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란 이후의 푸틴 ④
• 댓글 3개 보기프리고진의 반란
프리고진의 반란은 모든 사람을 놀라게 했지만, 사실 피터 클레멘트는 그보다 앞선 6월 10일, 러시아 정부가 바그너 그룹의 용병들이 러시아 국방부와의 계약을 통해 정규군으로 편입되어야 한다고 발표한 때부터 긴장하고 상황을 지켜봤다. 이는 바그너 그룹을 독립된 조직으로 인정하지 않고 해체하라는 얘기였기 때문이다. 블라디미르 주보크는 러시아 엘리트층이 갈수록 분열하고 있음을 확인하고 내게 "어쩌면 푸틴은 벌거벗은 임금님일 수 있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켄달-테일러는 '포린어페어스(Foreign Affairs)'에 공동 기고한 글에서 푸틴이 실각할 경우 프리고진이 후계자가 될 수도 있음을 언급했었다.
하지만 이들 중 누구도 프리고진의 모스크바 진격은 예상하지 못했다.
상황은 끝났지만, 더 많은 궁금증이 생겼다. 주보크는 뉴스테이츠먼(New Statesman)에 기고한 글에서 프리고진을 BC 49년에 루비콘강을 건너 로마로 진격했던 율리우스 카이사르(시저)에 비유했다. 그는 러시아의 올리가르히 미하일 호도르콥스키가 젊은 시절 새로운 러시아에서는–볼셰비키 혁명의 상징인–총을 든 사람이 루블화를 가진 사람으로 대체되었다는 말을 했던 것을 언급하면서, 이제 총을 든 사람이 다시 돌아왔고, 러시아 정치가 새로운 시대로 접어들었다고 했다.
내가 주보크에게 무슨 일로 러시아가 아닌 다른 곳(로마)의 역사를 가져와 프리고진의 현상을 설명하느냐고 묻자, 그는 러시아의 역사는 구속복(拘束服)처럼 제한적으로 느껴질 때가 있다고 답했다. "이건 스무타(동란시대)의 반복이야! 이건 1917년 때 상황과 똑같아! 이건 1991년 상황이네."라는 식으로 러시아 역사에 일어난 일을 가져와 현재를 설명하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는 거다. 물론 자신이야말로 그런 역사적 패턴을 강조해온 사람이지만, 때로는 다른 틀로 보고 다른 역사적 사건과 연관을 지어볼 필요도 있다는 게 주보크의 말이다.
하지만 주보크는 조심해야 할 부분이 있다고 선을 긋는다. 러시아는 많은 전쟁과 침략을 했지만, 한 번도 카이사르(여기에서는 카이사르 개인이 아닌, 로마 황제를 의미–옮긴이)를 배출한 적이 없다는 것이다. 러시아에 황제가 없었다는 뜻이 아니라, 군대를 이끌고 수도로 진격해서 정치적 권력을 획득한 군벌(warlord)은 없었다는 얘기. 그런데 여기에는 이유가 있다. 러시아의 전통적인 정치 체제–현재도 작동하고 있는 시스템이다–은 차르(황제)를 정점으로 귀족과 평민이 각각 삼각형의 꼭짓점을 구성하는데, 만약 정치적 상황이 불리해지면 차르는 평민이 귀족 탓을 하거나, 귀족이 평민 탓을 하게 만들 수 있다.
사실 프리고진이 푸틴에게 요구한 게 바로 이거다. 전쟁을 망친 러시아군 안에 있는 '귀족들'을 제거하라는 요구. 그러나 주보크는 그런 전략이 푸틴에게 위험할 수 있음을 인정한다. 자신에게 비난이 몰리게 되자 군 장성이 반란을 일으킨 예는 실제로 러시아 역사에 존재한다. 러시아 내전(1918~1921) 중에 혁명군 장군이었던 이반 소로킨이 지도부를 공격했다가 죽임을 당한 일이다. 하지만 이런 일은 차르가 부재할 때, 스무타가 한창 진행 중일 때 생기는 것이고 푸틴은 비록 약해졌을 수는 있어도 여전히 차르로 군림하고 있다.
주보크는 "비록 황당해 보여도 이 시스템이 얼마나 생명력이 강한지 알아야 한다"라면서, 프리고진의 반란 시도에도 불구하고 푸틴은–비록 한번 혼쭐이 나기는 했지만–권력을 유지할 것으로 전망했다.
클레멘트도 같은 전망을 한다. 그는 짧은 반란 중에 일어난 모습에서 많은 힌트를 찾을 수 있다면서, 트럭과 장갑차로 구성된 프리고진의 군대가 공격에 노출된 채로 고속도로를 빠르게 진격했다는 것을 예로 들었다. 그렇게 긴 행렬을 마지막으로 본 건 러시아군이 키이우를 공격할 때였고, 그때는 러시아 병력이 도로 위에서 우크라이나군의 공격을 받아야 했다. 하지만 바그너 용병들의 진격 루트에 있던 러시아의 군부대들은 누구도 나서서 이들을 공격하려 하지 않았다. 자신의 권한 밖에 있는 일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클레멘트는 푸틴의 5분짜리 연설도 흥미롭게 생각한다. 프리고진의 행동이 반역이고 배신이라고 주장하는 푸틴은 스스로를 자신의 뒤에 벌이는 음모 때문에 전쟁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했던 러시아의 마지막 차르 니콜라이 2세에 비유하는 듯했다. 클레멘트가 궁금한 건 그 연설이 정말로 꼭 필요했느냐는 것이다. 그런 연설을 하는 바람에 푸틴은 공포에 빠진 듯 보였고, 약해 보였다는 게 클레멘트의 생각이다. 정말로 대대적인 반란이라면 프리고진을 제거해야 할 일인데 말이다.
푸틴의 앞날
그런데도 불구하고 클레멘트는 푸틴이 사라진 러시아를 상상하기 힘들다고 한다. 그런 상황으로 갈 수 있는 길이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뉴욕타임즈에 등장한 한 분석은 푸틴의 이너써클에서는 푸틴이 2024년 선거에 나서지 않는 것을 권하자는 이야기가 오가고 있을 수 있다고 하지만, 클레멘트는 회의적이다. 그는 "문제는 누가 푸틴에게 다가가서 '블라디미르, 당신은 재산이 많으니 이제 은퇴해서 여생을 행복하게 보내시는 게 어떠냐'고 말하겠느냐는 것"이라면서 이란-이라크 전쟁 중에 일어난 일을 떠올렸다. 사담 후세인의 참모 중 하나가 전쟁을 멈추는 방법으로 후세인이 잠시 총리직에서 내려오는 게 어떠냐고 제안했다. 그 제안을 한 사람은 처형당했고, 조각난 그의 시신이 가족들에게 배달되었다.
"독재자들은 은퇴하라는 말을 듣고 싶어 하지 않는다"는 게 클레멘트의 말이다. 독재자가 은퇴하려 않는 게 반드시 틀린 결정도 아니다. 푸틴이 과연 정말로 은퇴할 수 있을까? 은퇴하면 그의 안전은 누가 보장하는가? 누가 그의 뒤를 잇든 푸틴의 후계자는 푸틴이 살아있다는 게 아주 불편하지 않을까? 푸틴은 권력에서 내려와서 농장에서 조용히 여생을 보낸 흐루쇼프와는 다르다.
푸틴에게는 적이 많다.
게다가 당장 푸틴은 큰 권력을 갖고 있다. 그는 여전히 러시아군과 정보부(FSB)를 통솔하고 있다. 클레멘트는 프리고진이 행복한 결말을 맞이할 거라 생각하지 않는다. 푸틴은 원래 복수심이 강한 사람이고, 러시아를 배반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리 세월이 지났어도 반드시 암살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동시에 프리고진의 반란을 경험한 푸틴은 좀 더 조심스럽게 행동할 수는 있다. 참모진에 변화를 주는 식으로 전쟁의 실패를 설명하려 할 수도 있다. 아니, 더 나아가서 전쟁에 너무 많은 자원이 소모되고 국내 문제에 집중해야 하기 때문에 휴전을 고려하겠다고 말할 수도 있다. 그렇게 해서 군대를 재정비한 후 전쟁을 재개할 수도 있다. 클레멘트에 생각에는 푸틴이 이런 선택을 할 가능성은 여전히 낮지만, 이전보다는 증가했다고 생각한다.
사회학자인 주라블레브의 눈에 프리고진의 반란이 놀라운 일이었지만, 로스토프나도누의 시민들이 바그너 그룹의 용병들에게 환호를 보내는 장면은 놀랍지 않았다. 주라블레브는 그 장면을 러시아의 시민들이 전쟁을 좀 더 적극적으로 생각하는 희망적인 신호로 본다. 그는 러시아의 젊은이들을 인터뷰하면서 그들이 얼마나 전쟁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어 하는지를 알고 놀랐다고 한다. 그들에게는 기회가 없었을 뿐이다. 그런데 이제 그럴 기회가 생긴 것이다. 물론 민주주의 운동이라는 형태는 아니지만 그래도 기회는 기회다.
프리고진의 반란이 희망적인 또 하나의 이유는 러시아에 혁명을 일으키는 일이 생각했던 것처럼 어려운 일은 아님을 보여줬기 때문이다. 지금 당장은 혁명을 일으키고 싶은 사람들에게는 그럴 수단이 없고, 그럴 수단을 가진 사람들은 혁명을 원하지 않는다. 하지만 상황은 바뀔 수 있다.
켄달-테일러는 프리고진이 일으킨 것은 쿠데타가 아니라 반란(insurgency)임을 지적한다. 정권을 바꾸기 위해 계획된 시도가 아니라, 울분의 표출이었을 뿐이라는 것. 하지만 프리고진의 행동이 전달한 메시지–푸틴의 정권은 보기만큼 튼튼하지 않고, 이에 반대하고도 살아남을 수 있다–는 더욱 강력해졌다. 그는 "푸틴 정권이 무너지지 않게 붙잡아주고 있는 것은 사람들이 이 상황에 얼마나 불만스럽게 생각하고 있는지 아무도 모른다는 사실"이라고 한다.
물론 이런 상황에서 푸틴이 해야 할 일은 사상 통제와 시민에 대한 감시를 강화하는 것이다. 오늘 나온 뉴스에 따르면 푸틴은 러시아 내부의 반대 세력을 찾아내기 위해 디지털 장비를 이용한 감시를 대폭 강화했고, 이 기술을 다른 나라에도 판매하고 있다.
그는 프리고진의 반란 같은 사건이 일어나면 "사람들은 비로소 다른 사람들도 자기처럼 이 상황에 불만을 품고 있음을 알게 된다. 그렇다면 사람들은 가능한 일이 무엇인지 다시 계산해 보게 된다"라면서, 앞으로 러시아 사람들이 싫어할 일–가령 러시아군이 큰 패배를 겪거나, 2024년 러시아 대선과 관련한 푸틴의 무리수–이 일어나면 러시아의 시민들은 길거리로 나가는 것을 조금 덜 두려워하게 될 것으로 전망했다.
프리고진이 과연 벨라루스에서 무사할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적어도 그는 적은 숫자의 병력을 이끌고 모스크바를 향해 수백 킬로미터를 변변한 저항을 받지 않고 진격할 수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푸틴의 정권이 당장 붕괴할 위험에 처한 것은 아니지만, 그 가능성은 조금이나마 커졌다. 켄달-테일러에 따르면 정권은 그렇게 무너진다. "쿠데타이든, 반란이든, 아니면 시위이든 상황이 심각해지면 어느 단계에서 푸틴은 (자국민을 향해) 진압과 사격을 명령해야 한다. 그런데 만약 군대가 그 명령을 거부한다면? 그게 푸틴 정권의 종말이다."
미래는 아무도 예측할 수 없다. 하지만 상황을 분석, 고찰해보는 일은 필요하다. 이번 사태가 일어나기 전만 해도 켄달-테일러는 푸틴이 2년 이내에 권력을 잃을 가능성을 10%라고 봤다. 이제 그는 그 가능성을 20%까지 올려 잡아도 된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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