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비스 저널리즘(Service Journalism)'이라는 개념이 있다. 뉴스 매체가 독자들에게 필요한 뉴스를 골라주는 공급자 중심의 사고에서 벗어나, 독자가 일상에서 직면하는 문제를 해결할 수 있게 돕는 콘텐츠를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10여 년 전 뉴욕타임즈의 성공적인 디지털 변신을 설명하면서 자주 언급되던 개념으로, 뉴욕타임즈 쿠킹(NYT Cooking)이나 와이어커터(Wirecutter) 같은 섹션이 대표적인 사례였다.
그렇다고 '정치, 경제, 사회, 문화'를 중심으로 구성되던 전통적인 뉴스를 없앤 건 아니었고, 그보다 훨씬 더 생활 밀착적인 콘텐츠를 통해 뉴스 매체의 대중적 접점을 넓히는 역할을 했다. 허구한 날 트럼프가 등장하는 뉴스에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도, 새로운 레시피를 찾거나, 믿을 만한 제품 리뷰를 찾기 위해 신뢰의 상징인 뉴욕타임즈의 콘텐츠를 소비하면서 자연스럽게 '진짜 뉴스'도 접하게 된다.
뉴욕타임즈뿐 아니라, 디지털 세상에 성공적으로 안착한 (불행하게도 몇 안 되는) 뉴스 매체가 비슷한 방법을 사용한다. 미국의 NPR(National Public Radio, 미국 공영라디오)는 2008년 미국이 금융위기에 빠졌을 때 복잡한 경제 개념을 청취자들에게 쉽게 설명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했다. 예전 같았으면 경제 지표를 들려주고, 전문가를 데려다가 짧은 인터뷰를 통해 상황을 설명하는 식으로 뉴스를 진행했겠지만—실제로 NPR도 그렇게 했다—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당시 경제 위기와 미국 정부의 해법을 설명하려면 서브프라임 모기지(Subprime Mortgage), 주택저당증권(MBS), 그림자 금융, 부채담보부증권(CDO), 신용부도스와프(CDS)처럼, 보통 사람들은 들어본 적도 없는 개념들부터 이해해야 했기 때문이다. 평소 그런 경제 용어들을 입에 달고 사는 전문가들은 인터뷰에 나와서도 이를 쉽게 설명하지 못했고, 경제 뉴스는 점점 어려워졌다. "국제 정세를 가장 이해하기 힘들었던 때가 1990년대 중반의 보스니아 내전이었고, 경제 문제가 가장 어렵게 느껴진 때가 2008년의 금융위기"라는 괜히 나온 게 아니었다.
이때 NPR은 뛰어난 결정을 내렸다. 청취자가 궁금해할 개념을 그들의 눈높이에서 설명하는 프로그램을 팟캐스트 형태로 띄워보자는 것이었다. 그렇게 탄생한 프로그램이 플래닛 머니(Planet Money)다. 플래닛 머니는 서비스 저널리즘이 단순히 '생활 정보'를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세상을 이해하도록 돕는 방식으로도 구현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주는 좋은 사례다.

복잡하고 추상적인 개념을 이론이 아닌 사람의 이야기와 직접 몸으로 부딪히는 실험을 통해 설명하는 스토리텔링은 이미 NPR이 가지고 있던 역량이었지만, 이를 "우리 청취자에게 경제를 이해시킨다"는 목표에 적용하자 놀라운 결과가 나왔다. 거대한 경제적 메커니즘 뒤에 숨어 있는 인간의 욕망, 선택, 갈등을 서사 중심의 캐릭터로 극화하여 들려줌으로써, 경제학 지식이 없는 사람들도 일단 듣기 시작하면 끝까지 듣고 싶게 만들었다.
NPR에서는 이를 '드라이브웨이 모먼트(Driveway Moment)'라고 부른다. 드라이브웨이는 미국 주택에 딸린 차고에서 집 앞 도로로 이어지는 짧은 공간을 의미하는데, 미국인들은 귀가할 때 보통 여기에 차를 세우고 현관문으로 들어간다. 그런데 퇴근길 운전 중에 듣던 뉴스나 프로그램이 너무 흥미로워서 차를 세운 후 내리지 않고 끝까지 듣게 되는 때가 있다. NPR에서는 그 순간을 '드라이브웨이 모먼트'라고 부르고, 에피소드의 성공을 가늠하는 비공식 지표처럼 이야기한다.
플래닛 머니는 제작진 스스로가 플레이어가 되는 체험형 취재 방식을 즐겨 사용한다. 부실채권의 위험성을 파헤치기 위해 실제로 '톡시(Toxie)'라는 이름의 부실채권을 직접 매입하기도 하고, 티셔츠 한 장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따라 면화 재배부터 글로벌 공급망 전체를 추적하기도 한다. 심지어 조세 회피처의 실태를 파악하기 위해 페이퍼 컴퍼니를 세워 본다. 처음에는 단순히 청취자의 흥미를 끌어내기 위한 수단처럼 보였지만 그렇지 않다. 모든 일이 그렇듯, 직접 해 보면 이론으로만 배웠을 때는 안 보이던 문제들이 나타나기 때문이다.
고 정주영 회장이 생전에 했다던 "임자, 해 봤어"라는 말은 흔히 '해 보지도 않고 할 수 없다는 말을 하지 말라'는 의미로 회자되지만, 세상에는 직접 해 본 사람들만이 직관적으로 이해하게 되는 일들이 많다. 스스로 경험해 보면 쉽게 이해되는 것들이 매뉴얼이나 입문서, 교과서를 통해 접하면 복잡하고 난해하게 느껴진다. 경영학 강의에서 '고객 획득 비용(CAC)'이나 '고객생애가치(LTV)' 같은 개념을 배우는 것과 스타트업을 하면서 알게 되는 것은 차원이 다르다. 광고비를 써도 고객이 늘지 않는 것을 직접 겪어 보고, 어렵게 얻은 고객을 잃지 않기 위해 노력하다 보면 굳이 어려운 정의가 필요 없이 이해하게 된다.
플래닛 머니가 해결하려던 문제는 청취자를 이런 직접적 경험에 최대한 가까이 데려가는 일이었고—실험적으로 시작한 프로그램이 이제 18년이 되어가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듯—이를 성공적으로 해냈다.
그런데 지난해 플래닛 머니 제작팀이 그동안 만들었던 에피소드들 중에서 흥미로운 내용을 뽑고, 새로운 내용을 추가해서 책을 낸다는 소식을 들었다. 결정 과정을 들어보니, 이 프로그램의 내용을 책으로 만드는 아이디어는 제작진이 낸 게 아니라, 출판사와 에이전트가 들고 왔다고 한다. 처음에는 다소 회의적이었는데, 오디오 포맷에서는 할 수 없는 방식—특히 그래프와 도표, 일러스트레이션 같은 시각적 도구—으로 내용을 전달할 수 있을 거라는 판단이 섰고, 경제학 교과서가 아니라 경제를 이해하는 필드가이드를 만들어 보자고 결심하게 되었다고 한다.
공교롭게도 얼마 지나지 않아 한국어 번역 판권을 구한 출판사에서 나와 박누리 님에게 함께 번역을 해보지 않겠냐고 제안하셨다. 번역할 시간을 낼 수 있느냐를 떠나서 영광이었다. 당연히 하겠다고 답했다.
"아침에 집을 나설 때 이 책을 팔에 끼고 나가면 하루 동안 만나는 경제적 힘들을 이해할 수 있는 그런 안내서를 만들기로 했다."
여기서 말하는 '경제적 힘'은 금리나 물가 같은 거시경제 지표가 아니다. 우리가 물건을 사고팔고, 일자리를 구하고, 회사를 세우고, 더 나은 삶을 선택하려는 과정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각자의 이해관계와 욕망을 좇으며 만들어 내는 보이지 않는 힘이다. 서문에서 저자들이 말하는 것처럼, "경제는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협력 프로젝트"다. 하지만 그 협력은 누군가 거대한 설계도를 그려서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경제를 구성하는 사람들이 각자의 가치와 목표를 추구하는 과정에서 시장과 제도, 관습이 조금씩 만들어지고, 그것이 모여 오늘날의 경제 시스템이 되었다.
이 책—한국어 판의 제목은 조금 길지만, '돈의 행성에서 살아남는 최소한의 경제학'이다—의 모든 챕터는 결국 사람들의 이야기다. 잘 알려진 역사적 인물도 있고,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평범한 사람도 있지만, 모두 경제라는 추상적인 시스템 속에서 자신의 가치와 목표를 좇았던 사람들이다. 즉, 이 책은 현대의 경제 시스템을 잘 아는 전문가의 설명이 아니라, 그런 시스템을 모르고 자신의 가치와 목표를 추구하는 과정에서 우리가 현재 사용하는 경제 시스템을 만들어 냈거나, 그걸 깨닫게 된 '사람들'의 이야기다.
그래서 추상적이지 않고, 추상적이지 않기 때문에 경제에 대한 탄탄한 이해가 생긴다.
예를 들어보자. 우리가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신용카드를 이해하려면, 우리가 사용하는 은행과 카드사를 이해해야 하고, 그들이 운영하는 가맹점 제도를 이해해야 한다. 게다가 복잡한 포인트 제도는 또 어떤가? 하지만 이 책 20장에서는 우리가 아는 신용카드가 탄생한 1958년 미국 캘리포니아의 소도시에서 벌어진 일을 설명한다. 뱅크 오브 아메리카(BOA)의 한 부지점장이 약국에 들어가서 우리가 신용카드라는 걸 만들려고 한다며, 가맹점이 되어달라고 부탁하는 장면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그 약국 주인은 흔쾌히 가맹점이 되겠다고 답했다. 수수료를 떼어가는 걸 알면서도 왜 그렇게 했을까? 그 이유를 읽어 보면 신용카드가 현대 경제를 얼마나 매끄럽게 돌아가게 해주는 제도인지 이해할 수 있다.

더 재미있는 건 금융을 "신뢰에 기반한 속임수"라고 소개하는 15장이다. 여기에서는 신용카드 이전에 종이 화폐의 등장을 설명한다. 경제가 성장하고 있던 1700년대 (당시 영국 식민지) 필라델피아에서 화폐가 등장하는 과정을 읽고 나서야 나는 미국에 온 이후로 풀리지 않았던 궁금증—'왜 달러에는 재무장관의 서명이 들어가는가?'—을 해소할 수 있었다. 화폐의 부족이 경제에 얼마나 큰 부담이 되는지, 미국이 왜 전쟁 중에 경제가 성장했고, 그 경험이 어떻게 지금의—재무장관의 서명이 들어간—화폐를 탄생시켰는지를 이해하면 '돈'이란 무엇인가를 아주, 아주 구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이 책은 또한 수요와 공급의 원칙이 얼마나 아름다운 것인지(1장), 상표와 브랜딩, 그리고 범용화의 덫(3장) 같은 기초적인 개념부터 시작해서, 1700년대 이후로 인류가 갑자기 부유하게 된 이유(5장), 제품 가격은 계속 떨어지는데 보육비는 치솟는 아주 분명한 이유(13장)처럼 한 번쯤 궁금하게 생각했던 것들을 속시원하고 설명해준다. 미국 TV의 전설 같은 존재 '아이 러브 루시(I Love Lucy)'가 어떻게 미국의 TV 방송의 작동방식을 창조해 냈는지(6장), 소련이 주말의 개념을 잘못 이해했다가 큰 실수를 저지른 이야기(19장)나, 뉴욕 마라톤의 희소자원 배분법(21장)처럼 전혀 몰랐던 흥미로운 이야기도 곳곳에서 튀어나온다.
내용이 너무나 흥미로워서 번역 작업 자체가 즐거운 독서였다. 오터레터를 좋아하는 독자라면 모든 챕터를 재미있게 읽으실 거라고 장담할 수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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