견해 3. 블라디미르 주보크

최근 소비에트 연방(소련)에 관한 책을 낸 역사학자 블라디미르 주보크(Vladimir Zubok)는 니콜라이 2세부터 미하일 고르바초프까지 러시아와 소련의 지도자들이 권력의 자리에서 물러나게 된 방식을 내게 설명하면서, 이런 방식이 왜 푸틴에게는 적용되지 않는지 이야기해 줬다.

우선 니콜라이 2세는 당시 러시아의 수도였던 페트로그라드(지금의 상트페테르부르)에서 대규모 봉기가 일어나고 군대마저 이에 동참하자 스스로 왕위를 포기했다. 하지만 푸틴은 수도인 모스크바 사람들이 물자 부족을 겪거나 우크라이나 전쟁의 피해를 보지 않도록 미리 대비를 해뒀고, 자신에게 충성하는 준군사조직이 시위대를 통제하게 하고 있다.

1964년에 실각한 니키타 흐루쇼프 서기장의 경우, 자신의 이너써클, 즉 측근 사람들이 모의한 결과였다. 그중에서도 그의 최측근 레오니트 브레즈네프가 공산당 내부에서 작업을 해서 서기장에 등을 돌리게 했고, 소련의 정보국 KGB가 쿠데타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흐루쇼프의 뒤를 이은 레오니드 브레즈네프 서기장 (이미지 출처: London Review of Books)

하지만 푸틴 정권은 흐루쇼프 당시의 공산당과 반대로 푸틴이라는 개인에 대한 충성 조직으로, 모든 길은 푸틴으로 통하기 때문에 이런 조직 내에서 쿠데타를 계획하는 건 어렵다. 그리고 비밀경찰 조직도 여러 개가 존재하고 전부 서로 경쟁하는 관계에 있기 때문에 음모를 꾸미는 일은 쉽지 않다.

고르바초프의 경우는 푸틴에 적용하기 가장 어려운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그는 자신의 경쟁자인 보리스 옐친이 러시아 대통령직에 출마하도록 허용했을 뿐 아니라, 정부가 그의 선거운동 자금을 지원하도록 해줬다. 푸틴이 절대로 하지 않을 일이다.

주보크의 생각에 그나마 푸틴과 가장 비슷한 상황에 있었던 러시아의 지도자는 이반 4세(1530~1584, 너무나 난폭했던 탓에 '뇌제雷帝,' 즉 '번개 황제'라는 별명이 붙었고, 영어권에서는 'Ivan the Terrible'이라는 이름으로 통한다–옮긴이)다. 그는 유럽의 국가들과 긴 소모전을 치르며 지배계급을 실망시켰고, 자기 아들이자 후계자였던 드미트리를 살해했다. 그런 이반 4세가 죽은 후 러시아는 내전에 빠져들었다. 러시아에서는 스무타(Сму́та)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동란시대(Time of Troubles, 1598~1613)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러시아의 동란시대, 스무타 (이미지 출처: Wikipedia)

견해 4. 주라블레브, 코네바

그렇다면 러시아 국민들은 우크라이나 전쟁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러시아를 연구하는 단체인 Public Sociology Laboratory (공공 사회학 연구소)의 연구원이자 창간 회원인 올레그 주블레브(Oleg Zhuravlev)는 다른 연구원들과 함께 지난 1년 동안 러시아의 젊은 층을 상대로 여론 조사를 한 결과, 이번 전쟁에 대한 지지층이 생각했던 것보다 "더 얇고, 좁다(both thinner and narrower)"라고 한다. 현재 10~15% 정도의 진정한 전쟁 지지 그룹이 있고, 그와 비슷한 정도의 숫자로 전쟁에 반대하는 집단이 존재한다.

대다수(약 70~80%에 해당하는)의 러시아 사람들은 전쟁이 좋아서 찬성한다기보다는 어떻게 반대해야 하는지 몰라서, 그리고 전쟁을 이끄는 권력으로부터 소외되어 있기 때문에 그냥 전쟁을 지지하고 있다. 조사를 하면서 반복해서 들은 건 "나는 정치에 대해서 아는 게 없고, 크렘린(러시아 정부) 사람들은 나와는 다른 완전히 사람들이라 모르겠다. 하지만 그 사람들이 전쟁을 해야 한다면 그만한 이유가 있는 거 아니겠느냐"라는 말이었다고 한다. 국민 비정치화(depoliticization)의 가장 순수한 형태다.

주라블레브의 동료인 엘레나 코네바(Elena Koneva)는 지난 1년 반 동안 러시아 국민이 우크라이나 전쟁을 지지하게 된 근거가 무엇이고, 전쟁 지지율이 감소하게 된 이유가 무엇인지를 찾는 익스트림스캔(ExtremeScan)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그 결과, 코네바는 국경에 가까운 지역에 사는 러시아인들이 전쟁의 영향을 받게 되면서 생각을 바꾸기 시작했음을 확인했다. 이들은 "우리가 우크라이나에서 끔찍한 짓을 하고 있기 때문에" 결국에는 우크라이나 군대가 보복을 하러 올 거라는 걱정으로 시작했지만, 이제는 폭격과 물자 부족, 대피 등의 직접적 영향을 받게 되면서 전쟁을 지지했던 태도를 바꾸고 있다는 거다.

코네바는 앞으로 전쟁의 상황이 더 나빠질 경우 지지는 더 줄어들 것으로 전망한다. "대피소에 머무르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의사의 도움 없이 아이를 낳아야 하는 여성이 늘어날수록 전쟁을 끝내고 싶다는 생각이 더욱 간절해질 것"이라는 게 그의 생각이다.

프리고진에 대한 평가

전문가들은 프리고진을 그로테스크하면서 동시에 코믹한 캐릭터로 생각했단다. 이름을 밝히기를 꺼리는 한 러시아 역사학자는 이번에 반란을 일으킨 바그너 그룹의 수장 예브게니 프리고진을 두고 이런 말을 했다. "우리는 푸틴의 베리아가 누가될지 항상 궁금했다."  라브렌티 베리아는 스탈린의 명을 받들어 잔인한 숙청을 진행한 심복이고, 한 때 스탈린의 후계자로 여겨졌지만, 그에게 숙청당할 것을 두려워한 흐루쇼프, 몰로토프(화염병을 일컫는 '몰로토프 칵테일'의 그 몰로토프–옮긴이)에 의해 체포, 처형당했다. "푸틴 정권을 위해 일하는 범죄자 유형의 인물이 누구인지 찾아보면 답이 나온다. 바로 프리고진이다."

가운데 흰 옷을 입은 사람이 스탈린, 오른쪽에서 두 번째가 베리아 (이미지 출처: Abkhaz World)

프리고진의 반란이 있기 전인 지난 5월에 나눴던 대화에서 켄달-테일러는 걸핏하면 소셜미디어에 상스러운 욕을 섞어가며 러시아 군대가 반란죄를 저지른다고 화풀이하는 프리고진의 행동을 두고 엘리트층의 생각이 바뀌고 있다는 신호로 해석했다. 푸틴이 사라진 세상에서는 프리고진이나 체첸 공화국의 수반인 람잔 카디로프 같은 사람들이 군벌로 등극해서 러시아의 지배권을 놓고 내전을 벌이는, 현재 아프리카 수단과 같은 시나리오가 나올 수 있다고 했다.

하지만 당장으로서는 푸틴이 권력을 유지할 것이기 때문에 프리고진이 실제로 반란을 일으킬 거로 생각하지 않는다고 했다. 5월만 해도 프리고진의 비판은 상징적인 것에 불과했고, 러시아의 엘리트가 혼란을 겪고 있다는 징후였지, 실제 행동에 나설 것으로는 보지 않았다.


'반란 이후의 푸틴 ③'에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