런 프로파간다에 아주 유리하다. 따라서 푸틴은 전쟁을 이기기 위해 극단적인 방법을 사용할 필요가 전혀 없다는 결론이 나온다.

러시아는 전쟁을 시작하던 2월에 상상하지 못했던 상황에 처해있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푸틴이 극단적인 방법을 동원할지 모른다는 생각은 리더가 책임을 지는 민주주의 체제에 익숙한 사람들의 착각일 수 있다. 자신이 원하는 가상의 현실을 만들어 믿게 할 수 있는 독재자에게 패배와 승리는 반드시 상호 배타적일 필요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