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권의 안정성

정권의 안정이란 우스운 거라서, 오늘까지 멀쩡하던 정권이 하루 만에 날아가기도 한다. 앞서 언급한 (익명을 요구했던) 러시아의 역사학자는 모스크바에 거주한다. 그는 1980년대 공산당 정치국(Politburo) 사람들의 모습을 기억한다. "그 사람들은 전부 똑같아 보였어요. 그들이 하는 공식적 발언이든 뭐든 각 개인이 다르게 생각한다는 느낌을 전혀 받을 수 없었죠." 그런데 고르바초프만은 생각을 다르게 했던 것 같다. 그가 집권한 이후로 각종 개혁 정책을 추진했고, 결국에 가서는 소비에트 연방이 사라지게 되었기 때문이다. 권위주의 정권은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지기 전까지는 멀쩡해 보인다.

켄달-테일러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상대로 전면전을 시작한 지 일 년이 되던 때 전문가들을 모아 푸틴 정권의 안정성 변화를 추적할 수 있는 지표("stability tacker")를 만들었다. 이 지표에는 정권을 지탱하는 10개의 핵심 요소가 있는데, 이 요소는 "푸틴에 대신할 인물의 부재"부터 러시아인들이 가지고 있는 "러시아는 포위된 성채(fortress)"라는 마인드까지 다양한 내용을 포함한다. 이 요소들이 시간이 지남에 따라 더 강해졌는지, 약해졌는지를 살펴봄으로써 푸틴 정권이 안정적인 쪽으로 가고 있는지, 불안정한 상황으로 가고 있는지를 살피려는 것이다.

안드레아 켄달-테일러 (이미지 출처: MSNBC)

올해 봄까지의 상황을 보면 푸틴에게 불리하게 변하고 있는 지표가 몇 개 있었다. 엘리트층의 의견은 분열하고 있었고, 전쟁과 서방세계의 제재로 경제는 나빠지고 있었으며, 전통적으로 정치와는 거리를 두고 있던 러시아군은 점점 더 강해지는 프리고진의 영향력과 탄약 지원 요구를 두고 점점 더 정치적인 태도를 취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푸틴에게 유리한 쪽으로 변화하는 지표들이 더 많았다. 켄달-테일러가 모은 전문가들에 따르면 푸틴은 자국 내 정보 통제를 더욱 강화했고, 정권에 불만을 품은 사람들은 러시아를 떠났고, 러시아는 포위된 성채라는 인식을 가진 사람들은 점점 늘어났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건, 푸틴을 대신할 만한 인물이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군 장성들은 정치적으로 인기가 없었고, 푸틴의 정적인 알렉세이 나발니는 러시아의 감옥에서 식사도, 수면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치료도 받지 못하고 있다.

대안이 없을 때는 현 상태(status quo)가 지속된다.

두 그룹의 전문가들

러시아의 정권을 연구하는 전문가들은 아주 거칠게 말해 두 그룹으로 나뉜다. 한 그룹은 러시아와 소련의 역사와 문화를 바탕으로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날지를 생각하는 사람들이고, 다른 그룹은 러시아의 권위주의 정권을 이집트나 중국, 터키와 같은 다른 나라의 권위주의 정권과 비교해서 바라보는 사람들이다. 이 두 그룹 사이의 논쟁을 '정치과학 진영 대 지역연구 진영의 논쟁'이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이렇게 서로 다른 접근을 하기 때문에 두 그룹은 조금 다른 가정을 내놓는다.

피터 클레멘트 (이미지 출처: C-SPAN)

첫 번째 글에서 언급한 피터 클레멘트는 CIA에서 일하기 전, 1934년 소련의 17차 전당대회를 연구한 박사 논문을 썼다. 그 전당대회에서 자신의 지배 체제를 확고히 한 스탈린은 자신의 지배에 불만을 품은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클레멘트는 브레즈네츠 이후 소련에서 벌어진 후계자 싸움도 분석했다. 그가 현재 푸틴 정권 내부에 관심을 갖는 이유는 바로 이런 연구 경력에 기인한다.

반면 비교 연구를 통해 러시아를 바라보는 켄달-테일러는 권위주의 연구에 현대화된 양적(quantitative) 방법론을 도입한 바버라 게데스(Barbara Geddes)에게 수학한 사람으로, 숫자를 살펴보는 것을 선호한다. 몇 개의 정권이 어떤 방법으로 붕괴했는지를 보는 것이다. 하지만 모두가 동의하는 건 정권은 예측 불가능한 상황으로 가득하고, 지도자들은 실수를 저지른다는 사실이다. 공고한 지배 체제를 갖춘 독재자가 어느 날 의미 없고 무자비한 전쟁을 시작하기도 하고, 전쟁이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어도 수정을 거부하는 일도 일어난다.

흔히 '제1차 혁명'으로 불리는 1905년 러시아 혁명은 황제의 권한이 축소되고 헌법이 제정되는 결과를 낳았다. (이미지 출처: Wikipedia)

전쟁과 독재자들

전쟁이 독재체제에 스트레스 요인(stressor)이라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그런데 (모순적이지만) 독재체제는 전쟁을 일으킬 가능성이 더 높다. 그리고 그렇게 전쟁이 일어나면 경제와 안보에 부담을 주게 될 뿐 아니라, 불확실성이 증가한다. 정치학자들(Giacomo Chiozza, H. E. Goemans)의 연구에 따르면 1919년부터 2003년 사이에 전쟁을 시작했다가 패한 지도자 중 절반이 일 년 내에 권력을 잃었고, 그렇게 권력을 잃은 사람 중 절반이 망명했고, 약 1/3이 투옥되었다. 이는 러시아의 역사에서도 확인된다. 1905년에 러시아가 러일전쟁에서 패한 후 대규모 시위로 차르가 헌법을 만드는 데 동의하게 되었고, 1차 세계 대전에서 고전한 것은 1917년 차르가 권력에서 물러나게 된 중요한 요인이었다.

하지만 전쟁은 독재자들에게 유리하게 작용하기도 한다. 전쟁은 독재자들이 국민을 억압하고, 정보를 통제하는 구실을 제공해 준다. 불행한 일이지만 억압은 먹힌다. 국민은 반대의 목소리를 내는 것을 두려워하게 되고, 시위를 겁내게 된다.

켄달-테일러는 현재 러시아 국민이 잠잠한 것은 러시아 보안 기관 작품이라고 설명한다. 러시아 보안요원들은 시위를 통제할 때 지나치지 않도록 조심한다. 많은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과잉 진압을 하면 대중적 분노가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될 수 있기 때문이다. 광장에서 시위대를 폭행하는 대신 러시아의 보안 기관은 안면 인식 등의 방법을 사용해서 나중에 시위 참가자의 집으로 찾아가 사람들이 보지 않을 때 체포하는 것이다. 푸틴은 이런 방법으로 독재체제가 흔히 빠졌던 상황을 피해 간다.

아랍의 봄 시위대 (이미지 출처: The Daily Beast)

반면 정보 통제가 정권에 위험하게 작동할 수도 있다. 정보를 통제하면 사람들은 다른 사람이 현 상황에 얼마나 불만을 갖고 있는지 모르게 되지만, 정권 또한 국민의 불만을 확인할 수 없게 된다. 켄달-테일러는 2010년 12월 분신자살로 '아랍의 봄'을 촉발한 튀니지의 청년 모하메드 부아지지를 예로 든다. 아랍의 정권들은 국민의 분노가 그토록 크게 쌓였는지 알지 못했다. 억압의 전형적인 단점은 잘 먹히다가 어느 순간 갑자기 먹히지 않는다는 것이다. 튀니지에서 한 청년이 내린 결정이 대규모 시위를 확산시켰고, 몇 주 만에 수십 년 동안 권력을 유지하던 정권이 무너졌다.


마지막 편, '반란 이후의 푸틴 ④'에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